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6 이부 십오장 - 형제 (7)
* * *
‘초월이다. 역시.’
목리원은 눈앞의 단천화를 물끄럼 바라봤다.
다만 눈으로 보이는 특징이 아닌 기의 성질, 농도, 색, 그것이 어우러져 완성되는 경지의 형태를 보는 행위였다.
단천화는 완연한 초월이었다.
아니, 완연함을 넘어서 어떤 완벽에 다가가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순간 목리원은 생각했다.
지금 보이는 그의 경지가 실제 경지였을지, 그도 아니면 단지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가 그리도 강했던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 경우를 산정한다 치면 특히.
‘이것이 환각 속에서 존재하는 경지라면. 형님이 다만 그를 그리도 강하게 여긴 것뿐이라면.’
저것은 실제 초월 끄트머리에서 보일 수 있는 경지를 완전히 재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내공의 양과 별개로 기교 면에서 모자람이 보이리란 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저것이 실제 초월 끄트머리의 경지를 그대로 재현한다면?
‘쉽진 않겠지.’
목리원이 곧 들어설 경지에 그가 이미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우열이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초월에 완숙해진 이후는 사소한 차이보다 심상의 튼튼함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뭐가 됐든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견제 초식을 발하려는 순간이었다.
“성련문. 그래, 검성.”
흠칫, 목리원은 단번에 움직이지 못했다.
단천화가 목선오의 이름을 담았기 때문이다.
단천화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비웃음을 닮은 표정이었다.
“노친네, 그래. 혈천교 지부를 들쑤시던 그 머저리 같은 노친네가 있었지.”
끌끌 웃는 단천화의 모습에 목리원의 눈빛은 가라앉았다.
“제가 어찌 죽을지도 모르는 꼴이 불나방 같더구나. 협이니 뭐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며 날뛰는 꼴은 또 어떻고. 좋은 자리를 만들어놨다. 그놈의 머리를 뜯어버릴 자리.”
단천화의 눈이 번들거렸다.
“사제지간이냐? 그래, 좋은 생각이 났다. 네놈 모가지를 뜯어 그놈 앞에서 흔드는 것이다 재밌는 구경거리겠구나. 비명을 지르며 오열하는 그놈을 보는 것도.”
악적이구나.
목리원은 그런 말을 삼켰다.
다만 재차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우습군.”
“무엇이?”
“수준 차이도 모르는 그 오만함이.”
목리원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어찌 스승님께서 당신 따위에게 패배하겠소.”
사악―!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격이었다.
누군가는 스치듯 이는 바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볍고 절제되어 흐름을 쫓지 못할 일격.
하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푸확!
단천화의 어깨죽지 위로 피가 솟았다.
그의 눈이 부릅 뜨였다.
목리원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혈기나 싸지르는 당신은 스승님을 이길 수 없소.”
등 뒤에서 들려온 말.
“나 또한 이길 수 없고.”
쾅!
강기가 단천화를 덮쳤다.
*
초월에 이른 무인끼리의 생사결은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을 일으키는 법이었다.
그것은 비단 압도적인 공력으로 말미암은 기공의 교환이 아니었다.
실제 의념을 구현해 물질적 형태로 빚어내는 것, 또한 그 기운으로 물리력을 뛰어넘은 경천동지할 현상을 완성하는 것이 초월의 무학인 만큼 그들의 싸움은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꽈르르릉!
혈기과 뇌우의 형태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리되면 까맣게 타들어 가거나 땅거죽이 뒤집히는 것이 옳을진대, 벼락을 맞은 자리는 붉은 피 웅덩이가 들끓고 있었다.
목리원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의념의 영역에서 깨달았다.
‘닿아서는 안 된다.’
저것은 불온한 기운이 응집된 웅덩이었다.
다만 불온해서가 아니라, 그 기전이 끔찍할 정도의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꺼려야 할 웅덩이었다.
‘공력이 얽히는 공간이다. 기생? 그래, 그리 표현하는 게 맞겠구나.’
웅덩이가 주변의 자연지기를 벌레가 갉아먹듯 파먹으며 힘을 불리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 영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진 않으나, 경계심은 크게 차올랐다.
경계심은 옳았다.
“이놈!”
화악!
단천화의 외침과 함께 피웅덩이가 솟구쳤다.
뱀처럼 간악한 줄기는 채찍처럼 유연하게 몸을 뒤틀며 목리원을 향해 쏘아졌다.
목리원은 강기를 길게 늘려 전방을 향해 휘둘렀다.
꽈아앙!
그 순간 목리원의 입술이 꽉 깨물렸다.
‘정면으로 막아선 안 된다.’
강기가 깎여나갔다.
피웅덩이가 목리원의 내공을 갉아먹은 것이다.
그쯤에서야 목리원은 확신했다.
