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무대 체질(2)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사설 팬카페였다.
어릴 때부터 친했던 형이 대박 터트린 연예인이라.
[태양 여신 솔라의 팬카페, 태양빛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재하는 회원수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솔라의 팬층은 점차 그 규모를 키우고 있었기에.
공식 팬클럽 유료 회원은 2만인데.
자신이 만든 <태양빛>의 회원수는.
".... 벌써 8만 찍었네."
현재 4세대 걸그룹 국내 팬 규모 중 최대였다.
당연히 허수도 많고 안티팬도 있기는 했지만.
"흠, 쉽지 않아."
회원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관리가 어렵다는 뜻.
자신처럼 돈 많은 백수나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딸깍, 딸깍─
재하는 간간이 달리는 악플을 보고 인상을 썼다.
"에잉, 이런 놈들 때문에."
수호 형이 그렇게 걱정하는 거겠지.
당연히 솔라를 시기하는 타 걸그룹의 팬들도 있었다.
팬인 척 연기하며 욕먹게 만드는 지능형 안티도 있고.
특히, 최근엔 아이솔레이션의 팬들이 기승이었다.
솔라 때문에 이미지를 망쳤다면서 이를 갈았으니.
'그러게, 누가 퇴물 좋아하랬냐.'
엄재하는 악플을 지우거나 새로운 매니저를 임명하며 시간을 보냈다.
팬미팅이 며칠 안 남아서 그런가.
입장권 유무가 가장 큰 이슈였다.
이래서, 훌륭한 지갑전사는 앨범 수천 장 정도는 사야지.
'침대 밑에 숨겨놓은 앨범들은....'
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절반쯤 회원들한테 무료 나눔도 했는데.
끼이익─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방문 열리는 소리.
재하는 빛보다 빠르게 '알트탭'을 눌렀다.
".... 엄지유냐."
"뭐야, 야동 봤어?"
"아, 노크 좀 해라."
"노크는 무슨."
"가라. 난 또, 아빠 온 줄 알았네."
"어휴."
여동생은 화면에 띄운 공무원 인강을 보고 한숨을 뱉었다.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데."
"아, 지금 솔...."
"쯧쯧, 오빠는 아직도 철이 안 들었어. 수호 오빠한테 좀 배워라."
"응. 니 얼굴."
사실, 오늘 지유에게 말할 생각도 있었지만.
아버지께 비밀을 엄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빠, 우리 아빠 회사 법무팀장님 번호 알아?"
"어. 알지."
"나한테 좀 보내줘.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더라고."
"그분 번호는 왜?"
"악플로 고소하려고."
".... 고소?"
"태양빛에 자꾸 악플 달리는 거 빡치잖아."
"음. 그렇구나."
그거 혹시 카페지기한테도 연락이 올까.
아빠한테 걸리면 진짜 뒤지게 맞을 텐데.
"지유야."
"어?"
재하는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동생을 타일렀다.
"팬을 고소했다고 소문나면 어쩌려고 그래."
"악플러도 팬이야?"
"흠, 일단 팬클럽 회원이잖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아, 그런가?"
"당연하지. 멤버들이나 수호 형도 얼마나 불편하겠어?"
"그래. 그건 좀 곤란하지."
카페 매니저들 좀 굴려야겠네.
관리 열심히 하라고 해야겠어.
"내가 알아봤는데. 태양빛이 관리를 엄청 열심히 하더라고."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우리 동생이 팬매니저잖아. 귀찮아도 솔라 팬 가입 해야지, 어쩌겠어?"
"뭐냐, 갑자기 왜 오빠짓?"
"어허, 오빠한테 오빠짓이리니."
".... 놀고 있네."
팬매니저 하면서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 봐.
'당분간 지유한테는 숨겨야겠다.'
일단, 수호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내용의 톡을 보냈다.
"으으, 태양빛 짜증나."
"...."
