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걸그룹의 품격(4)
사우드 왕조의 초청을 받고, 제작진은 다 함께 궁전에 입장했다.
이게 세계 최고 산유국, 오일 머니의 힘일까.
호화로운 궁전의 웅장함에 순수한 감탄사가 나왔다.
"대애박."
"장난 아니야!"
"...."
버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와 궁전의 조화.
남민지는 엠마가 잡아끄는 방향에 눈길을 돌렸다.
"민지야! 안 신기해?"
"흥, 글쎄. 이 정도는 뭐."
".... 연예인병 말기."
"아니거든!"
나도 신기해.
심장이 두근두근해.
오직 속으로만 감탄사를 뱉었다.
연예인의 품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우리 대표님은 진짜 대단해!"
"그건 인정."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소미 멘토님. 그리고 대표님.
이번에는, 예능 촬영을 위해 한 나라의 궁전을 섭외하신 거니까.
"대표님."
그때,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나 피디님과 대표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덕분에 사우디 궁전도 촬영하고,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여윽시, 듣던 대로 겸손하시네요!"
"진짠데요."
"아휴, 참."
진짜 천재들은 겸손하다니까.
소미 언니도 그렇고 대표님도 그렇고.
곧이어,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제작진.
남민지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엠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따르는 척 걸어갔다.
솔라가 이 정도였구나.
소미 멘토님 어깨 뽕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여섯 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왔다.
귀여운 소녀는 소미 멘토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 쏘미!"
소미 멘토는 유창한 아랍어로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진짜 천재....!'
스탭들 사이에서도 잔잔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앙, 귀여워."
귀여운 아이를 보면 쓰다듬어 주는 게 국룰.
민지는 해맑은 미소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반응이 뭔가 이상한데.
주변에서 왜 전부 나만 쳐다보지.
"민지야."
"네?"
소미 멘토님은 눈으로 욕설을 뱉었다.
"사우드 왕조 의전 서열 4위 압둘라 공주님이셔."
".... 아하."
민지는 조심스럽게 나쁜 손을 떼며 말했다.
".... 머리 박을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히잉."
그러게 왜 영어를 두고 아랍어로 대화를 나누세요.
"쏘미! 팬이에요. 헤헤."
"감사합니다."
무슨 공주님이 이렇게 귀엽냐고.
"이거 선물."
한편, 나현석 피디는 역사에 남을 그림을 찍으며 흥분했다.
사우디 왕족에서 생일 선물을 받는 소미.
그것도 무슨 보석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아니, 무슨 보석을....?'
설마 이런 보석을 선물해 주실 줄이야.
소미는 슬쩍 대표님의 눈치를 살폈다.
"정중하게 거절해 드려."
"히잉."
이내, 나현석 피디는 수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대표님, 이건 기회예요."
"네? 에이, 그래도 저런 선물을 받는 건...."
"아뇨!"
그는 눈에서 광채를 발산하며 열변을 토했다.
"누가 사우디 궁전에서 게임을 해보겠습니까!"
".... 예?"
"크으, 무슨 게임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요! 인물 퀴즈? 좀비 게임? OST 댄스로 맞추기?"
"Ahhh, 프로게이머를 하셨어야죠."
"예능 피디가 더 좋습니다."
"가족끼리 밥 먹을 때도 게임으로 순서를 정하시나요."
"...."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소미의 팬 서비스는 월드 클래스였다.
아랍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건 기본.
'이건 찍어야 해!'
걸그룹 멤버가 아랍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그림인데.
언제 사우디 왕족과 정답게 대화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을까.
나 피디님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카메라 감독님의 촬영을 지시했다.
소미는 식사하는 동안 아랍어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 모든 장면은 대한민국 예능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열심히 하나.'
왕족들이랑 대화가 통하는 게 더 신기했다.
식사 이후, 거의 사우디 공주님과 1:1 팬미팅에 가까웠다.
카메라 앞에서 함께 「나만 봐」 댄스 챌린지도 동참하시고.
다른 나라 왕족이 걸그룹 춤을 출 일이 얼마나 있겠어.
그냥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사우드 왕조의 공주님이랑.
"정수호 대표님."
이내, 왕족 한 분이 정 대표님께 다가와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소미 씨가 엄청나게 칭찬하시더군요."
"저를요?"
"네. 대표님과 비교하면 본인은 별거 아니라고."
"...."
소미는 대체 얼마나 똑똑하길래.
대표님은 그런 천재를 뛰어넘었고.
"대표님, 혹시 괜찮으시면...."
"???"
"우리 네온 시티에 대한 고견을 여쭤봐도 될까요?"
"예?"
소미랑 왜 국가사업을 얘기하셨어요.
1,400조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 아닌가.
