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83화 (83/200)

[83] 성장(8)

최근 방송가에 특이한 소문이 떠돌았다.

사실, 소문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과했다.

-큐앤지 레이블, 정수호 실장이 고른 작품은 반드시 흥행한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연예계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 터였다.

운칠기삼.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과 품질을 갖추면 그 후로는 운빨.

수백만, 수천만 대중들의 주관적인 즐거움을 예측한다니.

그저 좋은 타이밍과 시대가 맞물려 원 히트 원더가 탄생하고, 사라지지 않던가.

솔라도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복수소녀」와 「댄싱 스트릿」은 달랐다.

'.... 이게 가능하다고?'

엔터 업계의 공룡 기업, 프렌즈 본사 최상층.

방철호 의장은 부하 직원에게 질문을 건넸다.

"김 비서, 자네였으면 복수소녀에 투자했겠나?"

"안 했을 겁니다."

"이유는?"

"무명감독에 걸그룹 멤버 원톱 주연이니까요."

".... 그럼 댄싱 스트릿은?"

"마찬가지입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보통 사람은 위험을 회피하니까.

영화제를 직접 떠돌아다니며 인맥을 구하던 감독의 액션 영화.

망하기 일보 직전인 주제에 해외 댄서 캐스팅만 고집했던 예능.

두 작품의 공통점은 오직 하나였다.

정수호가 죽을 작품을 살렸다는 것.

'그 사람은 진짜야.'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을 억지로 제작까지 이끌어냈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아니, 그냥 성공한 수준이 아니라 대박이 난 거지.

800만 관객과 넥플렉스 글로벌 랭킹 10위였으니.

그뿐인가, 솔라가 투입된 작품은 최소 중박은 쳤으니.

우연도 한두 번이지, 이 정도면 무속신앙에 가까웠다.

'이제는 무당이라고 해도 믿겠어.'

지금까지 이런 괴물 같은 인재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가.

"정수호 실장을 스카웃 할 수 있겠나?"

"이미 헤드헌팅을 시도했습니다만."

".... 실패했군."

"네. 맞습니다."

"이유는?"

"그건 아마도...."

비서의 말을 들어보니 더욱더 탐이 나는 인재였다.

"고작 정 때문에? 솔라를 직접 키웠으니까?"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낭만이 있는 친구네."

"...."

방철호 의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함께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닌가."

"네?"

보통 사람들은 인수합병을 어렵게만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채무와 자본의 결합에 불과했다.

'엔터' 딱지를 떼고 글로벌 플랫폼 「프렌즈」로 도약하는 시기.

이런 중요한 시점에 유능한 인재 한 명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문제는 드림 에이전시야."

"네. 맞습니다."

고작 중소 엔터는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실소유권을 쥐고 있는 드림 에이전시.

아무리 프렌즈가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지만.

'고작 치프 매니저 한 명 때문에....'

대기업을 인수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고.

"방법이 없을까?"

"하나 있긴 합니다만."

".... 후우."

비서는 자신의 너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방 마담."

"네."

같은 성씨를 쓰는 먼 친척.

연락 안 한 지 몇 년이더라.

"나랑 어떤 사이인지 알고 말하는 건가?"

"네. 알고 있습니다."

이젠 남보다 못한 사이.

원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방 마담이랑 거의 20년쯤 연락도 안 한 것 같네."

"세월이 빠르군요."

"됐고, 다른 방법은 없나?"

"없습니다."

"그럼 고민 좀 해보자고."

"네. 의장님."

방철호는 비서를 살짝 째려보고 시선을 돌렸다.

[글로벌 랭킹 10위 「댄싱 스트릿」]

성공할 작품을 미리 알아보는 미친 안목.

연예계에 그보다 중요한 능력이 또 있을까.

'하여튼, 대단하긴 한데.'

그래도 20년 앙금을 풀 정도는 아니었다.

* * *

넥플렉스 자체 제작이 아닌 예능 중에서 글로벌 순위 1위.

