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31화 (31/200)

[31] 무대 체질(3)

서울의 한 아트홀, 팬미팅 장소.

나는 조유미 코디님께 솔라를 맡기고 대표님을 기다렸다.

잠시 후, 공세원 실장님이 모는 세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연정 대표님, 오셨습니까?"

"먼저 오셨네요."

"그럼요. 대표님."

나이가 들어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 품격.

역시 우리 여왕님께선 천상 연예인이었다.

"오늘 멤버들 무대, 기대하고 볼게요."

"...."

게스트로 오신 건 감사한대 왜 부담이 되지.

공 실장님께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움직였다.

"아니, 근데 엄지유는 어디 갔냐."

뚜루루루─

첫 번째 팬미팅.

당장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거늘.

-오빠, 지금 좀 바쁜데.

"뭐 하길래."

-박 팀장님이 시킨 일 하고 있지. 지금 MC 대기실에 가 봐.

"아, 그래?"

전화를 끊고, 복도 끝에 있는 MC 대기실을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솔라의 쇼케이스를 맡았었던 프리랜서 진행자.

아나운서 출신 MC 전성수와 인사를 나누었다.

"와, 데뷔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랑 위상이 다르네요."

"애들 많이 컸죠."

"전부 매니저님이 키웠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아이고, 방송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죠."

"...."

내가 키웠다고 하기에는 좀 민망하네.

그냥 역배각 몇 번쯤 잡은 게 전부라서.

"매니저님, 오늘 몰카 이벤트요. 박 팀장님께서 컨펌하셨는데."

"아, 몰카요. 들었어요."

"원래 팬미팅에서는 다들 하는 거예요."

".... 그래요?"

이내, MC는 작은 카메라를 설치한 화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금 여기 라이브로 팬들이 보고 듣고 있어요."

"그건 몰랐는데."

"지금 팬미팅 참석한 팬분들이에요."

"음...."

어쩐지, 아까부터 팬들이 왜 이렇게 조용한가 했네.

나도 걸그룹 팬미팅은 처음이라.

배우 팬미팅은 몇 번 준비했는데.

"팬들이 무대 끝날 때까지 호응 없다가 마지막에 환호하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아이돌 팬미팅 경험은 없어도 대충 느낌은 알 것 같았다.

이런 게 다 기록으로 남고 너튜브에 박제되는 거 아닌가.

"일단 매니저님이 조금 동참해주셔야 해요."

"그럼요."

"지금 엄지유 매니저가 멤버들을 데리고 오고 있거든요."

"이쪽으로요?"

MC는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계획을 설명했다.

"제가 신호 보내면, 매니저님은 솔라 멤버들 실력을 의심했다고 연기해 주셔야 해요."

"연기.... 요?"

"연습생 때 실력이 형편없어서 실망했다고 거짓말해 주시면 됩니다."

"...."

그건 거짓말이 아닌데?

진짜 형편이 없었는데?

"그리고 사실 몰카였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거죠!"

"아, 예."

이거 혹시 내 몰카 아닌가.

팬들한테 칼 맞는 엔딩이냐.

"그다음, 탑아이돌 촬영하면서 많이 컸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시면 돼요."

"...."

솔직하게 말하면 팬들한테 뒤져요.

아직도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고.

'매니저님, 지금!'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MC가 연기를 시작했다.

"에고, 매니저님이 실망이 크셨나 보네요."

"아, 예. 처음엔 그랬죠."

"예지가 고음이 안 되는 게 그렇게 거슬리셨어요?"

".... 당연하죠."

진심이에요.

"다이애나 노래도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신다고...."

"제 취향은 아니라서요."

"어후, 그거 고역이죠. 듣기 싫은 음악 듣는 거요."

"그렇죠."

MC는 잘하고 있다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혹시 처음부터 루나를 맡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지금은 아니고, 처음에는 그랬죠."

"진심으로?"

"진심이에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저 지금 진짜 진지해요."

"???"

* * *

지유는 수호의 연기를 보고 감탄했다.

배우 매니저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누가 보면 정말로 속마음을 터놓고 말하는 줄 알겠네.

"와, 수호 오빠 너무해."

"...."

함께 온 솔라 멤버들은 충격을 받는 듯 얼어붙었다.

무신경한 양주희를 제외한 멤버들은 다들 비슷했다

"예지 언니, 괜찮아?"

"아, 으응."

특히, 예지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슬픈 눈으로 수호를 바라봤으니.

당장 팬미팅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데.

주요 멤버들이 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언니, 그냥 과거에 그러셨다는 거잖아."

"루나를 맡고 싶다고 하시는데?"

눈물이라도 흘릴 듯 눈가가 촉촉한 예지.

대기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고는 은서.

".... 갑자기 화가 나."

"참아. 좀."

아주 흔한 팬미팅 이벤트라 눈치챌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매니저의 인정을 못 받았다고 이렇게나 충격을 받을 줄이야.

'.... 효과가 크네.'

그때, MC 대기실에서 다시 대화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오늘 무대를 보고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죠."

"오, 그래요?"

"그럼요. 예지가 새로운 창법 연습 열심히 했거든요."

