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5화. >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모스크바 광장 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은 제법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과거 공산주의 바람이 러시아 제국에 불어닥쳤을 때. 그때 이곳은 많은 시민들이 바깥으로 나와 공산주의를 부르짖었을테다.
그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현재 광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그 인파들 중에는 러시아인이 아닌 타 국가에서 넘어온 인물들도 많았다.
이미 호석에 의해 언론사는 물론 각국의 정상들에게 소식이 넘어갔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현재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사령관의 위치에서 행적 보고 정도는 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어떤 것들 보다도 나를 가장 걱정하고 하루하루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루시는 과연 내 여자가 맞다고 느껴질 만큼, 언론사의 카메라 앞에서 당찬 여장부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그녀가 겉으론 강할지 몰라도 여린 사람이라고 느끼니까.
결국은 루시 때문이라도 조금 일찍 밝혔다고 보는 게 맞았다.
“준비는 다 됐나요?”
호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사령관님. 발표 준비는 문제 없습니다.”
슥, 왼팔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서울을 기준으로 오후 5시 50분.
서울 시간을 기준으로 오후 6시에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으로서 ‘종전선언’을 하기로 하였으니 아직 10분의 시간이 남았다.
전 세계는 단순한 종전선언이라고 생각하며 이 자리에 참석했겠지만, 나는 겨우 그 정도를 얘기하려고 이렇게 거국적으로 자리를 마련하는 게 아니었다.
“보리스 연결하세요.”
“예! 사령관님.”
호석이 위성전화기의 다이얼을 누르고는 내게 건넸다.
-전화받았습니다.
“보리스.”
-보스! 무사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
“좋아 한 건 아니고요? 일 시킬 놈 사라졌다고.”
-하하하, 소문이 거기까지 낫습니까?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이라 그럴까? 한국인이라면 ‘절대 그런 일 없었습니다!’하고 입에 거품을 물었을 질문을 부드럽게 받아 넘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성과를 익히 알고 있기에 나오는 자신감일지도 모르겠다.
“부사령관을 통해 연락을 받았겠죠?”
-예, 보스. 정호석 부사령관의 명령대로 현재 SKY항공국의 모든 로켓이 발사 준비를 끝냈습니다.
“발사대가 현재 9개 뿐이죠?”
-예, 보스.
“로켓은 몇대가 준비 되었습니까?”
-총 128개의 로켓이 준비되었습니다.
“동시 발사, 맞습니까?”
-예, 보스의 요청대로 동시발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동시도착 역시 가능하겠습니까?”
-예, 그것 역시 128개의 목적지마다 각기 발사 시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계산을 끝낸 상태입니다. 약간의 변수는 ‘기상’과 ‘시간대’가 될 것 같습니다.
초 장거리 로켓이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이나 ‘온도’의 영향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오차범위는 얼마입니까?”
-최대 30초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정도면 충분하군요. 동시발사 하면 됩니다.”
발사대는 9개이지만, 로켓은 128개.
헌데 어떻게 동시 발사를 하느냐?
SKY항공우주국의 로켓의 첫 모델은 전삶의 미래에서 스페이스라는 회사가 만든 로켓의 아이디어를 착안해 만들었었다.
별도의 발사대가 없이 로켓 스스로 발사를 할 수 있는 기술, 그것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먼 거리를 날아 다시 귀환후, 착륙할 수 있는 기술까지를 만들었었다.
SKY항공우주국의 첫 로켓 모델역시 그 스페이스란 회사가 만들었던 로켓과 똑같았다.
로켓 스스로 발사가 가능하고, 이후 적당한 거리까지 날아간 후, 복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었다.
발사대가 필요했던 이유는, 현재까지 달에 도착한 로켓이 다시 돌아오기에는 연료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로켓 발사 과정에서 가장 연료량 소비가 큰 발사 순간의 연료를 절약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SKY의 로켓은 전보다 더 월등한 ‘비행거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발사대에서 발사되는 로켓은 가장 먼 국가, 혹은 도시를 선회하세요.”