「댄싱 스트릿」의 가장 인기 크루는 한국팀 'Alpha'.

당연히 그 화제성은 레드와인과 양주희가 양분했다.

"오빠 왔어?"

"응."

솔라와 루나의 숙소 앞.

지유는 밴을 주차하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담배 피우고 있었네."

"응. 돛대야."

본부장님이 담배 하나 빼고 다 훔쳐감.

"오빠, 오늘 솔라랑 루나 스케줄 보냈어."

"그래. 고마워."

"아, 다음 주에 이수연 배우님 오시잖아."

"벌써 그렇게 됐나."

괜히 일거리만 늘었잖아.

드라마 대본 좀 봐야겠다.

"들어가자."

"응."

이내, 나는 지유와 함께 솔라의 숙소에 들어갔다.

"오빠, 오늘이 그날인 거 알지?"

"어. 예지 미국 가는 날."

"...."

구 팀장님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왜 할리우드 영화 오디션인 거 미리 말 안 해줬어?"

"비밀 엄수가 조항이라."

"그런 게 있어?"

"응. 있더라."

곧장 솔라의 숙소에 들어가 멤버들을 확인했다.

"실장님!"

예지는 오늘도 예쁜 얼굴로 나를 맞았다.

이미 캐리어에 짐까지 싣고 기다렸으니.

"예지, 지유랑 같이 내려가 있어."

"실장님은요?"

"나도 공항까지 따라갈 거야."

"아하."

예지는 방긋 웃더니 지유와 함께 숙소를 벗어났다.

그나저나, 은서랑 주희는 아직도 자나 봐.

방에 노크하고 안쪽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거기 없어요."

구경하던 소미가 옆에서 내게 말을 꺼냈다.

"지금 두 명은 헬스장 갔어요."

"아, 그래?"

"네."

언니 라인, 세 명이 함께 쓰는 방.

당연히 안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미, 너튜브 채널 관리할 직원들 구했다."

"오, 진짜요!?"

"응. 우리가 아는 사람도 있더라."

"누구요?"

"예지 웹드라마 찍은 피디."

"오, 진짜요?"

본인 채널도 잘 나가는데 왜 굳이 지원했을까.

오늘 면접 잡았으니까 이따 물어보면 알겠지.

"내가 면접 보고 너랑도 미팅 잡을 거야."

"알겠어용."

"스튜디오는 벌써 구했어. 촬영도 잡아볼게."

"오오."

삐, 삐삐삐─

그때, 들려오는 도어락 비밀번호 소리.

아마 은서와 주희가 돌아온 모양이다.

그녀들의 방 내부를 슬쩍 확인하고,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잼깐만....?"

순간, 책상에 올려진 담배 네 개비가 눈에 들어왔다.

예지가 피울 리는 없고, 주희는 건강만 생각하니까.

"장은서, 이런."

마침,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는 은서와 주희.

곧장 두 사람 앞에 다가가 담배를 내밀었다.

"이거 설명 좀 해주실 분?"

"넹? 담배네용."

".... 이 방에서 나왔어요."

"???"

그래. 복수소녀 캐릭터는 흡연자가 맞아.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촬영이니까.

"왜 저만 보셈?"

"...."

눈치 빠른 장폭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 뭐야. 저 아니에요!"

"그래. 나도 흡연자라 이해는 해."

"아, 진짜로 아니에요!"

"응. 믿어줄 테니까 금연하자."

"진짜 아니라고요!"

원래 팬들이 아이돌에게 원하는 모습이라는 게 있거든.

건강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주희겠냐.

아니면 설마 예지가 담배를 피우겠니.

"나도 알아. 걸그룹도 사람이니까."

"아, 갑자기 열불나네."

"...."

책상에서 담배가 나왔는데 내가 더 빡치지.

"저 진짜로 아니에요!"

"그래. 믿어줄게."

"믿어주는 게 아니라, 아니라니까요."

"그래. 아니야."

