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203화 (203/334)

EP.204 이십장 - 충돌, 격류 (10)

* * *

원명은 불자(佛子)로 평생을 살았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삶은 아니었다.

갓 태어난 아이일 적 바닥에 버려져 있던 원명을 소림의 노승이 거두며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었다.

“명아.”

“예.”

“불공을 외자꾸나.”

“예.”

노승은 언제나 그런 말로 아침을 열었다.

원명은 의심하지 않고 따랐다.

그런 그가 불공을 외는 일에 의문을 가진 것은 나이 열하나의 일이었다.

“스승님.”

“그래.”

“어째서 불공을 외워야 하는 것입니까?”

그날 노승은 답했다.

“불자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이유가 됩니까?”

“부처의 자식으로 살기 위해서 가르침을 속에 새기는 것이다. 습관처럼 왼 불경의 가르침이 선택의 순간마다 너를 이끌도록, 그리 새기는 것이다.”

어린 원명은 그 말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원명이 노승의 가르침을 깨우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소림의 대제자가 되던 열 일곱의 나이였다.

“무학의 성취가 뛰어나구나. 걱정 없이 갈 수 있겠어.”

노승의 수명이 다하던 날, 원명은 깊은 슬픔에 눈물을 훔쳐냈다.

“명아.”

“예.”

“불공을 외워다오.”

노승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자 했다.

원명은 불공을 외웠고, 노승은 그것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부처의 가르침 공수래공수거, 쥔 것 없이 태어나 쥔 것 없이 돌아가는 무욕을 끝까지 실천한 노승은 청정일념, 해탈(解脫)에 도달하였다.

그 마지막 순간이야말로, 한창 성취를 이뤄내던 원명에겐 최고의 깨달음이었다.

“아미타불.”

그날부로 원명은 미련과 무욕을 버리고자 했다.

불공을 외며 혈기를 억눌렀다.

그리 억누르고 억눌러 20세, 원명은 깨달았다.

“버리는 일에 집착하고 있구나. 비우겠다는 마음이 더욱 욕망을 부추기고 있구나.”

원명은 불공을 외웠다.

지양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집착이 되어 욕망을 부추기고 있으니 더 이상 버리려 들지 않으리라.

공수래공수거.

비워내는 것은 무엇도 손에 쥐지 않는다는 말이니, 다만 이 욕망이 손을 스쳐 지나가도록 무엇도 하지 않고 바라볼지라.

번뇌가 몰려오기에 그냥 두었다.

흘려보내는 일을 업으로 알며 그저 불공을 외웠다.

몸을 흔드는 열기가 점점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하여 원명은 45세의 나이에 번뇌를 벗어던졌다.

초월에 이른 날이었다.

“아미타불.”

그리고 혈사(血史), 중원에 닥친 대재앙 앞에서 검성(劍星) 목선오를 만났다.

“스님께선 어찌 생각하시오.”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이 혈사를 어찌 생각하시오.”

그는 원명이 봐온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사내였다.

무학의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이 그러하였다.

“수많은 생이 스러지오. 민초들의 비명이 이루 말할 데가 없는 수준이오. 우스운 일이 있소. 결국 스러지는 생일진대, 혈사로 인한 희생이라 생각하니 못내 안타까운 게 아니겠소?”

불성이라 불리움에 부처의 삶을 살았다 자부했건만, 원명은 스스로의 우둔함을 또 한 번 깨우쳤다.

“스러질지언정 살아있는 동안은 찬란히 빛나야 하는 것이 생이건만, 그 빛을 채 뽐내지도 못한다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프더구려.”

목선오가 허허로이 웃으며 건넨 말은 원명의 사고관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무엇에도 미련을 두지 않으며 오로지 흘려보내기만 한 삶은 부처의 뜻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아미타불.”

“음?”

“소승이 큰 가르침을 받게 되었소.”

최초, 부처께서 설법을 전파하신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것은 이로움을 퍼뜨리기 위함이었다.

고통받는 민초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홀로 진리에 다다라 마냥 흘려보낸다 해서 열반이겠는가.

비우고 비워 허허로워진다고 해서 해탈이겠는가.

이로움의 전파야 말로, 가장 부처와 닮은 길이었다.

“내 이 혈사를 막는데 손을 보태겠소.”

그날로 원명은 무림맹주가 되었다.

혈사를 끝냈고, 맹주직을 사퇴하여 소림으로 돌아왔다.

이로움의 전파라는 지상과제를 위하여 골몰하던 중 일운을 만났다.

“뭐예요?”

어린 것이 꼭 사나운 짐승의 눈을 하고 있었다.

투기가 가득한 모양새가 이대로 두었다간 세상의 해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떠오르게 하는 꼴이었다.

“내 너를 통해 이로움을 전파하여야겠구나.”

“뭐야?”

“이름이 무엇이냐?”

“니애미요.”

“일운, 너는 오늘부터 일운이다.”

사나운 아이를 불자로 키워 부처의 뜻이 위대함을 증명하겠다.

원명은 열의에 차 일운을 가르쳤고, 일운은 날이 갈수록 불자에 가까워졌다.

“방장님, 불공을 욀 시간입니다.”

