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오해받는 연예계 생활-29화 (29/200)

[29] 무대 체질(1)

<탑아이돌> 마지막 무대 촬영일.

이수연은 매니저와 함께 엔넷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오늘 촬영만 끝나면 스테이지 촬영은 전부 종료였다.

"수연아, 진짜 고생했어."

"고생은."

인기 프로그램 MC로서 혜택은 전부 누렸다.

고작 몇 달 사이에 몸값이 두 배는 뛰었으니.

"저기, 실장님이 물어보시던데."

"뭐를?"

"진짜 SBC 버리고 재벌가 시집가기로 가려고?"

"...."

조건이든 환경이든, 무엇하나 비교할 수가 없었다.

장르도 더이상 흔한 로맨스물은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성공작은 몇 개 없어."

"에이, 그래도."

현재로선 연기로 호평받는 작품보다 히트작이 절실했다.

얼마 전에 장은서가 JTBS 방송국에서 오디션을 봤다던데.

'은서는 불으려나.'

너무 궁금해서 미팅 때 슬쩍 떠봐야겠다.

유명 아이돌이 공개 오디션에 나가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만큼 회사와 멤버들이 정수호 매니저를 신뢰한다는 의미인가.

"오빠는 혹시 나를 믿어?"

"아니."

".... 싸울래?"

"항복."

장난으로라도 믿는다고 좀 해주지.

"수연아, 사실 나 오늘 아침에 권 상무님한테 불려 갔어."

"그래? 왜?"

"나한테 SBC 법정물을 왜 걷어차 버렸냐고 중저음으로...."

"쫄았네. 오빠는 너무 쫄보야."

"으아, 매니지먼트 4팀도 그분이 날려버렸다는 소문이 있다고."

".... 그건."

명분이 있었잖아.

"아무튼, 개런티 좀 낮춰도 JTBS 드라마 들어갈래."

"알겠어."

이내, 수연은 스마트폰을 꺼내 너튜브를 접속했다.

어젯밤에 예고도 없이 올라온 영상이 화제였으니.

「피노키오 스튜디오 : 나의 이중생활 Teaser」

예지가 단독 주인공으로 출연한 웹드라마 티저 영상.

스탭 명단 윗줄에 적힌 각본가의 이름값은 대단했다.

댓글 반응만 확인해 봐도 알 수 있었으니.

-김고은 작가? 그 다 죽는 드라마 쓴 사람이네

ㄴ막장 드라마 찍는 예지라니 이건 봐야지

ㄴ솔까 ㄹㅇ 기대된다 ㅋㅋㅋㅋ

ㄴ예지야 사랑해

ㄴ언니 너무 좋아(덜렁) ㅠㅠ

ㄴ아 ㅋㅋㅋㅋ

-티저 느낌 좋다 ㅎㅎ

ㄴ저렇게 예쁜데 찐따가 말이 됨?

ㄴ빼앗긴 아싸.... 야발 ㅠㅠ

ㄴ찐따까지 가져가지 마라. 나 지금 진지하다 ㅡㅡ

ㄴ분장해도 존예임 ㅋㅋㅋ

-(속보) 예지 탑아이돌 마지막 무대 안 선다고 함

ㄴ탑아이돌 하차하고 웹드라마? 개쩌네 ㄷㄷ

ㄴ저번 무대에서 보여줄 거 다 보여줌

ㄴ장은서도 빠진다던데

ㄴ이거 3인큐 가능허냐?

ㄴ우승은 못할듯

아직 티저 영상이라 많은 정보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김고은 작가님....'

한때, 김 작가님 눈에 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예지는 데뷔하자마자 친분을 쌓고 작품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본을 보자마자 누구 작품인지 한눈에 알아본 사람.

'정수호.'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으로 또 속아볼 마음이었다.

그의 안목을 믿어서 다시 후회해도 뼈 아프겠지만.

JTBS 드라마를 거들떠도 안 봤는데 대박이 난다면.

'그땐 진짜 열불이 날 것 같아.'

그 와중에 SBC 「국제변호사 김씨」에 들어가서 망하면?

"진짜 은퇴각 잡을 수도 있어."

