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0 십육장 - 집결, 회의 (2)
* * *
딱밤을 맞는 순간 머리가 ‘징’하고 울린다.
가래가 낀 목소리로 내뱉는 욕지거리가 정겹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을 다시 만나는 일은 그다지도 속을 뭉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목리원은 저도 모르게 눈을 굴렸다.
‘걸왕님이 오셨다는 것은 설마…!’
스승님도 오신 것일까.
기대감을 품고 주변을 바라봤으나, 이내 스러졌다.
“형님은 없다.”
멈칫, 목리원이 떨렸다.
“인석아. 알지 않느냐.”
마일석이 씁쓸하게 웃었다.
목리원도 그것에 비슷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목선오가 중원 무림에 나설 수 없는 이유.
그것이 자신 때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런 표정 지으면 형님이 슬퍼하실 거다.”
마일석의 말에 목리원은 애써 표정을 밝게 만들었다.
그리고 말을 돌려버렸다.
“한데 놀랐습니다! 걸왕님이 여기까지 오실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해서…!”
“나야 못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내 형님의 곁에만 있어서 조금 빛이 바랬지만 걸왕하면 아직도 개방의 전설과도 같은 이름이다~ 이 말이다.”
마일석이 으스대며 웃었다.
목리원은 킥킥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옳습니다! 제가 이 중원에 나와 걸왕님의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목리원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마일석의 입꼬리가 삐죽 솟기 시작했다.
“…그래? 어떤 이야기였느냐?”
“말도 마십시오! 개방 출신으로서는 백 년만에 나온 초월의 무인! 혈사의 최전방에서 단 한 번도 물러나지 않은 호걸 중의 호걸! 청혈색마조차 나가떨어지게 한 절륜한…!”
“그래, 그래!”
마일석의 어깨가 으쓱 솟았다.
“내가 아직 그 정도란 말이지.”
기분이 아주 좋아진 듯했다.
목리원은 킥킥 웃었다.
그러던 중 말했다.
“아참! 스승님은 잘 지내십니까?”
“말도 마라. 얼마 전에 검왕 그놈이 와서 아주 깽판을 쳐놓고 가지 않았느냐.”
움찔,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마일석의 눈이 좁아졌다.
“네놈이지?”
목리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돌렸다.
혹시 또 딱밤인가.
몸엔 절로 긴장이 들어차던 중, 마일석이 말했다.
“잘했다.”
“…예?”
“잘했다는 말이다. 그날 형님이 아주 즐거워하셨어. 네놈이 간 반년 동안 참 적적해하셨는데 비무가 마음에 드셨는지 간만에 크게 웃으시더구나. 아, 물론 검왕 놈은 끝까지 못 이기고 갔다.”
목리원의 머릿속에 두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신선처럼 웃으시는 스승, 그리고 굳은 얼굴을 하던 검왕 남궁혁.
검왕의 그 성격을 돌이켜보면 꽤 분해하면서 돌아갔으리라.
삐죽삐죽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참 다행입니다!”
“그래 이놈아. 일 좀 정리되면 같이 형님이나 뵈러 가자.”
“좋습니다!”
그 이후로도 목리원은 마일석과 꽤 오래 해후를 풀었다.
주로 그간 목리원에게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일석은 목리원의 대처에 때론 웃고, 때론 화를 내며 이야기를 들어줬고, 그런 이야기가 한참이나 이어진 후 마일석이 돌연 ‘큼큼’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목리원이 의아해져 묻자 마일석이 은근슬쩍 말했다.
“그래, 그래서 언제 소개시켜 줄 생각이냐?”
“소개라니, 아! 단원들 말씀이십니까?”
“예끼 이놈아!”
빠악! 하고 마일석이 딱밤을 먹였다.
목리원은 머리 위로 별이 핑핑 도는 기분을 느끼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만들었다.
마일석이 말했다.
“그 있잖느냐! 그거! 그….”
어울리지도 않게, 마일석이 위엄있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큼, 내 소문은 다 듣고 찾아왔다. 그 당문 아가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 일이 있는데 나한테 입 한번 뻥긋하지 않구 뭐하는 게야!”
목리원은 마일석의 말에 눈을 끔뻑이다, 뒤늦게 뜻을 이해하고 얼굴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저와 저는….”
“그래, 소저라고 부른다 이 말이지? 다른 사람은 그런 식으로 칭하지 않던데 말이다.”
마일석의 얼굴이 장난스러워졌다.
주책맞은 기색이 가득한 미소가 목리원의 망막에 새겨졌다.
