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99화 (99/200)

[99] 개별활동(6)

영화 제작이 쉽나.

대충 어림짐작해 봐도 구해야 할 인력은 산더미였다.

배우, 감독, 카메라 감독, 오디오, 편집팀, 마케팅까지.

당연히 현실적으로 개인이 영화를 제작하긴 어렵겠지만.

은서 출연료만 조정하면 어떻게든 가능할 수도.

로맨스 장르는 액션처럼 돈이 많이 안 드니까.

"변호사님, 이쪽이요."

"아, 네."

약속을 잡고 방문한 영화 제작사, 피라미드 비주얼.

작은 사무실 문 앞에 도착해 슬쩍 노크를 두드렸다.

똑, 똑─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을 듣고 문을 열었다.

"첫 경험, 판권을 사러 오셨다고."

"네."

"옆에는 누구?"

"동네 변호사 조들희요."

"...."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이 분야 전문가를 어렵게 모셔왔다.

"계약서를 찾아봐야 하는데."

"네. 천천히 하세요."

이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제작사 대표.

제작비 500만 원 따리 삼류 영화라 투자사도 없었다.

당연히 판권도 피라미드 비주얼, 제작사 측에 있었다.

"흠, 어디 보자아."

상대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수북이 쌓인 서류들 틈에서 계약서를 찾았다.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이 바닥에서도 최고의 밑바닥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뒤통수에 신호가 올 일은 절대 없겠지.

"오우, 찾았다."

"아저씨, 담뱃재 떨어졌어요."

"예예."

원작자 장현우 작가님의 시나리오 「첫 사랑」.

솔직히 여러 번 읽었지만 뜰지는 미지수였다.

"이 작품 기억나네."

"그래요?"

"그야, 작가님이 얼마나 간절하시던지."

"...."

일단, 영화는 제작되는 순간 수많은 세부 판권을 양산한다.

지역별, 국가별, 목적별 판권은 별도.

국내, DVD, 극장 배급에, TV 방영권.

"전부 살게요."

"좀 비쌀 텐데?"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 2천."

변호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소곤소곤."

"네?"

"원래 이런 거 해야 해요."

"???"

제작사 대표는 두어 번쯤 헛기침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케이, 천만 원."

"...."

여기 혹시 도떼기시장입니까.

이거 진짜 사야 하는 거 맞나.

"치, 칠백만 원! 더이상은 안 돼! 나도 남는 게 있어야지."

"네. 700에 살게요."

"하하하! 고갱님 이쪽으로 오세요."

"후우."

놀랍다, 놀라워.

은서 아버님, 어디서 영화를 찍으신 겁니까.

"거래는 깔끔하게 합시다."

"물론이죠."

나중에 뜨고 나서 헛소리하면 내가 더 곤란했다.

"근데 괜찮겠수?"

"네?"

"이 작품, 중견 기업 이상 제작사는 전부 다 돌아다닌 놈이야."

".... 그래요?"

"그니까 나까지 왔지."

거기까지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래요?"

"네. 제가 직접 투자할 생각이라서요."

"오호."

국내 영화 중 가장 흥행한 멜로 영화는 7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제작비 35억으로 영화 제대로 찍었지.

손익분기점이 180만이었다고 하던데.

'김춘수 감독님은 요즘 뭐 하시나.'

제작비 절반 정도는 내가 투자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과급도 쌓였고, 너튜브 수익도 계속 들어왔기에.

'혹시라도, 만약에....'

은서가 싫다고 하면 그냥 소장용으로 보관해야겠다.

판권 구매는 시작일 뿐, 영화 제작은 이제 시작이었다.

배우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오셔도 잘 될까 말까였으니.

"정 실장님."

"네?"

조 변호사님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저 태양빛 정회원입니다."

"아하, 어쩐지."

엄청 적극적이시더라고.

"그래서 저 지금 완전히 감동했어요."

"감동이요?"

"은서 아버지 작품을 사비로 구입하시다니....!"

"아, 그건."

"괜히 솔라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군요!"

"...."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저 오늘 실장님께 수수료는 못 받겠습니다."

"그냥 받으셔도 됩니다."

"아뇨! 차라리 저를 죽이십쇼!"

".... 제가 왜 죽여요."

그냥 난 돈 벌려고 산 건데.

미안해서 영화 못 만들겠네.

* * *

두 분의 부모님 기일이 같다는 건 꽤나 슬픈 일이다.

금수저 공주님과 가난한 작가 지망생의 사랑이란.

그 당시엔 궁핍했지만,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는데.

-이제부터 내가 네 할미다.

교통사고 이후,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만났다.

부모님의 결혼을 끝까지 반대하셨던 그분을.

"은서야."

"으음."

"야야, 일어나."

"아."

은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면서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

".... 꿈꿨네."

"무슨 꿈이길래."

"개꿈."

예지 언니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유일한 룸메이트를 바라봤다.

"양쭈, 축구하러 가게?"

"응. 지유랑."

유니폼에 축구공, 축구화까지 풀 세트.

