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복수 소녀(6)
솔라 숙소 앞.
밴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어젯밤을 떠올렸다.
한국대 경영학과 동문회 모임.
예지가 오고 나서부터는 정신이 없었다.
띠링, 띠링─
그때, 어제 오랜만에 만난 진상 친구에게 톡이 날라왔다.
[수호야, 부탁 좀 하자]
[우리 사이에?]
[예지 개런티 얼마면 됨?]
얼마겠니, 부르는 게 값이지.
"진수야, 돈이 문제가 아니야."
브랜드 광고가 들어와도 다 쳐내는데.
온종일 광고 모델이 필요하다며 귀찮게 하는 동기.
어제는 무조건 진세은이랑 계약하겠다고 하더니만.
"응. 차단."
이내, 솔라 멤버들이 밴에 오르며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
"오빠 하이!"
"오늘은 지유가 안 왔네요."
"걔는 소미 데리러."
"아하."
예지는 뒷자리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말을 꺼냈다.
"팀장님."
"응?"
"어제 모임에서 인기 엄청 많으시던데요."
"내가?"
"네. 사람들 계속 모여들던데."
"...."
당연히 너 때문에 모인 거지.
갑분 솔라 리더가 왔으니까.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으셨구나?"
"...."
혼자서 밥을 먹을 만큼 없었지.
군대 갔다 오고 나선 더 심했고.
"근데 진세은 배우님이랑 친해요?"
"아니, 어제 처음 인사했어."
".... 그래요?"
학교 다닐 때도 이미 여신이었지.
입학하기도 전에 데뷔했었으니까.
"아아, 안 친하시구나."
"???"
예지는 혼자 배시시 미소를 짓고 몸을 뉘었다.
갑자기 왜 기분이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지야, 진짜 어제는 왜 온 거야?"
"으음, 그건...."
"다음부터 말도 없이 그러지 마."
"오, 그럼 말하면 가도 돼요?"
"안 돼."
"힝."
각자 개인 스케줄로 바빠서 오랜만에 모인 완전체.
지금 학교에 있는 소미는 지유가 데리러 갔으니까.
"얘들아, 오늘 어디 가는지 알지?"
"네에!"
얼마 만에 잡은 단체 스케줄인지 모르겠네.
특히, 영화 촬영 때문에 시간이 안 났기에.
"오늘 팬 사인회 맞죠?"
"응. 맞아."
지유는 소미를 데리러 서광예고로 출발했고.
구 매니저는 이미 현장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드디어 하네요."
"그니까."
솔직히 팬 서비스가 좀 부족하긴 했지.
방송 덕분에 팬클럽 규모는 커졌는데.
'특히 소미 덕분에....'
각종 예능에서 활약해준 덕분에 입덕하는 코어팬이 많아졌다.
방탈출, 군대사나이, 전챙시.
호러 데이즈까지 찍고 있으니.
"예지야, 소미는 벌써 복면가수 준비하더라?"
"네.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얼마나?"
예지는 특유의 뿌듯한 표정을 짓고 내게 말했다.
"요즘에는 매일 3시간씩 연습해요."
"소미가? 3시간?"
"네. 엄청 열심히 해요!"
"크으, 철 들었네."
심지어, 첫 촬영까지 시간 많이 남지 않았나.
「호러 데이즈」 때문에 한참 뒤로 미뤘으니까.
"소미한테 감성적인 부분은 조금씩 가르쳐주고 있어요."
"그래? 너도 잘하고 있네."
"헤헤."
원래 가수는 음색이랑 감성이 그 존재를 빛나게 한다.
나도 음악은 잘 모르니까.
딱히 조언할 말은 없지만.
"나중에 팀장님이 우리 막내 한번 봐주세요."
"응. 알겠어."
그래도 노래 듣고 역배각은 봐줄 수가 있겠지.
가끔 감성적인 부분에서 거슬릴 때가 있었으니.
