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35화 (135/200)

[135] 이클립스(3)

걸스온탑으로 모든 화제성을 끌어모은 대형 신인.

이클립스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가 세상에 공개됐다.

데뷔 앨범 타이틀곡, 「햇빛달빛」.

K팝과 미국 팝송을 섞은 듯한 실험적인 곡이었지만.

김치치즈볶음밥 같은 절묘한 맛은 대중성을 저격했다.

톡, 토톡─

글로벌 기업 프렌즈에서도 나름 그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일단, 곡이 정말 좋군요."

"미국에서 프로듀서를 섭외했다고 하던데요."

"성공할만했어."

"...."

걸그룹 프로듀서로서 정수호 대표는 천재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했다.

이클립스는 곡, 안무, 마케팅, 홍보 방법, 런칭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걸그룹의 신.... 이 아닐까?'

프렌즈 엔터, 제3 레이블의 제작총괄실장.

전형준은 조금 우울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벌써 플립나인을 뛰어넘을 줄이야....'

도라희 방출 이후, 미친 듯이 노력했지만.

갓데뷔한 걸그룹이 벌써 그 위치에 올랐다.

"오늘 스카이 엔터에서 손님 오시는 거 알지?"

"네. 실장님."

"깍듯하게 대해."

"넵."

걸그룹 전문 레이블, 스카이 엔터.

솔라가 소속된 유망한 스타트업.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프렌즈에서 공동 투자로 설립한 레이블에서 보란 듯이 성공했으니.

오늘 아침 상부에서 스카이 엔터의 '지시'를 받으라는 공문을 내렸다.

[회사 내규에 의거, 오늘부터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이하 갑)는 프렌즈 제3 레이블(이하 을)을 관리할 책임과 의무를....]

사실,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인데.

자존심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똑, 똑─

곧이어, 스카이 엔터에서 '손님'이 도착했다.

전 직장동료였고, 후배이자 인사팀장이었던.

"전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 그러네."

도라희 사건 내부 총질로 자신이 직접 잘라낸 친구.

"구현식 팀장, 오랜만이야."

"여기도 많이 바뀌었네요. 가구도 살짝 낡았고...."

"...."

그는 신기하다는 듯이 사무실 내부를 둘러봤다.

"손님 오셨으니, 다들 나가시네."

"네. 실장님."

이내,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더니 나가는 부하 직원들.

구 팀장은 그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상부에서 보고받았네."

"아, 그러셨습니까?"

"...."

세상이 억까한다는 게 이런 거 아닌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이렇게 되나.

"도중구 이사님은 잘 계시죠?"

"아, 음."

방출된 도라희 연습생의 삼촌.

플립나인 사건 때 해고당했다.

똑똑하고 정보에 밝은 구 팀장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테니.

"자네는 혹시 조롱하러 온 건가?"

"무슨 말씀이세요."

구현식은 자세를 고쳐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비지니스만 할 겁니다."

"...."

스윽─

이내, 구 팀장은 테이블에 있는 자료를 주워들었다.

프렌즈에서 키운 걸그룹 및 연습생들에 대한 자료.

"대표님께 자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저기."

구 팀장은 활짝 웃으며 전 실장에게 말했다.

"실장님, 상호 간에 존대 부탁드립니다."

".... 그러죠."

"감사합니다. 하핫."

수시로 갑을 관계가 바뀌는 업계 아닌가.

잘나가는 슈퍼스타가 하늘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비루한 단역 배우도 월드 스타가 될 수도 있는 곳.

오늘도 빌어먹을 연예계는 바뀌지 않았다.

* * *

첫 번째 뮤직비디오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직원들도 놀랄 정도.

사실, 워킹맨 출연에 반대하는 의견도 살짝 나왔지만.

끼이익─

나는 숙소 앞에서 소미를 픽업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대표님 하이!"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당연하죠. 동생 그룹이 잘됐는데."

"소미가 착해."

"헤헤."

이내, 이클립스 숙소에서는 남민지를 태우고 목적지로 향했다.

"대표님 우리 청소하러 간다면서요."

"응. 맞아."

"무슨 청소에요?"

"...."

무슨 건물 외벽 청소라던데.

"이게 원래 정화조 청소라고 했었거든."

"어엉....?"

"근데 너무하다 싶어서 내가 바꿨지."

"후, 다행이다."

"다행이지."

잠시 후,

꼬꼬마 소녀들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건물을 올려다봤다.

"이게 정화조 청소랑 뭐가 다름?"

"선택지가 왜 이래여."

".... 그래도 별로 안 위험하대."

"???"

그때, 워킹맨 MC 장성구가 달려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 장진구다."

"와우, 솔라와 이클립스 멤버가 한 자리에!"

"소미랑 민지가 여기 얼마나 나오고 싶어했는데요."

"????"

의문을 품은 두 급식 친구들을 뒤로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우리 애들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내 자식처럼 케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초창기 한국 너튜브 시장에 꽤나 큰 영향력을 남긴 분.