‘실제 무공 수위가 그대로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저 외형이나 내공의 크기만 배껴온 것이라면 이리 교묘하고 악랄한 수는 재현하지 못한다.
초월에 이른 무학이란 것은 상상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
생각하는 중 단천화가 히죽 웃었다.
“자, 어찌 피할 것이냐.”
그가 하늘 높이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아래로 팔을 내리찍은 순간.
꽈르릉!
또 핏빛 천둥이 내리쳤다.
목리원은 겨우 그것을 피했다.
하지만 웅덩이의 생성은 막지 못했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
단천화의 무공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해지는 성향을 지녔다.
즉, 내공의 소모라는 한계를 자연지기를 갉아먹어 수복하는 형태로 극복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순간 벌어지기 시작한 공력의 차이 탓에 그와 맞붙은 일이 불가능에 가까워질 터.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목리원의 기감이 날카로워졌다.
오감이 얽히고 섥히며 공간의 모든 정보를 목리원의 뇌리에 때려박았다.
바람의 흐름, 땅의 진동, 건물의 형태와 내부의 구조, 그리고 정원에 피어난 꽃의 잎사귀 모양까지.
과한 정보가 머릿속을 태웠으나 목리원은 멈출 수 없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터다.’
목선오는 단천화를 이겼다.
자신과 같은 무공으로, 같은 경지에서, 같은 검을 사용하며.
실제로 방법이 존재한단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갔을지를 생각해야 했다.
‘스승님께선…!’
과거를 되새긴다.
-원아, 높은 경지에 오른다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단다. 사실 검의 모양을 하고 있다곤 하나, 우리가 사용하는 무공에 검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쉽게 말하면 검이 매개체가 되는 것이지. 기공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검은 공력을 수발하고 그것을 뿜어내는 장기와 가까워진다.
-그럼 필요없는 건가요?
-틀렸다. 이 스승이 하고 싶은 말은….
번쩍!
목리원의 눈빛에 정광이 깃들었다.
‘검은….’
-…조금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상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그것을 운용하는 방법도 더 다양할 수 있지 않겠더냐.
자유로움.
그것이야말로 기공을 넘어 의념의 영역에서 보여야 할 검의 운용이라 들었다.
되새겨보자.
단천화의 무공은 내리치는 천둥, 그 밑에 고이는 피웅덩이로부터 시작된다.
피웅덩이가 주변의 자연지기를 먹어 성장하면 붉은 뱀 형태의 채찍으로 솟아올라 사방에서 쏘아지는 무기가 된다.
저것 또한 초월에서의 운용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까.
‘거리를 좁혀야 한다. 채찍으로 어찌할 수 없도록.’
한데 어떻게 사각이라곤 존재하지도 않을 저 틈새에 파고들 수 있을까.
‘나의 검을….’
조금 더 자유롭게 쓰는 것이지.
쩌저적!
묵색의 강기 위로 실금이 뻗쳤다.
그것이 이윽고 거대한 균열이 되어 파열을 일으켰다.
목리원은 그 순간 검을 전방으로 휘둘렀다.
째애애앵!
파열음과 함께 조각난 강기의 파편이 단천화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꽈아아앙!
타격은 없을 것이다.
웅덩이에서 솟아난 뱀이 그의 머리 위를 덮는 걸 확인했으니.
목리원은 개의치 않았다.
‘됐다.’
목표한 바는 이미 이루었다.
우우웅―!
목리원이 손을 뻗자 공간이 진동했다.
묵색의 파동이 호수 위 파문처럼 곳곳에서부터 뻗쳤다.
‘검으로서의 자유로움.’
그는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알기 위해서는 검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할 터다.
‘거리.’
창보다 짧은 거리.
‘힘.’
균형을 통한 배분을 본으로 삼는 구조.
‘무엇보다….’
한정된 투로.
모든 무기가 가진 단점이자, 무기로서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벽.
목리원은 알았다.
이미 먼 과거부터, 이 높은 경지를 노닐던 이들은 그 한계를 넘어설 방법을 강구해왔다는 것을.
답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무엇이냐.”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단천화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목리원은 답하지 않으며 퍼뜨린 강기의 조각을 운용하는데 온힘을 다했다.
파문이 강해진다.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강기의 조각이 하늘로 떠오른다.
공간이 묵색으로 물든다.
그 위로 밤 하늘에 새겨진 별처럼 강기의 조각이 명멸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조각이 형상을 바꾼다.
길쭉하고 날카롭게, 그리도 치명적이고 자유로운 형상을 취하며.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검의 형상으로 완성된 강기의 조각이 목리원을 휘감아 뻗어 나왔다.
강기공의 끝, 또는 검의 끝자락이라 표해지는 기예.
이기어검(以氣馭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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