지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태양빛 카페에 자주 들러 댓글을 확인하는 듯했다.
"하여튼, 처음에 카페 만든 놈이 문제야."
"음.... 모르는 사람한테 놈은 좀 그렇지 않나?"
"개 같은 놈, 나한테 걸리기만 해봐. 죽여버릴 거야."
"....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오빤 누구 편이야?"
"누구 편이긴."
당연히 내 편이지.
* * *
<탑아이돌> 촬영을 마치고,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왔다.
당분간 팬미팅과 시상식 무대만 준비하면 되는데.
"다이애나는 어디 갔어?"
내 질문을 듣고, 예지가 냉큼 대답했다.
"녹음실에서 신곡 만들고 있어요."
".... 지금?"
"네! 시상식까지 신곡 준비하겠다고."
"보름도 안 남았는데."
"탑아이돌 마지막 무대 1등 놓쳐서 그렇대요."
"...."
연습 시간까지 생각하면 최소 사흘 안에 곡을 쓰겠다는 뜻인지.
보통 잘 나가는 프로듀서는 일주일에 한 곡씩 뽑아내긴 하지만.
"일단 팬미팅이 먼저니까. 그것만 생각하자."
"좋아요."
나머지 멤버들에게 다가오는 팬미팅의 일정을 전달했다.
"일단 나만 봐 편곡 버젼 무대로 시작할 거야."
"그리고요?"
"질의응답이랑...."
대부분 앨범 수백 장쯤 구매한 팬들이었다.
운이 나쁘면 아무리 많이 샀어도 꽝이라서.
"참가자 중에 일부는 1:1 팬미팅도 할 거야."
"개인당 30초씩이네요?"
"맞아. 그리고 게스트가 필요한데."
"흐음, 혹시 블래키 선배님은 어때요?"
"글쎄."
솔라 팬들이 남자 아이돌 게스트를 달가워할지 모르겠네.
뚜루루루─
일단, 스케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었다.
-디스 이스 블래키 히어. 와썹, 브로?
".... 벌써 끊고 싶다."
-와웅, 수호 동생이네!? 어쩐 일로?
"혹시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럼, 당연히 괜찮지. 스껄.
"아, 잘됐네. 그럼."
-그걸 믿었음? 쪠트킥!
"이런.... 수고요."
뚝.
계속 전화하면 열 받을 것 같아서 끊어버렸다.
내친김에 차단까지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개빡치네.'
그나마 친한 루나가 오히려 나을 수도.
사무실에서 상모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그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예지가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 매니저님."
"응?"
"다이애나가 지금 녹음실로 오래요."
"왜?"
"벌써 곡 완성했다고."
"...."
졸라 빠르네.
"비트는 이미 만들어 놓고 멜로디만 입힌 거예요."
"그럼 같이 가볼까."
"좋아요!"
곧장 멤버들과 함께 녹음실로 이동했다.
방음벽이 있지만, 미세한 음악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복도.
당장 다이애나가 있는 녹음실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잠깐만."
바로 옆 작업실에서 거슬리는 반주가 들려왔다.
뒤통수에서 스멀스멀 밀려드는 간지러운 감각.
"애들아, 먼저 가서 기다려."
"네?"
"나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아, 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옆 작업실에 노크를 두드렸다.
똑, 똑─
노크와 함께 내부에서 미성이 들려왔다.
"누구.... 정수호 매니저님?"
"류시아 씨."
루나의 리더는 다재다능하다고 들었는데.
노래, 춤, 작곡까지 혼자서 다 해먹는구나.
"어쩐 일이세요?"
"저기, 시아 씨, 기타연주 중이었어요?"
"아, 그, 네. 하하."
"그 노래.... 자작곡?"
"그게, 사실 서연정 대표님 생각하면서 쓴 건데."
"...."
정형화된 틀을 깨는 어쿠스틱 기타 멜로디.
간지러운 뒤통수를 긁으며 연주를 부탁했다.