부르르릉─
이내, 팬 사인회장에 근처에 도착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얘들아, 저기 봐."
"아!"
팬 사인회가 있는 건물 앞에 길게 늘어선 팬들의 행렬.
멤버들은 플래카드와 포스터를 보고 창문에 달라붙었다.
"와아, 저기 내 사진도 있어!"
"정수호 팀장님도 있는데?"
"응?"
[솔라의 아버지! 댄싱머신 정수호 팀장을 응원합니다!]
'.... 댄싱머신만 아니면 100점.'
SAS 앨범을 수백 장씩 사주신 고마운 팬들.
아마 요즘 인기를 보면 수천 장을 샀을지도.
이내, 주차장에 밴을 세우고 멤버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내리자."
"네에."
네 명을 데리고 현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띠링─
그때, 어제 동문회에서 만난 진세은 배우에게 톡이 날라왔다.
[선배님, 한 번씩 연락해요]
[이거 제 개인 톡이에요]
'.... 누가 내 번호 알려줬나 보네.'
갑자기 이수연 배우랑 사귀느냐고 물어보더니만.
다행히, 예지가 나타나서 조용하게 대충 지나갔다.
"이 사람...."
살짝 이수연 배우한테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거슬렸다.
* * *
서광예고 작곡과 3반.
한지아는 회사에서 시킨 연습을 떠올리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학급 초기,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 속.
몇몇 목소리 큰 아이들만 떠들어댔다.
"너도 봤지? 입학식 때 소미는 진짜 여신이더라."
"아우, 같은 반이 됐어야 했는데."
"어차피 학교 잘 안 나온대."
"그치. 연예 활동도 출석 인정해 주니까."
"으아, 부럽다."
예고 특성상, 대부분은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최소한 연예계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
'.... 나만 없어. 친구.'
한지아는 구석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작곡 노트를 끄적거렸다.
빼어난 외모도 서광예고에서는 평범함보다 좀 나은 정도.
어색한 사투리 탓에 서울에서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웠다.
드르륵─
그때, 뒷문이 열리며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지아야, 매점 가자."
"응?"
순간, 교실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소미?"
같은 반 아이들은 물론, 복도에서도 모두가 자신을 바라봤다.
"가기 싫으면 나 혼자 가도...."
"가, 갈게!"
"그래."
한지아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함께 걸어가는 소미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기에.
'으아아, 떨린다아.'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까지, 소미는 언제나 슈퍼스타였다.
교내 모든 학생들의 아이돌 아니던가.
야만전사를 분해도 여신으로 통했으니.
"하아, 그래서 예지 언니가 나한테...."
"...."
별로 친하지 않아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소미.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잘 들어올 리가 없었다.
"....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지."
소미는 매점에 있는 빵을 하나 고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사줄게. 아무거나 골라."
"고마어."
"근데 너 사투리 고쳤나 보네?"
"으음, 아직 당황하면 나와."
"그럼 난 크림빵."
".... 초코빵."
소미의 영롱한 음성은 종소리처럼 잔잔한 울림을 전했다.
'.... 뮤즈.'
갑자기 떠오른 악상.
종종 있는 일이었다.
누구처럼 깊고 넓은 음악적 지식은 없지만.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머릿속에 돌아다녔다.
"지쳐있는 내 마음을...."
"뭐라는 거야. 초코빵 들고."
"아, 미안."
매점 안팎에는 수많은 친구들이 소미를 연예인을 보듯 바라봤다.
서광예고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
솔라의 인지도는 국내 최고였으니.
'.... 소미는 진심이었구나.'
작년 중학교 졸업식 때 했던 친하게 지내자는 말.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니.
"아무튼, 너도 나중에 데뷔하면 팀장님 라인에 서야 해."
"정수호 팀장님?"
"응."
혼자서 솔라를 키웠다는 천재 프로듀서.
