[196]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6)
오늘의 업무를 마치고 퇴근 시간.
회사 업무에, 촬영도 하려니까 보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지와 데이트는 합법적으로 실컷 즐겼다.
"대표님, 내일 인터뷰 있습니다."
"네. 진수 씨."
"내일은 샵에 들러야 해서 새벽 3시 기상입니다. 제가 집 앞에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그, 저 스무 살입니다. 말씀 편하게 해주십쇼! 하하."
".... 그래."
내 로드 매니저 임진수.
구 팀장님이 한국에서 데려온 직원이었다.
"일단 오늘은 솔라 숙소로 갈게요."
"넵. 대표님."
오늘은 솔라 숙소에서 메리드 커플 촬영이 있었다.
어차피 대표 업무는 거의 본부장님이 대신했으니.
스윽─
스마트폰을 들고, 메리드 커플의 성적을 확인했다.
'진짜 장난 아니네.'
메이저급 시상식보다 시청자 수가 많았다.
첫 방송부터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띠링─
그때, 솔라 단톡방에서 예지가 톡을 보냈다.
[오빠 한식 준비 거의 끝났어요]
[보고싶어요]
예지는 오늘도 따뜻하네.
곧장 솔라 숙소 앞에 도착해 매니저에게 말했다.
"진수야, 바로 퇴근해도 괜찮아."
"넵. 대표님."
"아."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스케줄 하나를 확인했다.
진수 업무는 아니지만.
매니지먼트는 팀이라서.
"구 팀장님이 ABS 방송국 예능 미팅 잡았지?"
"네. 대표님."
"오케이."
촤르륵─
이내, 시트 옆자리에 둔 기획서를 갖고 내렸다.
소미와 다이애나가 출연할 프로그램이었는데.
「생존 일기」
오랜만에 역배각 나오는 예능이었다.
극한의 공포 스팟에서 주어진 도구를 활용해 도망치는 게임.
음악 요소도 가미되어 다이애나와 케미를 기대할 수 있었다.
물론,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띵동─
솔라 숙소 초인종을 누르고 안에 들어갔다.
삼겹살 굽는 향기.
미국에선 못 맡은 냄새였다.
"대표님!"
냉큼 달려와 내게 인사하는 다이애나.
그녀 옆에 카메라 감독이 붙어 있었다.
메리드 커플 제작진은 카메라 사각지대에 각자 서 있었다.
"제가 편곡 보내드렸는데, 어땠어요?"
"아 들어봤는데."
"네네네네!!"
"...."
똥촉이 안 섰어.
그래미 무대에 설 곡으로는 아쉬워.
"별로였구나."
"미안."
다이애나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다시 말했다.
"저도 요즘 너무 밝은 노래만 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긴 하지."
"그래서 좀 호러 분위기로 편곡할까 하는데. 마이클 잭슨 노래처럼."
".... 오?"
방금 뒤통수에서 반응이 온 것 같아.
"그럼 그렇게 가보자."
"네에!"
이내, 소미가 다가와 소매를 잡았다.
"대표님 오셨어요!?"
"응. 소미야."
"저기 좀 봐요!"
"...."
막내가 가리키는 방향, 부엌에서 요리하는 멤버들.
당연히 그쪽도 촬영 중이었다.
예지는 나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와, 요리하는 거야?"
"네! 다 같이!"
"고마워."
"진심을 좀 담아주세요."
"고오맙네."
"...."
오랜만에 미국에서 먹는 한식.
반찬도 전부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무슨 깻잎 장아찌도 있어."
"그건 예지 언니 어머니 거에요."
"아하."
어쩐지 맛있어 보이더라.
"오빠."
예지는 요리를 마치고 식탁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앉아요."
"응. 그래."
이제는 나도 카메라 앞이 익숙해졌다.
벌써 방송도 나갔고, 첫 방송에 히트를 쳤으니.
"그래미 무대 준비는 잘하고 있어?"
"당연하죠."
"우리 앨범상 후보니까 더 잘해야 해."
"에이."
예지는 욕심이 없는 듯 내게 말했다.
"앨범상은 헬보이스가 탈 확률이 90프로래요."
