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이클립스(1)
큐앤지 레이블로 이적한 첫 번째 배우.
현재 스카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셀럽'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수연은 어릴 때부터 꾼 영화배우의 꿈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왕의 품격」의 투자 불발이 더욱 마음 아팠다.
"오빠, 이거 라디오."
"응. 예지 씨랑 은서 씨."
"...."
왕의 품격에 서로 출연하고 싶다고 바이럴 해주는 솔라의 멤버들.
어떻게든 심폐 소생시켜주려고 노력하는 마음.
한솥밥 먹는 사이에서는 최고의 서포트 아닌가.
'.... 고맙네.'
그에 비해, 어떤 여배우는 라디오에서 염장을 질렀다.
-진세은 씨, 악마가 되었다라는 영화에 캐스팅되셨다면서요.
-네! 우리 대표님께서 거르고 걸러서 추천해 주셨어요!
-아, 정수호 심사위원님!
-맞아요. 저한테 섹시 컨셉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셔서.
-촬영은 아직 인가요?
-네. 아직 캐스팅 단계에....
이수연은 눈썹을 까딱이며 매니저를 불렀다.
"오빠, 라디오 끄자."
"그, 그럴까?"
"응. 당장."
그녀는 창밖에 슬픈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를 확인했다.
"나는 가아끔 눙물을 흘린ㄷr...."
띠리리링─
그때, 정수호 대표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드디어 그분이 정글에서 돌아오셨나 봐.
-여보세요. 수연 씨. 꺄아아아아악─!!
".... 여보세요?"
-제가 지금 공항이라-, 아씨 달라붙지 마! 나는 연예인도 아니. 아악!
"...."
많이 바쁘시구나.
연예인 다 되셨네.
-우윳빛깔 양주희! 도하나! 신소미! 정수호!
".... 일단 저보다는 인기 많으시네요."
-뭐라고요?
"우리 술 한잔하자는 약속 안 잊으셨죠?"
-뭐라고?
"아, 술 한...."
-뭐?
일부러 그러냐.
시비 터는 건가.
"술 약속─!!!!"
-아 그거. 오늘 저녁에 엄지유랑 같이 마셔요.
"오케이 콜!"
-이따 연락할게요!
"네."
뚝.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태양빛 팬들의 함성 소리.
새삼스럽게 솔라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졌다.
이내, 스마트폰 스페이스 어플에 접속했다.
"와, 솔라 회원 200만 명...."
블루숄츠 팬덤이 500만이었나.
금세 따라잡는 거 아닌지 몰라.
"수연아, 5월에 솔라 행사 많이 잡았다더라."
"그래?"
"응. 대학 시즌이잖아."
게다가, 조만간 솔라와 이클립스 앨범 활동도 한다고 들었다.
'그럼 왕의 품격 말고도....'
아직 좋은 작품이 남았을지도 몰라!
수연은 머릿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며 시간을 기다렸다.
정수호 대표님과 정글 다녀오자마자 술 약속을 잡았으니.
잠시 후,
회사 근처 이자카야에 수호와 지유가 함께 들어왔다.
"대표님이랑 술 한잔하기 진짜 어렵네요."
"그건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걸스온탑에 정글까지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었다.
다만, 작품 하나 골라줄 시간도 없지는 않을 테지.
"왕의 품격은 유감이네요."
"네. 뭐...."
영화 캐스팅 단계에서 엎어지는 경우는 흔했다.
"혹시 다른 작품은 없나요?"
"글쎄요. 아직 뒤통수가 간지러워서."
"오!"
그의 뒤통수 긁는 습관은 회사에서 유명했다.
그럴 때마다 대박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 모기 물렸어요."
".... 아."
"아마존 삼디다스 모기 장난 아님."
"알겠고."
내일 솔라 스케줄을 생각하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새로운 작품을 물어봤는데.
"악마가 되었다 서브 여주요."
"네?"
"비중은 메인이랑 크게 차이 없어요."
"...."
진세은이 메인 여주인 작품에 서브로 들어가라니.
