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95화 (95/334)

〈 95화 〉 십이장 ­ 임무, 조사 (2)

* * *

귀주로 가는 여정은 짧지 않았다.

호북에서 남쪽으로 마차를 타고도 보름은 족히 걸리는 여정.

꽤나 지루한 여정이었고, 누군가에겐 애타는 여정이었다.

말해 뭐할까, 당화서였다.

당화서는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결국 왔구나.’

저 앞으로 귀주의 성벽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흑도들이 날뛰는 난장판… 정도는 아니겠지만 꽤나 혼란스러운 도시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엔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하오문의 색녀들이 있을 것이다.

꽈악

당화서의 주먹이 쥐어졌다.

눈은 번들거리는 빛으로 타올랐다.

절대 목리원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언뜻 비치고 있었으나, 그런 뜻을 알지 못할 목리원의 입장에선 그랬다.

“제, 제갈형. 소저가 왜 저러는 것이오? 너무 무섭소….”

“알면 다친다네.”

제갈산은 목리원을 외면했다.

목리원은 안절부절못하며 당화서를 훔쳐봤다.

그러던 중.

“목 소협.”

“예!”

“이리 붙으십시오.”

당화서가 손짓했고 목리원이 그녀의 옆으로 붙었다.

그러자 당화서가 목리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소저…?”

“아시겠습니까. 절대 이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누가 이리 좀 와보라고 말해도, 잠시 도와달라고 비명을 질러도 꼭 잡고 있으십시오.”

“하,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할 수는….”

“진짜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제가 돕겠습니다.”

당화서의 눈빛이 사뭇 난폭했다.

기녀들이 술수를 부릴 것을 대비한 말이었고, 목리원으로선 그냥 무서운 말이었다.

“아, 알겠소…!”

당화서는 그제야 흡족하게 웃었다.

맞잡은 손엔 한껏 힘이 들어가 있는 상황.

당화서는 물끄럼 제 손을 바라봤다.

제 것보다 훨씬 길고 두꺼운 손.

조금은 거칠고, 따스한 기운이 가득한 손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색녀들을 향한 경계심에 미처 떠올리지 못했으나, 생각해보면 목리원과 손을 맞잡고 걷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연인처럼도 보일 것이다.

‘…꽤.’

튀어나오는 것은 헛기침이었다.

“큼, 크흠….”

당화서의 뺨이 붉어졌다.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음험한 속내는 뒤늦은 기꺼움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화서야, 참 좋은 수를 떠올렸구나.’

당화서의 얼굴이 맑게 개자, 제갈산과 혜운은 입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색녀가 저기 있네.’

목리원을 노리는 색녀가 이곳에 있노라고.

*

검문은 빠르게 지나갔다.

지난 섬서행과는 궤를 달리 할 정도로 빠른 속도.

당연, 이번엔 정체를 드러낸 채 움직이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백도 무림맹 용봉단.

그 이름값은 농담으로라도 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곳이 흑도의 땅인 귀주라 한들 마찬가지였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용봉단은 새파란 남궁진천의 눈깔만으로 확실히 식별이 가능한 터라 검문에 큰 수고가 필요치 않았다.

마침내 들어온 귀주성 내부에서 그들을 반기는 것은 피부가 다 따가울 정도로 꽂혀오는 시선들이었다.

“…생각보다 더 주목받는 듯하구려.”

“예, 아무래도 흑도의 땅이니.”

지금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흑도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양민들이었으나, 그들이 보기에도 흑도의 땅에 찾아온 정파 후기지수들은 생소한 구경거리일 것이 뻔했다.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진한 경계와 옅은 호기심.

당화서는 그 시선을 한차례 확인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럼 움직이지요. 장원은 미리 수배해두었습니다.”

귀주성의 거리를 걸었다.

장원까지는 걸어서 일각 정도의 거리.

안 그래도 적지인데다가, 신경 써야 할 것이 적뿐만 아니라 색녀까지 있던 당화서는 은연중 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이상을 발견한 것은 그런 예민함 덕이었다.