"누가 그래?"
"미국에서 유명한 평론가분들이요."
"예지야."
"네?"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야."
"...."
중꺽마 메타로 간다.
곧이어, 「생존 일기」 시놉을 꺼내 소미에게 건넸다.
"소미랑 다이애나, 예능 잡을 거야."
"오오, 드디어!"
"아직 미팅 단계긴 한데."
"그래요? 무슨 장르에요?"
"공포."
"아."
순간, 소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는데.
다이애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콧방귀를 꼈다.
"공포 컨셉? 그런 게 무섭나?"
"...."
너 전율 궁전에서 장난 아니었어.
"에이, 하나도 안 무섭겠네."
"언니, 나 보호해 줄 거지?"
"당연하지."
다이애나는 당당한 태도로 소미를 감싸 안았다.
미안한데 둘이 똑같아.
아니, 다이애나가 더 심할 수도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너희 둘이 힘을 합치면...."
"오빠."
예지는 삼겹살 한 쌈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일 얘기는 나중에."
"어, 으음."
맛있네.
아무리 예지라도 삼겹살을 맛없게 구울 순 없었다.
그냥 불판에 올린 다음 기다리면 알아서 익으니까.
"아우."
그때, 은서는 젓가락질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깻잎을 힘들게 떼길래 젓가락으로 잡아주었는데.
"오빠."
"응?"
나를 바라보는 예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와아, 대표님이 이걸....?"
"세상에, 깻잎을 떼어주다니!"
"왜 그러셨어여."
"???"
이게 몰카 아닌가요.
"이게 큰 잘못이라고?"
"당연하죠."
소미는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큰 실수 했네, 큰 실수 했어."
"아니, 이게 왜?"
"여친 앞에서 깻잎을 떼어주시면 어떡해요!"
"...."
이런, 깻잎을 떼어주면 안 되는 세상이라니.
"음, 미안하다."
"괜찮아요. 제가 이해해야죠."
"...."
이게 이해씩이나 필요한 문제였어!?
예지는 한숨을 폭 내쉬며 대답했다.
"그래도 앞으로 깻잎 떼주지는 마요."
"손목이 부러져도 안 뗄게."
"믿을게요."
깻스라이팅 당했다.
* * *
다음 날,
스카이 엔터테인먼트 미국 지부.
엄지유는 출근하는 길에 어플에서 태양빛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멤버 외에 수호와 예지의 연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들 반응이....'
실제로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이미 사귀고 있다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지유는 정 대표의 미친 혜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왕관을 쓴 자, 무게를 견디라고 했다.
탑스타를 만나기 위해서는 탑스타가 되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봤던 동네 오빠가 이런 면도 있었네.
'직접 연예인이 됐어!'
과거에 큐앤지 레이블의 서 대표님, 여왕님이 그랬던 것처럼.
회사 대표와 연예인을 겸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회사에 출근하고, 동네 오빠가 대표실에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지유야, 일찍 출근했네?"
"오빠."
"응?"
그는 방송이 성공할 줄 알고 있었겠지.
"오빠, 완전 로맨틱하네."
"아, 너도 방송 봤구나."
"방송 말고."
현실에서도 이렇게 로맨티시스트일 줄은 몰랐네.
지유는 자신의 친오빠와 비교하며 고개를 저었다.
"분위기가 다들 인정하는 것 같아."
"뭐를."
"오빠랑 예지 언니 가상 결혼."
"다행이지."
다행은 무슨, 전부 계획하고 움직이면서.
예지 언니와 공개 연애는 언제쯤 하려나.
"가서 일 봐."
"알겠엉."
지유는 자리로 돌아가 커뮤니티를 접속했다.
'벌써 팬카페가....'
솔라가 아닌, 정수호 단독 팬카페를 발견했다.
물론, 그 아래에 안티 팬카페도 있긴 하지만.
당연히 있을 수밖에.
전 세계 최고 걸그룹 멤버랑 가상 결혼을 했는데.
'진짜 사귀는 거 알면....'
태양빛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 다들 반기는 분위기긴 한데.
"아....!"
그래미 어워드 직후에 있는 결혼식.
