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34화 (134/200)

[134] 이클립스(2)

요즘 같은 걸그룹 홍수 시대에 스카이 엔터는 노다지였다.

솔라 덕분에 크게 성공한 「걸스온탑」.

당연히 그 수혜자는 이클립스 아닌가.

재능 있는 걸그룹을 데뷔 때부터 키우는 건 프로듀서들의 로망.

하민준 프로듀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카이 엔터에 출근했다.

첫 출근부터 반갑게 인사해주는 직원분들.

빅보스와 달리, 다들 표정에 생기가 넘쳤다.

'느낌이 좋은데?'

민준은 행복한 상상을 하며 사무실에 입성했다.

한 눈에 전부 들어오는 거대한 사무실.

대표실이 따로 없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아이돌 엔터 업계에서는 처음 보는 수평적인 시스템.

꼰대 문화에 질려버린 민준에게는 천국처럼 보였다.

"차렷!"

"???"

그때, 사무실 한쪽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떼는 인턴이 지각하는 건 꿈도 못 꿨어요."

"이제 8시 정각인데...."

"5분 전에 와서 업무 준비해야죠. 기본이 안 됐네!"

"...."

TV에 종종 출연하는 엄지유 매니저님.

반가운 얼굴인데 깐깐한 성격인 듯했다.

"어이, 거기 신입! 발이 보이네요?"

"저요?"

"저어어어요?"

"...."

프로듀서랑 매니저는 업무가 다른 거 아니었나.

"빨리 안 튀어오세요!?"

"아, 넵!"

수평적 시스템.

꼰대 없는 문화.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입니다."

"...."

좋소기업 특징이지.

"모든 직원이 연공서열입니다. 아시겠어요?"

"네."

"목소리가 작네요."

"네에에에!!!"

탈주할까.

주위에는 함께 면접 본 인턴들이 모였다.

그중에선 눈에 띄는 외국인도 있었으니.

'엥, 저분은 면접 볼 때 없었던....?'

추가 합격자가 있던 모양이다.

그래도 자신보다 못 하겠지만.

"자자, 여러분께 '막내일'이라는 걸 가르쳐 드릴 거에요."

"???"

그런 게 있다고?

여기가 군대야?

"저도 막내 생활하면서 열심히 했으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마시고."

"...."

여기 신생 회사잖아요.

고작 몇 달이나 됐다고.

잠시 후,

오전 일과를 마치고 동기들끼리 모여서 자기소개를 했다.

석 달간 서로 경쟁자이자 버팀목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민준이라고 합니다. 빅보스 출신입니다."

"저는 레이쿨이에요. 핑크레몬 음반 참여했어요."

"저는 장건이라고 합니다. 케이돌스를...."

이내, 모두의 시선은 외국인 용병에게 향했다.

"아, 저요?"

한국말을 모르는 듯 영어로만 말하는 에일리.

명품을 두른 차림을 보니 집이 좀 사나 본데.

"혹시 키우던 아티스트가 도망갔으면, 그것도 경력으로 칠까요?"

".... 안 치죠."

"그럼 저는 커리어가 없네요. 헤헿."

"...."

뭐가 이렇게 해맑아.

"스카이 엔터는 어메이징해요!"

"네?"

에일리는 밝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설거지랑 청소도 다 같이 하고! 진짜 가족같아요!"

"가.... 족같죠."

"대표님도 같이 청소하는 거 맞아요!? 패밀리니까!"

"아."

동기 중에 고문관이 끼어있는 것 같다.

"신입 분들."

그때, 공포의 선배님이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제 작업실에 들어갈 거에요."

"오, 설마."

"네. 맞아요."

이내, 계약직 프로듀서들은 꿈에 그리던 작업실에 입성했다.

빌보드 프로듀서 다이애나와 만남.

더군다나, 무려 정수호 대표님까지.

이클립스 타이틀곡 「햇빛달빛」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지금 편곡이 살짝 과한 느낌도 있어요."

"그런가."

프로듀서들 역시 주뼛주뼛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여기 도입부에 전자 기타를 추가하면 어떨지...."

