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서바이벌(5)
리허설에 이어서, 본선 무대를 마치고.
엄지유는 대기실 모니터를 통해 솔라의 무대를 감상했다.
"수호 오빠, 우리 언니들 완전 멋있어!"
".... 한 명은 너보다 동생이야."
"아무튼!"
모니터를 뚫고 전해지는 스테이지의 생생한 열기.
최선을 다한 솔라를 보면서 뿌듯한 마음이 앞섰다.
그중, 무대를 마친 김예지와 장은서의 비주얼은 가히 빛이 났다.
서바이벌 특성상, 비주얼과 실력의 결합은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킬 터.
당연히 이런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아이솔레이션을 선택한 게 아닐까.
"수호 오빠, 역시 다 계획이 있었구나?"
"응?"
결국, 무대 위에서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증명한 셈이다.
'옆에서 보니까 천재 맞네.'
지유는 완벽에 가까운 솔라의 무대를 감상하고 승리를 확신했다.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수호 오빠도 생각이 같은 듯했다.
"이번 승부, 오빠도 나랑 같은 생각이지?"
".... 아마도."
서로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입을 여는 두 사람.
"이긴 것 같...."
"조진 것 같...."
그 순간, 두 명은 MC 이수연을 보자마자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자, 지금 바로 관객 투표를 종료합니다.
마침내 다가온 결과 발표 시간.
MC는 당장 첫 번째 경쟁 팀들을 무대 위로 불렀다.
분량을 위해 질질 끄는 건 편집으로 알아서 할 테니.
"와, 드디어 결과 발표!"
"으으, 떨린다."
모든 관객이 매긴 점수를 머릿수로 나눠 평균점을 구하는 방식.
사실상, 객석 반응 외에는 예측할 방법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첫 번째 결과는 당연히...."
"루나가 지겠네."
"응? 비걸즈한테?"
"어."
뒷목을 긁적거리며 덤덤하게 말하는 정수호.
현장 반응은 루나가 훨씬 더 뜨겁지 않았나.
"무슨 근거로?"
"촉이 왔어."
잠시 후,
MC는 수호의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마치 거짓말처럼 루나가 근소한 차이로 패배를 맛봤으니.
'.... 우연인가?'
하지만, 우연은 두 번 반복할 수 없는 법.
수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음 결과도 정확히 예측했다.
'이변'이라고 불릴 법한 결과를 1초 고민도 없이 뱉어냈다.
"오빠, 이건 또 어떻게 알았어?"
"촉이 왔어."
"아니, 뭔 촉인데. 그거 나도 줘."
"가져가."
심지어, MC 옆에서 평가하던 프로듀서도 깜짝 놀란 결과.
무슨 촉이 왔길래 두 번 연속으로 승리를 예측할 수 있지.
"다음은 핑크레몬이 이기겠네."
"뭐어!?"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선택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견의 여지가 없이 국뽕돌의 압승을 예상했으니.
"오빠, 여기 대기실도 카메라 돌아가고 있다고."
"어, 나도 알아."
"이거 편집 없이 방송 나가면 케이돌스 팬분들이 욕할지도 몰라."
"그런가."
삐비비비빅─
마침, 전광판에 양 팀의 스코어가 오르내리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삐빅─!
뭐지, 이게 말이 되나.
[케이돌스 51 vs 핑크레몬 52]
제작진은 물론, 직접 투표한 팬들조차 믿기 어려운 결과.
점수 차를 보자마자 객석에서 묘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걸 또 맞힌다고!?'
엄지유는 수호의 엄청난 안목 앞에서 거대한 벽을 느꼈다.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려운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다니.
그것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오빠, 혹시 힘숨찐이야?"
"뭐래."
"이걸 대체 어떻게 맞힌 거야?"
"촉이 왔어."
".... 또?"
그놈의 촉은 몇 번씩 오는 건데.
배우에서 아이돌 매니저로 전향하니까 포텐이 폭발했네.
요즘 바쁜 와중에도 매일 시장을 분석하고 연구한다더만.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피디님이 방송 보면 엄청 놀라시겠네."
"왜?"
"역배를 다 맞혔으니까!"
"별거 아냐."
이변에 이변을 거듭하는 오늘의 대진 결과.
오늘의 마지막 경쟁, 두 팀만이 남아있었다.
"그럼 아이솔레이션이랑 솔라는?"
"음."
이내, 카메라는 솔라와 아이솔레이션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비추었다.
'솔라의 승리는 확실한 분위기고....'