"응?"

"오빠, 언제 도착해?"

"거의 도착했어."

수연은 <탑아이돌> 마지막 대본을 챙겼다.

* * *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아이돌>.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한 방송이 스노우볼처럼 굴러갔다.

솔라는 데뷔한 직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드르륵─

이내, 준비를 마친 멤버들이 대기실에 입장했다.

"얘들아, 준비는 끝났니?"

화려한 무대 화장으로 치장한 세 명의 멤버.

그 옆에서 혼자 궁시렁거리는 피처링 멤버.

"블래키 후배님, 빨리 들어가요."

"우리 솔라는 선배에 대한 존경이 없어요. 스껄."

"주희랑 팔씨름해서 지면 후배 한다면서요."

"그야.... 내가 그랬지."

아이돌은 보통 운동을 빡시게 하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팔씨름을 지냐.

"주희한테 팔씨름 졌어요?"

".... 진 건 아니고."

"그럼?"

"봐준 거지."

아닌 것 같지만, 그냥 그렇다고 하자.

"블랙 후배님, 오늘 피처링 무대 잘할 수 있죠?"

"블랙 아니고 브래키. 스껄!"

"아, 예."

처음엔 마냥 빙신인 줄 알았는데 성격 하나는 유쾌했다.

오늘도 팬티를 한껏 올려 입어서 꼴 보기 싫기는 했지만.

"자, 이제 다음이 우리 차례야."

"얘들아 준비하자."

당장 멤버들을 무대 뒤쪽까지 배웅하고 다시 객석으로 이동했다.

곧바로 나를 반겨주는 예지와 은서.

두 사람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매니저님, 오늘 무대는 잘할 수 있을까요?"

".... 당연하지."

솔직히 이번 무대는 나보다 공 실장님이 주로 담당했다.

선곡도 내가 한 게 아니었고, 다이애나 자작곡이었으니.

"아마 잘할 거야."

"그래도 제가 리더니까, 그냥 드라마 촬영이랑 같이 준비할 걸 그랬어요"

"아니야, 불가능해."

아무래도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예지야, 티저 영상 봤어?"

"아, 네!"

"반응 좋더라."

"저도 댓글 다 읽어봤어요!"

".... 몇천 개를 전부?"

"네! 지금도 계속 댓글 늘어나서 오늘 밤에도 보려구요."

"...."

우리 예지, 잠도 줄여가면서 댓글 보는구나.

그냥 무대 준비했어도 됐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솔라는 이번 무대까지만 걸크러쉬 힙합이야."

"엥? 아예 걸크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

이제는 멤버 본인도 헷갈릴 지경이냐.

댓글로는 걸크러쉬도 좋다고 했겠지.

"너희 청순 걸그룹이야."

"아하."

".... 니가 리더야."

"그럼요!"

아직 주요 팬층은 남자 팬이 압도적이었다.

최근에 걸크러쉬로 여팬 유입이 있었지만.

"와아아아아아─"

그때, 뒷라인 객석에서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유가 벼르고 있던데.'

사설 팬카페, <태양빛> 플래카드를 흔드는 열성팬들.

유료 회원만 구매할 수 있는 응원봉을 마구 흔들었다.

즉, 공식 팬카페도 함께 가입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아, 이제 시작하네요."

"그러게."

오래 기다린 끝에, 솔라 멤버들의 순서가 다가왔다.

이전 우승팀답게 화려한 조명이 스테이지를 비췄다.

-Anna with D.

은근히 중독성 있는 시그니쳐 사운드와 함께 등장하는 소녀들.

다이애나는 거친 래핑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주희의 절도 있는 댄스와 소미의 고음 파트.

중간에 등장한 블래키 피처링에서 무대 분위기는 절정을 찍었다.

'소미가 고음을 쭉쭉 올리네.'

저렇게 잘하는데 왜 매번 실력이 안 늘지.

그냥 딱 주어진 숙제만 처리하는 느낌이야.

'.... 무대 괜찮은데?'

내 취향은 아니라도 완성도는 상당했다.

다행히 뒤통수가 간지럽지는 않았지만.