"그것도 좋네요."

"정말요?"

"네. 하민성 프로듀서님."

".... 아."

계약직에게도 상냥하게 대하는 다이애나.

석 달 뒤에 누가 웃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반드시 살아남겠어.'

하민준은 열정적으로 곡 작업에 참여했다.

한 마디라도 더 꺼내고 눈에 띄기 위해서.

스윽─

이내, 에일리는 곡을 천천히 감상하더니 한 마디를 툭 뱉었다.

"3분 32초는 너무 길어요."

"???"

지금 무슨 말은 하는 건가.

"간주를 줄이고 곡을 2분대로 끊죠."

"...."

작업실 공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도하나 프로듀서가 만든 곡을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누가 보면 빌보드 찍고 취미로 음악 하는 사람인 줄 알겠네.

동기라고 싸잡아 욕먹으면 곤란한데.

"그거였네."

정수호 대표님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쿨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죠."

"???"

그런 중요한 결정을 계약직 한마디에 수락한다고!?

"에일리 씨, 편곡에 참여할 수 있겠어요?"

"네. 한번 해볼게요."

솔직히, 신입 프로듀서가 아무리 뛰어나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칼리 잭슨과 빌보드 2위에 오른 다이애나보단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 저 사람은....'

질투가 나지 않을 만큼 깔끔하면서도 완벽한 실력.

편곡을 진행할수록 그녀의 실력에 감탄이 나왔다.

'어디서 나온 괴물이야!'

고문관 외노자는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했다.

* * *

이클립스 뮤비 촬영 현장.

나는 프로듀서들이 머리를 짜내서 만든 작품을 감상했다.

기존 K팝과 차별화된 신박한 곡으로 편곡한 프로듀서진.

엄밀히 말하면, 합격자는 에일리뿐이었다.

아마 모기 안 물렸으면 면접도 안 봤을걸.

아마존 모기 때문에 계약직을 네 명이나 뽑아 버렸으니.

'나비 효과가 아니라....'

모기 효과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컨셉도 점점 균형을 맞춰갔다.

내 취향에 훌쩍 벗어나면서도 간질간질한 이 감각은.

'크으, 역배각 스멜.'

프로듀싱에 참여한 다이애나 역시 만족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정말 대단하세요."

"응? 내가?"

"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컨셉 기획, 음악, 제작, 안무까지.

너랑 프로듀서분들이 다 했어요.

"에일리 씨, 최소 10년 이상 경력이에요. 아니면 천재던가."

"...."

그 정도라고?

"팝송 느낌으로 편곡해서 올리비아 보컬이랑 미친 듯이 잘 어울려요."

"어, 음. 그래."

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나는 음알못이라 잘 모르겠지만.

"전부 다 예상하고 채용하신 거죠? 에일리 씨요."

"그런 건 아니고."

"에이, 또 겸손하게 말씀하시네. 면접도 안 보고 붙이셨으면서."

"...."

뒤통수로 면접 봤다니까.

"네 생각에 다른 프로듀서분들은 어때?"

"아직 잘 모르겠어요."

"...."

하민준 씨는 그래도 평균 이상이었다.

배포도 있고, 커리어도 꽤 좋았으니까.

"아무튼."

나는 스마트폰으로 달력을 확인하며 다이애나에게 말했다.

"이클립스, 데뷔일 확정이다."

"언제예요?"

"보름 뒤에."

"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 지금 러비돌스랑 오렌지삭스랑 경쟁하면...."

"올해 7월에 하이엔드 컴백한다."

"아."

프렌즈를 모기업으로 두었기에 귀한 정보를 얻었다.

재수 없으면 데뷔 앨범이 모래성처럼 무너질뻔했다.

"프렌즈가 컴백을 기습 발표할 예정이더라고."

"다른 가수들한테는 거의 재앙이겠네요."

"그렇겠지."

그렇다고 무작정 하이엔드를 피해서 빨리 데뷔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좀 불안하지?"

"네."

"걱정하지 마."

나도 불안하거든.

뒤통수도 가렵고.

"대표님, 완전 강심장이시네요!"

