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161화 (161/334)

EP.161 십육장 - 집결, 회의 (3)

* * *

어색한 상황.

목리원에게 마일석과 당화서가 마주 앉아 하하호호 웃는 이 상황을 표현하라면 그리 일축할 것이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광경은 목리원이 꿈에나 바라던 풍경이 아니던가.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두 분 다 왜 이러실까.’

다름 아닌 이들의 행동.

그것이 목리원에게 이런 어색함을 주고 있었다.

“그래, 나이가 올해로 스물둘이란 말이지?”

“예, 어찌하다 보니 그만큼 나이를 먹어버렸군요. 아, 혹시 나이가 있는 건….”

“아니, 아니지. 나이가 무에 중요하겠느냐. 중요한 것은 품은 의협심에 있는 것 아니더냐.”

“역시 걸왕 대협이십니다.”

당화서가 나긋나긋 미소를 짓는다.

마일석이 목선오를 흉내 내며 무게를 잡는다.

목리원이 아는 두 사람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혹 경극이라도 하는 것일까.

목리원은 두 사람을 다시 살펴봤다.

“우리 원이가 참 신세를 많이 졌다 들었다.”

마일석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일석은 저런 버릇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호호, 실례라니요. 저도 목 소협에게 도움받은 일이 좀 많던가요.”

당화서가 ‘호호’ 웃었다.

목리원은 당화서가 저리 가식적으로 웃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기루의 루주로 있던 때조차 말이다.

“음음, 이해심도 있고….”

“당연한 것을 칭찬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목리원은 돌연 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두 사람에게 왜 이러는 것이냐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있던가.

두 사람의 대화는 목리원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한참이나 더 이어졌다.

“걸왕 대협은 듣던 대로 호방한 면이 있으십니다. 목 소협이 얼마나 자랑을 해대던지요.”

“그래, 나도 오는 길에 너희 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도 알콩달… 아이구, 이런 말은 실례가 되나?”

“조금도 그렇지 않습니다.”

흠칫, 목리원이 놀랐다.

알콩달콩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당화서에게서 때때로 보이던 맹수의 기세가 느껴졌던 까닭이다.

마일석은 보지 못한 것인가?

고개를 돌리니 마일석은 무게를 잡느라 팔짱을 낀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냐.’

목리원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렀다.

속으론 누군가의 간절한 도움을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닿았다.

“목 아우! 여기 있….”

벌컥! 제갈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목리원은 환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제갈 형!”

제갈산의 표정은 굳게 굳어 정확히 마일석을 향해 있었다.

목리원은 그제야 두 사람이 처음 만난다는 것을 깨닫고 제갈산에게 말했다.

“아! 이쪽은 걸왕님이시오! 걸왕님! 이쪽이 저와 의형제의 연을 맺은 제갈 형이오!”

어색한 침묵이 공간에 감돌았다.

제갈산의 눈동자가 순간 조신하게 웃는 당화서를 향했으나, 순간적으로 드러난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다시 걸왕을 향했다.

이윽고 나온 의문은 그랬다.

“…목 아우, 걸왕 대협이랑 아는 사이였나?”

덜컥, 공간에 있는 모든 이가 들썩였다.

그리고 목리원은 뒤통수를 쎄게 맞은 기분을 느꼈다.

‘그, 그러고 보니….’

걸왕과 아는 사이라는 것을 강호에 들켜선 안 된다.

그것은 마일석이 언제나 목리원에게 강조한 사항이었다.

그렇다.

당화서와 이어온 대화는 목리원과 마일석이 아는 사이였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이어진 대화였다.

슬금슬금 목리원이 당화서와 마일석을 바라보니, 두 사람도 ‘아차!’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아우?”

제갈산만이 의문에 차서 그리 물을 뿐이다.

*

이후 제갈산을 어떻게든 물린 자리.

삼자대면의 상황이 되자 모두가 어색해했다.

“…그러니까, 들켰다 이 말이냐?”

마일석의 말에 목리원과 당화서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마일석은 뒷골이 확 당기는 기분이 들었으나 섣불리 화를 내지도 못했다.

아무렴, 며느리 될지도 모르는 아이와의 대화라는 것에 흥분해 마일석 본인도 목리원이 과거 얘기를 꺼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지 않았던가.

이제와서 화를 내자니 상황이 묘해진 것이다.

“…어쩌다가.”

그 말에 당화서가 나섰다.

“제가, 제가 다 설명드리겠습니다.”

마일석은 착잡해진 얼굴로 당화서를 바라봤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에 임무를 수행하러 떠났던 날의 일입니다.”

이어진 말은 마일석도 소문으로 들었던 독왕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에 집중하면 할수록 마일석은 수만가지 감상이 떠오르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언젠가 함께 싸웠던 독왕의 몰락한 꼴, 그리고 그것을 상대하던 목리원과 끝끝내 붉은 눈동자를 들켰던 일까지.

하나하나가 마일석으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는 것들이었다면 설명이 될까.

“그랬던 것이구나.”

마일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에 당화서가 목리원의 뒤통수를 누르며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걱정하실 상황을 만들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가 알게 된 이상, 목 소협보다 한발 앞서 이런 상황을 막을 것입니다. 그러니 너그러이….”

“되었다. 내게 변명할 필요는 없어.”

당화서와 목리원의 고개가 들렸다.

마일석은 똑 닮은 두 사람의 꼴에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원이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다른 생각보다도 그런 게 먼저 와닿았다.

이리도 비정한 강호에서 이리 따뜻한 사람을 만나 함께하는 목리원의 모습을 보니 참 다행스럽다.

목선오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한결 마음 편해하리라.