「메리드 커플」의 엔딩 촬영이었다.
어쩌면, 그때 솔직하게 고백하려는 걸 수도.
'.... 멋있어.'
대표실에서 업무를 보는 수호 오빠의 등 뒤로 후광이 비췄다.
그야말로, 왕의 품격을 갖춘 남자 아닌가.
예지 언니의 남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내가 뭔가 도울 건 없나.'
지유는 지인들의 연락처를 하나씩 훑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보인, 지올 수석 디자이너의 전화번호.
뚜루루루─
곧장 사쿠라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헬로. 지유 엄....?
"사쿠라 상, 오랜만이에요."
-호호, 시상식 시즌이라 연락해주셨구나!?
"아니요."
지유가 원하는 건 시상식 패션이 아니었다.
"웨딩드레스를 협찬받고 싶어서요."
-.... 에?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연애 프로그램.
메리드 커플의 웨딩 드레스 협찬을 부탁했다.
"가능할까요?"
당황한 듯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상대가 입을 열었다.
-제가 한번 도전해봐야죠.
"감사해요!"
-감사는요.
마감 날짜는 그래미 어워드 직후.
메리드 커플 마지막 촬영 날이었다.
"작가님 번호는 따로 알려 드릴게요!"
-그래요.
소꿉친구처럼 알고 지낸 동네 오빠.
수호의 연애에 기여했다는 기쁨과 함께.
'한 건 했네.'
지유는 뿌듯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 * *
예지와 데이트를 앞두고, 통장 현황을 체크했다.
소미 너튜브 투자 수익금.
강남 건물에서 나온 임대료.
화사에서 일하고 얻은 수입.
돈이 복사가 되네.
꿈은 이루어진다.
부모님께 충분히 용돈을 드리고,
미국에서 적당히 괜찮은 차를 한 대 뽑았다.
개인적으로 과소비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데이트는 해야지."
마침, 멀리서 예지가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누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나는 차에서 내려 예지를 맞이했다.
땅덩이 큰 미국에서도 할리우드에는 번화가가 많았다.
당연히 예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거로 예상했는데.
"혹시 촬영 중인가요?"
"음?"
내 얼굴도 이미 충분히 팔렸다.
"팬이에요! 메리드 커플 잘 보고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내게 인사를 건네고 멀어지는 그녀.
예지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에요?"
"팬이라던데."
"아하."
대놓고 길을 활보해도 파파라치가 안 달라붙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와, 메리드 커플!"
"브라보!"
"촬영 중인가 봐."
"카메라도 없이!?"
"...."
사람들이 방송 컨셉으로 여기고 우리를 응원했다.
물론, 누군가는 카메라를 찾으며 의문을 품었지만.
"스튜피드! 차에 카메라 있겠지!"
"아 그런가."
미국 잼민이들 대화 소리가 귀에 쏙 들어왔다.
"저거 봐! 차에 뭐 달려있잖아."
"오 그러네."
"...."
그거 방향제야.
"오빠, 공원이라도 좀 걸을까요?"
"아니야, 드라이브가 좋을 것 같아."
"왜요, 날씨도 좋은데."
"...."
차에 안 타면 촬영 아닌 거 들킬 거 아냐.
우리는 드라이브 데이트가 더 익숙했다.
"얼른 타자."
"좋아요."
미소를 짓고 보조석에 타는 예지.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
"연예인은 이런 삶이구나."
"아직 어색하죠?"
"그야...."
한국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지만.
인기 방송에 출연하니까 느낌이 달랐다.
"금방 익숙해져요."
"그래."
예지는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한 손으로 운전할 수 있죠?"
"당연하지. 누구 매니전데."
"오빠는 코너링이 예술이에요."
"그럼."
다른 건 몰라도 운전은 자신 있거든.
"우리 대놓고 연애해도 아무도 몰라."
"그러게요."
방송의 힘이 이렇게 대단했다.
"아, 근데요."
"응?"
"생존 일기 촬영 얼마 안 남았죠?"
"응. 며칠 뒤에."
"걱정되네."
"소미가 예능을 얼마나 찍었는데."
"아니요, 다이애나."
"아."