-예, 보스.
“나머지 로켓들은 순서대로.”
-예, 사전에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진행 될 것입니다.
“목적지에서 선회하기 전, 반드시 SKY의 로고를 투하하세요.”
-이미 모두 장착 해 두었습니다. 버튼 한번이면 하늘을 유유히 날아서 전 세계가 SKY의 로켓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난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보스, 발사 시간은 언제입니까? 준비는 3시간 전부터 끝났습니다만, 아직까지 발사 시간에 대한 언급은 듣지 못했습니다.
“오늘 서울 시간으로 6시, 내가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알고 있죠?”
-예, 보스. 어제부터 세상이 시끄러운데 모를수야 있겠습니까?
“그때, 내가 오른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모든 로켓이 발사를 시작하면 됩니다.”
-예, 보스. 그럼 준비를 해 놓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호석에게 건넸다.
어느새 내가 저 붉은 광장에 세워진 임시 단상에 올라 설 순간이었다.
“갑시다.”
“예! 사령관님!”
호석의 당찬 대답과 함께, 나는 걸음을 옮겼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서양식 예복이라 부를 수 있는 양복을 입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유니폼’을 입었다.
어찌 되었든,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이기에.
물론, 한국, 중국, 일본등의 군인들이 입는 옷은 아니었다. SKY PMC의 최첨단 유니폼이라고 설명하는게 옳았다. 레이더는 물론 위성으로 찾으려해도 찾기 어렵도록.
열화상카메라를 피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군복’이라 표현할 수 있는 그런 놈이었다. 가벼운 군복으로도 9mm 탄환을 사용하는 권총의 공격에는 완벽하게 방어가 가능한 방탄 기능까지 들어 있으니까.
촤라라라락.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오는 걸 보니 정말 많은 사람이 이곳 붉은 광장에 모인 듯 싶었다.
과거, 공산주의라는 꽃을 피웠다던 러시아의 역사적인 인물 ‘레닌’이란 사람이 이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했을까 싶었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지도 않고 걸음을 옮겨 마이크 앞에 섰다.
“동북아연맹군의 사령관 천우진입니다.”
곳곳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나의 생환에 기뻐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맨 앞줄의 몇몇 사람들이 눈가를 손가락으로 훔치는게 보였다.
“금일부로 동북아연맹군 사령관 천우진 본인은, 러시아 우크라이나간 전쟁과, 세계 3차 대전으로 발발했던 동북아연맹군, 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전쟁이 종전 되었음을 선포하는 바 입니다.”
촤라라락, 촤라라락.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전쟁이란 반드시 누군가 피를 흘려야 하는 법이었다. 실제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며칠전에 지나온 참이다.
그런 참혹함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인물들 역시, 지금 이 광장에 있을테다.
게다가 푸틴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강제징용하기까지 했으니, 지금 천둥보다 크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은 이해 못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환호성을 끝내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저들에게는 이 행동이 단순히 말을 잇기 위함으로 보이겠지만, 받아들이기 나름.
아마 보리스는 내 신호를 정확히 이해 할 것이리라.
호석 역시, 내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전 PMC 최정예 코드대원들이자 현 동북아연맹군 최정예 특수부대 ‘악몽’의 대원들을 시켜 푸틴을 끌고 나오게 만들었다.
“저, 저!”
“마, 맙소사! 푸틴이야!”
사람들이 제각각 놀란 반응을 일으킨다.
아직 SKY항공우주국에서 출발한 로켓이 세상의 하늘을 뒤덮을 때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를 가진 SKY의 로켓. 17000mbp, 음속의 22배이며 시속 약 28000km에 육박하는 속도였다.
서울에서 뉴욕까지가 약 11000km였다.
발사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20분 내외라면 뉴욕에 닿을 수 있는 속도였다.
