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100화 (100/200)

[100] 개별활동(7)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이게 '클라스'라는 걸까.

-고오오올─!!!

네 번째 골이 들어갔을 때부터 MC들의 반응은 조금씩 약해졌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날 때쯤.

스코어 13대 0을 달성했으니.

걸킥스는 어두운 분위기의 상대 팀을 배려해 세레머니를 생략했다.

".... 13대 0이 말이 되냐."

누가 보면 축구 말고 야구 한 줄 알겠어.

초반부터 양주희한테 세 명이 달라붙어서 만든 스코어.

걸킥스가 최약팀이 아니었으면 분당 한 골씩 넣었겠지.

"양학머신─!!!"

오늘 양주희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청순 걸그룹 멤버한테 적당한 별명일까.

"양학머신, 멋져!"

"솔라 사랑해!"

"주희 언니!"

양주희는 익숙한 듯 팬 서비스로 손을 들어 올렸다.

이내, 그에 화답하듯 엄청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관객석에는 오직 다른 팀 선수들뿐인데.

경주미를 비롯한 팬들이 소리를 질렀다.

"실장 형님!"

경기를 마치고, 주희는 한 손에 프로틴 음료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저 잘했죠? 하이파이브!"

"음, 잘하긴 했는데."

"하하."

너 때문에 지금 작가님들 회의 들어갔어.

지금 너무 심해서 밸런스 패치 중이라고.

"언니, 언니! 최고야!"

다이애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주희를 불렀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정말?"

"아무튼, 일단 감독님께 가볼게!"

"응, 응!"

주희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카메라 감독님이 사라지고.

"실장님, 우리 언니 완전 멋있어요!"

"그러게."

확실히, 일반인들 사이에 프로가 뛰는 느낌이었다.

국대 가족 팀에 경주미 선수도 비슷한 급일 텐데.

'궁금하네.'

저기, 양주희 옆에 붙어서 함께 기뻐하는 분이랑 붙으면 누가 이길까.

걸킥스는 리그 전체 최약팀이라서.

아마 팀플레이는 비교가 안 될 텐데.

"저기, 실장님."

그때, 뒤쪽에서 메인 작가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양주희 씨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아, 네."

표정이 너무 어두웠다.

"설마 주희 잘려요?"

"아뇨. 설마요."

작가님은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 연습을 안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주희 씨, 더 연습하면 게임이 안 될 것 같아서."

".... 연습 안 시킬게요."

"감사합니다!"

살다보니 이런 일이 다 있네.

너무 잘해서 잘릴 뻔했잖아.

"실장님, 너무 잘해도 문제예요?"

"아니, 잘하면 좋은 거야."

다이애나는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또 나만 한국말 이해 못 한 줄 알았네."

"아냐. 너도 이제 한국말 잘해."

"정말요?"

"응."

그니까 은근슬쩍 욕하면 뒤진다.

띠리리링─

그때, 기다리던 전화가 마침내 걸려왔다.

"김춘수 감독님."

-정 실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감독님은요."

-저야 뭐, 복수 소녀로 아직도 영화제를 돌아다니죠.

"아하하."

처음 감독님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는데.

그때와 지금 처지를 비교하면 180도 달라졌다.

-제가 첫 사랑 시나리오를 읽어봤습니다만.

"어떤가요?"

-재밌던데요.

"아하."

저는 잘 모르겠던데.

-사실, 제가 잘 찍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로맨스 장르를 액션 영화처럼 찍을 순 없는 법.

그래도 김춘수 감독님께 부탁한 이유가 있었다.

'.... 역배각 떴다.'

뒤통수에서 간지러운 감각이 슬슬 밀려왔다.

-저야 두 번째 작품도 은서 씨와 함께 촬영하면 감사하죠.

"그럼 맡아주세요."

-거의 절반쯤 투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네. 저는 감독님 믿어요."

정확히는 내 똥촉을 믿는 거지만.

-실장님께선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군요.