당화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인이 이렇게까지 없다고?’

이상했다.

그 악명 높은 흑도의 땅인 귀주일진대 예까지 오며 무인이라곤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기를 숨긴 것인가.

혹은 어딘가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

둘 다 틀렸다.

확신엔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게, 흑도들이 전원 절정인 자신들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고수라면 백도 무림을 옛적에 망했을 것이 아닌가.

결국 길을 걸으며 결국 얻은 것은 의아함뿐.

장원에 도착한 당화서는 문을 다 걸어 잠그곤 단원들에게 말했다.

“느꼈습니까?”

“무엇을 말이오?”

“무인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흠칫

단원들의 몸이 떨렸다.

그들도 그제야 그 이상함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흑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늦추지 않느라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오는 길에 흑도를 만나지 않은 것은 다행인 일이 아니라,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무슨 상황인 것 같습니까?”

당화서의 질문에 가장 먼저 제갈산이 답했다.

“의도적으로 숨긴 게 아니겠소? 휘하에 무공을 배우지 않은 양민들만 이용해서 말이오.”

“일리가 있다. 다른 의견은?”

바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단원들 전원이 제갈산의 말이 가장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리 침묵이 있길 잠시.

정적을 깬 것은 목리원이었다.

“…하오문.”

“음?”

“하오문도들. 그들일 수도 있다고 보오.”

바로 출발 전 하오문에 대해 염소소에게 들은 바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하오문은 꼭 무인만을 문도로 받아들이지 않잖소. 골목의 왈패나 일수꾼, 기녀나 점소이 같은 이들 또한 문도로 받는다고 들었소. 그러니까 말이오….”

목리원이 말을 삼켰다.

그의 얼굴엔 께름칙한 기색이 있었다.

“우리가 이곳까지 오며 만난 이들 중 누군가는….”

아니, 누군가로는 모자랐다.

“그들 모두가 하오문의 문도일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오.”

단원들이 경직됐다.

“그 말은….”

“우리의 행적이 다 드러나고 있을 수도 있소. 밝히려고 하는 범위를 넘어서까지.”

평소라면 목리원 주제에 꽤나 날카로웠다고 우스갯소리나 했을 말.

하나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용봉단은 이름 높은 후기지수이긴 하나 결국 강호초출의 새내기들이었다.

그들은 상정하지 못한 상황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위험한 거 아니오? 만약 흑도가 마인과 결탁한 상황이라면….”

끔찍했다.

언제 목에 칼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봐야할 터다.

섬서 때와는 다르게 이곳엔 급할 때 도움을 요청할 맹의 지부조차 없었다.

제갈산은 떠오른 생각들에 몸서리를 쳤다.

이어 말한 것은 일운.

“장원 주변에 진법이라도 깔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갈산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제갈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진법이라면 최소한의 방어책은 될 터.

침입자들에게 혼란을 줄 만한 진법은 그도 몇 개 아는 게 있었다.

“나는 일단 진법을 깔러 가보겠소. 일운 스님, 도와주시오.”

“예, 그럼 당 시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저도 갈게요.”

혜운까지 제갈산과 일운을 도우러 나간 직후.

남궁진천이 말했다.

“가만 앉아있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고 본다.”

그리 말한 남궁진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화서가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미끼가 되어 보지. 밖을 나돌아다녀 보겠다.”

“불허합니다. 아는 게 없는 상황에서 너무 위험해요.”

“그럼 묵룡을 데려가지. 초절정의 마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도주까지는 가능해지지 않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나, 이번엔 조금 다른 이유로 당화서는 망설임을 떠올렸다.

‘저 둘이?’

목리원과 남궁진천.

용봉단의 정신연령을 깎는 대표주자들이었고, 무공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평균 이하의 능력을 보이는 모질이들이었다.

미끼라면 잘할 터다.

저리 허술하니 길을 가던 사기꾼까지 달라붙을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신용이 안 됐다.

