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Higher(1)
큐앤지 레이블 작업실.
할렘 길바닥에서 나올 법한 찐한 비트가 흘러나왔다.
복면을 뒤집어쓴 강도 새끼가 지갑을 털어갈 것 같다.
'이거 곡 상태가....?'
다이애나가 솔로 앨범으로 내겠다는 신곡, 「Head shot」.
"너는 이미 곡을 써놓은 거니?"
"옛날에 찍은 비트에 가사만 덮었죠."
"피처링은 누군데."
"그건 아직 못 찾았어요."
"...."
둔두두둔, 탕탕─
건반 대신 기관총을 들고 찍은 듯한 시원한 비트.
영어로 지껄이는 시원한 래핑에 할 말을 잊었다.
"와, 무슨 욕을...."
"어때요?"
"한국 아닌 것 같아.
"음."
다이애나는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내게 말했다.
"이 정도면 수위 조절했어요!"
".... 간당간당하네."
그래도 삐 처리 하면 방송은 어떻게든 될 정도.
"이거 들으면 스님도 권총 사러 갈 듯."
"네?"
솔직히, 한국인 감성에 맞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할렘가에서 들을 법한 빡센 랩.
한국에서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 왜 간지러운데.'
간질간질 뒤통수 때문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만 허락할게."
"예쓰! 쿨 맨~"
이렇게 예쁜 얼굴로 무슨 욕을 그리 험악하게 하나.
-작곡 : 도하나
-작사 : 도하나
-노래 : 도하나
음방에서 다이애나가 이 노래 부르면 진짜 난리 나겠네.
청순 걸그룹 멤버의 필터링 없는 적나라한 래핑.
묠니르 개봉이랑 칼리 잭슨 신곡 발표 이후라면.
아마 솔라의 체급이 도하나 덕분에 한 층 더 올라가겠지.
"아, 그러고 보니."
제이콥 디스랩을 슬쩍 넣을 줄 알았는데.
"가사에 제이콥 언급도 안 하네."
"사실 가사는 썼어요."
"응?"
다이애나는 내게 가사지 한 장을 건넸다.
-영어도 못하는 제이콥, 내가 도하나가 될 동안 넌 뭐했니. 아, 쇼미더돈까 나갔네. Damn.
헤드샷 노래에 없는 내용.
"이거 넣기에는 곡 퀄리티가 아까워요."
".... 많이 컸네."
"저요?"
"응."
갑자기 다이애나가 기특해 보였다.
한 층 성장한 딸래미를 보는 기분.
"이제 그런 인간 신경 쓰지 마."
"그래야죠."
걔는 상대해 주면 오히려 엄청 좋아할걸.
어그로 끌어서 너튜브 채널이나 키우겠지.
"도하나, 너는 이미 국힙 원탑이야."
"제가요?"
"당연하지."
칼리 잭슨 곡의 프로듀싱을 맡는 순간 벌써 끝난 거야.
한국 래퍼 중에 실력으로 너를 깔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이제는 미국에서 할 작업만 생각하자."
"영화 OST는 천천히 작업해도 돼요?"
"로이랜드?"
"아뇨. 그건 끝났고, 첫 사랑."
"응. 그건 시간 많아."
아직 촬영은 시작도 안 했는데.
첫 사랑 OST는 감독님이랑 많은 논의가 필요했다.
특히, 작 중 남주와 여주 사이에 추억이 되는 곡은.
"미국 갔다 와서 생각하자."
"알겠어요."
이내, 도하나를 뒤로한 채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비행기 타기 전에....'
끝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찾아다니고 있었다.
장은서는 「첫 사랑」 연기 준비하고.
양주희 축구 연습 그만하게 만들고.
일본에 있는 한지아도 슬슬 활동 접고 돌아올 시기였다.
'모해모해는....'
곧이어, 연습실에 방문해 숨 쉬고 있는 소미를 찾았다.
"여깄었네."
"실장님! 오랜만!"
"오랜만은 반말이죠."
"요!"
최근에 소미는 너튜브랑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있었다.
예능 스케줄은 계속 들어오지만 일단 고등학생이니까.
"중간고사 잘 봤다며."
"에잉, 그냥 가볍게 본 거죠."
"...."
살짝 재수 없긴 한데 공부는 원래 잘했으니까.
"소미야, 너튜브 채널 운영비 떨어졌어. 영화에 투자하느라."
"헐, 그럼 우리 채널 망해요?"
"그런 건 아니고."
스마트폰을 꺼내 소미에게 몇 가지 광고를 소개했다.
"PPL 들어온 거야. 이 중에 몇 개 골라."
"아하."
소미는 잠시 고민하더니 광고 몇 개를 선택했다.
"이거랑 이거요."
"돌체 라떼랑 감자칩, 진짜 어린이 취향만 골랐네."
"뭐에요. 고르라면서."
"잘 골랐다고."
"오케. 제가 모해모해에서 기가 막히게 광고해 볼게요."