"똑같다뇨?"

-저를 항상 믿어주셨죠. 덕분에 과분한 사랑도 받았습니다.

"감독님께서 잘하셨으니까요."

-그럼.

김 감독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제가 얼마 전에 친분을 쌓은 제작사가 한군데 있습니다.

"그래요? 어디죠?"

-카멜레온 필름즈.

내가 「첫 사랑」 시나리오를 뿌린 대형 제작사 중 하나.

미국 LA 배급사 측에도 여러모로 연줄이 있는 회사였다.

-제가 미팅 한번 잡아보겠습니다.

"네. 감독님."

-그럼 연락드리죠.

뚝.

프리랜서 감독, 주연배우, 투자자에, 음악 프로듀싱까지.

준비를 많이 한 상태라 당장 미팅을 잡아도 자신 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주연만 확정하면 마음 놓고 미국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 * *

정규 앨범과 콘서트 투어 이후.

태양빛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수많은 셀럽들은 태양이 그려진 야광봉을 팔목에 차고 SNS에 인증했다.

"상훈아, 너도 솔라 팬이었어!?"

"아니."

"뭐야, 그럼 SNS에 올린 건."

"유행이니까."

드림 에이전시에서도 손으로 꼽는 탑배우.

아시아 프린스, 정상훈은 밴에 오르며 말했다.

"요즘 수호 형이 그렇게 잘 나간다며?"

"응. 솔라가 잘 나가는 만큼."

"...."

데뷔했을 때 자신을 맡은 로드 매니저.

그가 처음 맡은 연기자도 자신이었다.

'.... 그땐 몰랐는데.'

수연 선배의 「미래를 보는 변호사」 성적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였다.

심지어 회사를 뛰쳐나가자마자 몇 달 안 돼서 그런 작품을 찾았으니.

"요즘 미래변 시청률 얼마야?"

"글쎼. 17퍼였나."

"그 작품, 처음부터 수호 형 픽이었다며."

"소문으로는 그렇지."

소문이 아니라, 수연 선배가 직접 말해줬다고.

사실, 걸그룹을 키웠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 작품을 이렇게 잘 보다니.'

한때 자신과 일을 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됐다.

드림 에이전시에서는 계속 죽을 쑤곤 했는데.

"요즘 권 상무님 입지가 불안 불안해."

"그렇겠지."

드림 에이전시를 뛰쳐나간 이수연이 대박 났으니까.

권 상무 라인에 서 있는 배우들은 생각이 많을 터다.

"형, 내가 어제 수연 선배랑 오랜만에 전화했거든."

"그래?"

"장은서 씨, 새 영화 들어가려고 한다던데."

"오, 그럼 숟가락 얹어볼까?"

"응. 내가 연락 한번 해볼게."

"알겠어."

오랜만에 연락 한번 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다행히 당시 매니저 바꿀 때도 싸운 건 아니라서.

"상훈아, 잠깐만. 나 전화 왔다."

"응. 편하게 받아."

상훈은 매니저를 뒤로한 채 스마트폰을 꺼냈다.

톡, 토톡─

곧장 어플을 켜서 그에게 톡을 보냈다.

[수호 형 어떻게 지내?]

[요즘 바쁜감?]

바로 답장은 안 오겠지.

요즘 엄청 바쁠 텐데.

"상훈아! 대박!"

그때, 매니저는 뒤를 돌아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성 감독님께서 영화 오디션 보러 오래."

"광풍?"

"어, 블록버스터 대작!"

"아...."

그럼 방금 수호 형한테 연락 보낸 건 어쩌라고.

"뭐냐,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응? 아, 좋지."

"???"

띠리리링─

그때, 정수호 실장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오, 수호 형. 안 바빠?"

-상훈 씨, 오랜만이네요.

"뭐야, 갑자기 왠 존댓말?"

-저기, 원래 우리 서로 존대했었어요.

".... 아하."

그건 까먹었네.

