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성장(7)
실장 직급이 이렇게 힘든 자리였나.
앨범 작업을 혼자서 다 조율하니까.
'와, 진이 다 빠지네.'
여덟 곡이나 되는 만큼 프로듀서도 한두 명이 아닌지라.
"윤성현 작곡가님, 작업 끝난 거 맞죠?"
"네. 맞아요."
".... 라이크잇."
"지금 들어보실래요?"
"네."
타이틀곡 만큼 중요한 두 번째 수록곡.
반응 좋으면 후속곡 활동도 할 거니까.
'.... 나머지 중에서는.'
가장 역배각에 가까웠다.
뒤통수에서 신호가 올 때까지 계속 편곡했다.
물론, 내가 아니라 다이애나랑 윤 작곡가님이.
"이대로 가시죠."
타이틀곡 및 후속곡은 「검은 태양」과 「Like it」.
여왕님께서 준비한 세계관에 맞춰.
모든 녹음과 음원 작업을 완성했다.
"윤성현 작곡가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솔라 데뷔곡 이후, 큐앤지에서 일하는 전속 작곡가.
루나랑 다른 회사에서 곡 작업 의뢰도 받고 있었다.
"저는 연습실 가볼게요."
"네. 실장님."
나는 작업실 문을 열고 연습실로 이동했다.
'다이애나 없었으면 어쩔뻔했냐.'
솔라의 컴백 시기는 이달 말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이후였다.
'이거, 시상식에서 이슈몰이를 하면 좋을 텐데.'
곧이어, 연습실에서 안무를 연습하는 멤버들을 확인했다.
주희가 「댄싱 스트릿」에서 인연을 쌓은 댄서들.
홍주 쌤을 비롯한 여러 안무가와 호흡을 맞췄다.
'일단 다람쥐춤은....'
예지가 창작한 안무는 변형을 거듭했다.
청순큐티섹시는 무슨 끔찍한 혼종인가.
내 취향과 거리는 멀었지만, 가려운 뒤통수를 긁으며 무심히 지켜봤다.
드르륵─
그때,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홍보팀장님.
홍미영 팀장님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정 실장님, 오늘 입수한 정보인데요."
"네?"
"베리걸스, 다음 달 초에 컴백한다고 하네요."
".... 겹치는구나."
"그렇죠."
2세대 최고의 걸그룹. 대선배님.
지금은 '블루숄츠'에게 최고의 자리를 넘겨줬지만.
현 30대 남성들의 걸그룹은 '베리걸스'에서 멈췄다.
"지금 피하기엔 너무 많이 준비했어요."
"그렇긴 하죠."
2세대와 4세대 대표 걸그룹 매치.
그래도 우리가 먼저 컴백해서 다행이다.
첫 주 1위는 찍고, 자존심은 지킬 테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홍보팀장님 성격 많이 죽었네.
옛날 같았으면 컴백을 미루자고 했을 텐데.
아니면, 실장 달았다고 인정해 주시는 건가.
드르륵─
이어서, 지유는 커피 12잔을 들고 연습실에 들어왔다.
홍보팀장님께 꾸벅 인사하고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빠, 얼마 후에 생일이네."
"생일 잊고 사는데."
"그래도. 선물 뭐 받을래?"
"됐거든."
나는 지유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받고 안무를 감상했다.
이내, 홍주 선생님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자, 10분간 쉬고 다시 시작."
"네에!"
곧장 좀비처럼 걸어와 커피를 집어드는 멤버들.
"얘들아, 수고했어."
"으어."
"힘두러."
밖에서 보면 탑스타지만, 이 공간에선 연습생과 다를 게 없었다.
"소미야, 요즘 진짜 열심히 하네."
"제가 언제는 대충 했나요?"
".... 양심 어디."
소미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옆자리로 다가왔다.
"실장님, 우리 위문공연 스케줄 있잖아요."
"응. 얼마 후에."
"그때 너튜브 촬영해도 돼요?"
"응? 회삿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아뇨, 개인 너튜브 채널!"
"...."
그게 무슨 소리야.
"새 계정 만들었니."
"네. 우주아이돌 갓소미! 영상도 없이 벌써 구독자 두 명이에요!"
"어, 되게 많네."
나는 소미가 보여주는 채널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내가 개인 너튜브를 허락했었나?"
"영상 허락 맡고 올리면 된다고 했잖아요."
"그건 이미 있는 회사 채널이고."
"아하."
이내, 옆에서 엄지유는 소미의 의견에 반응을 보였다.
"소미가 MC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흐음."
"비정기 예능으로 게스트 초대해서 토크도 하고 요리도 해주고...."
"너도 소미랑 같이 제작하겠다고?"
"콜!"
스윽─
소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에서 기획안을 꺼냈다.
".... 준비성 뭔데."
안 그래도 바쁜데 무슨 자쳬 컨텐츠야.
게스트 초대하면 그것도 돈이 드는데.
"소미야, 제작비는 있어?"
"으음, 게스트는 지인 찬스로! 한지아가 첫 번째 게스트에요."