지금도 모든 스케줄을 직접 관리한다지.
'.... 라인.'
그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거 맞나.
뭐든지 그냥 시켜주시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군대든 공포 예능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띠리리링─
그때, 소미는 크림빵을 먹던 중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엽떼여. 지유 엉니."
-너 또 마음대로 먹으면....
"앙 머겄는데?"
-수호 오빠한테 다 이를 거야.
"으음, 진짜 안 먹었다니까."
-지금 나와.
소미는 전화를 끊더니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나 오늘 팬 싸인회 스케줄."
"그럼 가야겠네."
"응응. 다음에 또 연락할게!"
".... 번호가 없."
이미 소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만큼 멀어져 버렸다.
마치 게릴라 데이트처럼 길을 터주는 팬들.
그중, 같은 반 친구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지아야! 너 소미랑 친해?"
"대박, 너 개쩔어."
"거기 연습생이라고 했나?"
"그러면 나도 솔라 친구의 친구네."
"아니지, 소미가 내 친구의 친구지."
"그, 그게...."
소미 전화번호도 없다고.
조용한 성격에다, 사투리도 못 고쳤는데.
소미 덕분에 갑자기 핵인싸로 등극했다.
'아, 맞다.'
문득, 오늘 소미와 시간을 보내며 느낀 감각이 떠올랐다.
'빨리 작곡 노트에....'
오랜 만에 떠오른 영감을 기록해야겠다.
* * *
다음 날, 큐앤지 레이블 사옥.
나는 사인회장에서 받은 선물을 하나씩 정리했다.
"지유야, 이건 돌려주고."
"응. 아직도 태블릿 주고 그러네."
"그러게."
그러고 보니, 이런 자리에 엄재하는 꼭 참석했는데.
사인회도 불참한 걸 보면 인턴 일이 빡세긴 한가 봐.
"너희 오빠는 요즘 어떻게 지내?"
"누구? 엄재하?"
".... 응."
그래도 나한테는 꼬박꼬박 오빠라고 불러주네.
"아빠가 일만 잘하면 고속 승진시켜준다더라."
"그래?"
"응. 인턴치고 권한을 많이 줬는데 영 시원치 않나 봐."
"...."
나중에 똥촉 꽂히는 영화라도 있으면 추천해줄까.
괜히 팬클럽 활동을 시켜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본인이 원하긴 했어도....'
덕분에 「태양빛」은 별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오빠, 실장님 계셔? 결재받아야 하는데."
"아마 지금은 안 계실걸. 댄싱 스트릿 미팅 가셨을 거야."
"아, 그거."
엔넷 방송국 「댄싱 스트릿」
현재 제작비가 부족해서 제작도 불투명한 상태.
양주희만 잡으면 투자자가 더 붙을 수 있으니까.
"실장님이 미팅 잡으면 대부분 조건은 잘 받아오시거든."
"흐음, 인상이 더러-, 사나워서 그런가 봄."
".... 아무튼."
텀블 인베에서도 투자에 참여하면 어떨까.
이번에도 확실히 똥촉이 선택한 작품이라.
톡, 토톡─
스마트폰을 꺼내 엄재하에게 가벼운 조언을 남겼다.
솔직히, 안 믿을 수도 있겠지.
걔랑 같이 보낸 세월이 얼만데.
'.... 안 믿으면 말고.'
선택은 본인 몫이갰지.
"아, 오빠. 그러고 보니까 아까 다이애나가 찾더라."
"나를?"
"응. 슬럼프 이후로 작업물이 안 나오나 봐."
"...."
도하나는 졸라 열심히 하더라.
가끔씩 갱스터 랩도 올리던데.
곧장, 나는 작업실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나온 건가.'
히어로 영화 「묠니르」 후속작에 들어갈 삽입곡.
K팝 걸그룹 멤버가 할리우드 대작에 숟가락을 얹는다니.