"그래. 그냥 다 팔아버려."
"그거슨 오브콜스."
곧장 지유에게 전화를 걸고 PPL을 전달했다.
-오빠 미국에 있는 동안 내가 알아서 광고주랑 미팅 잡을게.
"그래. 수고하고."
-아, 오빠! 근데 우리 코디 한두 명쯤 더 뽑아야 할 듯.
"세 명이나 있는데?"
-그게, 조유미 코디님 밑에 있던 두 명이 동시에 그만두겠대.
"갑자기 왜?"
스타일리스트 간에 트러블 있었나.
-속도위반이라던데.
"응?"
-두 명이 결혼하고 동시에 일 그만둔대.
".... 둘이 썸타고 있었냐?"
-응. 남녀가 그렇지 뭐.
"에휴."
그래도 결혼식은 가줘야겠네.
-조유미 코디님 혼자는 힘들어. 솔라만 맡는 것도 아니고.
"그래. 내가 본부장님께 말씀드려볼게."
-알겠엉.
그럼 더 좋은 스타일리스트 뽑으면 그만이지.
* * *
얼마 후.
정수호는 다이애나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물론, 한국에서 스케줄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커피 맛 좋네."
"네. 루왁입니다."
"흐음."
드림 에이전시 사옥 꼭대기 층.
한 여인은 고양이 변내를 맡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방 마담."
이내, 박 대표는 연예계 뉴스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그 작품 소식 들었습니다."
"응? 무슨 작품?"
"첫 사랑."
"...."
순간, 사늘하게 일그러지는 방 마담의 표정.
그녀는 찻잔을 들고 있던 오른손을 멈췄다.
"복수 소녀의 장은서와 김춘수 감독이 또 만났군요."
아시아 프린스 정상훈과 연기돌 장은서 주연.
영화 「첫 사랑」의 제작 소식은 기사에 실렸다.
"손녀 따님의 두 번째 영화를 축하드립니다."
".... 그만."
박 대표 장은서와 방 마담의 관계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네 일부러 그러나?"
"순수한 의미의 축하였습니다만."
".... 첫 사랑."
방 마담에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외동 딸의 결혼을 반대한 건 평생의 후회로 남았다.
현재는 사랑하는 딸도, 사위도 이 세상에 없으니까.
솔직히, 그의 작품은 몇 번을 읽어도 도저히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정수호 실장의 안목이라고 하더군요."
"처음이구만, 내 생각과 다른 건."
"오, 그렇습니까?"
"...."
방 마담은 사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기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정 실장, 영화를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작품을 제작하려는 건지.
"이미 한 번 제작하고 망한 작품이야."
"저도 압니다."
첫 경험인지 뭔지, 남사스러운 제목으로 제작하고 쫄딱 망했지.
"그래서 더욱더 오명을 벗을 찾스가 아니겠습니까?"
"찬스는 무슨."
"저는 정수호 실장 때문에 기대가 됩니다."
"흐음?"
"방 마담과 정 실장, 누구 안목이 더 좋을지요."
"별 시답잖은 소리를...."
손녀딸이 선택한 두 번째 영화.
만약 그의 시나리오로 흥행에 성공한다면.
사위가 무능한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방 마담은 서글픈 눈으로 창 밖을 바라봤다.
뭐, 조만간 알 수 있겠지.
누구의 선택이 옳았는지.
"박 대표, 아영이가 유학 마치고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제 딸이요? 이미 한국에 있습니다."
"그 아이가 스물넷이었나."
"맞습니다."
"미국에서 패션 공부는 열심히 했고?"
"그야, 그렇긴 한데."
박 대표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우, 애가 텐션이 너무 높아서 걱정입니다."
"그게 왜 걱정이지?"
"텐션이 높아도 너어어어무 높아서."
".... 자네도 걱정이 많겠어."
"그렇죠."
사실, 알면서도 일부러 물어봤다.
"어제는 뜬금없이 걸그룹 스타일링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걸그룹?"
"네. 일단 큐앤지 레이블로 보낼 생각입니다."
"흐음, 괜찮겠어?"
그는 해탈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딸 아이한테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뭐라고?"
"어디 가서 내 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아, 낙하산이라."
"아뇨. 어디 내놓기 창피해서요."
"...."
미국에서도 특유의 하이 텐션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줄 생각입니다."
".... 그런가."
은서한테는 잘해주라는 의미일까.
오늘따라 박 대표가 감성적이었다.
"에잉, 커피 맛이 쓰네."
"아까는 좋다면서요."
"너무 써."
이네, 방 마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나."
"음...."
"그 말이 맞더라고."
그녀가 말하니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말이었다.
"방 마담, 그럼 들어가시죠."
"그려."
그래서 은서가 원하는 건 뭐든 해주고 싶은 게 아닐까.
회사를 벗어나, 스포츠카에 올라타 네비를 찍던 찰나.
띠리리링─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이 양반이 왜?"
