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십이장 임무, 조사 (3)
* * *
거리를 돌아다닌 지 두 시진 정도가 지났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저녁.
그리 오래 돌아다녔음에도 수확은 없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었다.
“역시 없습니다. 그리 오래 돌아다녔음에도 무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어요.”
당화서의 말에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제갈산은 제 어깨를 두드리며 답했다.
“일단 진법은 다 깔아놨소. 최소 절정 이상은 되어야 뚫을 수 있는 수준이고, 만약 뚫린다면 이 옥돌이 진동할 것이오. 다들 품에 지니고 계시오.”
제갈산이 옥돌 다섯 개를 꺼내 각각 단원들에게 건넸다.
표면이 매끄러워 만지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옥돌이었다.
“이게 진법의 재료구려.”
“목아우, 부수거나 하면 안 된다네?”
제갈산이 킥킥 웃으며 말하자 목리원이 헛숨을 삼키며 품에 옥돌을 넣었다.
그리하고선 안정된다는 듯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하면 되겠소?”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턴 조사를 시작해야겠지요. 바깥의 소문을 모으는 것은 제갈산. 네가 하거라.”
“위장이라도 해야겠구려.”
“꼼꼼히 해야 할 것이다.”
제갈산은 이들 단원 중 유일하게 수준급의 위장을 할 수 있는 사내다.
그라면 분명 들키지 않고 소문을 모아올 수 있을 터.
“백봉, 당신은 나와 함께 움직이지.”
“어딜 가는데요?”
“흑도 문파.”
혜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있긴 한가요? 무인들은 하나도 안 보였다면서요.”
“그래서 가는 것이오. 내 알기로 가까운 곳에 패검방이라는 곳이 있소. 그곳을 찾을 것이오.”
“소저! 나는 무얼 하면 되겠소?!”
목리원이 열의에 차 물었다.
그 옆의 남궁진천 또한 드러내지 않았다 뿐이지 역할을 주길 기다리는 기색이었다.
일운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당화서는 잠시 미안해하는 기색으로 말을 삼키다, 이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장원을 지켜주십시오.”
“음?”
“거점 방어입니다. 사실 임무의 핵심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오!”
목리원은 거점 방어라는 말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납득했다.
남궁진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와중 당화서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한 일운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시키기 불안하신 게구나.’
뭘 시켜도 불안하니 안에 박아둬야겠다.
그런 판단일 터다.
당화서와 일운의 시선이 교차했다.
당화서는 눈짓으로 뜻을 전했다.
스님, 저 둘 좀 잘 간수하고 있어 주십시오.
일운은 믿고 맡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두 사람은 싸움이 아니면 쓸 데가 없었다.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무사히 찾아온 다음 날 아침, 당화서와 혜운이 장원을 나섰다.
제갈산은 그보다 한 발 앞서 위장에 필요한 것들을 든 채 나간 상황.
“잘 다녀오시오!”
목리원은 크게 손을 흔들며 당화서를 배웅했다.
그렇게 남궁진천과 일운까지 셋만 남은 상황.
목리원이 물었다.
“그럼 거점 방어를 해야겠구려!”
거점 방어.
왜인지 있어 보이는 단어란 생각에 설레어 말하자 일운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와중 남궁진천이 말했다.
“아니, 우리도 나선다.”
일운의 표정이 굳었다.
“…예?”
“검룡형! 소저가 집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소!”
“멍청한 놈. 거점은 진법이 지켜주는데 뭣하러 여기 있나. 독봉이 우릴 여기 둔 이유를 모르겠나?”
남궁진천의 말에 목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법만으로는 마음이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니오?”
머리만 좋고 눈치는 없는 목리원은 말의 속내를 헤아리는 일에 능하지 못했다.
게다가 말한 상대가 당화서라면 더욱 그랬다.
목리원은 당화서의 말이라면 밤하늘의 별이 사실 신선이라는 것도 믿을 정도로 그녀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당연 장원을 지켜야하기에 당화서가 자신을 여기 뒀다.