공개되면 각종 언론이 다이애나를 둥둥 띄워 줄 터였다.
'나중에 이름을 공개할 날이 오려나.'
지금 솔라의 명성에도 벌벌 떠는데.
할리우드 영화 작곡가 소리를 들으면.
'.... 슬럼프 영원히 안 끝나겠네.'
한 번 정체를 오픈한 뒤엔 익명의 의미가 없어진다.
솔라와 작업하는 모든 편곡자를 그녀로 의심하겠지.
똑, 똑─
이내, 작업실에 노크하고 안에 들어갔다.
"도하나 씨, 나 찾았다며."
"네. 팀장님. 이거 한번 들어보세요."
"벌써 나온 거야?"
나는 다이애나가 건네는 헤드셋을 끼고 노래에 집중했다.
음악이 내 취향인지.
뒤통수가 간지러운지.
잔뜩 긴장한 채로 다이애나의 작업물을 감상했는데.
".... 한국 노래네."
"네. 아직 출연하려면 시간 좀 남았지만, 일단 한 번 편곡해 봤어요."
"이게 뭔데?"
"소미가 복면가수에서 부를 첫 곡이요."
"아니, 이런."
이거 말고, 할리우드 영화 삽입곡 작업하라고.
"묠니르 음원 작업은.... 하고 있지?"
"그것도 대충 만들어 놨어요. 어디에 저장했더라."
"아잇, 대충하면 안 된다니까."
"열심히 대충 했어요."
"...."
딸깍, 딸깍─
곧이어, 대충 작업물을 쌓아놓은 폴더에서 곡을 발견한 다이애나.
"아니, 따오기 뭔데."
"여기 그냥 잡다한 곡들 모아놨어요."
"...."
그니까 그 곡이 왜 따오기 폴더에 있냐고.
중요한 작업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잖아.
쿠우우웅─
이내, 웅장한 분위기의 트랙이 작업실을 집어삼켰다.
무거운 악기를 전부 넣은 잡탕 같은 음악.
정말로 연습 삼아 작업한 느낌을 받았는데.
곡을 듣는 동안 왜 뒷목에서 따끔한 감각이 밀려드는지.
"이거 작업 며칠 걸렸다고?"
"이틀 정도요."
"내가 준 레퍼런스는 두 개였잖아."
"기다리면 뒤에 또 나와요."
"어, 그러네."
얼마나 귀찮았으면 두 곡을 파일 하나에 섞어버린 거야.
이어지는 음악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경쾌하면서 가벼운 곡이라는 것만 빼면.
"진짜 이틀 걸렸어?"
"예압. 네 시간씩 이틀이요."
"....."
그러면 총 여덟 시간이네.
나는 그걸 제출해야 하고.
"오케이. 이걸로 가자."
"뭘요?"
"내가 할리우드 영화 삽입곡이라고 했잖아."
"아, 또 그 말씀하시네 안 속는다니까요."
"너어는 진짜...."
그래. 너는 그냥 믿지 말던가.
나는 뒤통수만 믿고 갈 테니까.
* * *
시간이 흘러,
모든 촬영을 마치고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
촬영하는 동안 편집까지 동시에 했으니까.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저기.
수화기 너머, 김춘수 감독님은 조금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조연출 건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이미 외부 감사팀은 그의 통장 내역을 털고 있을 텐데.
개인의 힘으로 법무팀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군요. 그런 놈인 줄 몰랐습니다.
"아뇨. 감독님 잘못이 아닙니다."
-정 팀장님께선 케어하는 배우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시는군요.
"네?"
-은서 씨를 위해 나서주신 거 아닙니까.
"...."
제 투자금 때문인데요.
원래 친한 사이가 더 무서운 법이지.
감독님은 그냥 영화만 잘 찍으면 된다.
"다른 연출팀 직원들도 다 유능하니까요."
-팀장님 덕분에 영화 촬영 잘 마쳤습니다.