그런 로켓이 지금 발사가 되고 있을것이다.
128개의 로켓이 그 목적과 목표에 맞게 순차적으로 발사되어서 세상의 하늘에 동시에 모습을 드러낼테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동안 적절한 쇼를 하며 종전선언 따위의 허접한 발표말고, 진짜 발표를 위한 시간을 벌어야 했다.
푸틴이란 인물만큼 그 쇼에 적합한 인물이 없었다.
개처럼 끌려나온 푸틴의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러시아는, 동북아연맹군 나 천우진 사령관의 발 아래 놓았음을 세상에 알립니다.”
““······””
광장이 조용하게 변했다.
그만큼 지금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오만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벌떡, 준비된 귀빈석의 자리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람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면면은 중국의 후진다오, 일본의 고키부리, 대한민국의 천혁수 대통령이신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이자 나의 장인어른인 데이비드 록펠러 2세 등, 그 밖에 이번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각국의 세계 정상들 역시 동참하고 있었다.
이내 박수는 전염병처럼 퍼지며 광장을 가득 메웠다.
짝짝짝짝짝짝.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가 잠잠해지기를 잠시 기다렸다. 곧 박수소리가 잠잠해지자 나는 다시 마이크 앞에 입을 열었다.
“나는 전쟁범죄자인 푸틴을 용서할 마음이 없고, 이것은 적법한 절차로 국제재판에 넘겨져야 할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재판소에서 판결을 받아봐야 종신형, 혹은 죽어서도 감옥을 나갈 수 없는 형태의 벌을 받을 뿐이기에 불합리하다 생각합니다.”
여기저기 고개를 주억거리는 인물들도 보이고 인상을 찌푸리는 인물들도 보였다.
“나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역사에 길이 남을 전쟁범죄자인 푸틴에게 그런 인도주의적인 형벌을 용납할 수 없으며, 이것은 동북아연맹의 모든 국가가 같은 생각임을 밝히는 바 입니다.”
후진다오와 고키부리, 할아버지와 김은정이 ‘옳다’라는 뜻을 밝히며 크게 외쳤다.
“해서, 동북아연맹군의 통수권자이자 사령관인 내가 판결하기에는···”
푸틴과 눈을 마주쳤다.
놈의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이대로 놈을 죽이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두고두고, 다시 살고 싶지 않음을, 제발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세상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감히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나의 여자를 욕한 놈 아니던가.
허나, 아쉽게도 세상은, 여론은 푸틴의 죽음을 바라고 있을테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듯, 나 역시 여론, 민심을 얻어야 하는 상황.
기꺼이 정치적으로 푸틴을 죽일 셈이었다.
“사형.”
“으으으으으!”
혀가 없어 말을 하지 못하는 푸틴이 온 몸으로 죽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판결합니다! 사형!”
웅성웅성.
곳곳에서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죽여도 된다, 안 된다.
죽이라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 지구촌의 주소라고 생각했다. 많은 국가들이 사형을 폐지 했지만, 갈수록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광장에서도 푸틴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만큼 푸틴에게는 씻을 수 없는 과오가 있다는 뜻.
“아따 고것은! 적법한 절차가 아니지라!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쓰지 않겄소!”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전에 약속 된대로 내게 반대를 노골적으로 목소리내 드러낸 인물.
모스크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붉은 광장이 떠나가라 사투리를 쓰며 외친 인물,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 자리에서 푸틴을 죽이는 것은 적법한 절차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적법한 절차를 만들기 위해 지금의 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적법한 절차라면 상관 없다는 얘기입니까?”
“아따 그라지요! 적법한 절차대로, 나쁜놈은 사형! 이렇게 명시 되어 있다면 누가 반발 하겄습니까?”
쇼는 완성 되었다.
이제 종전선언 따위가 아닌, 나의 진짜 목적을 발표할 순간이다.
< 제 445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