다이애나는 예능 경험이 거의 없지.
특히, 솔라 완전체 촬영을 제외하면.
"내가 더 신경 쓸게."
"고마워요."
예지의 세심한 성격이 지금의 솔라를 만들었다.
앞으로도 소속감을 유지할 원동력이 될 터였다.
"내가 더 고마워."
뒤통수가 선물한 큰 행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고백했다.
"사랑해."
"사랑해요."
눈을 마주치고 뜨거운 입맞춤으로 넘어갈 타이밍인데.
똑, 똑─
순간, 차창 바깥에서 미국 잼민이가 따봉을 날렸다.
"오빠."
이래서 내가 애들을 싫어해요.
"우리 창문 썬팅 다시 해요."
"그래야겠다."
* * *
「생존 일기」 첫 촬영이 있는 어느 날.
솔라 숙소는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소미는 다이애나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다짐했다.
"언니, 우리 절대 도망가기 없어."
"내가 왜 도망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
"거기서 왜 죽어."
"히잉."
삐, 삐삐삑─
이내, 현관문이 열리고 매니저분들이 들어왔다.
정수호 대표님과 엄지유 언니.
그리고 대표님의 매니저까지.
회사 규모와 함께 매니지먼트 규모도 점점 커졌다.
"가자, 얘들아."
"네에!"
시놉시스에 나온 설명엔 간단한 설명이 전부였다.
공포 컨셉 방 탈출.
다른 설명은 없었다.
그래도 다이애나 언니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으니까.
.
.
.
.
.
.
살인마가 돌아다니는 폐교.
소미는 눈물을 펑펑 흘리는 다이애나를 달래며 퀴즈를 풀었다.
"으아아앙. 앞이 안 보여어."
"언니, 괜찮아. 괜찮아."
"빨리 풀어줘어. 흐앙."
"...."
나도 무서운데.
내가 왜 달래고 있는 거야.
스르륵─
그때, 교실 밖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아앙."
"조, 조용히 해."
"흐읍."
소미는 다이애나의 입을 막고 침을 삼켰다.
제발 듣지 못했기를 바라면서 기다렸는데.
'후우, 지나갔어.'
이내, 다이애나는 교실을 스쳐 지나가는 살인자를 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 소미야."
"응?"
"나 지금 영감이 떠올랐는데."
"...."
지금 영감이 중요해!?
"뭐 하는 영감인데!"
"노트 하나만 주라."
"으아, 진짜!"
소미는 퀴즈를 풀고 나온 일기와 필기구를 건넸다.
도살자에게 당한 희생자의 생존 일기.
다이애나는 이빨을 덜덜 떨며 음표를 그렸다.
"아니 낙서 조그맣게 해!!!"
생존 일기에 기존 희생자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살인자는 이 살인 게임을 즐긴다.]
슥, 스슥─
퀴즈도 풀고, 음악도 하고, 일기도 쓰고.
이번 공포 예능은 정말 다채로운 것 같아.
"끄아아앙."
다이애나는 끅끅대면서도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잇, 언니 조용히 좀 햇."
"흐읍."
소미는 다이애나의 입을 막고 일기를 계속 읽었다.
[살인자는 열쇠를 가지고 있지만, 일부러 교실 문을 열지 않는다.]
두 시간에 한 번씩 구멍을 통해 방을 확인한다.
"두 시간이면...."
"지, 지금인데."
오싹─
순간, 두 사람은 교실 문 너머의 살인자와 눈을 마주쳤다.
"꺄아아아악─!"
다이애나는 후문을 열고 도망갔다.
소미를 혼자 버려두고 탈주했다.
"아, 어디 가아!"
한편, 운동장에서 지켜보던 제작진.
정수호는 다이애나의 모습에서 역배각을 느꼈다.
도망다니며 노트에 뭔가 끄적거리는 게 전부인데.
'뭐야, 지금 왜 뒤통수가 가렵지....?'
그의 옆에서 피디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탈출구 문은 확실히 잠갔지?"
"네. 피디님."
"저렇게 막무가내로 도망가면 더 무서울 텐데. 흐흐."
"...."
무지성 도망은 의미가 없었다.
촬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