"그런 거 아님."

똥촉은 100% 신뢰하는 것뿐이지.

불안하긴 한데 역배각 덕분에 편안했다.

역설적이긴 해도 지금 내 상태가 그랬다.

"경쟁이 필요하면 해야지."

"그건 맞죠."

요즘 같이 신인 걸그룹이 넘치는 시기에 살아남으려면.

"이클립스 멤버들이 더 노력해야지."

"네. 대표님."

마침,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이클립스 멤버들.

"얘들아, 고생했어!"

"아, 대표님."

이클립스의 리더 올리비아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이제 다음 뮤비 찍어야지."

"바로요?"

"응."

준비한 세 곡 전부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예정이었다.

세 편의 뮤직비디오는 전부 투자금이었다.

확신이 없다면 절대 하지 않을 방법이지만.

"너희를 믿으니까."

"아....!"

보름 주기로 하나씩 너튜브에 공개할 MV.

음원보다 먼저 뮤비를 공개할 예정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컨셉 화보나 티저 영상도 없이 바로 뮤비부터 올릴 거야."

"...."

일반적인 아이돌 데뷔 홍보 공식을 훌쩍 벗어났지만.

이미 걸스온탑에서도 기대감은 충분히 모아놨으니까.

"자자, 다들 열심히 하고."

"네에!"

.

.

.

.

.

.

시간이 흘러,

이클립스 「햇빛달빛」 뮤직비디오 공개일은 단 하루 앞에 다가왔다.

그 흔한 티저 영상도 없이, 공식 너튜브에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Eclipse] Coming soon D-1》

-3일 전

-좋아요 32만, 싫어요 3백

-댓글 3만

달의 그림자에 가려진 해를 표현한 풍경 사진.

과학 잡지에 있을 법한 사진에 댓글이 달렸다.

'거 참, 반응 좋네.'

아직 데뷔하기 전부터 반응이 뜨거웠으니.

벌써 예능 쪽에서 섭외 전화가 밀려들었다.

"대표님."

그때, 구 팀장님이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마케팅이 제대로 먹혔습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내 입장에선 놀라울 일도 없었다.

"정보를 숨기니까 오히려 기대하고 있어요!"

"네. 운이 좋았네요."

"역시, 대표님은...."

직원들이 제안한 수많은 의견 중에 똥촉이 오는 쪽을 골랐다.

정답지를 보고 수학 문제를 풀면 아무런 감흥이 없지 않을까.

"구 팀장님, 이 방식을 제안한 직원이 누구였죠?"

".... 에일리 프로듀서입니다."

"그래요?"

음악만 잘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를 키워본 사람 같네.

나이도 30대 초반이잖아.

미국에서 한 가닥 하셨나.

"대표님, 제 안목이 정말 부족했군요."

"네?"

"저런 인재를 1차에서 거르다니...."

"...."

나는 구 팀장님의 어깨를 톡톡 두들기며 위로했다.

"괜찮아요."

저도 뒤통수 원툴이에요.

* * *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데뷔까지 앞으로 단 하루.

얼마나 기다린 순간인가.

"남민지, 집중!!!"

"죄송합니다!"

레드와인 선생님의 지도하에 미친 듯이 연습한 안무.

연습을 마치고, 멤버들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수고했어, 얘들아."

"수고하셨습니다!"

남민지는 구석에 가서 메모장을 주워들었다.

'오늘 숙제는....'

데뷔조는 노래와 춤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같은 소속사 커버곡.

연습 일지도 성실히 작성하고, 패션 공부도 매일 했으니.

단순 연습생과 데뷔조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데뷔하면 스마트폰은 쓸 수 있으려나."

"당분간은 못 쓰지."

이클립스 둘째, 한지아 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학교 다니면서 연습하는 거 힘들지 않아?"

"아니, 괜찮아."

사실, 학교에서는 벌써 연예인 취급을 받았다.

데뷔하자마자 망하면 전부 사라질 관심일까.

"우리 다음 주부터는 숙소 생활도 할 거야."

"그건 오히려 좋아."