거의 4, 5년 전 아닌가.

"에이, 몰라. 그냥 편하게 해. 짬이 얼만데."

-그래. 그럼.

"다음에 술 한잔하자고 전화했지."

-그래. 알았다.

"요즘 새로운 작푸...."

뚝.

".... 끊었어?"

안 본 사이에 많이 쿨해졌네.

영화 얘기는 꺼낼 줄 알았지.

자신에게 줄 자리 따위는 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도 아시아 프린스, 한창 잘 나가는 배우를.

"형, 나 결정했어."

"뭐를?"

"성 감독님 작품 포기할래."

"뭐!?"

우연은 한 번만 일어나는 게 우연이지.

솔라는 작년부터 드라마, 영화를 실패한 적이 없었다.

"대신 아까 말한 그 작품 제작사 어딘지 알아봐."

"무슨 작품?"

"수호 형, 새로 들어간다는 영화."

"...."

* * *

얼마 후,

카멜레온 필름즈와 미팅을 마치고.

「첫 사랑」은 본격적으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돌입했다.

개같은 각색으로 이미 한번 망한 작품.

제작사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절반 투자하지 않았다면 제작사를 구할 수도 없었겠지.

'남주를 빨리 정해야 할 텐데....'

어서 주인공을 확정해야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제작비뿐만 아니라, 홍보에 필요한 투자금도 있으니까.

정상훈 배우가 해주면 좋으련만.

홍보팀장님께 「광풍」 소식을 듣고 짜게 식어버렸다.

솔직히, 나 같아도 블록버스터 영화 들어갈 것 같다.

"아휴, 배우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야."

그냥 아무나 데려다 쓸 수도 없고.

역배각 뜨는 신인 배우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만능열쇠처럼 뚝딱 찾아내는 능력은 아니라서.

똑, 똑─

그때, 누군가 문을 노크하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오빠!"

이내, 냉큼 다가와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엄지유.

"이거 SNS 봤어?"

"뭔데."

"정상훈 배우님도 태양빛이었어! 팔찌 인증!"

"...."

그럼 팬이라서 전화하신 거였구나.

이 정도면 거의 좀비 사태 아닌가.

"태양빛이 이렇게 많았어?"

"정회원 인증하는 게 트렌드처럼 퍼져서 그래."

"굿즈도 잘 팔리겠네."

"엄청 팔리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네.

그래도 업어 키웠으니까.

슥, 스윽─

인별그램을 뒤져보다가 요즘 뜨는 게시글 하나를 발견했다.

"엥, 이거 뭐야."

"뭐가?"

"제이콥, 얘는 또 이러고 있네."

"아, 저번에 다이애나 디스했던."

"응. 그 쉑."

이번 시즌 쇼미더돈까에 출연하는 래퍼.

방송에서 소신껏 디스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Jacob : 게시글 1,521 / 팔로워 67.1천 / 팔로잉 419명》

[Slumped Anna with Die]

[#가짜 래퍼 #슬럼프 왔다며 #도하나 respect]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그때 개쪽 당했으면서.

"요새끼 정신 나간 거 아니냐."

"아마도."

그 와중에 도하나는 리스펙하고 지랄.

쇼미더돈까 측에서 저작권료 내고 도하나 비트도 사갔는데.

"여기 태양빛 팬들한테 좌표 찍혔어."

"그러게. 엄청 까이네."

이제 와서 상대해 주기엔 다이애나랑 체급이 달랐다.

도하나가 아니라, 솔라 멤버랑 비교해도 넘사벽이라.

"지금 다이애나 어딨어?"

"작업실에 있지."

"그래?"

조만간 다이애나한테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이제는 진짜 공개할 때지.

개나 소나 계속 무시하잖아.

'.... 칼리 잭슨 앨범만 나와 봐.'

미국 갔다 와서 터트리면 적당하다고 본다.

"너 예지 영화 크랭크인 기사 봤지?"