".... 촬영은 어쩌고?"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올린 건데요!?"
"자막은? 편집은?"
"으음."
옆에서 지유는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해줄게. 나 예고 연출부 나왔잖아."
"오오, 지유 언니 최고!"
아니, 퀼리티 낮으면 오히려 역효과라니까.
정으로 해주는 건 주말에 딱 1시간 정도지.
요즘 너튜브 영상은 거의 공중파 수준인데.
"소미야, 그냥 앨범 활동에 집중하는 게...."
"아웅, 시간 많이 안 뺏겨요!"
순간, 뒤통수에서 살랑살랑 가려운 감각을 느꼈다.
"알겠어. 그럼 한번 해봐."
"진짜요!?"
"그래."
저예산으로 찍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너튜브 예능도 당연히 자본금은 있어야 찍을 테니.
"제작비 필요하면 내가 투자해줄게."
"우오, 실좡님....!"
소미는 감동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작, 투자 지분은 5대 5예요!"
"어차피 회사가 먼저 떼고 나머지 중에서 나누는 거야."
"개인 채널이라도?"
"응. 원래 그래."
그게 계약이니까.
"아무튼, 하려면 제대로 해."
"네네! 두말하기 없기!"
"그래."
뒤통수 간지러워서 봐준다.
* * *
얼마 후.
정규 앨범 작업과 뮤비 촬영 위주의 활동.
그 외에도 개인 활동을 소소하게 이어갔다.
"군대 잘 갔다 와."
"오빠, 위문공연 끝나면 연락할게."
"그래. 얘들만 숙소에 데려다 주고 바로 퇴근해."
"아니, 잔업 있어."
"음, 그래."
이내, 사무실을 벗어나는 엄지유.
전 본부장님 부탁이 있긴 했지만.
'.... 위문공연도 한 번쯤 할 때 됐지.'
「군대사나이」는 소미의 터닝 포인트.
막내의 지니어스 이미지를 친근한 여동생으로 바꿔줬으니.
덕분에 「호러 데이즈」는 호평을 받으며 깔끔하게 종영했다.
'아마 너튜브 예능도....'
그 덕분에 역배각이 뜬 게 아닐까.
이왕 투자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딸깍, 딸깍─
채용 사이트에 촬영팀과 편집팀 채용 공고를 올렸다.
솔라라든지, 큐앤지 이름은 가리고 성실성 위주로만.
이것도 똥촉으로 뽑을 수 있으려나.
연예계 관계자면 거의 다 먹히는데.
그때, 사무실에 누군가 노크하고 들어왔다.
"구 팀장님."
"실장님, 베리걸스 소식 들으셨습니까."
"네. 들었어요."
"제가 아는 기자들 통해 언플이라도...."
"아뇨."
그런 거 없어도 솔라는 최고니까.
"우리는 그냥 앨범 준비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아, 역시! 실장님은 벌써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
그런 거 없는데요.
"혹시 댄싱 스트릿!? 오늘 넥플렉스에서 공개하니까요."
"네. 뭐. 그렇죠."
얼마나 뜰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역배각이니까 뜨기는 할 거야.
재하한테 투자 추천할 만큼 확실하지.
"오오, 그럼 솔라가 베리걸스를 누르고....!"
"구 팀장님, 음방 1위는 그냥 상징성에 불과합니다."
"네? 아, 그건."
"솔라는 2위를 해도 여전히 최고예요."
"...."
구 팀장님은 하이엔드 소속사 프렌즈 엔터 출신이라.
그래서 1위 못하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 제가 너무 성급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뮤비 티저는 언제쯤 나올까요?"
"기한은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나오면 같이 확인하죠."
"네. 실장님."
이내, 구 팀장은 사무실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뒤를 돌았다.
"실장님, 오늘 생일이시라고...."
"누가 그래요?"
"지유가요."
"...."
걔는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나.
일부러 톡에 숨김으로 바꿨는데.
"생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실 문이 닫히고, 소파에 가서 털썩 몸을 뉘었다.
"후우...."
앨범 작업 때문에 요근래 제일 바빴다.
물론, 나보다 다이애나가 더 바빴지만.
띠리리링─
그래도 이렇게 일이 안 끝난다니까.
받을까 고민하다가 스마트폰을 확인했는데.
".... 앤드류 감독님?"
-헬로. 미스터 정.
받자마자 앤드류 감독님께서 내게 말을 걸었다.
-오디션 일정이 잡혀서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날짜랑 장소는 메일로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나긋나긋한 영어 발음은 꼭 영국 신사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합격하면 촬영은 석 달쯤 뒤부터 시작할 겁니다.
"...."
석 달 뒤면 앨범 활동도 끝날 무렵인가.
합격만 하면 단체 활동도 빠져야겠지만.
-석 달 뒤, 일정은 조율할 수 있겠습니까?
"네. 감독님."
-좋네요.
오디션 일정이라고 해봐야 딱 하루.
앞뒤로 이틀씩 붙여도 5일 정도라서.
