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36화 (136/200)

[136] 이클립스(4)

토톡, 토톡─

적막한 연습실에 울려 퍼지는 스마트폰 터치음.

장은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키워드를 검색했다.

[고백하는 법]

[차였을 때 대처법]

[우황청심환 효능]

괜찮은 제목을 발견해 블로그에 들어가 봤지만.

-솔직하게, 저돌적으로, 분명하게─!!!

-오늘은 고백하는 법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찡긋)

-이상 3가지를 명심하시길 재차 강조하며,

-이만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저는 알아본 게 없는데요.

내용이 하나도 없잖아요.

"아, 좋은 날 화낼 뻔했네."

열심히 찾아도 마음에 드는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다.

"후우...."

이내, 연습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시상식에서나 볼 법한 붉은 계열의 드레스.

한 손엔 할머니 집에서 꿍쳐둔 와인 한 병.

띠링─

그때, 스파트폰에 대표님께서 보낸 톡이 도착했다.

[10분 뒤에 사무실에서 보자]

스카이 엔터는 대표실이 따로 없었다.

모든 직원 공용 사무실 하나뿐이었다.

두근, 두근─

한 손에 와인병을 꼭 쥐고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후우...."

대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한 사람.

정수호 대표님께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헐리우드 예지 언니도 허락했으니.

'다른 직원분들은 안 계시겠지....?'

분명히 오늘 단둘이 보기로 했으니까.

설마 눈치 없이 다른 사람 데려왔으면.

'.... 이 와인병으로 뒤통수를 그냥.'

스르륵─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붉은색 드레스 자락이 바닥에 쓸렸다.

늦은 시각이라 복도에 인기척은 없었다.

한 걸음씩 그분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망설이지 말고 고백해야 해!'

이 모퉁이만 돌면 사무실에서 대표님이 홀로 기다리고 있겠지.

내일이면 분명해질까, 자신과 그 사람의 거리가 어느 정도일지.

"대표님, 좋아.... 해?"

틱─

순간, 사무실 불이 켜지며 사방에서 폭죽 소리가 터졌다.

"언니 축하해!!!"

"대상 후보 축하해요!!"

"와아아─!"

"???"

솔라, 이클립스 멤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사무실 벽면과 천장에 덕지덕지 붙은 축하문구와 풍선장식.

"은서 언니, 왜 드레스를....?"

"와인도 들고 있네."

"아잇, 이거 들켰네! 알고 있었잖아!"

"까비."

"?????"

이내, 어리둥절한 은서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

정수호 대표는 케이크에 초를 밝히고 다가왔다.

"역시 은서가 눈치는 정말 빠르네."

"...."

깊은 빡침이 단전으로부터 서서히 올라왔다.

방금 고백할 뻔했는데.

평생 이불킥 각이었다.

이불킥 대신 정수호 빵댕이 킥 가능할까요.

"은서야 소원 불어야지."

".... 제 소원은요."

와인병으로 뒤통수 한 대만 갈기고 싶은데 괜찮을는지.

"대표님, 맞을래요?"

"예?"

깜짝 파티도 좋아, 다 좋은데.

그게 왜 하필이면 오늘이냐고.

"언니, 울어?"

소미는 눈치도 없이 드레스 앞자락을 콕콕 찔러댔다.

아영 언니한테 부탁해서 드레스까지 차려입었는데.

"오오, 은서 언니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운다!!!"

"화나게 하지 마라."

"오, 부끄러워한다! 감동했구나!"

"아니라고!"

한동안 억누른 분조장이 튀어나올 것 같다.

"감동 안 했다고!!!"

은서는 도도도-, 도망쳐 사무실을 벗어났다.

이내, 그녀를 따라가며 축하해 주는 멤버들.

한편, 사무실에 남은 수호와 예지는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대표님! 은서가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부끄러워서 도망갔나."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좋아해 주네요. 고맙게."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네!"

"맞아요."

그로부터 한동안 은서는 수호와 말을 섞지 않았다.

* * *

이클립스의 음원 차트는 어느새 Top 10.