"그래?"

"응."

연예인이 된 것 같잖아.

"지아야, 잠깐만."

이내, 그녀는 레드와인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끔 당황하면 충청도 사투리 쓰는 언니.

솔라 타이틀곡을 만든 천재 싱어송라이터.

「햇빛달빛」도 메인 멜로디는 그녀가 흥얼거리며 작곡했으니.

'소미 멘토님이랑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었다.

같은 학교, 동갑내기 친구면서.

이내, 지아 언니가 다시 돌아와 좋은 소식을 알렸다.

"애들아, 우리 스케줄 들어왔다는데?"

"오, 진짜?"

"주간연예돌."

"대박."

신인 아이돌을 소개하기 좋은 방송이었다.

"근데...."

이내, 말끝을 흐리는 지아 언니.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지야, 단독 스케줄 들어왔어."

"나한테만?"

"응."

오오, 벌써 세상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하는 건가.

이런 게 바로 모태 연예인.

걸스온탑에서도 탑 아닌가.

거 봐, 연예인병이 아니라 천상 연예인이라니까.

엠마랑 권시연은 부러운 듯 눈빛을 반짝거렸다.

"뭐야, 뭐야."

"같이 좀 하입시더."

"스바라시."

남민지는 한껏 우쭐한 표정으로 지아에게 물었다.

"뭔데, 무슨 스케줄이야?"

"너튜브 워킹맨."

"대박."

워킹맨에 출연한 걸그룹은 대부분 반응이 좋았다.

"근데 단독 캐스팅은 아니고."

"응?"

"소미 멘토랑 같이 스케줄 잡혔대."

"???"

어라, 뭔가 이상하다.

"원래 소미가 혼자 하기로 했는데."

".... 엉?"

"둘이 같이 사이좋게 청소 알바하고 오면 될 것 같아."

"청소 알바?"

"...."

청소는 나쁘지 않지.

집에서도 청소 잘함.

"그냥 마음 편하게 청소 체험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될 듯."

"...."

전혀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요.

"대표님께 네가 예능캐라고 했다던데."

"누가 그래!?"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다 잘하는데!

"소미가."

"아."

잠깐만, 이거.

회사 옮기기에는 너무 늦었냐.

* * *

소미도 참 착하네.

멘토 끝난 지가 언젠데 꼭 이렇게 챙겨줘.

예능에 얼굴 한 번 나오면 그게 어디냐고.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워킹맨이면 조회수 200만은 먹고 들어가는 채널이니까.

아마 소미 효과를 생각하면 최소한 300, 400만은 찍을 듯.

'데뷔 전부터....'

이클립스 미니 앨범, 「Eclipse」의 반응은 뜨거웠다.

예약 판매 나흘 만에 선판매 25만 장.

솔라 데뷔곡 때의 기록을 뛰어넘었다.

"오빠!"

그때, 지유는 빨빨거리며 내 앞에 다가왔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알아, 인마."

화려한 쇼케이스도, 음원 공개도 없이 데뷔하는 이클립스.

뮤비 공개와 함께 내일부터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음방 스케줄은 다 잡아놓은 거 맞지?"

"응. 잡았지."

잠시 후,

예정된 시각에 맞춰 「햇빛달빛」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솔라와 루나, 이클립스.

이제 우리 회사에 세 팀.

프로듀서진까지 갖췄으니 앞으로 돈 쓸어담을 일만 남았다.

"스케줄 확인해. 이제 바빠질 거야."

"저기, 오빠."

이내, 지유는 뭔가 떠오른 듯 내게 질문했다.

"워킹맨 청소 알바는 뭐야?"

"그거. 거기서 섭외 전화 왔거든."

"으음, 그래도 신인이 하기에는...."

"소미는 월드 스타야."

"아, 그러네."

이것도 다 뒤통수의 선택이니까.

결국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고.

"소미랑 민지는 무슨 청소인지 알아?"

"당연히 모르지."

역배각이 날카롭게 선 워킹맨의 다음 에피소드.

"외벽 청소인 거."

".... 악마냐."

악마는 뒤통수였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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