앞으로 대중은 자신을 그녀보다 낮게 잡을 터였다.
"대표님, 여배우는 급 내려가면 다시 못 올라가요. 아시잖아요."
"내려갈 것 같아요?"
"그, 그래도 제가 한번 서브로 내려가면...."
"흐음."
순간, 자신감에 찬 그의 눈빛에 압도당했다.
영화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었다.
"감독님께 빨리 연락 안 드리면 그 자리도 못 들어갈걸요."
"...."
상상해버렸다.
진세은, 그것이 백상예술대상 수상 발표 때 자신을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면.
-수연 언니, 언니도 영화배우 할 수 있어! 야 너두? 야 나두!
얄미운 말투가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상상만으로도 울화통이 터질 것 같다.
"저 할래요. 서브 여주."
* * *
정글 촬영 이후,
스카이 엔터 임직원은 첫 번째 대표 회의를 진행했다.
구 팀장은 아티스트의 스케줄표를 정리해서 발표했다.
"루나 스케줄은 앞으로...."
솔라만큼은 아니지만, 루나도 분명히 수요가 있었다.
"제가 예능도 좀 잡아볼게요."
"네. 대표님."
다음으로, 이클립스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갔다.
걸스온탑 팬들은 오직 데뷔만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달빛, 고마워, Love me, 이상 세 곡에 대한 안무를...."
"...."
프로듀싱이나 컨셉, 편곡에 따라 얼마든지 역배각이 나올 법한 곡들이었다.
걸스온탑 이후,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했으니.
노래 실력이나 안무도 어느 정도 완성이었다.
"일단 햇빛달빛 곡 컨셉으로 뮤비 촬영은 잡았습니다."
"뮤비 촬영일이 언제였죠?"
"다음 주 주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최근에 빅보스랑 DK 뮤직에서 나온 신인 걸그룹 반응이 좋던데.
"러비돌스랑 오렌지삭스, 우리가 잡아야죠."
"네. 대표님."
이미 4세대 걸그룹은 솔라가 문 닫고 종까지 울렸지만.
최근 신인 걸그룹 기세가 무서웠다.
솔라는 아니지만, 루나에 비빌 정도.
"자, 그럼 마지막으로...."
구 팀장은 PT로 정리한 솔라의 스케줄을 보여주었다.
5월에는 행사 위주에 팬사인회.
6월에는 백상예술대상에 예능.
잡힌 일정을 검토하며 뒤통수 감각에 집중했다.
아직도 모기 물린 데가 조금씩 간질간질했지만.
'.... 거의 나았네.'
대표 회의를 마치고,
엄지유는 곧장 결재 서류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오늘부터 면접 볼 프로듀서분들이야."
"아, 신입 사원들."
"응. 맞아."
"너도 막내 탈출하겠네. 축하해."
"헤헤."
면접에서 잘 뽑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기 물린 게 일주일은 가는 것 같네.
"아, 그리고."
지유는 슬쩍 구 팀장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메일로 1차 탈락자들도 보내놨어."
"응?"
"작곡가랑 안무가는 따로 보내라며."
"아, 그치."
내가 예술 쪽은 따로 분류해달라고 했구나.
구 팀장님 안목이면 어련히 잘 걸렀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봐야지.'
모기 물린 거만 다 나으면 일일이 확인해 봐야겠다.
"오빠, 이번 달에 솔라 행사가 많네."
"대학 축제 시즌이잖아."
"그런가."
투자자 수익 분배해주려면 열심히 벌어야지.
모기업이 둘이나 있어서 시어머니가 두 배야.
"나는 그동안 오빠가 돈 버는데 관심도 없는 성인인 줄 알았지."
"성인?"
"응.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아니, 무슨."
돈 벌려고 첫사랑이랑 소미 너튜브에도 빨대 꽂았는데.
"그래서, 악마가 되었다 미팅은 잡았어?"
"일단 제작사랑 미팅 잡았지."
"기다려봐야겠네."
"그렇지."
감독님도 입봉작은 아니지만, 히트작은 없으셔서.