당화서는 눈을 좁히며 말했다.

“불허.”

“그럼 어쩌라는 거지?”

당화서가 끙끙대며 고민했다.

확실히 남궁진천의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비적이기만 하는 것은 하책이었다.

세상이 훤한 대낮에 무어라도 알아내지 못한다면 밤새 불안에 제대로된 휴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 뻔했다.

당화서는 이내 판단을 내렸다.

“…저까지 셋이서 가지요.”

이 모질이들에게만 일을 맡겼다간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른다.

더불어 생각하면 그랬다.

‘하오문.’

이 모든 이상의 원인이 정말 그들이라면, 위험했다.

목리원의 순결이.

당화서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빛났다.

*

대로변은 이곳의 흑도의 땅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활발했다.

하기야, 이리 상인과 주민들이 지내는 대로변까지 모두 음울함에 차 있었다면 이 땅에 남아있으려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당화서와 목리원, 그리고 남궁진천은 최대한 긴장한 기색을 숨기며 평온을 연기했다.

그리하며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로 들려오는 것은 제 삶을 사는 이들의 말소리.

드문드문 섞여 들어오는 것은 자신들을 향한 숙덕거림이었다.

“저기 저들이….”

“무림맹의 인사들이 어찌….”

“어허, 모른 채 지나가세나. 괜히 얽혀봐야 좋은 일은 없을 걸세.”

특별할 것이 없는 속삭임들이었다.

하나 긴장을 늦춰선 안 될 일.

식자재 따위를 사러 나온 것처럼, 당화서는 주변의 노점들을 쭉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그리할수록 의아함을 짙게 만들었다.

‘역시 무인은 없다.’

기감을 아주 날카롭게 만들면 무공 흉내 정도는 내는 수준의 삼류 무인들은 잡혔다.

하나 저 정도 수준은 양민이라도 쉽사리 닿을 수 있는 경지.

어딘가에 소속된 무인이라기엔 어폐가 있었다.

‘하오문?’

그런 가능성을 떠올려봤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속에 차오르는 불안감.

그리고 계속해 이어지는 여러 가정들.

그런 것에 당화서의 미간이 조금 좁아지던 중이었다.

“아아….”

어디선가 여인의 탄식이 들려왔다.

당화서는 홱 하고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부릅 떴다.

“얘, 저기 좀 보렴. 정말….”

“맛있… 잘생긴 공자님이시네요….”

기녀 둘이 얼굴을 붉힌 채 속삭이고 있었다.

목리원을 바라보며.

“허….”

당화서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목리원과 손을 잡고 있는 자신은 보이지도 않는 것인지, 지껄이는 꼴이 맹랑하다.

‘저기 있었구나. 하오문의 색녀.’

당화서의 부릅 뜨인 눈이 기녀들을 정통으로 꿰뚫었고, 이윽고 기녀들이 당화서와 눈을 마주쳤다.

“히익!”

화들짝 놀라 새된 소리를 흘린다.

기녀들은 그리하곤 당화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골목 뒤로 사라졌다.

‘쫓아?’

아니다.

순간 머리에 열이 올라 하오문의 색녀로 치부했지만, 아직 확실치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있는 이들이 하오문일지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가정인 상황이었다.

섣불리 그들을 추격해 추궁하는 꼴을 보였다간 도리어 어딘가에 있을 흑도들의 경계심만 키워주는 꼴이 될 터.

당화서는 빠득빠득 이를 갈며 분을 삭혔다.

‘화서야, 너는 미끼가 되러 나온 것이다.’

그리 속으로 되뇌었다.

고개가 홱 전방을 향했다.

열이 바짝 오른 듯한 표정에, 바로 옆에서 손을 잡고 있던 목리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소저가 많이 긴장 중인가 보구나!’

적들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

그러니 대충 조사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선 안 될 터다.

…라고, 목리원은 임무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속에 차오르는 ‘오늘따라 소저가 무섭다’라는 감상을 떨쳐내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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