그리 생각하는 것이다.
남궁진천은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가 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쿵!
목리원이 충격 받은 듯 굳은 표정을 만들었다.
“그, 그게 무슨…!”
“단원들이 찢겨 움직이는 상황이다. 얻어야할 정보는 많은데 장원에 사람을 놀린다? 이게 옳다고 보나?”
“그건 맞지만….”
“묵룡, 너는 무시 받는 채로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일을 할 수 있나?”
남궁진천은 의도적으로 목리원을 자극했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남궁진천은 자신을 못미덥게 보는 당화서에게 본 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본디 신경 쓰지 않는다 뿐이지, 남궁진천은 꽤나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런 만큼 임무 상황에서 소외되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림도 없지.’
귀찮은 일에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경우가 달라졌다.
남궁진천은 더 많은 성과와 더 많은 영약이 필요했다.
“대답해라 묵룡.”
성과를 위해서라면 목리원의 무력이 필요하다.
일단 불이 들어가면 물불 안 가리는 목리원과는 다르게, 남궁진천은 ‘만약’이라는 상황을 대비해 안전장치 정도는 만들 줄 아는 사내였다.
목리원은 몸을 부르르 떨며 혼란을 드러냈다.
“소, 소저가…!”
당화서가 자신을 못미더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기엔 남궁진천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가슴이 시리다.
제아무리 사리에 밝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곤 하나 이리 임무에서 놀릴 정도라고 생각하니 괜히 배신감이 떠올랐다.
목리원의 표정이 조금 불퉁해졌고, 남궁진천은 삐뚜름하게 웃었다.
“증명. 해야 하지 않겠나.”
“…검룡형의 말이 맞소.”
목리원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야 하오!”
“그럼 가지.”
“알겠소!”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장원의 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일운은 그때까지도 ‘어? 어?’하며 당황하다, 일단 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을 따라 걸었다.
텅 빈 장원만이, 직전까지 있었던 일의 편린을 보여주고 있었다.
*
막상 나온 참이었으나, 세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시장바닥에 멍하니 서있는 것뿐이었다.
“…검룡형. 그래서 무얼 하면 되겠소?”
남궁진천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두지 않았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남궁진천은 눈까지 감아가며 귓속을 파고드는 속닥거림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질적인 대화를 찾기 위한 것이다.
‘하오문도가 있다면 식별할 수 있을 터.’
한명은 벽안에, 또 한명은 스님, 나머지 한명은 눈이 다 아릴정도의 미남이니 시선이 안 끌릴 수가 없었다.
이질적인 대화는 금방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용봉단이구먼.
오늘도 나왔군. 저기 저 스님이 권룡인가?
여긴 대체 무슨 일로 온 겐지….
구경꾼으로 여겨지는 이들의 대화를 흘려보냈다.
백도 무림이 이곳까지 발을 뻗으려는 것인가?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겠소. 이쪽이나 그쪽이나 다를 게 뭐가 있다고.
무언가를 추측하는 듯한 속삼임.
역시 흘려보냈다.
‘없는 건가?’
남궁진천이 그리 판단한 순간.
보고를….
그런 말이 들려왔다.
남궁진천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곳에 있는 것은….
“찾았다.”
골목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대화중인 기녀 둘이었다.
남궁진천은 지체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목리원과 일운이 의아해하면서도 그 뒤를 쫓았다.
남궁진천은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움찔 떨며 기녀들이 골목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확신을 더했다.
‘수상하군.’
하오문의 문도일지도 몰랐다.
남궁진천은 기감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내공은 없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빠르다.
평범한 여인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을 정도로.
아마 형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속도를 더할 수 있는 간단한 보법일 터.
남궁진천이 기녀들을 뒤쫓기 시작하자 그제야 기녀들의 이상한 점을 눈치 챈 목리원과 일운이 표정을 굳혔다.