마일석의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이놈아, 이놈아. 하늘을 속여도 이 걸왕은 못 속인다. 응? 내가 젊을 때는 말이야…!”
마일석이 몰아쳤다.
목리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입술만 벙긋대다, 그 끝에서 마일석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내 잠시 볼일만 보고 올 테니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해두거라!”
목리원은 돌연 위기감을 느꼈다.
*
용봉단의 집무실, 당화서는 멍한 얼굴로 목리원의 말을 되새겼다.
그리하면 할수록 머릿속에서 당장 처한 복잡한 일들에 관한 생각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걸왕님께서 오셨다는 말입니까?”
“그렇소! 그, 그런데에… 그, 이상한 소문을 들으셔서 소저와 나를…..”
“이해했습니다.”
이상한 소문 무슨, 당연한 사실이 퍼진 것일진대.
딩화서의 얼굴이 진중해졌다.
‘그렇단 말이지.’
당화서는 삐죽삐죽 입꼬리가 솟는 것을 애써 참아냈다.
걸왕 마일석.
그와 목리원의 관계가 어떤지는 이미 들은 바 있어 알고 있다.
목리원의 스승인 목선오의 의제.
그러니 목리원에겐 숙부가 되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사람이 만나고자 한다는 데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상견례.’
이쪽은 부모가 없으니 상견례가 맞다.
아무튼 그렇다.
당화서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아갔다.
밀려있는 일에서 시간을 뺄 수 있는가.
그 따위의 것들을 고민하는 게 아니었다.
당화서는 당연히 자리할 것을 전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옷은?’
단정하다.
‘얼굴 상태는?’
동경을 흘긋 봤다.
조금 피로가 묻어있다.
분칠을 조금은 해야할 듯하다.
생각하던 당화서가 이내 ‘아차!’하며 벌떡 일어났다.
‘멱을 감지 않았구나!’
오늘은 급하게 나오느라 머리를 빗으로 정리만 하고 나왔다.
이것이 감점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첫 만남부터 부스스한 꼴을 보일 수는 없는 법.
“목 소협!”
“왜, 왜 그러시오?!”
“준비를 하고 오겠습니다! 딱 한 시진! 걸왕님도 일을 보고 온다고 하셨지요! 조금만 붙잡고 있어 주십시오!”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당화서가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한 마디를 더했다.
“아니, 거기 책상 위는 놔두고 집무실 정리 좀 부탁합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정리도 안 된 꼴을 해선 안 되겠지요!”
“구, 굳이 그러지 않아도…!”
“어허!”
목리원의 몸이 움찔 떨렸다.
평소라면 너무 큰 소리를 낸 것에 미안함이라도 느꼈겠지만 지금의 당화서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대답!”
“아, 알겠소!”
목리원은 허둥대며 집무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꼴을 뒤로한 채 당화서는 숙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경공까지 썼다.
*
용봉단의 전각 한구석에는 작은 별채가 존재했다.
이곳은 맹주 사백운이 살성 염소소를 위해 따로 마련해둔 자리였는데, 평소 자문의 역할 외엔 맹의 어떤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염소소의 성정상 이곳을 방문하는 이는 목리원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한적한 별채의 마루.
오늘은 마일석이 그곳을 찾았다.
“오랜만이구나. 거지야.”
“네년도 그래, 오랜만이다. 꽤 늙었구나?”
마일석의 말에 염소소가 끌끌 웃었다.
여유로운 태도.
마일석은 그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곧 죽을 나이인데 잘도 살아있단 말이지.”
“네놈은 젊은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젊기는, 내가 나이가 육십이 훌쩍 넘어가는데.”
마일석은 탁상 위로 올라온 닭고기를 뜯으며 염소소를 노려봤다.
여하튼 마음에 안 드는 할망구.
마일석은 염소소를 그리 칭했다.
별달리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사성육왕이라 칭해지는 이들이 아직 젊을 적, 막 목선오가 강호에 나와 검군(劒君)이라는 무명을 얻었을 때 있었던 사건 때문이다.
‘이 할망구만 아니었어도!’
그날 마일석은 막 목선오와 의형제를 맺고 함께 강호를 주행하고 있었다.
와중 나타난 염소소가 목선오와 대화하고 싶다 했었는데, 당시 염소소는 천면살귀(天面殺鬼)라는 꽤 위험한 별호로 불리던 무인이었던 만큼 마일석은 그녀를 막고자 했었다.
그리고 독에 당해 열흘을 앓아 누웠다.