"다시 한 번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싫어하는 타입의 음악이다.
날카로운 기타 반주 속에 흥얼거리는 콧노래.
어울리지 않는 두 음의 조화가 귀를 괴롭혔다.
"방금 일부러 불협화음 쌓은 거예요?"
"아뇨, 틀린 건데요."
"...."
내가 음악은 몰라도 듣는 귀는 있다니까.
취향이 조금 극단적으로 치우쳐서 그렇지.
"그 노래, 대표님 앨범에 넣어볼까요?"
"네에!?"
"제가 한번 추천해 드릴게요."
"저, 정말요?"
"네."
대중음악 작곡가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다이애나처럼 음악 이론을 바탕으로 반주와 비트를 까는 타입.
류시아처럼 노랫말과 가사를 흥얼거리며 멜로디는 쓰는 타입.
'둘 다 중요하지.'
닭과 달걀, 무엇이 먼저인지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공동 작곡이 대세가 되고 있는 현대 음악 시장이 아닌가.
"시아 씨, 저한테 음원 보내주세요."
"제, 제 곡이 그렇게 괜찮아요....?"
"어, 음. 그쵸."
솔직히 엄청 듣기 거슬리는데.
역배각은 날카롭게 섰으니까.
"제 음악을 인정해 주신 거잖아요. 다이애나처럼!"
".... 두 명 다 저한테는 비슷해요."
"와, 대박."
비슷하게 별로예요.
* * *
서연정 대표는 작곡가들과 함께 수호의 추천곡을 감상했다.
평소라면 듣고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음원인데.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곡이었다.
"다들 어때요?"
"대표님이랑 어울리는 곡입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연정의 음악 스타일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와 맞으면서도 수준 높은 곡을 찾기 어려웠다.
감미롭지만 귀에 꽂히는, 모순적인 음악만을 고집했으니.
"어디서 구했습니까?"
"글쎄요."
똑, 똑─
"지금 오네요."
곧이어, 정수호 매니저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와아, 역시 정수호 매니저님."
"믿고 맡길만했군요."
"전공자보다 낫네."
수호는 작곡가들의 칭찬에 민망한 듯 뒤통수를 매만졌다.
"제가 보내드린 음악 듣고 계셨네요."
"타이틀곡까지 생각 중이에요."
".... 아하."
당연히 예상한 듯 담담한 표정을 짓는 수호.
무려, 서연정의 정규 앨범 타이틀곡인데도.
'확신하는 거야.'
자신의 안목을 100% 신뢰하고 있으니.
덤덤하게 뒷목이나 긁적거리고 있겠지.
"이 노래를 류시아가 썼다고요?"
"네. 근데 편곡은 일단 다이애나한테 맡겼습니다."
"좋네죠."
데뷔한지 얼마 안 된 큐앤지 레이블의 보석 같은 소녀들.
그동안 회사의 '기둥'을 자처했던 1본부 입지를 위협했다.
'.... 재밌네.'
순식간에 대세로 떠오른 솔라는 물론이고.
최근에 좋은 성장세를 기록하는 루나까지.
두 팀을 반석에 올린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정수호 매니저."
"네, 대표님."
"앨범 작업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했지만, 아마 도움을 청할 것 같진 않았다.
보통 저렇게 FM 스타일은 돈에도 움직이지 않거든.
"아! 주말에 솔라 팬미팅이 있다면서요?"
"네. 대표님."
"게스트는 정해졌나요?"
"일단 루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한 명 추가하시죠."
"네?"
한국에서 손으로 꼽히는 여가수 중 한 명.
제트킥의 팬미팅 때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제가 직접 참여하죠."
"???"
주변 작곡가들은 눈을 치켜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 대표님께서 직접이요?"
"싫으면 말고요."
"아뇨.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서연정 대표의 편애로 보일 수도 있는 일.