-걱정되는구나. 원이는 제아무리 소중한 사람에게도 함부로 말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평생 동안 말이다.

-형님도 참 걱정이 많소.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오.

-그런 사람이 있겠느냐?

‘형님, 있었습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마일석은 부드럽게 웃었다.

“이미 들킨 것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좋게 풀렸다니 내 한 번은 넘어가마. 그리고 음….”

당화서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마일석은 잠시 고민했다.

‘며느리? 며늘 아가? 아니지. 이런 것들은 너무 이르지 않느냐.’

그렇다고 단주나 독봉이라 부르자니 또 너무 정없다.

마일석은 짧은 고민 속에서 이내 답을 찾아냈다.

“…아가.”

당화서가 흠칫했다.

하지만 다행히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다.

마일석은 흡족해하며 말을 이었다.

“원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어 참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구나.”

“당치도 않는 말씀이십니다.”

“아니, 고맙다고 해야 할 터다. 또한 기특하다고 해야 할 터다. 너는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말이다.”

당화서의 고개가 기울었다.

마일석의 미소가 짙어졌다.

“아느냐? 사람을 사람 자체로 볼 줄 아는 눈은 억만금을 줘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이 강호에서는 그렇지.”

목선오의 말을 빌리자면 그랬다.

“가진 재력과 무력, 그리고 인맥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그것들은 개인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어내기엔 덩치가 너무 크지. 그렇기에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틈새로 보이는 본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한데 이미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지 않나.

“초월에 이른 나도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다. 하여 처음엔 원이를 죽여야한다 말했다.”

목리원이 킥킥 웃었다.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일 테다.

마일석은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중에 딱밤이라도 먹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어 말했다.

“한데, 너는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느냐.”

당화서는 머쓱해하는 기색이다.

겸손할 줄도 아는 듯했다.

가산점이다.

“훌륭하다.”

그리고.

“원이를 잘 부탁하마.”

당화서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꽉 쥐어진 주먹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음, 그렇지. 그래도 초월에 오른 내가 이렇게 칭찬해주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지.’

표정도 봐라.

꼭 흥분이 떠올라 있는 것이 무인으로써의 기개가 보이지 않나.

분명 이 칭찬을 밑거름 삼아 더 성장하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자,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마일석은 상황을 정리했다.

“이리 나온 김에 내가 처리할 일이 있다. 원아.”

“예?”

“이번 대회의에 나는 너를 내 곁에 세울 생각이다.”

사실, 무엇보다 이 용봉단의 전각으로 먼저 찾아온 이유를 말해야 할 터다.

“강호는 집요하다. 또한 미지를 두려워한다. 그뿐이더냐. 뒷배로 두고 있는 세력이 곧 힘이 되는 것이 강호다.”

그러니 말이다.

“내가 네 뒷배가 되어주어야겠다. 앞으로 강호를 살아가려면 그게 필요할 듯하다.”

그 말에 목리원의 숨이 멎었다.

*

마일석은 용봉단의 전각을 나왔다.

그리고 직전 했던 이야기를 되새겼다.

‘물론 있는 사실 그대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천살성의 아이는 그 자리에 올 인간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13년 전 강호를 떠나고 어디로 향했는지.

그들은 그것도 익히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 입으로는 말한 적이 없지.’

목선오에게로 향해 그와 지냈다는 진실을 아는 것은 검왕 남궁혁과 살성 염소소 뿐이다.

그리고 그놈들은 그런 이야기를 남에게 꺼낼 인간이 아니다.

즉, 거짓말을 하면 그만인 일인 것이다.

‘나는 원이를 발견하고 그 무재가 아까워 키우기 위해 잠적했다. 그 정도로 설명하면 된다.’

무공의 특이성이나 그들의 의심 같은 것은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지들이 어쩔 거야?’

초월의 무인, 그리고 혈사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영웅 중의 영웅.

걸왕 마일석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마일석 본인이었다.

즉, 그 일을 파헤치려는 노력조차 자신을 욕보이는 일이 된단 말이다.

‘변명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더 신경 쓸 필요도 없어.’

그리 판단하며 맹주인 사백운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아이고! 거지 아재!”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일석의 발걸음이 멎었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순간, 마일석의 인상이 구겨졌다.

“에잉, 뭐냐?”

“벌써 날 잊은 게요? 나요! 나! 술쟁이 진건!”

도왕 진건, 그가 껄껄 웃으며 마일석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마일석은 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그를 떼어냈다.

“네놈 이름을 모를까봐?”

“에이, 섭섭하게 또 왜 내외하고 그러시오. 우리 십 오년만이지 않소.”

“평생 안 보고 싶었다 요놈아.”

도왕 진건.

호방한 성격은 좋지만 그것이 너무 과해 피곤한 인간이었다.

마일석은 벌써부터 기가 빨리는 느낌에 그와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진건은 그런 마일석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말했다.

“그간 잘 지내셨… 아니, 이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이보시오. 아재. 내가 누구랑 같이 왔는지 알고는 있소?”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

“듣고 놀라지나 마시오!”

진건이 과장되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마일석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제 인사는 직접 드리겠습니다.”

중후한 울림이 깃든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마일석은 ‘아’ 하는 소리를 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나 했더니.”

마일석은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제갈 놈이랑 왔구나?”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그곳에 있는 것은 중년의 사내였다.

얼굴 위로 진 주름과 새치가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음에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변하지 않는 무표정에 마일석은 말했다.

“오랜만이다. 요놈아.”

진왕(陣王) 제갈벽.

제갈산의 아버지이자 현 제갈세가의 가주.

그가 무림맹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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