최근에 데뷔한 걸그룹 중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당연히 각종 방송국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다.

"오빠, 요즘 은서 언니 표정이 좀 어두워."

"그럴 만도 하지."

벌써 대상을 탄 건 아니니까.

아직 후보에 올랐을 뿐이라.

"당분간 초조할 거야."

"그런가."

요즘 예민해져서 나한테도 말을 안 걸더라고.

"지금 이클립스 스케줄 들어온 거 확인해 봐."

"알겠어."

이제 갓 데뷔했으니, 일단 음방 위주의 활동을 이어갔다.

'슬슬 솔라 컴백도 준비해야지.'

이제는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괜찮은 인지도가 있었다.

걸스온탑, 로이랜드 덕분에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으니.

'큰 거 한 방 없나.'

당장 이클립스 앞에 들어온 예능을 하나씩 훑기 시작했는데.

모기 덕분에 강화한 뒤통수 효과는 탁월했다.

간지러운 '정도'를 비교하고 숫자를 매겼으니.

"이건 34점, 이건 20...."

"오빠 지금 뭐하는 거야?"

"응. 그냥."

"설마 방송마다 점수 매기는 거야!?"

"비슷해."

뒤통수 간지러운 정도로 점수를 매긴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와아, 시장 분석을 밤새도록 하는 거야?"

"응?"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어떻게 점수로 매겨?"

"변수는 하나뿐이야."

"역시, 천재....!"

뒤통수만으로 매긴 점수에요.

"제일 높은 점수는.... 84점."

"예지랑 소미한테 들어온 예능, 브레인."

"오, 미국 방송국 CBC이네."

"응. 솔라가 뜨긴 떴나 봐. 미국에서도 스케줄이 한 번씩 들어옴."

"이거 할 거야?"

"못 하지."

미성년자를 미국에 막 보낼 수도 없고.

내가 따라간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허락 맡아서....'

생각만으로도 골치 아프다.

소미 어머니 법조인이신데.

"미국에서 미성년자는 촬영이 몇 시까지 허용되더라?"

"그런 게 있어?"

"예."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요즘 재하랑 사이는 어때?"

"그냥 데면데면하지."

"화해 안 했니?"

"벤쓰 산 뒤로 맨날 싸움."

"...."

아직 태양빛에서 엄재하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카페를 설립하기도 했고, 열심히 활동했으니.

"팬클럽 회원이랑 싸워서 좋을 거 없어. 나중에 한번 불러."

"부르라고?"

"응. 셋이서 한번 보자."

"알겠어."

멀어지는 엄지유를 확인하고, 모니터에 시선을 돌렸다.

오늘 오전에 워킹맨 외벽 청소 편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딸깍, 딸깍─

썸네일에 박힌 신소미와 남민지.

조회수는 벌써 500만을 넘어섰다.

".... 잘 나가네."

나라고 외벽 청소를 시키고 싶어서 시키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뒤통수 픽은 항상 정답이었으니까.

위험했다면 뒤통수는 간지럽지도 않았겠지.

"대표님."

그때, 사무실 입구에서 구현식 팀장이 걸어왔다.

"악마가 되었다, 크랭크인 했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스탭분들, 두 여배우 기싸움에 피 말린다던데.

"회사 이름으로 밥차도 종종 보내죠."

"네. 요즘 이수연 배우님이 최대한 참고 있습니다."

"그래요?"

"네. 감독님께서도 배역상 그게 어울린다고...."

"다행이네요."

역시 뒤통수 픽은 정답이라니까.

"저기, 근데 에일리 프로듀서 말입니다."

"무슨 문제 있어요?"

"보면 볼수록 프로듀싱 실력이 너무 뛰어납니다."

"...."

그건 나도 느끼고 있었다.

에일리는 K팝에 '전혀' 관심이 없던 프로듀서였다.

그런 패널티에도 인턴들 중에 두각을 드러냈는데.

"이제는 다이애나 프로듀서랑 동급이라고...."

"...."