"음, 이러면 안 되는데."

"왜요? 잘하고 있잖아요."

"...."

뒤통수가 반응하지 않는 무대.

나쁘지는 않지만 평범한 무대.

'우승은 어렵겠네.'

내가 좀 더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뒤통수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 수정할 걸 그랬네.

"매니저님은 역시...."

"응?"

옆에서 예지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무조건 1등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으시네요."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지금도 잘하고 있어."

"아뇨. 고음 낼 수 있도록 창법 개발하고 있어요."

"그러다 목 다친다."

"괜찮아요."

예지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쳐도 연습해야죠. 그래야 인정해 주실 텔데."

"...."

나를 얼마나 쓰레기로 보는 거야.

"지금도 잘하고 있어. 진짜로."

".... 네."

이윽고, 솔라의 막내 라인 삼인방은 무대를 마쳤다.

관객들은 내려오는 멤버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와아아아아─!!!"

"휘이이익─!!"

오히려 이전 무대보다 더 큰 환호를 보내는 듯했다.

'완전 잘했네.'

이 정도면 진짜 최선을 다한 거야.

"매니저님, 표정이 굳으셨어요."

"내가 그랬어?"

".... 만족 못하시는구나."

아니라니까. 만족했다고.

* * *

처음으로 1등을 빼앗겼다.

사실은 처음부터 예정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메인보컬을 포함한 두 명의 멤버가 빠졌으니.

"으으, 분하다."

"2등도 잘했어."

"그래도."

다이애나는 강한 승부욕을 드러내며 무대를 바라봤다.

'아이솔레이션.'

원래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는데.

항상 솔라에게 밀려 2, 3등에 그쳤다.

'왜 이렇게 분하지.'

하필이면 마지막 무대에서 패배했기 때문일까.

"오우야, 우리 2등 개꿀. 스껄."

".... 선배님."

"엉?"

제트킥의 멤버, 블래키는 불안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우리가 졌잖아요."

".... 다른 6개 팀은 이겼는데."

"선배!!!"

"그러네. 우리가 졌나. 아우, 아까버라. 스컬."

"스컬은 무슨."

해골바가지 뚝배기 깨버릴까 보다.

잠시 후,

마지막 인터뷰 촬영으로 이어지는 일정.

머지않아 다이애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다이애나 씨, 그동안 수고하셨는데.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정말 좋은 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할게요."

가벼운 인터뷰를 마치고, 대기실로 움직이려는 찰나.

누군가 멀리서 솔라를 부르며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오, 솔라 후배님들?"

오늘의 우승팀인 아이솔레이션 리더.

나수린이 솔라 삼인방에게 접근했다.

"오늘 무대 좋았어."

".... 언제 말 놨더라."

"이 정도면 우리 친하잖아. 호호."

"...."

한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한 나수린.

이전의 설욕을 했다고 생각했을까.

"저번 무대는 주희한테 꿀밤 맞아서 정신이 없었지 뭐야?"

"그것 때문에 졌다고요?"

"당연하지. 우리가 아이솔레이션인데."

"흐음."

순간, 양주희는 손을 휙 들어 수린의 어깨를 짚었다.

"으아악! 뭐, 뭐야!"

"선배님, 여기 먼지 묻었어요."

".... 안 쫄았어."

"네."

주희는 피식 웃으며 멤버들을 챙겼다.

"어서 가자. 매니저님 기다릴라."

"으응."

다이애나는 주희의 뒤를 따르며 눈빛을 번뜩였다.

당장 보름 뒤에 열리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수상 후보는 아니지만,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아이솔레이션이 1부 오프닝 무대에 선다고 했나.'

2부 무대에서 실력을 격차를 보여줘야겠네.

그리고, 앞으로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겠지.

'선배도 선배 나름이지.'

순간, 주희는 자신을 보고 입을 열었다.

"에고, 우리 순진한 넷째."

"응? 내가?"

"시비 걸어도 소심해서 한마디도 못하고."

"에이, 아냐. 그런 거."

"괜찮아. 누가 괴롭히면 언니한테 말해. 혼내줄게."

"진짜 그런 거 아닌데."

"어서 가자."