이수연 씨가 서브 주인공이라니까 환영하시더라.
띠리리링─
그때, 어떤 영화 제작사 측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지, 여기 악마가 되었다 말고...."
"응?"
김찬호 감독님, 「왕의 품격」 제작사 아닌가.
이미 저장된 번호라 일단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요. 스카이 엔터 정수호 대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피플 프로덕션 신성욱 차장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이수연 씨, 다시 캐스팅하겠다는 건가.
그러기엔 이미 저쪽에 미팅 잡았잖아.
-라디오 방송 듣고 연락드렸습니다.
"라디오요?"
-예지 씨랑 은서 씨가 왕의 품격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해서요.
"아니, 그건."
그냥 둘이 가볍게 나눈 대화라고 하더만.
정글에 있는 동안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두 분을 캐스팅하면 투자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수연 씨 화딱지 나겠는데.
그거 다시 제작한다고 하면.
* * *
며칠 뒤.
오랜만에 잡은 솔라의 팬사인회 스케줄 현장.
태양빛에서 추첨을 통해 뽑힌 팬들이 들어섰다.
"멤버분들, 대기실에 10분만 더 계실게요!"
"네에!"
라디오 사태를 일으킨 예지는 해맑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은서야, 수연 언니도 악마가 되었다에 캐스팅되셨대!"
"오, 해피 엔딩이네."
"그 영화에 우리 회사 여배우만 두 명이나!"
"촬영 끝나면 SNS에 홍보할까."
"좋아 좋아."
소미는 맏언니 라인 두 명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제 저렇게 친해졌지.
둘이 싸운 거 아니었냐.
아니면, 정글 있는 동안 절친노트북이라도 찍었나.
대표님은 이걸 노리고 정글에 세 명이나 보내셨고.
'지니어스....!'
소미는 대표님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모니터를 확인했다.
강당에 수백여 명의 팬이 모여들고 있었다.
몇몇 홈마스터분은 대포 카메라를 챙겨왔다.
경쟁률이 수천 대 1이었다고 하던데.
"다이애나 언니, 우리 빨리 신곡 내야겠다."
"응. 올해 안에 미국에서 앨범 낼 거야."
"오오....!"
이렇게나 많은 팬들이 응원하고 계시니까.
팬분들 성원에 보답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언니, 우리 회사에 새 프로듀서님들 뽑은 거 알아?"
"대표님께서 면접 보셨다고 들었어."
"응. 계약직 기간도 있다더라."
"그래?"
석 달 뒤에 한 명만 생존하는 인턴 게임.
어마어마한 스펙의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고 들었다.
빅보스, DK 뮤직, 턴업 레코즈, 프렌즈 엔터 출신까지.
'그런 분들이 인턴이라니....'
물론, 객관적으로 솔라 앨범 프로듀싱은 좋은 기회였다.
삽입곡 하나만 끼워 넣어도 돈 걱정은 없이 살 테니까.
'그렇긴 한데....'
정수호 대표님께서 아무나 뽑으셨을 리는 없겠지.
한국에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 다이애나 언니와 동급의 실력자.
'.... 는 너무 했고.'
칼리 잭슨 곡으로 빌보드 2위에 오른 천재 프로듀서.
프렌즈에 방 의장님이나 빅보스 대표 아니면 없잖아.
똑, 똑─
이내, 팬사인회 진행요원이 들어와 멤버들에게 말했다.
"멤버분들, 지금 입장하실게요!"
"네에!"
작년에 정규 앨범 활동 때 이후 처음 열리는 팬사인회.
언니들은 드라마, 영화, 앨범 제작할 때 예능만 찍었지.
소미는 지나간 예능 촬영들을 떠올렸다.
입대도 하고, 공포도 찍고, 정글도 갔다.
그래도 정글은 함께 따라온 언니들 덕분에 행복했다.
'이클립스, 남민지 데뷔가 언제냐.'
우리 고등학교 후배, 데뷔하기만 해봐라.
예능 갈 때 무조건 펫처럼 데리고 다닌다.