"소미 씨는 꿈의 도시를 건설할 때 태양광보다는 풍력 에너지 이용을 제안하셨는데."
".... 좋은 생각이네요."
"역시, 천재들은 생각하는 게 비슷하군요. 우리 건축가들도...."
"...."
선생님, 고딩이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신 겁니까.
나 피디는 앵글에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담았다.
"오늘 대화, 정말 재밌었습니다."
".... 저도요."
"하하하.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시죠.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
정 대표는 마지막 말을 한국어로 뱉었다.
"번호 바꿀 거에요."
* * *
그날 저녁.
양주희는 스페이스 어플에 접속해 개인방송을 시청했다.
사우디에서 개인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소미.
류시아 선배는 그 옆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내일은 두바이로 떠날 예정이에요!
-우리 저녁 퀴즈 맞히면 쪼코파이 준다는데.
-오오, 내가 무조건 맞춘다.
-나도 나도.
월드 스타가 초코파이에 목숨을 걸다니.
거기 혹시 군대 훈련소 아닌가요.
"오올, 소미 개인 방송 중?"
"응. 맞아."
장은서는 옆자리에 앉아 함께 방송을 시청했다.
"대표님께서 개인방송 허락해주셨나 보네."
"그러게."
"와아, 류시아 언니도 같이?"
"응."
신비주의 걸그룹 멤버가 달라졌다.
팬미팅도 아닌데 팬들과 소통을 다하네.
사실, 연습생 때부터 류시아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솔라 멤버들은 추억에 잠기는 연예인 같은 존재.
"여왕님이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썰도 있었는데."
"그땐 그랬지."
"무용 전공이라 아육대 리듬체조 쓸어버릴 거라고...."
"그건 찐이잖아."
"아 맞네."
아무튼, 현재는 다이애나와 쌍벽을 이루는 저작권 재벌돌인데.
"본인, 시아 언니가 초코파이 먹으려고 애교 부리는 상상함."
"에이, 그게 말이 돼?"
"그, 그렇겠지?"
그녀들은 후원사를 위해 광고를 열심히 했다.
-여러분! 잠시 PPL 좀 하고 갈게요!
-이렇게 대놓고?
-나 피디님이 한 번 할 때마다 초코파이 주신댔는데.
-오오, 그럼 해야지.
소미는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류시아에게 말했다.
-와웅, 이건 19인치 QHD 쏘GGGGGGG텍!?
-쏘지텍!!!!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하이테크 노트북 쏘지텍!
-와, 쏘지텍 폼 미쳤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해.
솔라빔 촬영보다 더 열심히 하네.
타닥, 타닥─
이내, 양주희는 후원 계좌를 열고 도네이션 메시지를 입력했다.
"도네 하게?"
"응. 열심히 하니까 보기 좋아서."
"그치."
스페이스 어플은 아티스트에게 직접 후원하는 기능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돌을 위한 어플이니까.
전액 기부금으로 복지 센터로 들어갔다.
띠링─
[양둘양셋양넷 님께서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소미야, 사랑해 ^^7
소미의 반응을 보니 아이디를 아는 듯했다.
그녀는 도네를 확인하더니 활짝 웃으며 응답했다.
-우앙, 양둘양셋양넷 님! 계좌번호 부를 테니까 다시 보내주시면....
-소미야 진정해.
-농담이에여. 헤헤.
농담 아닌 것 같은데.
-소미야, 그럼 우리 노래라도 불러 드릴까?
-넹, 좋아요. 언니.
-흐음, 뭐 부르지.
-그거, 루나 수록곡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아, Starry Midnight.
-네. 그거 완전 명곡이에요!
-오케. 기타 가져올게.
곧이어, 채팅창에 갈고리가 걸리기 시작했다.
-??
-???????
-????
-헐키 리액션 실화냐?
-10만 원에 노래 불러줌 ㄷㄷ
-미쳐따
-솔라+루나 1:1 콘서트가 겨우 10만 원? 혜자네
-아 10만 원이면 싸다 ㅋㅋㅋㅋ
-드가자
-기타도 쳐주시네 대박 ㅋㅋㅋㅋ
-100만으로 컷 올려야 함
-바로 결제한다
주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한동안 후원 러시가 이어졌다.
띵동, 띵동─
거의 1초에 10만 원씩.
앞의 내용이 들리기도 전에 다음 후원금이 들어왔다.
대략 10분 동안 모인 금액이 천만 원을 훌쩍 넘기고.
"이거 혹시 내 잘못임?"
"아니, 기부도 하고 좋지."
"그런가."
이내, 소미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여기랑 여기! 오늘 여행지 찍었어요! 예쁘죠?
-이거 공개해도 되나.
-아, 스포....?