나는 은서의 어깨를 툭툭 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실장님! 진짜로 아니에요!"

"알겠어."

"아."

곧이어, 예지가 탑승한 차에 함께 자리를 잡았다.

"예지야, 너 없는 동안 애들 관리는 누가 하냐."

"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담배 얘기는 안 꺼내는 게 좋겠지.

당장 미국에 오디션 보러 가는데.

"제가 다음 주에 돌아와서 군기 잡을게요!"

".... 음."

예지야, 미안한데 하나도 안 무서워.

아마 소미도 속으로 콧방귀를 낄 듯.

"나는 지금도 괜찮아."

"아, 네!"

개인적으로 멤버들 간에 서열이 있는 건 별로라서.

그냥 언니를 야라고 부르지 않는 정도면 충분했다.

"근데 실장님, 뒤통수에 반창고 예쁘네요."

"아, 이거."

본부장님이 붙여주신 거.

헤어가 없으셔서 그런가.

나처럼 뒤통수 감수성이 풍부하시더라고.

"예지야, 왜 웃어?"

"아니에요. 헤헤."

"아무튼, 미국 가면 연락하고."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고작 일주일이라 길게 인사하는 것도 민망했다.

앨범 준비랑 같이 시켜서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오디션 잘 보고 와."

"네!"

불안할 때 간지러우면 100%.

나는 뒤통수 똥촉을 믿으니까.

'무조건 잘할 거야.'

* * *

타닥, 타다닥─

[낙하산 취급받다가 갑자기 유능한 직원 된 썰 푼다]

-내가 투자 회사 인턴으로 일하거든?

근데 아는 형이 투자 종목 추천해줌 ㅋㅋㅋ

솔직히 처음엔 나도 반신반의했는데

그때, 멀리서 사수가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엄재하 씨, 이리 와보세요!"

자신을 낙하산이라고 매일 갈구는 사수.

아버지는 실드 쳐 주실 마음이 없으셨다.

"예예, 부르셨어요?"

"그래도 인정할 건 하려고요."

"네?"

스윽─

사수는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댄싱 스트릿, 글러벌 랭킹 8위까지 올랐네요."

"아하하."

"처음에 제가 투자 반대해서 미안합니다."

"에이, 지난 일인걸요."

"생각보다 연예계 쪽으로는 안목이 있으시네요."

"...."

수호 형이 일방적으로 추천해 준 작품이었다.

추천할 테니, 투자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감사합니다."

사수한테 처음으로 칭찬 들었다.

아마 평가서도 좋게 써주시겠지.

엄재하는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글을 마무리했다.

부캐로 「태양빛」 카페에 글을 올리고.

요즘 솔라 스케줄을 천천히 확인했다.

"음, 예지가 미국 갔네."

까비. 공항에 따라가서 응원해줬어야 했는데.

아니, 그러다 지유 만나면 개쪽팔릴 것 같아.

"아무튼."

수호 형 덕분에 회사에서 실적도 다 챙기네.

솔직히, 어릴 때부터 그의 안목을 지켜봤으니.

'어떻게 사람이 이리 바뀔 수 있지?'

개똥촉이라고 매일 놀리지 않았던가.

선택하는 곡마다, 작품마다 망했는데.

".... 공부 열심히 했구나."

지유가 그에 대해 칭찬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있었다.

음원 시장을 공부하면 길이 보인다고.

잠도 안 자고 매일 업계를 분석한다고.

그게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이미 성과로 증명했으니.

".... 믿을 만했네."

아마 양주희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댄싱 스트릿」에 관심도 없었을걸.

「태양빛」 카페지기로서 팬심으로 투자했는데.

이제는 그냥 그의 안목을 믿고 투자할 것 같다.

"재하 씨, 뭐해?"

"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사수님의 목소리.

재하는 순간 카페를 꺼야 하나 당황했다.

"이, 이게 농땡이가 아니라요."

"크으, 댄싱 스트릿 커뮤 반응 모니터링하시는구나."