장비를 세팅하고 머리도 질끈 묶었다.

"내가 아직 축구는 좀 약해."

"뭐야, 네가 운동에 약하다고?"

"응."

'약'한 건 아니고?

"소미랑 다이애나는 어딨어?"

"소미는 학교, 다이애나는 작업실."

"다들 바쁘네."

"너도 어제 촬영 끝났잖아."

"그건 맞지."

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희를 바라봤다.

"여튼, 축구 열심히 하고."

"같이 허실?"

"놉."

은서는 다시 침대에 몸을 뉘이며 과거를 회상했다.

'첫 사랑....'

헐값에 팔렸던 아버지 작품.

한동안 그저 잊고 살았는데.

만약에 할머니께서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아버지 시나리오가 조금 더 좋은 작품이었다면.

모두에게 인정받는 유명한 스타작가였다면 지금쯤 달라졌을까.

어릴 때부터 혼자 그런 가정법을 상상하며 속으로 화를 삼켰다.

"아, 갑자기 또 빡치네."

방 마담이 망할 작품이라고 했으면 그런 거겠지.

띠리리링─

그때, 정수호 실장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실장님."

-은서야, 너 지금 숙소에 있지?

"네. 왜여?"

-기다려. 올라간다.

"???"

오늘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요.

삐, 삐삐삐─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몸을 일으켰다.

실장님이 은근히 마음이 여리다니까.

"점심 같이 먹어주러 오셨구나!"

"응. 아니고."

실장님은 익숙한 대본을 건네며 믿기 힘들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영화 다시 찍으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네?"

"첫 사랑, 고 장현우 작가님 작품."

".... 우리 아버지 작품이요?"

"맞아."

"저 때문에 영화 찍으려는 거예요?"

"아니, 나는 될 작품만 찍어."

또르르─

순간,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뚝 떨어졌다.

"뭐야, 울어?"

"아뇨. 그냥."

심장이 두근거렸다.

할머니의 안목이 틀렸다고 말한 첫 번째 사람.

그것도, 정 실장님 같은 천재가 인정해 줬으니.

"은서 네가 싫다고 하면 안 찍을 거야."

"그 작품, 정말로 재밌어요?"

".... 재밌으니까 찍지."

"얼만큼이요?"

"제작비 절반쯤은 내가 투자할 생각이야."

"아....!"

복수소녀 만큼 재밌다는 뜻.

이 바닥에 방 마담 영향력이 얼만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할머니께서도 틀릴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장님, 믿을래요."

"그래. 믿어."

솔라를 키운 그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아니, 이수연 배우님이나 한지아 연습생도.

지금 차트 1위를 찍은 루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개런티는 좀 낮을 수도 있어."

"그래도 좋아요."

"망하면 몸값 떨어질 텐데?"

"안 망한다면서요."

"그야...."

정수호 실장님은 씨익 웃으며 자신을 바라봤다.

"네가 연기만 잘하면 절대 안 망해."

"...."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담되잖아요.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오늘은 주희의 첫 번째 축구 경기가 있는 날.

아침 일찍 출근해 영화 제작 과정을 확인했다.

"지유야, 지금 제작사 중에 연락 온 곳 있지?"

"아니. 아직."

은서만 아니었으면 모든 제작사에서 입구컷 당했겠지.

"김춘수 감독님은?"

"시나리오 보고 연락 주신대."

"그래. 기다려보자."

영화 제작에 관여하려고 하니 보통 일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장면 구분표, 콘티, 세부적인 예산서 작성.

스케줄을 짜면서 로케이션 탐사에 제작팀을 구성하는 과정까지.

일단, 반응 오는 제작사 있으면 확인해 봐야지.

역배각을 동원해 최대한 신경 쓸 생각이었다.

'.... 미국 가기 전까지.'

다른 주조연 캐릭터도 신중히 캐스팅해야 했다.

내가 투자한 액수가 워낙 크니까 조심스러웠다.

"아, 오빠! 여기 미국 티켓."

"고마워."

나는 지유가 건넨 LA행 비행기 티켓을 챙겼다.

"아직 보름쯤 남았네."

"응. 맞아."

벌써 칼리 잭슨의 EP 앨범 작업은 마무리 단계.

예지의 「로이랜드」 영화도 크랭크인 직전이었다.

"너는 주희랑 먼저 축구 경기장에 가 있어."

"오빠는?"

"작업실 들렀다가 따라갈게."

"알겠어."

멀어지는 지유를 확인하고, 다이애나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이겠지.

하이엔드를 제외하면 빌보드는 아직 높은 벽이었으니.

"도하나 씨."

"아, 실장님 오셨어요?"

"응. 바빠?"

"아뇨."

스윽─

곧바로 미국행 티켓을 건네며 말했다.

"날짜 잡혔어."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칼리 잭슨, 곡 작업은 어때?"

"끝나가요."

사실 한국에서도 전부 끝낼 수 있겠지만.

"녹음은 직접 하고 싶은 거지?"

"네. 아무리 통화 품질이 좋아도 사운드가 달라요."

"...."