프렌즈 엔터를 세우고 글로벌 플랫폼 확장을 노리는 거물.
"방 의장, 오랜만이네."
-얘기 좀 할까 해서.
"...."
사람이 참 한결같아. 용건부터 꺼내는 버릇은 여전했다.
남보다 먼, 사이가 안 좋은 친척.
그와 몇 년 만에 전화하는 걸까.
케케묵은 기억보다는 그가 전화한 이유가 더 궁금했다.
"무슨 일로?"
상대는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수호 실장.
"???"
오늘 하루가 참 다채로운 것 같아.
그 친구는 지금 미국에 갔다던데.
"어디로 가면 되나."
* * *
RSB 음반 제작사의 녹음실.
부드러운 칼리 잭슨의 음색을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작을 들을 때 느끼는 순수한 감탄이었다.
똥촉과 무관하게, 그의 실력은 진짜였기에.
빌보드 가수답게 R&B 소울과 타이트한 랩은 모두 훌륭했다.
"정 실장님, 오랜만이군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핀 브라운은 내 옆자리에 앉으며 다이애나의 프로듀싱을 구경했다.
"저 소녀가 도하나라는 사실을 듣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래요?"
"네. 리그 게임 무대에서도 알아보지 못했군요."
"아, 그때도."
그냥 얼굴 예쁜 작곡가라도 마케팅이 될 텐데.
걸그룹 솔라의 멤버라면 얼마나 효과가 클지.
"정 실장님."
이내, 핀 브라운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솔라는 미국에서 활동할 생각입니까?"
"글쎄요."
사실, 이제 한국에서만 활동하면 역배각 만들기 쉽지 않았다.
그냥 소소하게 간질간질하는 수준.
집중하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였다.
이제는 음악방송 1위를 찍어도 크게 감흥이 없었으니.
한국이랑 해외 활동을 병행하면서 팬덤을 키워봐야지.
"언젠가 때가 온다면 당연히 하겠죠. 예지는 이미 할리우드에서 촬영하고."
"음원 유통은 우리 측에 맡겨주셨으면 합니다."
"영업인가요?"
"협업이죠."
선뜻 핀 브라운이 먼저 제안하니 정말 그날이 다가온 듯했다.
어쩌면 내년, 아니면 내후년일까.
아직은 언제일지 잘 모르겠지만.
핀 브라운은 월드스타급 가수나 작곡가도 연결해 줄 수 있겠지.
"실장님, 저는 도하나 프로듀서의 가능성을 두 번째로 발견했습니다."
"네? 그럼 첫 번째는...."
"실장님이죠."
"아."
저는 발견 못 했는데요.
"흐흐, 솔라가 미국에서도 먹힐 지 정말 궁금하군요."
".... 저도."
저도 진짜 졸라 궁금해요.
내 똥촉이 미국에서 먹힐지.
한때, 달빛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걸그룹.
"그럼 솔라 정규 2집은 미국 활동도 고려하겠습니다."
"하하. 잘 생각했습니다."
"네. 그 전에 싱글 몇 번 더 내고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실, 유닛 그룹도 생각하고 있었다.
"아, 혹시 솔라는 내년 코첼라 음악축제에 초대받았습니까?"
"네? 벌써요?"
"내년 4월이니까 그리 멀진 않았죠."
"아직 안 왔네요."
"그럼 조만간 연락이 오겠군요."
"아."
혹시 다이애나가 도하나라는 사실이 공개된다면.
칼리 잭슨의 성적에 따라서 결정될 수도 있겠네.
'데뷔한지 고작 2년 만에....'
현실적으로 헤드 무대에 오르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메인이나 서브 스테이지에 오르면 가문의 영광인데.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곧이어, 도하나는 헤드셋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녹음 부스에서 나오는 칼리 잭슨과 주먹을 맞부딪혔다.
"역시, 도하나! 프로듀싱도 깔끔하고 완벽하네요."
"칭찬 고마워요."
드디어 녹음 작업이 끝났다.
사전 작업을 전부 마쳤기에.
"뮤비도 다 찍었고, 음원만 입히면 됩니다."
"그럼...."
"일정에 맞춰 발표하겠습니다."
"...."
드디어 도하나 정체를 공개할 때가 온 거겠지.
묠니르 영화 개봉과 칼리 잭슨 음원에 맞춰서.
"잠시만요."
그때, 칼리 잭슨은 나를 부르며 뜻밖의 곡을 언급했다.
"다이애나 싱글 앨범, 헤드 샷."
"네?"
"피처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사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괜찮은 래퍼를 찾고 있었다.
"그 부분은 제가 불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야, 칼리 잭슨 씨가 해주면 아주 좋죠."
"그래요."
옆에서 핀 브라운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음원 작업은 가능합니다."
"...."
조만간, 국내 차트에 빌보드 가수가 올라오겠네.
그것도 걸그룹 다이애나 갱스터 랩 피처링으로.
미국에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