"봤지. 그래서 미국 간다며."

다이애나만 해도 가서 할 일이 많았다.

칼리 잭슨에, 로이랜드 곡 작업도 있고.

"오빠, 소미 스케줄은 일부러 안 잡는 거야?"

"응, 학교 다니라고."

"와아, 엄청 친절하네."

".... 친절한 게 아니라."

똥촉만 오면 당장 재입대시킬 생각도 있어.

똑, 똑─

그때, 문밖에 노크를 두드리더니 김춘수 감독님께서 들어왔다.

"실장님! 어떻게 캐스팅했습니까?"

"네?"

"정상훈 배우님이요."

"???"

감독님은 앉을 생각도 없이 책상까지 달려왔다.

"처음부터 계획이 있으셨군요!"

".... 네?"

"정상훈 배우님을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

그분, 성 감독님 작품에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배우님께서 직접 전화해서 출연을 확정했습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마다하시고!"

"아, 음, 그러셨구나."

"네! 드림 에이전시 때 첫 로드 매니저셨다고...."

"아, 네. 맞긴 하는데."

"그래서 정 실장님을 믿는다고 하셨답니다."

"...."

아니, 구실은 참 좋네.

그때 개허접이었는데.

아니면, 혹시 그 정도로 솔라 팬이신가.

"덕분에 이미 투자금 확보는 끝났습니다!"

"벌써요?"

"예. 장은서에 정상훈을 캐스팅했는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

이내, 엄지유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내게 말했다.

"오빠,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너한테 말을 못하지."

"너무해!"

나도 모르는 일을 어떻게 말해.

* * *

미국행 스케줄을 하루 앞두고.

다이애나는 송나연의 신곡을 들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와앙, 진짜 음색 너무 좋아."

얼마 전 모해모해에 출연하셨을 때.

송나연 님이 소미랑 듀엣 한다던데.

"무적권 내가 프로듀싱해야지."

혹시 안 시켜주면 부캐 오픈해서라도 꼭 맡아야겠어.

띠링─

그때, 소미가 톡으로 너튜브 링크를 보냈다.

[언니, 이거 봤어?]

"뭐지."

곧장 손가락을 움직여 너튜브 영상을 시청했다.

".... 제이콥."

이 아조씨 까먹고 있었는데 또 건드네.

-실력파 프로듀서? 족까 이미지 메이커. 너는 페이크. 멤버들 덕분에 올라온 가짜 래퍼.

그래. 디스를 할 수는 있는데.

그럴 거면 다른 비트에서 해야지.

".... 왜 내가 만든 비트에 내 디스를 하냐."

어이가 없네.

똑, 똑─

그때, 작업실 문을 두드리고 정 실장님이 들어왔다.

"뭐야, 너 지금 뭐 봐."

"쇼미더돈까스요."

"에이, 뭘 그런 걸 봐."

"그냥."

정수호 실장님은 조금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칼리 잭슨 앨범 내면 정체 공개하자."

"정체요?"

"응. 도하나 프로듀서, 계속 욕먹을 순 없잖아."

"흐음."

사실상, 슬럼프는 이미 거의 극복했다.

도하나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마음껏 인정받았다.

할리우드 영화 삽입곡에, 빌보드 가수와 협업도 하고.

"실장님, 고마워요."

"갑자기?"

"그냥요."

다이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면상 까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 걸그룹이 면상 깐다니."

"저 솔로 앨범 내주세요."

"뭐?"

음원 발표와 동시에 정체를 공개할 생각이었다.

"바쁘지 않아?"

실장님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곡씩 뽑아내고, 작업실은 그저 휴식 공간일 뿐인데.

그냥 작업실에 앉아만 있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했다.

"칼리 잭슨이랑 로이랜드 곡은 끝났어요."

"벌써?"

"네. 그럼 솔로 앨범 내도 돼요?"

"그래, 그 정도는...."

도하나는 뒤통수를 긁는 수호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갱스터 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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