"기대해 봐야겠네요."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순간, 예지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얘들아, 가자."

"응. 언니."

독기를 품고 대기실에서 멀어지는 예지와 멤버들.

그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의 기세였다.

'살벌하네.'

오히려 몸매가 장군인 사람은 이쪽이 최고지.

주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뒤따랐다.

"지유야."

"네. 언니."

"오늘 매니저 형님이 좀 너무한 것 같아."

"아, 그쵸?"

역시 아닌 척해도 주희 언니는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래도 같은 멤버인데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겠지.

"연습실에서 프로틴이 없어졌더라고."

"네?"

".... 분명히 매니저 형님이 가져갔어. 진짜 너무해."

"아."

그녀에게 헬창의 삶은 무엇일까.

이해하려고 한 자신의 잘못이다.

"제가 다시 구해올게요."

"오오, 진짜!?"

"네."

"사랑해."

"...."

사랑받기 이렇게 쉬운 거였구나.

주희 언니 미래의 남편은 좋겠다.

"언니 먼저 무대 준비하러 가주세요."

"그래. 이따 봐."

"네에!"

오늘 팬미팅 때 보기로 한 태양빛 회장은 언제 오는 건지.

'에이, 전화도 안 받고...'

다시 멤버들을 챙기러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때, 저쪽 멀리서 지나치는 남자를 발견했다.

".... 오빠?"

우리 엄마 아들이 왜 여기서 나와.

금방 사라져서 확신할 순 없지만.

"흐음, 말도 안 돼."

당연히 내가 뭘 잘 못 본 거겠지.

여기 스탭들만 들어올 수 있잖아.

* * *

서연정 대표는 귀여운 장난에 미소를 지었다.

솔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혼자 생각했다.

'몰카가 뭐야, 유치해.'

유치한데 부럽다.

마지막으로 팬들이 이벤트를 해준 게 언제더라.

나한테도 저런 거 좀 해주면 당장 속아줄 텐데.

"공세원 실장."

"네. 대표님."

"너무 유치하지 않아?"

"아, 몰카요."

"너무 유치해. 너무."

너무 부러워서 미칠 것 같아.

"취소할까요?"

"됐어. 내 팬미팅은 언제 잡혀 있나?"

"아직 일정은 없습니다."

"...."

눈치 없는 것.

"요즘 감석태 본부장님이 정수호 매니저를 눈독 들이더라고."

"아, 안 됩니다. 저희 팀 보물이에요."

"그냥 그렇다고."

"...."

솔라에 더 경력 있는 매니저를 붙이자는 의견.

그동안 감 본부장에게 딱히 유감은 없었는데.

'조금.... 선 넘었지.'

회사 내에서 알력다툼은 적당히.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만.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고.'

스크린은 정수호의 거짓말 연기에 이어 솔라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솔라의 성장 과정.

꼬꼬마 연습생 시절.

화려한 쇼케이스 데뷔.

<탑아이돌> 제작발표회 때 기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모습까지.

"솔라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네."

"동감입니다."

"사실, 정수호 매니저도 틀린 말은 안 했어."

"네?"

"메인보컬이 고음도 안 되니까."

"...."

현재 솔라의 가장 큰 문제는 메인보컬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감성 보컬.

한계를 측정할 수 없는 맑은 음색.

거기에 고음 불가라는 단점만 해결하면 결점이 없을 텐데.

'예지가 약점을 극복한다면....'

그때, 불이 꺼지면서 조명이 무대를 비추었다.

<나만 봐>의 편곡 버젼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기대해, 새로운 Generation.

서연정은 낯선 음성을 듣고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걸 예지가....!?'

새로운 창법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메인보컬.

반가성으로 부르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

팬들도 처음 보는 솔라의 무대에 바짝 긴장했다.

몰카로 노래하는 동안 반응하지 않아야 했는데.

"와아...."

팬들도 깜짝 놀라서 입을 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고음을 부르는 예지는 매력적이었다.

'예지가 무대 체질이었구나.'

트레이너도 고개를 저은 치명적인 문제점.

어쩌면 심리적인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수호 매니저.'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김예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공세원 실장."

"네. 대표님."

"앞으로 새벽에 예지 트레이닝 스케줄 1시간씩 잡아."

"네? 지금도 바쁠...."

서 대표는 상대의 말을 끊고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예지를 가르쳐보려고."

"대, 대표님께서 직접이요?"

"왜 그렇게 놀라."

오늘 예지의 열정과 수호의 리더십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솔라의 리더이자 메인보컬, 중심 멤버인 예지.

그녀의 정신적 지주는.... 정수호 매니저였다.

아무 매니저나 붙인다고 솔라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시상식 무대에 선다고 했지?"

"아, 네. 백상연예대상입니다."

"기대되네."

단점을 극복한 실력파 걸그룹.

완벽한 밸런스로 무장한 솔라.

고음 문제를 해결한 솔라의 포텐이 어느 정도일까.

* * *

뭐지, 어떻게 고쳤냐.

고음 불가 아니었나.

'....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고음부 음정이 좀 흔들리네.

