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26화 (326/334)

EP.327 이부 십오장 - 형제 (8)

* * *

유영하는 강기의 검은 날개처럼 뻗친다.

그것들이 이윽고 원형을 그리며 목리원을 중심으로 공전하기 시작했다.

단천화의 낯짝에 긴장이 떠올랐다.

“그건….”

목리원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손짓을 더해 이기어검을 조종할 뿐이었다.

쐐애액!

공전하던 강기의 검이 일제히 단천화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혜성의 비처럼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품은 채로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콰과과광!

피웅덩이에서 비롯된 채찍이 쏘아지는 검들을 몸으로 막아냈다.

하나, 완전하지 않았다.

“크윽!”

단천화의 허벅지에 한자루 검이 박혔다. 뿐만 아니었다. 피웅덩이 채찍은 그 순간 목리원의 이기어검에 갈갈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노오오옴!!!”

꽈르릉―!

벼락이 내리쳤다.

전보다 격렬하게, 더욱 빼곡한 숫자로.

하나 목리원을 칠 수는 없었다.

한번 떠오른 이기어검은 그 하나하나가 각자의 초식을 사용하는 채로 목리원을 방어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은 유성칠검으로, 또 어떤 것은 만련이검으로.

그 외에의 목리원이 아는 모든 검초가 만개하듯 공간을 수놓아 어지럽혔다.

그것은 곧 이기어검이 강기공의 끝에 있다고 일컫는 이유였다.

확장된 사고, 자연과의 합일, 그리고 강기의 조율과 제각기 검 경로의 설정.

그 모든 것들을 해내고 난 후 아득한 통제력으로 검 하나하나에 각기 다른 의념을 부과해야 하기에 이것이 초월에서도 극상승에서만 가능한 기예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만 끝내도록 합시다. 이 지긋지긋한 인연.”

목리원의 눈 흰자 위로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이윽고 터졌다. 주륵, 피눈물이 얇게 목리원의 뺨을 타고 내렸다.

이 이상 이기어검을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아직 서툰 공력의 배분으로는 곧 자멸이라는 결과를 맞닥뜨리게 될 터이니.

‘곧 한계가 올 터다.’

승부수를 던질 때였다.

척!

목리원은 기수식을 취했다.

그것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일수였다.

키이이잉―!

일백에 달하는 이기어검이 길을 열었다.

내리치는 붉은 벼락을 막아낸다.

짓쳐드는 붉은 채찍을 걷어낸다.

그 순간에도 목리원의 신경은 오로지 단천화에게 몰려 있었다.

화악!

흑야를 감싼 검강이 팽창했고, 이내 압축됐다.

변화가 일었다.

목리원의 검을 중심으로 세상이 흑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빛조차 빨아들이듯, 게걸스럽고 파멸적인 흑색이었다.

한껏 근육을 조인 채로 검 끝을 단천화에게 겨눈 목리원은 숨을 가다듬었다.

조준, 그리고 돌격.

꽈앙―!

정면으로 내달리는 몸짓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찌르기를 예비하는 검형은 지나온 길의 모든 것을, 소리마저 빨아들여 그 힘을 불리기 시작했다.

마치 흑색의 혜성이 내달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별빛조차 가두어진다.

목리원의 등을 지키던 검강들조차 흑야의 빛에 삼켜졌다.

단천화의 숨이 일순 멎었다.

그는 위기감을 느끼고, 속에 가둬두었던 모든 공력을 폭발시켰다.

그렇게 충돌 직전,

“가시오.”

목리원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검을 뻗었다.

마치 아가리를 벌리는 심연처럼, 단천화는 시야의 모든 것이 검게 물드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유성칠검(流星七劍) 7식, 그리고 극.

극야섬(極夜殲).

어느 날 여성운이 하늘 어딘가에서 발견한, 새까만 별을 보며 지은 이름이었다.

사아아―

초식은 어떤 굉음과 폭발력도 없이 그저 부드럽게 덮어 들어가 단천화의 반신을 삼켰다.

“커헉…!”

그의 입에서 핏물이 토해져 나왔다.

눈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듯 사라진 오른쪽 가슴, 어깨, 팔, 허리를 향했다.

그렇게 쓰러졌다.

털썩, 숨이 사그라들어 가는 순간 목리원은 숨을 가다듬었다.

침묵이 공간을 덮었다.

*

단지선은 잦아든 소란에 문득 불안감을 느꼈다.

“잠시!”

그렇게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정원으로 내달렸다.

혹여 목리원이 당했을까.

자신이야 이 환각 속에서 몇 번을 죽어도 괜찮지만 외인인 그는 어찌될 지 모르는 만큼 걱정이 머리 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한다.

무공도 변변치않은 어린 몸이라 달리는 게 쉽지 않다.

뒤에선 놀란 부모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지선아!”

그것을 떨쳐내고 도착한 정원.

“오셨소?”

목리원이 단지선을 반겼다.