무대의 차이는 명백했으니까.
승패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대충 몇 점 차이로 이길 것 같아?"
"글쎄. 한 10점?"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점수 차이로 압승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솔라가 10점 차이로....'
* * *
솔라가 질 것 같으니까.
그래서 이길 줄 알았지.
나는 대기실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결과 화면을 확인했다.
[아이솔레이션 75 vs 솔라 85]
진짜 이겼네. 어케 했누.
"도랐, 어떻게 스코어 차이까지 정확하게 맞혔어?"
"...."
아니, 틀린 거야.
반대로 생각했어.
"지유야, 지금 그게 중요해?"
"엉?"
"대승적으로 생각하자고."
"...."
확실한 건, 이번 방송을 계기로 솔라의 미래가 바뀔 거라는 것.
언더독인 솔라가 아이솔레이션을 이겼으니.
앞으로 얼마나 바빠질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이내, MC는 새침한 어조로 솔라 멤버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번 미션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솔라 멤버분들, 소감 한마디만 부탁드릴게요.
-할머니 사랑해요!
-.... 소감.
급발진하는 장은서의 말을 듣고, 카메라맨은 관객석을 비췄다.
모시옷을 입고 미소를 짓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손을 흔들었다.
"은서는 천상 효녀가 따로 없네."
"그러게."
어릴 때부터 할머니랑 둘이서 같이 살았다던데.
비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데뷔도 했구나.
"오빠, 다음 미션은 댄스곡으로 준비하라던데."
"응. 무조건 춤으로 갈릴 거야."
"보름동안 안무 창작까지 준비할 수 있겠어?"
"해봐야지."
노래는 편곡으로 커버해도, 댄스는 쉽지 않을 터다.
"주희 언니가 메인댄서잖아."
"...."
아마 이번 주 촬영으로 2주 분량은 나올 테니.
당장 곡부터 고르고 빡세게 굴려야 할 것 같다.
이전처럼 대진 상대는 없이, 여덟 개 팀의 자유 경쟁.
첫 경연 최고 점수를 받은 솔라가 견제받을 게 뻔했다.
"비걸즈 상대로 어떻게 이기냐."
"글쎄."
그냥 딱밤 참기나 한번 더 하는 게 낫겠네.
루나를 이긴 B-girls, 비보잉 댄스를 추는 소녀들.
걔들을 상대로 양주희가 춤으로 이길 수 있을까.
"오빠, 빨리 곡부터 정해야지."
"어. 일단은 내일쯤 퍼블리싱 회사에 들러보려고."
"내가 같이 갈까?"
"아니, 그냥 혼자 가는 게 편해."
"오, 역시 천재는 솔플."
"...."
어쩌면 삘이 꽂히는 곡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 지독한 똥촉을 짜릿짜릿하게 자극시키는.
드르륵─
곧이어, 스테이지에서 내려온 솔라 멤버들이 대기실에 들어섰다.
"매니저님!!!"
"아, 예지야."
조용한 대기실은 제작진과 솔라 멤버들이 들자마자 소란스러워졌다.
옆에서 혼자 인터뷰하는 다이애나.
설치한 카메라를 회수하는 스탭들.
소란스러운 와중에, 우리의 김 리더는 고개를 들이밀고 질문을 건넸다.
"매니저님, 방금 1위 소감 들으셨죠!?"
"...."
다른 생각 하느라 못 들었는데.
"당연히 들었지, 그럼."
"음....?"
"뭐가."
"예?"
"어?"
그때, 옆에서 지유가 나직하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칭찬해 달라잖아. 아까 소감 때."
"아."
개인적으로 아이솔레이션 무대가 내 취향에 가까웠는데.
멍멍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을 반짝이는 예지.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 앞에서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내가 본 무대 중에 제일 잘했어."
"와아!"
예지는 새삼스레 감동한 얼굴로 기쁨을 만끽했다.
이미 경연 점수로는 1등 찍고 인정을 받았으면서.
자꾸 거짓말하는 것도 미안하네.
* * *
가벼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느껴지는 동료 직원의 시선.
모두들 내게 말을 걸고 싶은 듯 어깨를 달싹거렸다.
"저기, 선배님."
"어."
그나마 친분이 있는 상모가 근처에 다가왔다.
"탑아이돌 첫 경연이요. 네 팀 승부를 전부 맞히셨다면서요?"
"뭐, 어쩌다 보니까."
"그냥 무대를 딱 보면 결과가 다 보이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거 아냐."
어쩐지, 다들 표정이 꼭 무당을 보는 것 같네.