-응. 대표님한테 혼날 것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대표님 개인방송 신경 안 쓰셔.
-저, 정말?
류시아 언니는 컨셉인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무표정으로 불안한 척해!'
그녀의 입에서 나온 스포라는 단어.
이내, 채팅창에 사우디 궁전이라고 예상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대부분은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배경이 그 정도로 화려했으니.
그때, 어떤 시청자는 도네이션으로 증거 사진을 남겼다.
[소미럽 님께서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진짜 사우디 궁전이었네 ㄷㄷ (사진)
궁전에서 예능 촬영을 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얘들아!
그때, 개인방송 카메라 너머로 정수호 대표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마음대로 개인방송 켰어!
-????
허락 맡고 하는 거 아니었냐.
-저 방송 안 했는데용.
-저도용.
타닥, 타다다닥─
신속하게 방송을 끄는 손길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소미는 후다닥 개인방송을 종료했다.
엄마 몰래 게임 하다 걸린 자식처럼.
잠시 정적이 흐르고, 동갑내기 두 명은 한참을 웃었다.
"아무튼, 진짜 우리 막내는...."
"귀엽다, 귀여워."
사우디 궁전 촬영 소식은 금방 기사 터질걸.
"근데 내일 소미 생일이네."
"아, 그러게."
"태양빛에서 뭔가 준비하신다고는 했는데."
"그래?"
양주희는 동갑내기 친구와 밤새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내일의 촬영도 잊은 채.
연습생 시절의 추억에 잠겼다.
"우리 진짜 예지 언니 덕분에 버텼지."
"응. 맞아."
"너 그때 기억나지? 내가 좁은 숙소에 러닝머신 들여왔을 때."
"그때 생각하니까 갑자기 빡치는데."
"아니, 들어봐."
그녀들의 밤은 천천히 고요하게 흘러갔다.
* * *
다음 날.
사우디를 떠나, 두바이의 숙소에 짐을 내려놓았다.
두바이에 솔라의 팬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스윽─
스마트폰으로 포탈에 실린 뉴스를 확인했다.
《「오락실 유니버스」 사우디 궁전에서 촬영은? 소미, 류시아를 비롯한 스카이 엔터의....》
나현석 피디님과 같은 방을 썼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피디님, 스포해서 죄송해요."
"아뇨. 오히려 좋아요."
"아, 정말요?"
"네. 지금 홍보 효과 장난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숙소에서 일정표를 확인하던 중간에.
한국에서 엄재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재하냐."
-형님, 오랜만이야!
"그러게."
어릴 때는 거의 매일 볼 때도 있었는데.
-형님, 오늘 소미 생일인 거 알지?
"그럼, 알지. 선물도 준비했어."
-아하, 우리 태양빛에서도 준비한 선물이 있거든.
"그래?"
얘는 아직도 팬클럽 활동하나 봐.
카페지기는 아니지만, 임원으로.
"근데 어쩌냐. 지금 우리 한국에 없어서 선물은 나중에 받아야겠다."
-아니, 두바이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야.
"???"
띠링─
이내, 전화 중에 재하가 보낸 톡을 확인했다.
소미의 18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
팬클럽에서 준비한 영상인 모양인데.
"귀엽네. 편집도 깔끔하고, 아마 전문가가 만진...."
-이거 부르즈 할리파, 광고 승인 났어.
"응? 무슨 광고?"
-거기, 벽면 광고 있잖아. 심사 기간 겨우 맞췄다고.
"...."
828m로 현존하는 최고 높이의 건물 부르즈 할리파.
고층 빌딩의 벽면 전체를 수놓은 LED 영상을 뜻했다.
-태양빛 팬들이 우주아이돌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야.
"아니, 스케일 무엇."
-솔라니까.
"...."
솔라니까.
그 한마디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했다.
곧바로 나현석 피디님과 정보를 공유했다.
당연히 방송 촬영 스탭들과 상의해야 했으니.
"와우, 이것도 혹시 대표님 큰 그림....!?"
"그건 아니고요."
"키야,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심이에요!"
"아니라니까요."
"역시 정수호!"
말을 하면 좀 들어주세요.
게임밖에 모르는 피디님.
그는 촬영 전에 작가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진행했다.
생일 광고가 나오는 정확한 시간과 배경을 고려해서.
'진짜 전문가는 다르네.'
이런 노력이 모여서 좋은 장면을 만든다.
단순 역배각 하나로 방송은 뜰 수 없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내가 잡은 모든 방송은 스탭분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성공했다.
솔라가 아무리 크게 성공했어도.
여전히 방송국 분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였다.
긴급 회의를 마치고, 나현석 피디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러분, 오늘 촬영도 힘냅시다."
"가즈아!"
스탭들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