단지선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는 그저 몸 곳곳에 생채기가 나 있을 뿐, 몸 상태 자체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것을 잡았소.”

목리원의 검은 칼날이 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엔 반신이 사라진 채 숨을 거둔 단천화가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단지선이 속이 꽉 죄는 기분을 느낀 것은.

‘저자가….’

저리 비참하게 죽었단 말인가.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맞긴 하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환각 속이 아니던가.

이 모든 것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사실 단천화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와 목리원을 납치해 어머니가 그런 끔찍한 최후를 맞게끔 했다.

그걸 안다.

알면서도, 단지선은 그 순간 열기가 가득 서린 숨을 토해냈다.

몸이 슬쩍 떨리는 순간.

“지선아!”

부모님이 와 단지선을 끌어안았다.

그들도 곧 단천화와 그를 쓰러트린 목리원을 발견했다.

헛숨을 들이켰다.

와중 목리원이 말했다.

“죽이지 않고선 상대할 수가 없겠더구려. 정원을 망가뜨려 미안하오.”

끝까지 외인으로 남으려는 듯 목리원이 선을 그었다.

단지선은 그를 가만 바라봤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 것일까.

쩌저적!

공간이 끄트머리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단지선은 부모를 봤다.

그리고 목리원을 봤다.

그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이런 끝은….’

아닌 듯하다.

정확히는, 허락할 수 없었다.

그것은 목리원에게 너무 잔혹한 일이었다.

단지선은 알았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시선이 목리원을 향한다.

그는 똑바로 섰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우야.”

파마성은 진실됨을 입에 담길 강제한다.

그렇기에 단지선의 말에는 언제나 힘이 깃든다.

즉, 이 말의 의미를 부모는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서여령과 교주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목리원 또한 놀란 얼굴을 하다, 이내 작게 웃었다.

“그래도 되는 것이오?”

“왜 안되더냐. 꿈속일진대.”

“하긴.”

“악몽으로 끝나면 찝찝할 터다.”

단지선은 서여령을 바라봤다.

“우선이입니다. 우선이는 저렇게 클 겁니다. 듬직하고 멋들어지게.”

담아둔 말이었다.

이별의 때가 왔으니 건네는 말이었고.

“그러니 어머니께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교는 제가 평생을 일굴 테니.”

“그게 무슨….”

그래, 서여령의 입장에선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겠지.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사실 이해가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쩌저적!

환각이 또 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너도 어서 인사를 나누거라.”

단지선은 목리원에게 독촉했다.

목리원은 가만 두 사람을 바라보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약 네 걸음을 앞두고 그는 흑야를 놓았다.

크게 절을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넘치리만큼 감사하고, 또한 이리 의롭고 좋은 분들이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는 사뭇 의젓하게 말하곤 일어섰다.

“형님.”

“그래.”

쩌저적!

균열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된다.

그 순간 목리원이 검을 뽑았다.

흑야가 아닌 성련문의 성운이었다.

“아직 끝낼 것이 남았소.”

단지선은 그의 성운을 바라봤다.

그는 저것이 무엇인줄 알았다.

운명을 베는 검이었고, 목리원이 누군가의 별을 수습할 때 이용하는 검이었다.

이런 점까지 신경을 써주는 걸까.

문득 헛웃음이 나와 단지선은 눈을 감았다.

“형님이 되어 못난 모습만 보여주는구나.”

“그러니 다 말해주어야 할 것이오.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얼마든지.”

더 이상의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환각이 다 끝날 즘,

서걱!

성운이 그의 가슴을, 그를 옭아맨 사슬을 걷어냈다.

단지선은 살아생전 처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

긴 꿈에서 깨어난 듯한 감각.

목리원은 눈을 떴다.

묘하게 개운했다.

이유를 찾으려 해보니 과연, 단천화와의 생사결에서 얻었던 부상들이 없었다.

그것은 결국 환각 내에서의 일이었던 듯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의 집 안.

적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왜인지 감각이 선명하게 돌아왔음에도 이변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아하니 이 환각증이 비단 맹 측에만 적용된 것은 아닌 듯했다.

“으음….”

단지선이 서서히 눈을 떴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 상태가 잠시 이어졌다.

목리원은 손을 잡아 그를 일으켰다.

“몸은 어떠시오?”

“….”

단지선은 잠시 주먹을 쥐었다 펴며 확인하다,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개운하구나. 살아생전 이래본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런 검증이 잠시.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언가 말을 토해내려함은 목리원도 알 수 있었다.

하나, 그 일을 막았다.

“나중에 들려주시오. 먼저 끝낼 일이 있으니.”

목리원은 뒤돌았다.

그래, 해후라는 것은 끝맺음 뒤에야 있어야하는 법이다.

고로 지금은 듣지 않으려 했다.

“다녀오겠소.”

목리원은 나아갔다.

천마전으로.

전쟁의 끝이 도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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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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