다행히 앨범 활동 전에 갔다 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뚝.
"급피곤하네."
정규 앨범과 영화 오디션 준비.
둘 다 시키는 게 미친 짓이었나.
".... 그냥 하나만 할걸."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괜찮아.
앞으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역배각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톡, 토톡─
곧장 구현식 팀장님께 톡을 전송했다.
[일주일 정도 미국 출장 다녀오셔야겠습니다.]
[예지랑 같이요.]
* * *
군대에서 느낀 짜릿한 열기.
고작 20대 초반.
멤버들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년들.
"오늘 무대...."
예지는 무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입을 열었다.
"나는 콘서트하는 느낌이었어."
"응. 자존감 채우고 옴."
소미는 오늘 지유가 찍은 영상을 감상하며 말을 이었다.
"너튜브각 제대로 뽑았구연."
"...."
솔라의 모든 스케줄은 정수호 실장이 관리했다.
공연을 마치고 나니까 감흥이 남달랐다.
군부대에서 정규 앨범 홍보도 제대로 했고.
'역시, 우리 실장님이야.'
예지는 그를 떠올리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당장 아이솔레이션만 해도 하루에 행사를 5개씩 잡았다.
축제 시즌엔 부산까지 왕복 두 번씩 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솔라는 많아야 한두 개쯤.
그마저도 없는 날이 대부분이라서.
"예지 언니."
그때, 운전석에 앉은 지유가 입을 열었다.
"미국 스케줄 이야기 들었지?"
"오디션?"
"응."
결국 오디션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갔다 오자마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정이긴 했지만.
'.... 무조건 붙어야지.'
정수호 실장님이 어렵게 잡아온 기회니까.
"아, 그거 알아?"
엄지유는 백미러를 보여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늘 수호 오빠 생일이야."
"으응?"
그걸 왜 이제 말해.
"오빠가 언니들한테 말하지 말래."
".... 아."
"연습 방해하지 말라고."
"...."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원래 우리 실장님 생일 안 알려주시잖아."
"맞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깊콘 보내드려야겠다."
"바보야, 모른 척하라니까."
".... 양쭈한테 바보 소리 들으니까 갑자기 개빡치네."
"덤벼."
예지는 은서의 어깨를 누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작년 생일에도 스케줄 때문에 못 챙겨 드렸는데.
"언니들, 바로 숙소로 갈 거지?"
".... 아니."
예지는 손을 들고 지유에게 말했다.
"나는 회사 연습실."
"아, 그럴래?"
"응. 미안."
"어차피 나도 다시 회사 들러야 해."
"아, 응."
다른 멤버들은 의식적으로 예지의 시선을 피했다.
괜히 눈 마주치면 같이 연습하자고 말할까 두려워.
끼이익─
이내, 회사에 도착하고 예지는 혼자 내려 사옥에 들어섰다.
반갑게 인사하는 직원들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실장님의 사무실.
노크하고 문을 열었는데.
"안 계시는....? 아."
소파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정수호 실장님.
김예지는 그의 앞에서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와아, 이런 좋은 기회가-, 아니, 주무시고 계시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콕콕 찔렀다.
생일 선물도 안 가져왔는데.
딱히 드릴 수 있는 건 없고.
"생일선물로 합격 목걸이 들고 올게요."
금방 미국 갔다 올 거니까.
그동안 동생들을 부탁해요.
"으으음."
".... 흡."
그때, 소파에서 몸을 뒤척이는 실장님.
예지는 입을 꼭 틀어막고 숨을 멈췄다.
'.... 뒤통수에서 피나!'
얼마나 머리를 긁은 거야. 피날 만큼.
평소에 습관이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좀만 기다려요.'
이내, 연습실에 있는 반창고를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문득, 책상에 놓인 담배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으휴, 건강에 안 좋은 거.'
담배갑에 있는 담배는 총 5개비.
그중에서 4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 하나만 남겨준다.'
* * *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어떤 놈이 뒤통수에 반창고를 붙이고 튀었을까.
"뭐냐."
아, 담배는 또 누가 훔쳐갔어.
혹시 본부장님이 왔다 가셨나.
".... 딱 하나 남았네."
드르륵─
그때, 누군가 노크도 없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본부장님?"
역시 당신이었구나.
"수호야, 터졌다!"
"네?"
"댄싱 스트릿 터졌다고!"
"???"
박철민 본부장님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어깨를 후려쳤다.
"아악."
"너는 진짜 대단한 놈이야."
"...."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담배는 모른 척 해줄 테니까 제 방에서 나가주세요."
"뭐라는 거야. 이거 봐봐!"
"???"
이내, 스마트폰을 건네 넥플렉스를 실행하는 본부장님.
[글로벌 랭킹 10위 「댄싱 스트릿」]
"고작 한 편 올리자마자 랭킹에 올랐다고!"
"아하."
잠깐 어느 정도 수준인지 생각했다.
글로벌 랭킹이면 전 세계 10위인가.
'.... 또 대박 났네.'
첫 방송이 올리온 지 단 하루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