흡족함이 떠오른다.

일운의 반듯한 행실에 기뻐하기도 하고, 성장하는 일운의 고민과 번뇌를 함께 해주며 살아온 삶이다.

이렇게 스승이었던 노승처럼 열반에 들 수 있으리라.

그리 여겼건만.

“쿨럭!”

피가 토해져 나온다.

*

허리를 파고든 날붙이의 감각이 선연하다.

토해지는 피와 함께 생명의 불씨가 꺼지고 있음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고작 허리춤, 그리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못내 안타깝다.

‘지독한 마기로구나.’

몸속을 파고드는 순간 공력과 생명을 갉아먹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마기였다.

“왜, 더 하지 않을 테요?”

백야흠이 묻는다.

눈웃음을 짓는데 눈구멍이 텅 비어 있으니 기괴하기만 하다.

“그래, 수고하였소. 스님께서도 할 만큼 하셨지. 생이 그런 것 아니겠소. 언제 어디서 불우한 사고를 겪어 스러질지 모르는 것 말이오.”

“아미타불.”

“미안하오. 내 신교의 교리를 섬기는 이라 함께 합장해주진 못할 듯하오.”

뚜두둑, 백야흠이 검을 뒤틀었다.

원명은 이를 악 물어 통증을 버텼다.

“아시오?”

“무엇을?”

“소승이 결국 스러질 생을 구하려하는 이유 말이오.”

“들어는 보도록 하지.”

백야흠이 원명의 허리에 박아넣은 검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어디 이 고통을 참고 말해보라는 듯 장난스러운 태도에 원명은 길게 웃었다.

“스러지는 순간까지는 빛나야 하는 까닭이오. 열반에 드는 것은 미련이 없음을 뜻하니, 미련이 없음은 곧 열망을 성취했음을 뜻하오. 그렇기에 빛나야 하는 것이오. 사고로 스러져선 안 되는 것이오.”

“좋은 말씀 잘 들었소.”

“하여 당신을 막아야만 할 것 같소.”

“음?”

백야흠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명은 껄껄 웃으며 백야흠을 끌어안았다.

흠칫하는 움직임에 크게 기꺼움이 떠올랐다.

“다행이구려. 이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로움을 퍼뜨릴 수 있어서.”

동귀어진(同歸於盡).

그것을 뜻하는 말에 백야흠의 입이 벌어졌다.

“허!”

꽈드드득, 용솟음치는 마기와 함께 백야흠의 검이 원명의 복부를 헤집기 시작했다.

거칠고 강하다. 이미 내장은 다 흘러내리며 척추 또한 절반은 끊긴 듯하다.

그럼에도 원명은 웃었다.

“부디 부처의 뜻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바라오.”

화아아아악―!

금빛 기파가 공간을 감싸 안기 시작했다.

그것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이노오오오옴!!!”

백야흠이 날뛴다.

원명은 그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당신이 말하지 않았소. 결국 스러질 생에 무어 그리 미련을 가지느냐고.”

“찢어 죽일 땡주….”

“아미타불.”

쿵!

기파가 일순 무거워졌다.

바닥을 다 까뒤집으며 원명과, 원명이 끌어안고 있던 백야흠의 몸을 짓누른다.

“끄흑…!”

원명은 흐려지는 감각을 애써 일깨우며 기파를 가다듬었다.

선천진기를 모두 소모해 공간에 퍼뜨린 기파를 폭발시키는 수법.

이것은 소림의 무학이 아닌, 언젠가 본 일 있었던 사파의 무공이었다.

‘이로움으로 쓰는 것이니 한 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그리 장난스레 속으로 읊조리며 원명은 눈을 감았다.

콰아아아아아앙―!

공간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

“음, 동귀어진이구나.”

노파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몸은 삐쩍 마르고 팔다리는 긴, 그리고 손톱이 2척이나 되는 기이한 노파였다.

“보나마나 되지도 않는 여유나 부리다 그리된 것이겠지. 쯧쯧, 무공이 아까운 놈이었다.”

권왕 모용걸은 바닥에 무릎 꿇은 채 헉헉 숨을 내쉬며 노파를 올려다봤다.

탄식이 나온다.

‘원명 대사께서….’

끝끝내 목숨을 잃으신 건가.

노파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원명이 갔던 자리에서 터져 나온 금빛 기파와 그 속에 들었던 거력, 또한 이젠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는 원명과 마인의 마기를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지 않나.

참담한 심경이었다.

“에잉, 이쪽도 그만 끝내야겠구나.”

노파가 손을 들었다.

손톱 위로 강기가 덧씌워진다.

막아야 하건만 몸 상태가 여의치 않다.

부끄럽게도, 스스로를 3장로라고 소개한 노파에게 완패해버린 것이다.

‘미안하구먼.’

사백운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에 모용걸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이 똘추 놈은 또 당하고나 있지.”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채애애앵―!

금속음이 들려왔다.

모용걸의 눈이 뜨였다.

“…소소?”

3장로를 막아서는 인영은 다름 아닌 모용걸의 지독한 악연.

“일어나라. 멍청한 놈아.”

중원 강호에서 가장 강한 살수, 살성(殺星) 염소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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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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