얼마나 수치스럽던지.
마일석은 아직도 그날 목선오에게 폐를 끼친 일이 가슴에 사무치는 기분을 느꼈다.
“이 속 좁은 거지야. 아직도 그 일을 담아 두느냐?”
“아직도?”
마일석이 으르렁대자 염소소가 말했다.
“옛날 얘기에 더 빠져봐야 뭐하겠느냐. 그래, 지금 얘기나 해보자꾸나. 목가놈은 잘 있더냐?”
“알아서 뭐 하시게?”
“한 번 찾아가 보려 그런다. 그놈이 뭘 하고 사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알아서 잘 살고 계시다.”
“그래, 원이 그놈을 보니 알겠더구나.”
마일석의 입이 꾹 다물렸다.
‘…역시.’
염소소의 눈은 속일 수 없는 듯했다.
목선오에 대한 집착이라면 남궁혁과도 비견될 수준인 게 바로 이 염소소다.
그러니만큼 목리원에게서 묻어나는 목선오의 검술을 바로 알았던 것이겠지.
마일석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선한 놈이다.”
“안다. 목가놈 젊을 적을 꼭 닮았어.”
“괜한 짓거리는 할 생각 마라.”
“그런 생각 없다 요놈아.”
염소소는 끌끌 웃더니 이어 말했다.
“그저 지켜보고 싶은 게지. 목가놈이 무명까지 버려가며 키운 놈이 과연 어떻게 자랄까. 궁금해서 말이다.”
“당연한 걸 묻는구먼.”
마일석은 닭고기를 쭉 뜯어먹곤 말했다.
“협객이 될 거다. 형님에 버금가는 위대한 협객이.”
마일석의 눈엔 강렬한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그 속엔 그가 존경하는 목선오와, 이제껏 봐온 목리원을 믿는 기색이 가득했다.
염소소는 말했다.
“강한 힘, 재능, 그런 것들은 언제고 사람을 사도로 이끄는 법이지. 원이 그놈은 더욱 그래. 비정상적인 재능이다. 강호에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재능이다. 모르는 게다.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올 테다.”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놈이니까.”
“거지야, 그것은 세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형님은 확신한다.”
마일석은 또 닭고기를 집으려다, 어느새 뼈만남은 고기를 보곤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살아는 있나 궁금해서 와봤다. 살아있는 걸 봤으니 가보마.”
“가보기는, 회의 때가 되면 다시 볼 것을.”
“개뿔이.”
마일석은 ‘흥!’ 코웃음치며 돌아섰다.
*
말은 그리 했으나 마일석도 놀라긴 했다.
다시 만난 목리원의 성장이 너무 빨랐던 까닭이다.
고작 반년 만에 초절정.
마일석은 그런 일이 가능함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미심쩍음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천살성과 극마지체의 조합이라고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저 속도는 말이 안 된다.
고민을 이어가던 마일석은 이내 잊고 지냈던 과거를 떠올렸다.
‘…원이 그놈을 찾은 곳이 제단 위였지.’
혈마 단천화를 쓰러트리고 들어간 쪽문 안쪽.
갓난아기였던 목리원은 분명 끔찍한 대법이 실행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제단 위에 있었다.
그 대법이 그저 극마지체와 천살성만을 위한 것이었나?
마일석은 의문을 느꼈다.
‘조사해봐야겠군.’
겸사겸사다.
이왕 중원에 나온 차다.
마일석은 혈마의 대법에 관해 더욱 깊이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상념에 빠져 걷길 잠시, 어느새 마일석은 용봉단의 집무실 앞에 다다랐다.
안에서 두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나는 목리원이고 하나는 낯선 기척.
‘저게 그 소저인가 하는 아가씨겠지.’
큼, 크흠!
마일석은 헛기침하곤 자세를 다잡았다.
복잡한 생각 또한 미뤄두고 당장 당면한 일에 집중했다.
‘내 어떤 아가씨인지 한번 알아봐야지!’
목선오도 꽤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니 돌아가 말해주면 아주 좋아할 터다.
“게 있느냐!”
마일석이 말하자,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걸왕님! 오셨습니까!”
목리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뒤, 피부가 뽀얗고 인상이 날카로운 여인이 싱긋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걸왕님을 뵙습니다. 용봉단의 단주, 당화서라고 합니다.”
잠시 그녀를 보던 마일석은 흡족하게 웃었다.
‘미인이구만!’
목리원과 있어도 꿀리는 얼굴은 아니다.
외모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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