여기 나오면 우주아이돌 채널에 나와주신다고 했으니.

이런 게 윈윈이지.

예능에서 잡아주고 땡겨줄 분은 많을수록 좋았다.

소미는 몰라도 민지는 아직 자리를 못 잡았으니까.

"지, 진짜로 건물 외벽을 청소해요?"

"아, 못 듣고 오셨구나."

"당연하죠!"

요즘 예능에 리얼리티는 생명 아닌가.

나도 미안하긴 한데.

뒤통수 선택이라서.

'나도 많이 컸네'

옛날 같았으면 피디랑 MC가 나한테 같이 하자고 꼬드겼을 텐데.

대표 명함 파서 그런가, 눈치만 보고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소미는 의외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표님."

"응?"

"저랑 외벽 청소빵 가시죠."

"???"

태어나서 외벽 청소빵은 처음 들어보네.

"내기에서 진 사람이 건물에 올라가는 거예요."

"종목이 뭔데."

"저랑 가볍게 수학 문제 한 번...."

"응. 안 해."

"아아."

꼬우면 니가 대표 하시던가.

띠리리링─

이내, 은서에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모쪼록, 잘 좀 부탁드려요."

"넵. 걱정하지 마십쇼!"

"으아아앙."

"뿌에엥."

나는 도살장 멍멍이처럼 끌려가는 소미와 민지를 뒤로한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표님!!

"뭐야."

오늘 엄청 분위기 업됐는데.

덩당나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 김춘수 감독님께 연락이 왔거든요.

"아, 그래?"

-첫사랑,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후보에 올랐대요.

"무슨 후보?"

-대상이요!

결국, 첫사랑이 거기까지 올라갔구나.

"천만 찍었으니까."

-대표님 덕분이에요!

"네가 잘했지."

해맑게 웃는 은서 목소리를 들으니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돈 벌어서 좋았어.'

작년에 찍은 복수소녀에 이어, 연타석 홈런.

이제 명실상부 1티어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작년에도 복수소녀로 여자 최우수 연기상은 탔잖아."

-그때보다 훨씬 더 기뻐요!

"그럼 나도 기쁘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것.

대상 후보에 오른 정도로 이렇게 기뻐하다니.

"로이랜드도 미국에서 수상 이야기가 오가던데...."

-대표님, 오늘 둘이서 한잔 하실래요?

"둘이서?"

-.... 안 돼요?

"알겠어."

이내, 은서는 세상에서 가장 기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요? 정말이죠!?

"응. 내가 오늘 악마가 되었다 대본리딩 있거든, 끝나고 회사로 갈게."

-네. 대표님.

뚝.

아니, 근데 단둘이 보는 것보단 다 같이 보는 게 더 좋지 않나.

그냥 멤버들이랑 다 같이 깜짝파티 해줄까.

저기 울면서 줄에 매달린 소미도 포함해서.

"엄마아아아아─!!!"

"...."

워킹맨 끝나면, 「악마가 되었다」 대본리딩 장소에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다.

일단 지유라도 먼저 보낼까.

이수연 씨랑 진세은 씨,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싸우는 건 아니겠지.

".... 아니겠지?"

* * *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

끼익, 끼이이익─

소미와 민지는 서로를 의지한 채 줄에 매달렸다.

안전 장비를 걸치고 건물 외벽에 달라붙었는데.

"민지야, 가만히 좀 있어 봐!"

"무서운데 어떡해!"

"아니, 반말은 하지 말고."

"엄마아아."

"아잇."

저 멀리, 지상의 인간들은 개미보다 작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전화기를 붙들고 껄껄 웃는 대표님.

"으아아아."

순간, 다른 생각 하느라 균형을 잃고 줄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선배님! 가만히 좀 계세요."

"뭐 계세?"

"아니, 쫌."

이내, 함께 올라온 장성구 아재랑 카메라 감독.

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니요오."

하물며, 오늘 처음 보는 사람도 이렇게 걱정해 주는데.

"하다 보면 익숙해져요!!!"

"...."

휘이이잉─

바람 소리 너머로 들려오는 개쓸데없는 조언.

신소미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후배님을 힐끔 바라봤다.

얼마 전에 갓 데뷔한 민지보다는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시 해볼게요!"

"굿굿굿!!"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할 만했다.

스카이 다이빙 이전에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와이어에 의지해 건물 외벽 청소도 하고 있었으니.

'대표님....'

당신 덕분에 저는 강려크해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오늘처럼 당하지만은 않을걸요.

휘이이잉─

"으아아아앙."

소미의 굳은 의지는 강풍 한 줄기에 꺾여버렸다.

"아이고, 진행인 안 되네."

오늘의 도우미는 아쉬운 대로 장성구에게 말했다.

"성구 씨라도 열심히 합니다!"

"나도 무서워요오!!!"

"빨리!"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고, 점심시간 무렵.

건물 외벽에 붙어있던 출연진은 내려왔다.

부스스한 머리에 눈물 콧물을 찔끔 흘리는 두 여인.