".... 정답."

"쉬면서 해요."

"예압."

수호 형 덕분에 회사 다닐 맛이 좀 났다.

* * *

강남의 한 카페.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오늘 올라온 티저를 감상했다.

《[SOLAR] 1st Full Album Official MV Teaser "검은 태양"》

-5시간 전

-조회수 732만 회

-좋아요 53만, 싫어요 6천

-댓글 12만

이제는 하루 만에 조회수 천만도 가뿐했다.

제대로 된 해외 활동도 없이 국내 활동으로.

아마, 장은서 영화와 양주희 댄스 예능이 하드캐리했겠지.

띠링─

그때, 오늘 미팅 약속을 잡은 인물이 내게 톡을 보냈다.

[저는 거의 도착했습니다!]

"나는 이미 도착했는데."

주현성 씨 이력서를 보며 커피를 홀짝 마셨다.

막장 드라마계 대모, 김고은 작가님의 조카님.

-성명 : 주현성

-경력 : 100만 구독자 채널 운영했었음

-특이사항 : 태양빛 1기 회원(중요!)

소미라는 이름을 숨겼지만, 이미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마 우리 회사 직원들 중에 지인이 있는 모양이었다.

「피노키오 스튜디오」

".... 였는데 채널명이 바뀌었네."

저예산 고퀄리티 드라마 제작 채널.

예지 웹드라마 때 반짝 성장했는데.

'무슨, 영양제 광고만 올라오냐.'

예지 때만큼 퀄리티를 뽑을 수가 없어서 그런가.

영양제 파는 기업한테 채널이 넘어간 모양이다.

딸랑, 딸랑─

이내, 주현성 씨는 카페에 들어와 나를 발견했다.

"정수호 매니저님!"

"네. 현성 씨."

"잘 지내셨죠?"

"그럼요."

가벼운 안부 인사를 마치고, 채널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직원 중에 일 크게 벌인 친구가 있거든요."

"네?"

"작품 말아먹고 잠적했어요."

"...."

이미 본인 지분을 전부 팔아버리고.

채널 권한은 다른 기업에 넘어갔다.

"음, 그렇게 된 거네요."

"저 좀 살려주세요."

"...."

연출, 촬영, 조명, 편집, 음향.

전부 맡던 패기는 어디 갔나.

100만 구독자 채널 날려 먹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 괜찮을까.'

괜히 소미 이미지에 먹칠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현성 씨 촬영팀 식구들까지 전부 고용하는 조건이라고요."

"그게, 그렇긴 한데...."

"아, 제가 다음 면접자도 있어서요."

"매니저님! 이렇게 버리시면 아니 되옵니다!"

"아니, 버리긴 뭘 버려요."

"제가 진짜 잘할게요!"

"...."

순간, 뒤통수에 살살 느껴지는 감각.

너무 세게 긁으니까 딱지 생기던데.

"오케이, 그럼."

뒤통수를 꾹꾹 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첫 촬영 편집본 보고 판단할게요."

"오, 정말이죠."

"네. 소미가 한지아 작곡가를 소개하는 토크 방송입니다."

"어후, 토크는 제 전문이죠."

"...."

웹드라마 전문이잖아요.

회사 운영이 적성에 안 맞는 거 같기는 한데.

예지 촬영 때 보니까 연출, 편집은 잘하더라고.

"저기, 매니저님."

"네."

"태양빛 카페에서 다음 주 백상예술대상 이야기만 엄청 하네요."

"그래요?"

그만큼 후보에 많이 오르긴 했지.

작년에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였다.

"그날 화제를 모으면 정규 앨범 초동에 도움되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렇겠죠."

"그럼 그전에 촬영, 편집 끝낼게요. 바로 올릴 수 있도록."

"그렇게 빨리요?"

"맡겨만 주십쇼."

"네. 뭐."

다음 주 예지 미국 오디션과 백상예술대상.

그리고, 첫 정규 앨범 컴백 시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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