'갑자기 눈물이....'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남민지, 데뷔하기만 해봐라. 진짜 뒤졌다.
걔 때문에 정글에서 고생한 거 생각하면.
그때, 옆에서 언니들은 자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걱정했다.
"소미야, 괜찮아?"
"팬분들 만나자마자 감동했구나."
"막내가 감성적이라니까.
"???"
팬사인회장에 들자마자 팬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아니."
감동해서 우는 거 아닌데요.
"여러분!"
예지 언니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자신을 언급했다.
"소미가 팬분들 만나자마자 감격했나 봐요!"
"아니라고."
"박수 부탁해요!"
"...."
그런 거 아니라니까.
* * *
SBC에서 방영한 「정글」 시청률은 30%를 돌파했다.
요즘같은 OTT 시대에서 독보적인 흥행력.
또다시 솔라의 영향력을 과시한 건 좋지만.
'최성락 씨, 게시판에서 욕 많이 먹으시네.'
양주희 국가대표 출신 삼촌을 뒷담화 한 게 전국에 알려졌다.
그냥 주희랑 대화 나눈 건데.
그걸 편집 안 하고 내보냈냐.
"제작진도 너무한...."
"대표님."
그때, 구 팀장님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진세은 배우님, 이수연 배우님. 두 분 대본리딩 날짜 잡혔습니다."
"그래요?"
결국, 「악마가 되었다」로 진행하시네.
수연 씨 나중에 알면 화 많이 날 텐데.
'왕의 품격도 다시 투자받고 있어서.'
다시 제작할 수도.
심지어, 현재 우리 예지랑 은서가 후보에 올랐다.
그냥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대표님, 그저께 면접 보신 프로듀서 최종 합격자 명단입니다."
"아, 네."
앞으로 석 달간 계약직으로 일하는 세 명의 합격자.
인턴으로 뽑기엔 다들 능력이 출중했지만.
다들 그 정돈 감수하고 오겠다고 말했으니.
세 명 중 전속 계약은 오직 한 명만 할 예정이었다.
"대표님, 혹시 합격자들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제가 뽑았는걸요."
"...."
모기 물렸을 때 뽑아서 문제지만.
솔직히 삘 꽂히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서 다이애나 수준의 실력자는 못 구할 겁니다."
"네. 저도 알고 있어요."
"이번 합격자 중에선 이분이 가장 촉망받는 인재입니다."
"...."
구 팀장님이 내미는 서류를 확인했다.
당연히 내가 면접 봤던 사람이었으니.
"하민준 프로듀서, 빅보스 출신이네요."
"네. 블루숄츠 음반 프로듀싱 참여 경력이 컸죠."
"...."
나랑 비슷한 나이에 성공한 영 앤 리치.
이런 사람이 왜 인턴으로 들어온 건지.
'아, 맞다.'
문득, 지유가 건넨 1차 탈락자 명단이 떠올랐다.
혹시라는 게 있지 않나.
이제 모기도 나았으니.
딸깍, 딸깍─
곧장 지유가 메일로 남겨놓은 지원자들을 천천히 확인했다.
이미 구 팀장님 선에서 1차 탈락하고 한 번 걸러진 사람들.
"뭐, 몇 곡 없네."
내 입장에서도 딱히 끌리는 사람은 없었다.
뒤통수에서 신호가 한 번만 와주면 좋겠다.
딸깍, 딸깍─
큰 기대감 없이 제출한 음악을 하나씩 감상하던 찰나.
순간, 뒤통수에서 다시 간질간질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K팝도 아니고, 올드 팝송을 들으면서 느낌이 올 줄이야.
'에밀리....?'
미국인 여성이 작곡한 노래.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 역배각 왔다.'
노래를 듣는 내내 뒤통수에 살살 퍼지는 따끔한 감각.
다른 합격자와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의 프로필이지만.
"구 팀장님!"
나는 팀장님을 바라보며 추가 합격자를 발표했다.
"에일리, 이분도 계약직 합격자입니다."
"며, 면접도 없이요?"
"네."
뒤통수 면접에 합격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