아직 완성형 보컬은 멀었어.

"오빠, 나 눈물 날 것 같아."

"울어?"

지유는 내 옆에서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언니가 고음을 내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러게."

아직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인데.

내 뒤통수가 간지러운 걸 보면.

".... 잘 됐네."

"그니까!"

마침, <나만 봐> 무대를 마치고 팬들은 참아왔던 환호성을 질렀다.

"진짜 잘했다."

"음."

개인적으로 무대 완성도는 원곡이 나았다.

억지로 고음을 짜내려고 음정이 흔들렸어.

'나만 쓰레기냐.'

개인적인 생각과 달리 입으로는 칭찬을 뱉었다.

"열심히 노력했네."

마침, MC는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몰카 사실을 밝혔다.

"멤버분들, 다들 알고 계셨나요?"

"공연할 때 팬분들이 일부러 움찔움찔할 때 알았어요."

"모르는 척하기 힘들었어요."

"팬미팅 고전 몰카죠. 30년 전부터 있었던."

".... 나만 몰랐다고?"

예지는 혼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으앙, 몰카라서 다행이야아....!"

곧이어, 예지는 안도의 눈물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매니저님이 실망했다고 한 것도 몰카였어요. 하하."

"하하하하."

원래 몰카는 속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맛이 난다.

팬들은 예지의 귀여운 반응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하하.... 하."

나는 팬들을 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한데 나는 몰카 아니고 찐이라서.

예지는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이제 몰카 같은 거 하지 마요오."

"하하. 예지 씨, 팬들이 노래할 때 호응 안 해주셔서 슬펐구나."

"아니이. 그거 말고."

'울지 마'를 외치며 예지를 달래는 팬들.

덕분에 팬미팅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또각, 또각─

곧이어, 서연정 대표님이 게스트 입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여러분, 우리 솔라 멤버들 사랑스럽죠?"

"네에에에─!!!"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의 등장.

여왕님은 직접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그럼 이제부터 게스트와 함께하는 무대를 즐겨보실까요?"

"와아아아아─!!!"

"루나도 무대에 오를 테니까 많이 기대해주세요!"

"우호호호오─!!!"

이게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 맞나.

서 대표님은 매끄러운 진행과 함께 다시 무대를 시작했다.

팬들에게 잊기 힘든 특별한 시간이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

.

.

.

.

어느덧 마지막 단계로 접어든 팬미팅.

각자 30초씩 멤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이벤트.

제비뽑기에 당첨된 운이 좋은 팬들은 쾌재를 불렀다.

"수호 오빠."

"응?"

그때, 옆에서 지유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나 아까 우리 오빠 봤어."

"누구, 엄재하?"

"응. 그것도 대기실 쪽에서."

"...."

내가 아까 팬카페 문제로 잠깐 불렀는데.

동생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을 하더라.

"잘못 봤겠지."

"그치?"

"당연하지."

마침, 팬들은 최근에 공개한 소주 광고를 시청했다.

주로 예지와 은서가 건배를 하고 소주를 마셨는데.

흔한 술집 풍경에서 친근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제부터 이슬만 먹을게요!!!"

"제 꿈은 알콜 중독자예요!!"

"눈나 나 주거!!!"

한 팬은 미친놈처럼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오빠, 저 쉑 죽일까? 죽여달라는데."

".... 참아. 지유야."

"역시, 저쪽도 태양빛이네."

"...."

얘는 태양빛 회원들만 보면.

무슨 원수를 만난 사람처럼.

'지 오빠가 회장인 줄도 모르고.'

곧이어, 팬들과의 1:1 미팅 순서가 이어졌다.

드디어 팬미팅도 정말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지유야, 무대 올라가자."

"응."

30초 동안 손도 마주 대고, 인사를 나누는 시간.

어렵지 않은 부탁은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지만.

"너무 심하다 싶으면 우리가 제지해야 해."

"알겠어."

지유와 함께 무대 위로 올라가려고 하던 찰나.

지이이잉─

순간,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끼고 전화를 확인했다.

"여보세요. 제가 지금은...."

-JTBS 드라마제작국 유명한 감독입니다.

"아, 설마...."

JTBS 「재벌가 시집가기」의 유명한 감독님.

곧, 수화기 너머에서 합격 통보가 떨어졌다.

-합격 축하합니다. 오디션 때 은서 씨 연기를 정말 좋게 봤거든요.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네요.

"네?"

이어지는 감독님의 말에 뒤통수가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은서 씨가 수영부였다는 설정이 추가됐어요.

"아.... 수영."

우리 은서, 수영 못하는데요.

-그렇다고 전문가 수준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하하.

"아, 그럼 열심히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네요. 자주 연락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뚝.

전화를 끊고, 뒷목을 긁적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팬한테 화를 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싸운꾼에게.

"저기, 은서야."

아, 얘한테 뭐라고 말하냐.

"아오, 매니저님! 방금 팬이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

"장 폭스래요! 여우 닮았다고!"

"조금 닮긴 했지."

"뭐요?"

근데 보통 여우는 수영을 잘 하지 않나.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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