지유가 퍼트렸던가, 아니면 엔넷 스탭일 수도.
"모든 조가 다 치열했잖아요. 평균점 계산이라 예측할 수 없었을 텐데."
"...."
몰라. 그냥 감으로 찍었어.
"크흠, 흠흠."
그때, 뒤쪽에서 공세원 실장님이 나타나 헛기침을 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정수호 매니저, 잘했어. 본부장님께서 성과급은 두둑하게 챙겨줄 거야."
"넵. 감사합니다."
이내, 은근한 어조로 내게 질문을 건네는 공 실장님.
"정 매니저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나?"
"네?"
"그냥 요즘 듣는 취향이 뭔가 해서."
"...."
갑자기 왜 그런걸 여쭤 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음악이든 연기든 취향이 많이 거시기해요.
"레게 음악이요."
"아, 레게.... 조금 마이너 하네."
"그냥 요즘 자주 듣습니다."
"그래?"
왜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가 눈빛을 반짝이는지.
곧이어 말을 꺼내는 실장님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지상모 매니저. 들었지?"
"네. 실장님!"
"다음에 루나 미션곡은 레게로 가지."
"넵! 감사합니다!"
"????"
실례지만, 두 분 혹시 제정신인가요.
제 취향의 반대를 물어보셨어야죠.
'와, 어질어질하네.'
레게 댄스곡을 어떻게 준비하려고.
드르륵─
곧장 사무실을 벗어나 솔라 멤버들이 있는 연습실로 이동했다.
아무튼, 내 책임은 아닌 듯해.
그냥 물어보니까 답변했을 뿐.
"얘들아, 모여 봐."
연습실에 들자마자 나를 바라보는 솔라.
여기저기 흩어진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매니저 오빠 왜용?"
"다음 곡 준비해야 하는데, 각자 의견 말해 봐."
"아하."
말을 듣자마자, 은서는 관심을 꺼트렸다.
대충 알아서 고르라는 뜻인 것 같았으니.
"저는 야만전사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 소미는 패스."
"????"
앞으로 보름동안 준비해야 하니 시간이 촉박했다.
"내가 오후에 퍼블리싱 회사에 들를 거야."
"오, 정말요?"
방청객 급 리액션으로 대답하는 예지를 바라봤다.
"너는 댄스곡 중에 어떤 장르가 좋겠어?"
"저는 그냥 아무거나 다 좋아요."
"응?"
우리 리더는 다 좋은데 줏대가 너무 없어서 걱정이야.
나중에 나 말고 다른 매니저랑 같이 일할 수 있으려나.
"저는 그냥 매니저님이 끌리는 노래로 골라주세요."
".... 그래."
내가 끌리는 노래는 절대로 안 시킬 거야.
"우리 첫 번째 경연도 매니저님 덕분에 잘 됐잖아요."
"내 덕분?"
"아이솔레이션 선배님들 고르라고 하셨으니까요."
"아, 그떈 그랬었지."
아무튼, 그냥 예지는 적당히 뒷목이 가려운 곡이면 될 것 같고.
"그럼 다이애나는?"
"저는...."
"응. 편하게 말해."
"제가 편곡 참여하고 싶어요."
"어, 그래. 곡 정해지면 작곡가님이랑 상의해보고."
"네에."
다이애나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소심해 보였다.
회사 안팎에서 프로듀싱 천재라고 떠받들던데.
'거 참, 다들 문제가 하나씩은 있다니까.'
마지막으로, 양주희를 바라보며 의견을 구했다.
아무래도, 이번 경연에서 가장 중요한 멤버였다.
"형님, 저는 브레이킹 댄스 출 거니까. 비트 빡센 거는 다 좋아요."
".... 비걸즈 이길 수 있겠어?"
"네. 오히려 좋아요."
"자신감 굿."
솔직히, 나는 브레이킹 잘 모르겠다.
댄스 실력을 무슨 기준으로 가르냐.
대충 의견을 정리하고, 퍼블리싱 회사에 가려던 찰나.
"아, 맞다."
문득, 첫 번째 정산 날짜를 떠올렸다.
이제 멤버들도 어엿한 사회인이구나.
"얘들아, 너희 정산 날짜 확인했지?"
"내일 맞죠?"
"응."
얼마 전, <탑아이돌>에 초청한 가족분들 출연료도 들어올 텐데.
"경연 때 가족분들 초청한 멤버는 계좌번호 톡으로 보내."
"작가님한테요?"