"감독님이 잘하신 거죠."
아무튼, 아직도 배급 시사회라는 큰 벽이 남았으니까.
"감독님, 그럼 시사회 때 뵙겠습니다."
-그래요.
뚝.
전화를 끊고, 사무실 끝에 있는 지유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유야! 배급 시사회 날짜 확인했어?"
"응. 확인했지."
배급사 직원들 앞에서 진행하는 B2B 영업.
각종 판권 관계자들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 끝나는 거지.'
우리 영화를 '팔아줄'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야만 했다.
흥행작 중에 스크린 수 확보도 못 한 작품은 없으니까.
어느새 다가온 지유가 내게 말을 걸었다.
"우리 영화 대박 나야 할 텐데."
"잘 될 거야."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기술 시사회에 다녀왔잖아."
"아, 맞다. 오빠도 투자했지."
"어."
나 역시 배급 시사회를 앞두고 신경이 곤두섰다.
이번 영화에 10억 넘게 투자했으니까 당연했다.
"오빠가 보기에 영화는 어땠어?"
"그야."
아주 그냥 족 같았지.
피 튀기는 거만 보여.
"영화 잘될 거라고 하는 거 보면 재밌었나 봐?"
".... 어."
"오빠 잔인한 영화 좋아하는구나?"
"...."
아니, 졸라 싫어해.
뒤통수가 간질간질해서 죽는 줄 알았다.
영화 볼 때도 눈 감고 귀 막고 있었다고.
"그나저나, 청불인 게 조금 아쉬워."
"응, 흥행에 불리하니까."
그건 어쩔 수 없지.
이번 건은 무조건 김춘수 감독님 뜻에 따르는 게 맞아.
괜히 내가 간섭하면 똥촉의 기운이 틀어질 수도 있어.
'무조건 성공해야 해.'
차라리 영화에서 피 튀기는 게 낫다.
내 피 같은 투자금을 날리는 것보단.
"홍보팀 가서 배급 시사회에 오시는 직원분들 목록 받아와."
"알겠엉."
.
.
.
.
.
얼마 후.
나는 은서랑 주희를 데리고 배급 시사회장으로 향했다.
"양주희."
"네?"
"댄싱 스트릿 준비는 하고 있어?"
"그럼요. 소미보다 열심히 해요."
"...."
그건 당연한 거고.
"저도 다음에 복면가수 나갈래요."
"너 하는 거 봐서."
"아아."
가벼운 대화를 나누면서 도착한 시사회장.
이미 현장에는 영화 관계자들이 도착했다.
'그분이 안 보이네.'
금성 프로덕션에서 컨택한 배급사, '씨네마고'의 실세.
심창효 부장님이 계시는지 둘러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영화는 배급이지.'
오늘 그분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전부 끝장이었다.
극장 수를 확보하지 못한 영화의 말로는 뻔하니까.
"수호야."
그때, 박철민 실장님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담배나 피울까."
"네?"
빡빡이 선배님, 대체 얼마나 꼴초인 겁니까.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도 생각이 나시는지.
"저는 그냥 다음에...."
"아니, 가야 해."
".... 예."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실장님 뒤를 따라갔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인가.
박 실장님의 짬밥이었나.
"아이고, 심 부장님. 여기 계셨군요!"
"아, 박 실장님."
가끔은 흡연 구역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기도 했으니.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럼요."
박 실장님은 담배를 하나 꺼내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 정수호 팀장이요. 우리 회사 에이스입니다. 하하."
"아, 주연배우 장은서 씨 매니저분."
"네. 부장님."
원래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인사를 해도 고개만 까딱이는 사람.
드림 에이전시 시절에도 겪어봤다.
얼마나 깐깐하고 칼 같은 사람인지.
"후우, 불 없으셔? 빌려 드릴까?"
"넵.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흡연 중에는 불을 빌려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