인간의 귀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실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내가?"

"네. 절대음감 아니에요?"

"전혀 아닌데."

"아하. 그럼 상대음감이구나."

".... 됐고."

그것도 아니야.

음악에 관심이 없어요.

"칼리 잭슨 곡 작업만 끝나면 여유가 좀 있나?"

"네. 스케줄 없으면."

"그건 내가 조정하면 되니까."

나는 「첫 사랑」 시나리오 한 부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영화 OST 작업 네가 전부 프로듀싱 할 수 있겠어?"

"이거 은서 언니....?"

"응. 맞아."

"저한테 맡기셔도 괜찮겠어요?"

"당연하지."

지금 국내 프로듀서 중에서 도하나 만큼 핫한 사람은 없을걸.

"음악 감독님은 따로 둘 거야. 너는 곡만 생각해."

".... 열심히 해볼게요."

"고맙다."

"저한테 맡겨주셔서 오히려 제가 고맙죠."

"응?"

"은서 언니 일이잖아요."

"아."

나만 또 쓰레기냐.

돈 아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 건데.

"실장님은 솔라한테 항상 고마운 사람이에요."

"내가?"

"네. 베이비 엔젤 같아요."

"...."

오글거리게. 무슨 칭찬이 그래.

"천사 새끼."

"이런."

이 새기 일부러 이러나.

"아무튼, 나는 촬영 때문에 경기장 가보려고."

"주희 언니요?"

"응. 오늘 첫 시합이라."

"저도! 저도 같이 갈래요!"

"작업은 다 끝났어?"

"네! 끝났어요."

솔라 멤버가 응원하러 와주면 제작진 측에선 좋아하겠네.

"그럼 준비해. 같이 가자."

"소미도 가면 좋은데."

"걔는 공부해야지."

콘서트 투어 때 학교를 너무 많이 빠졌어.

아마 시험공부도 거의 못 하고 봤을 텐데.

"소미 중간고사 만점 받았대요."

"뭐?"

"수학이랑 과학만요."

"공부도 안 하고?"

"네. 다른 과목도 1시간 공부하고 준수하게 잘 봤대요."

".... 잘했네."

나는 한국대 들어가려고 피 토하면서 공부했는데.

가끔은 걸그룹 매니저로 일하면서 현타가 찾아와.

"어서 가자."

* * *

「공차녀」 시즌 2의 포문을 여는 개막식 경기.

외국인 팀과 걸그룹 팀의 연습 게임을 앞두고.

캡틴 양은 걸킥스 팀원을 이끌고 당당하게 등장했다.

-아, 이게 누구인가요.

MC 석에서는 유명 진행자 두 명이 만담을 나눴다.

-솔라의 양주희 선수죠.

-정말 나왔네요. 제가 팬이거든요.

-편파 진행하시는 거 아니죠?

-편파 진행해도 된다고 들었는데요.

-그럼 저도 할게요.

역시, 예능은 예능인가.

진행 상태가 이상했다.

그저 가만히 서서 주희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기."

다른 팀 선수들이 주뼛주뼛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물론, 인사하는 대상은 내가 아니라 다이애나였다.

"솔라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태어나 주셔서 감사해요!"

"예?"

인사치레가 과하네.

그때, 누군가 꾸벅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어라, 저분은....'

최강팀, 「국대 가족」 팀 에이스.

경주미 선수가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공차녀 시즌 1, 2를 통틀어 가장 강한 스트라이커.

그녀는 당당하게 나타나 쿨하게 사인을 요청했다.

"등에 해주세요."

"...."

다이애나는 어쩔 줄 모르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 해드려."

"음, 이름이 모에여?"

"경주미."

경씨 성을 가진 해외파 국대 축구 선수의 친누나.

경주마 같은 그녀의 속도를 따라올 선수는 없었다.

스윽─

이내, 팔목에 걸친 야광봉을 보여주는 경주미.

".... 태양빛?"

"예. 2기 정회원입니다."

"...."

이 정도면 전 국민이 태양빛 아니냐.

"오늘 우리 주희 기대하고 있어요."

".... 그렇습니까."

"네. 우리 주희 실력에 대한 소문이 너무 살벌해서."

"아하."

그래도 견제를 하긴 하시는구나.

"저 오늘 직캠 찍어서 우리 주희 덕질하다가 자려고요."

".... 우리 주희?"

"네. 우리 주희요."

견제.... 하는 거 맞지?

삐이이이─

곧이어,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를 시작했다.

편집의 힘으로 분량을 늘리기는 하지만.

경기는 전반과 후반, 각 10분이 전부였다.

그 사이에 골이 터져봐야 얼마나....

"고오오오오오올─!!!!!"

양주희가 수비수 벽을 뚫고 골망을 흔드는 데 걸린 시간.

".... 10초 걸렸네."

경주미는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남의 팀 골을 자축했다.

"정 실장님, 빨리! 지금 당장 SAS 응원 구호!"

"그게 뭔데."

"빨리 일어놔!!!"

".... 놔요."

누가 이 사람 마취총 좀 쏴주세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