"아니, 그냥 나한테 보내. 정리해서 내가 보내드릴게."
"네에!"
이내, 멤버들은 조심스럽게 은서를 바라봤다.
할머니께서 계좌번호가 있으실지 모르겠네.
"은서야, 할머니 계좌번호 있으시지?"
"그럼요. 당연하죠."
예지한테 들은 게 있어서 말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많이 힘들었겠네.'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고 하던데.
'평소에 화가 많을 만도 해.'
소녀가장이 된 후로는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힘들었겠지.
학창 시절부터 대학에 갈 생각도 없이 연습생 생활을 했으니.
"오잉, 지금 우리 할머니 회사 앞에 오셨대요."
"그래?"
은서는 평소와 달리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그럼 같이 나가자."
"아뇨, 벌써 사옥 앞에 도착하셨대요! 저 혼자 갔다 올게요!"
"...."
대답을 듣기도 전에 쌩하고 사라져 버리는 은서.
이렇게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할 줄이야.
"매니저님, 은서는 작년까지 회사 몰래 알바도 했어요."
"알바?"
"네!"
예지야, 회사 몰래라면서 나한테는 왜 말하는 거야.
"많이 힘들었겠네. 집에서 용돈도 못 받고 살았으면."
"힘든 게 아니라 독립적으로 커서 그렇대요."
"그렇게 말했겠지."
자존심 강한 은서가 가난한 티를 내진 않았을 거야.
"너희도 부모님께 효도해."
"하고 있어요!"
"내일 정산금 받으면 선물도 보내드리고."
"네에!"
* * *
큐앤지 레이블 사옥 앞.
백발의 여인은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매일 입는 모시옷은 통풍이 잘되는 듯 보였다.
할머니는 무척이나 부럽다는 듯이 한 커플을 바라봤다.
빨간색 람보르가니 우뢰칸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
"젊은 게 좋구만."
"할머니이!!!"
"에구, 우리 손녀 왔어?"
"네."
은서는 눈을 찡그리더니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할머니, 그 옷을 몇 년째 입는 거야."
"이거? 아직 5년밖에 안 입었어."
"검소한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하나 사 줄 테니까."
"됐어, 욘석아."
손녀 얼굴을 봤으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할머니.
이번에도, 그냥 편해서 입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여기 매니저님이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응, 거의 천재셔."
"아이고, 이 할매가 얼굴 보고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디."
"아니, 어차피 지금 퍼블리싱 회사에 가셨어."
"퍼블.... 그게 뭐여."
"우리 노래 가져오는 거야."
"그려?"
할머니는 괜히 귓볼을 만지는 손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할매는 이제 그만 가봐야겠네."
"뭐야, 벌써 가려고?"
"얼굴 봤으면 됐지. 너도 어여 들어가."
"내가 데려다 줄.... 아."
은서는 말을 하다 멈추고 할머니를 지켜봤다.
빨간 람보르가니 앞까지 천천히 들어가더니.
"젊은이들, 이렇게 남의 차 만지고 그러면 못 써요."
"뭐야, 짜증 나게."
젊은 남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성질을 부렸다.
"그쪽이 뭔 상관인데요?"
"상관이 없긴 왜 없어."
모시 옷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검정색 키를 꺼내는 할머니.
그러더니, 위로 열리는 운전석 문을 열고 오픈카에 탑승했다.
지이이잉─
곧이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열리는 창문의 내부.
할머니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시트에 몸을 뉘었다.
"내 차니까 그러지."
"죄, 죄송합니다."
할머니는 멀어지는 젊은이들을 부러운 듯 눈으로 좇았다.
"내가 30년만 젊었어도...."
세련된 운전대는 통풍이 잘되는 모시옷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터벅, 터벅─
이내, 장은서는 한숨을 내뱉고 람보르가니 운전석 앞에 걸어갔다.
이마를 짚으며 다가오는 자세를 보니 꽤나 익숙한 풍경인 듯했다.
"할머니, 왜 또 스포츠카를 타고 나왔어? 위험하다니까."
"우리 손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혀. 할매가 공 대표한테 전화해서...."
"아 됐거든!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에잉, 내가 너무 독립적으로 키웠네."
"어서 가요. 주말에 집에 들를게."
"그려. 고생허고."
부와아아아앙─
곧이어, 은서의 할머니는 제로백 7초 컷을 즐기며 빠르게 사라졌다.
"할머니...."
방금 과속 카메라에 찍힐 뻔했잖아요.
연세도 있으신데 자중 좀 하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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