사실은 아까 욕 나올뻔했다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참았지.

'.... 아갈머리 찢어버려.'

역시 한국말은 K-드라마로 배우는 게 최고였다.

* * *

멤버들을 숙소에 무사히 데려다 주고,

나는 지유와 함께 사무실에서 스케줄을 정리했다.

일단, 개인적으로 여왕님 앨범 작업도 도와야 하고.

"시상식 무대 준비가 중요하지."

"팬미팅도."

그리고 예지 웹드라마랑 은서 오디션 결과에 따라.

둘이서 촬영장에 번갈아가며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아, 소미 예능도 꽂아준다고 했는데."

"그건 내가 알아볼게."

"그럴래?"

매니저가 괜히 극한 직업이 아니야.

일을 정리해도 끝이 없이 밀려들어.

톡, 토톡─

그때, 지유는 인터넷을 검색하며 내게 말을 건넸다.

"오빠, 인터넷 투표 봤어? 솔라가 1등이야."

"당연히 봤지."

엔넷 방송국 홈페이지에서 시행한 온라인 투표.

두 무대에서 1등을 차지한 솔라가 압도적이었다.

"아이솔레이션은.... 4등이네."

"너무 승부욕만 강한 이미지라서."

"원래 이미지 좋았는데."

<탑아이돌> 출연 전에도 1티어였잖아.

오히려 출연해서 손해 봤네. 왜 그랬대.

"아마 오늘 마지막 무대에서 1등하는 거 나가도...."

"뭐, 됐고."

당장 팬미팅도 다가오니 팬카페 정리가 시급했다.

"그래도 공식 팬카페는 관리하기 편해."

"태양빛이 문제지."

"응. 어떡하냐."

심지어, 양쪽 팬클럽에 다 가입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저쪽은 팬매니저 혼자 관리가 안 될 정도라서.

"내가 한번 방법을 찾아볼게."

"알겠어."

"이제 슬슬 퇴근할까."

"응"

팬카페를 대신 관리해 줄 사람을 어디서 찾나.

띠리리링─

그때, 스마트폰에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 엄재하. 오랜만이네?"

-형님, 술 한잔 허실?

지유는 내 말을 듣자마자 벌레를 발견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지유랑 싸웠냐."

-어, 자주 싸워. 옆에 있어?

"응."

-그럼 꺼지라고 전해줘.

"...."

한동안 안 그러더니 또 싸우네.

오랜만에 재하랑 한잔해야겠다.

잠시 후,

집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치킨집.

약속 시각에 맞춰 재하가 나타났다.

"형님!"

나는 오랜만에 보는 동생의 복장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 재하야."

"형님, 오랜만이야!"

"니가 솔라 티셔츠를 왜 입고 있어."

"이거?"

다섯 멤버들의 사진을 프린팅 한 얇은 티셔츠.

당연히 공식 팬카페 회원만 구매할 수 있었다.

"당연히 샀으니까 입었지. 오늘 무대도 갔는데?"

"왔었다고?"

잠깐만, 오늘 대부분 태양빛에서 왔잖아.

"너 사설 팬카페 회원이었냐?"

"에이, 회원은 아니지."

"그치?"

"당연하지. 나를 뭐로 보고."

"...."

재하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회장이지."

"병신아."

문득, 솔라 초창기 때 재하가 팬카페를 만들었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와, 어이가 없네.'

엄재하가 건넨 화면 속의 팬카페.

태양빛 카페지기가 여기 있었구나.

"이 쉑, 왜 말 안 했어."

"안 물어봤잖아."

".... 그건."

요즘 바빠서 못 만났는데 별짓을 다 하고 있었네.

"이거 해체할 수 있겠냐?"

"단톡방이 있어서 해체하면 당장 새로 만들걸?"

"...."

엄지유가 벼르고 있다던데.

카페지기 참교육할 거라고.

"잘됐네. 팬 관리 맡길 사람 찾았다."

"응?"

사생이나, 악플이나, 직원 번호를 알아낸다든지.

가끔은 불법적인 활동을 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회원들 관리 좀 잘하자."

본인 여동생한테 고소당하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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