대체 뭐하던 분이길래, 빌보드 탑 찍은 도하나랑 비슷한 걸까.

"직원들이 대표님 안목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아, 네."

저도 놀랐어요.

"일단, 솔라 미국 진출 앨범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전부 대표님 덕분입니다."

".... 예."

어느 부분이 내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 * *

그날 저녁.

나는 집에 초인종을 누르는 재하를 반갑게 맞았다.

"재하 왔냐."

"형님, 오랜만이야!"

"그러게."

어릴 때는 집 근처에서 자주 봤었는데.

"야야, 거기 조심!"

"옴마야."

현관 앞에 둔 택배에 사타구니를 부딪힐 뻔한 재하.

예지는 종종 '우리집'이 허전하다며 하나씩 주문했다.

"이게 뭐야? 가구 같은데."

"응. 서랍인데 조립할 시간이 없어서."

"여자 될 뻔했네."

"...."

솔직히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예지가 집주인이라.

곰 인형 때부터 개인적인 선물 취향이 많이 갈렸다.

"형님, 조금만 있으면 생일이네."

"나이 들어서 생일은 무슨."

"중요하지."

그보다, 이번 주에 열리는 백상예술대상이 기대됐다.

"첫사랑, 대상 탈 것 같아?"

"당연하지. 멜로 영화 역대급 기록을 찍었는데."

"그럼 다행이고."

띵동

그때, 지유도 마침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에이, 뭐야. 엄지유도 왔어?"

"동생인데 왤케 싸우냐."

"쟤가 내 카드로....!"

"끄앙."

그때, 지유는 서랍에 부딪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으아아, 아파아."

"너 바보냐?"

재하는 급하게 달려가서 지유한테 소리쳤다.

그래도 동생은 동생이라고 걱정해주는 모습.

'이렇게 셋이 모이는 거 오랜만이네.'

지유도 언제 이렇게 커서 어엿한 매니저가 됐을까.

재하는 투자 회사에 자리 잡아 서로 도움을 주고.

"얘들아, 일단 배달 음식...."

띵동─

그때, 다시 한 번 집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뭐지, 올 사람 다 왔는데."

곧장 인터폰으로 문밖에 누가 있나 확인했는데.

-저예요! 오늘 지유 온다면서요!

".... 예지네."

"뭐!?"

극성팬이 있어서 오늘은 못 오게 해야겠다.

엄재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팔딱거렸다.

"대박, 진짜 형님 지구를 구했구나!?"

"시끄럽고, 돌려보낼 거야."

"아, 왜애!!!"

재하는 당장 달려가서 현관문을 열고 싶은 듯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재하야, 팬은 연예인을 멀리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거야."

"그건...."

"오래 덕질해 봐서 알잖아."

"...."

그런데, 예지는 인터폰 너머로 쿨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은데.

그 말이 트리거가 된 듯, 재하는 현관으로 뛰어갔다.

눈에 뵈는 게 없는지 그냥 무식하게 달려가던 찰나.

"커어억."

".... 조심하라니까."

털썩─

재하는 서랍에 사타구니를 부딪히고 무릎을 꿇었다.

여동생은 안쓰러운 눈으로 오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괜찮아?"

"지유야, 오빠라니."

"응?"

이제 재하는 오빠가 아니야.

"언니라고 불러야지."

"아하."

예지한테 못 볼 꼴을 보일 수는 없을 것 같다.

".... 그냥 돌려보낼게."

"으어어."

* * *

MBS 뮤직, 「주간연예돌」 스튜디오.

이클립스 멤버들은 모두 모여 스케줄을 소화했다.

MC의 진행에 따라 각자 매력을 뽐내고 있었는데.

"남민지 양, 워킹맨에 출연하셨네요?"

"네. 맞아요! 소미 언니랑."

"오, 소미 언니라고 부르는군요."

"넵. 같은 고등학교 다닙니다!"

민지는 오랜만에 주목을 받으니 신나서 떠들었다.

"외벽 청소라니, 평소에 담력이 강한가 봐요."