"그럼 일정 조율해서 공 실장한테 보고해주세요."
"네. 대표님."
나비가 일으킨 가벼운 날갯짓이 가끔은 태풍이 되기도 한다.
* * *
옆 사무실 1본부 사람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팬미팅 게스트로 여왕님이 직접 오신다고 하니.
"정수호, 진짜 너는 미친놈이야."
박 팀장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혹시 칭찬인가요."
"특급 칭찬이지. 게스트로 루나만 생각했는데."
"저도요."
팀장님은 민머리를 문지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왕님이 게스트로 참여하신다니. 거의 주객전도 아니냐."
"나쁠 거 없죠."
"애들한테는 언제 말할래?"
"제가 지금 가서 말해주려고요."
"다들 얼어붙겠네."
서연정 대표님한테 예쁨 받으면 애들도 좋아할 테지.
당장 팬미팅 무대 때 실수할까 봐 맹연습에 들어갔다.
"저는 연습실에 가볼게요."
"그래."
곧장 연습실로 걸음을 옮겨 멤버들을 확인했는데.
"음, 이게 신곡인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위해 준비한 다이애나의 신곡.
일단, 고음 파트는 예지보단 소미가 어울릴 것 같은데.
'.... 불편하네.'
뒤통수가 살살 간지러운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요즘 연습한다는 반가성 창법은 아직 미완성이었으니.
"저기, 애들아."
"네?"
멤버들은 연습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우리 게스트 확정이다."
"루나?"
"어. 근데 한 명 더 있어."
".... 블래키 선배님?"
"아니."
그쪽은 거들떠도 안 보려고 해.
"서연정 대표님."
"???"
너무 뜻밖의 인물이라 멤버들은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졌다.
"맞아. 우리 여왕님."
"헐."
"가능해요?"
"가능하더라고."
"대박."
예지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입을 열었다.
"매니저님이 섭외하신 거예요?"
".... 그런 셈이지?"
"와아."
사실은 본인이 직접 섭외당하셨어.
"정말 이제는 대표님께서도 인정하는 거네요!?"
"그래, 이제 솔...."
"정수호 매니저님을요!"
"...."
나 말고 너희 팬미팅이야.
띠리리링─
그때, 스마트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튼 연습 열심히 해. 무대에서 실수하지 말고."
"네에!"
나는 곧장 연습실을 벗어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정수호 매니저입니다."
-감 본부장이야.
"아.... 네."
우리 본부장이 아닌, 1본부 감석태 본부장님.
이전, 매니지먼트 4팀을 해체한 권 상무 라인.
처음부터 악연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 아닐까.
-정수호 매니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무슨 말씀을....?"
-매니지먼트를 옮기는 게 어떻겠나?
"...."
당연히 1본부 아티스트를 케어하라는 뜻이겠지.
뒤통수가 가렵진 않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후회하지 않겠어?
"네."
-두고 보겠네.
드림 에이전시에 있는 빽이 든든해서 그런가.
상대방의 음성에서 묘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 * *
며칠 뒤.
나는 멤버들과 함께 팬미팅 장소로 향했다.
'감석태 본부장, 계속 신경 쓰이네.'
아직까진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시한폭탄처럼 거슬리는 상대였다.
아, 뒤통수 간지럽다.
"매니저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응? 아무것도."
예지는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표정이 엄청 심각해 보이세요."
"티가 많이 나?"
"네."
예지는 항상 내 기분을 확인했다.
매니저로서 결격 사유가 아닐까.
"내가 좀 미안하다."
"아뇨. 괜찮아요."
"...."
예지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완벽주의 성격 때문에 그러세요."
"내가?"
"신곡이 마음에 안 드시잖아요. 제 창법이랑."
"...."
그거 때문 아니야.
"일단 오늘 팬미팅만 집중하자."
"네에!"
오늘 대표님도 게스트로 참여하시는데.
멤버들이 잘하는 모습 보여 드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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