“스님.”
“예, 보법이 맞습니다.”
남궁진천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다.
‘실수, 혹은 함정.’
실수로 말을 흘렸다가 들켜 도망가는 것이라면 향하는 곳은 본거지일 터다.
그게 아닌 함정이어도 좋았다.
마찬가지로 심문과 인질에 쓸 인재를 찾은 것이었으니.
기녀들은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거리에 보이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없었다.
한낮인데도 어둑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로 외진 골목.
그곳에서 기녀들이 허름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정지.
남궁진천이 전음으로 목리원과 일운에게 말했다.
안에서 기운 세 개가 더 느껴진다.
나도 느끼고 있소.
목리원이 답했다.
기감을 날카롭게 벼린 상태.
눈을 감은 채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집중하던 목리원은, 이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무인이오.
느껴지는 세 개의 기운은 모두 무인의 것이었다.
귀주 땅에 온 이후로 한 번도 본 일이 없던 그 무인 말이다.
목리원의 표정이 날카로워 졌다.
흑도의 무인.
하오문이 다른 흑도에 비해 온건한 편이라곤 하나, 그것이 그들의 정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로부터 하오문이라하면 흑도의 온갖 더러운 일을 뒤처리해주는 문파로 명성이 높았다.
어떡하오?
목리원이 묻자 남궁진천이 답했다.
돌입한다. 함정이면 뚫는다.
그걸 위해 목리원을 데려온 것이었다.
목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운 또한 불안해하는 듯 잠시 끙끙대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까지 와서 물러설 수도 없다는 판단이 첫째.
안에서 느껴지는 무인들의 경지 수위가 일류라는 것이 둘째였다.
만약 함정이나 독을 깔았다 해도 능히 제압하고 돌아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남궁진천이 지체하지 않고 건물의 입구에 다가섰다.
손은 검자루 위로 얹은 채, 발로 ‘콰직!’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문을 밀었다.
기습해오는 순간 바로 검을 휘두르겠다는 생각으로 해낸 행동.
그리고.
“검룡을 뵙습니다.”
그런 그를 반긴 것은 떡대 무인 두 명 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초한 인상의 앳된 여인이었다.
멈칫
남궁진천이 검을 뽑으려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뒤따라온 목리원과 일운 또한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예상 외의 상황.
남궁진천은 미간을 구기며 생각했다.
‘유인?’
유인은 맞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을 보니 암습이나 함정을 위해 부른 것은 아닌 듯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들의 태도는 환대였다.
‘꼭….’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처럼.
스릉
남궁진천은 검을 뽑아 여인에게 겨눴다.
그러자 떡대 무인 두 명이 여인의 앞을 막아섰다.
똑 닮은 생김새.
쌍둥이인 듯하다.
“누구냐.”
남궁진천이 묻자 여인이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녀의 입이 열린 것은 그 직후.
“…서예입니다.”
서예라고 제 이름을 밝힌 여인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하오문주, 서예입니다.”
목리원의 숨이 멎었다.
놀란 듯 치켜 뜨인 눈, 그리고 사실 여부를 판단하려는 듯 바삐 움직이는 눈동자.
목리원이 당황하며 그녀를 살피던 중, 서예가 용봉단의 세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주십시오.”
도움을 바라는 말.
공간이 침묵에 휩싸였다.
남궁진천은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할까, 잠시 고민하다 이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결정을 끝냈다.
“싫다.”
남궁진천이 섬전처럼 쏘아져 나갔다.
빡!
검집을 들어 일수에 쌍둥이 떡대를 기절시켰고.
픽! 픽!
서예를 점혈 했다.
“읍!”
아혈과 마혈, 입과 몸을 봉해 쓰러트렸다.
너무 돌발적인 행동이라 목리원과 일운이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짓자, 남궁진천이 그녀를 들쳐 메며 말했다.
“돌아간다. 심문하러.”
남궁진천은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