누가 보면 어디서 패싸움이라도 하고 온 줄 알겠다.

"크흡, 우리 소미랑 민지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요?"

"...."

정수호 대표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화를.... 내는 척만 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네. 오후에는 조심 좀 해주세요."

".... 뭐라고!? 오후에 또 한다고!?"

"나를 죽여라."

소미와 민지는 길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건물 외벽에 다시 오를 바엔 죽음을 택하겠다.

"얘들아, 너희 걸그룹이야. 일어나."

"아, 몰라요!"

"민지야, 너는 신인이잖아. 빨리 일어나라."

"배 째요."

".... 가위 갖고 와."

"앗."

한편, 워킹맨 피디는 좋은 그림에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게다가, 걸스온탑의 정수호까지 카메라 앞에 나타나 주셨으니.

'조회수 천만 각!!!!'

몇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귀한 장면이었다.

"오케이, 그럼 오후엔 1층 외벽 청소를 할까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월드 스타 솔라와 라이징 스타 이클립스 멤버.

이 걸그룹을 두고 누가 외벽 청소에 집중할까.

"까비."

수호의 아쉬운 말에 소미는 황당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대표님, 두고 봐요!"

"두고 보긴 뭘 봐."

* * *

모기 덕분에 강화에 성공했나.

뒤통수 촉이 날이 갈수록 정교해졌다.

소미가 소리지를 때마다 간질간질해서.

"조회수 대박 날 듯."

"...."

소미랑 민지를 데리고 회사에 도착했다.

"이게 다 너희 잘되라고 하는 거야, 알지?"

"몰라요."

"아무튼, 옆길로 새지 말고 연습실로 직행해라."

"히잉."

회사에 들어가는 꼬꼬마들을 확인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 진심을 몰라주네.'

나도 걱정되는 마음으로 불안하고 불편하다니까.

그게 아니면 역배각이 아니라서 스케줄 안 잡았지.

잠시 후,

강남의 한 스튜디오 앞에 차를 세우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건물 앞에서 나를 마중 나은 지유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오빠, 여기!"

"여배우님들 싸웠어?"

"싸운 건 아니고."

곧이어, 지유와 함께 대본리딩 현장에 들어갔다.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뒷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너를 찢어 죽여서 개먹이로 던져줄까 해."

"깔깔깔, 해볼 수 있으면 해보던가. 개같은련."

".... 컷."

이내, 감독님은 과열된 열기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원래 '악마가 되었다'의 대본이 조금 강한 편이긴 하지만.

"두 분, 대사가 살짝 바뀐 것 같아요. 뉘앙스라고 해야 하나."

"아, 그래요?"

"저는 애드립이었...."

"흐음, 극에 너무 몰입했나 봐요. 전혀 몰랐어요."

".... 저도."

지유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속삭였다.

"이런 식이야."

두 배우가 싸우면 각자 이미지에 안 좋기도 하겠지만.

확실한 건, 둘 중에 한쪽에만 뒤통수가 반응한다는 것.

'정말로 똥촉이 정교해졌나 봐.'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간질간질하게 정보를 전달했다.

원래 큰 줄기에서 반응했는데, 이젠 미세한 예측도 가능했다.

휴식 시간에 맞춰 걸음을 옮겼다.

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한 배우.

"이수연 배우님."

"네?"

자존심 굽히고 서브로 들어온 건 고마운데.

이번에는 한발쯤 양보해 주셔야 할 것 같다.

"영화를 위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싫어요."

"아직 말 안 했는데요."

"그냥 싫어요."

눈치는 진짜 더럽게 빠르다.

"첫 번째 영화잖아요. 성공하고 싶은 거 맞죠?"

움찔─

순간, 수연 씨는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언니고 선배니까, 조금만 맞춰주시죠."

".... 알겠어요."

이내, 시선을 돌려 다시 미팅룸에 돌아가려는 찰나.

모퉁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타다다닥─

진세은 씨는 부끄러운 듯 도망쳐 버렸다.

'에유, 대표도 쉽지 않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작한 대본리딩.

두 분은 자연스럽게 대사를 주고받았다.

'잘 하시면서, 참....'

일단, 악마가 되었다는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김찬호 감독님의 왕의 품격은 아직 모르겠지만.

"지유야, 잠깐만."

"응?"

나는 미팅룸 바깥에 빠져나와 지유와 대화를 나눴다.

"여기 내가 있을 테니까. 네가 준비해줘. 케이크도 하나 사고."

"무슨 준비?"

"오늘 저녁에 은서 깜짝 파티해 주려고 하거든. 대상 후보에 오른 거 축하할 겸."

"오빠랑 단둘이 보는 거 아니었어?"

"그럴까 했는데."

멤버들이 다 함께 축하해주면 더 좋아하겠지.

이클립스는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니까.

"솔라, 이클립스 멤버들이랑 같이 축하해주자."

"응. 알겠어!"

은서가 얼마나 좋아할까.

벌써부터 표정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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