"네? 아.... 네! 엄청 강합니다!"

"오호."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아서 그런가.

허언증이 또 도졌다.

쉽게 제어가 안 된다.

"그럼 담력 테스트 한번 갈게요."

"예?"

"안대 쓰고 10초에 멈춰주시면 됩니다."

"???"

이내, MC는 고무줄 장치를 준비했다.

10초에 정확히 멈추지 않으면 맞을 터.

"아잇, 이게 모에요."

올리비아 언니는 단독으로 노래를 시켰고.

지아 언니는 즉석에서 작곡을 시켰으면서.

"저도 춤 시켜주세요! 저 춤도 잘 춰요!"

"오케이. 대신 1초 이내에 멈추면 소원 들어드릴게요."

"소원....?"

"네. 회사에 원하는 소원을 말하세요."

"...."

그럼 회사에서 소원 안 들어주면 끝이잖아요.

"어떻게, 엄 매니저님 괜찮겠습니까?"

"아, 음...."

MC의 질문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구 팀장.

어려운 부탁은 몰라도, 정당한 선에서는 가능했다.

스윽─

눈을 가리고, 다른 모든 감각에 집중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

"...."

마음속에서 하나씩 초시계를 돌렸다.

눈으로 볼 수 없다면 마음의 눈으로....

딱─

"억."

민지의 이마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그녀의 찰진 리액션에 스탭들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MC는 타격감 좋은 민지를 곧장 예능캐로 판단했다.

"그럼 8초에 소원권, 콜?"

"안 해요."

"5초."

".... 콜!"

아, 그래도 5초면 할 만하지 않을까.

바보도 아니고, 4초에 끊으면 되지.

"자, 다시 안대 쓰시고...."

리신 메타로 간다.

"5.... 4.... 3.... 악!"

"아, 실수."

아무래도, MC가 일부러 놓은 것 같은데.

"이잉, 소미 언니한테 다 이를 거에요!"

"대신 소원권 드릴게요."

"진짜요?"

"저 말고 회사가."

"...."

곧이어, 이클립스 멤버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우리 세탁기 새 걸로 바꾸고 싶어요."

"나는 로봇 청소기."

"아휴, 언니들!"

엠마는 허리에 팔짱을 두르고 입을 열었다.

"당연히 나루하 스페셜 에디션 브로마이드가 먼저지."

"???"

그게 뭔데요, 씹덕아.

"숙소 바꾸고 싶어요."

"오, 좋다."

이내, 구현식 팀장은 스마트폰으로 정수호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유명 인사였으니 당연히 방송에도 나갈 터.

곧장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질문했는데.

-숙소는 어렵겠는데요.

"아, 그렇습니까?"

-대신 나루하 스페셜 에디....

"안 돼애애!!!!"

이클립스 멤버들의 만류에 수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음원 차트 1위 하면 숙소 바꿔줄게요.

"오, 진짜요?"

-예. 솔라, 루나 선배들이랑 같은 아파트로.

"...."

근데 다음 달에 하이엔드 선배님들 컴백하잖아.

'.... 한 달 남았네.'

그 전에 1위 하는 방법이 있을까.

왠지 대표님과 엮이면 될 것 같아.

"대표님, 곧 생일이죠?"

-응. 그렇지.

민지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생일 날 햇빛달빛 챌린지 해주세요!"

-내 생일에?

"네!"

그녀의 뻔뻔한 성격은 스탭들을 웃음짓게 했다.

한동안 말이 없으신 대표님.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하아, 역배각 실화냐.

"???"

* * *

며칠 뒤,

「우주아이돌 갓소미」 너튜브 채널에 짧은 영상이 올라왔다.

《다 뒤졌다. 댄싱머신이 돌아왔다. (feat.이클립스)》

-10초 전

-조회수 57회

곧이어, 빛의 속도로 첫 번째 댓글이 달렸다.

-이집 대표 잘하네!

이어지는 솔라 멤버들의 릴레이 챌린지.

햇빛달빛 챌린지는 해외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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