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십이장 임무, 조사 (1)
* * *
용봉단의 일상은 평온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사고와 그에 따라 불려 다니는 당화서의 분노를 평온이라 말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그런 나날이 이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음 임무입니다.”
두 번째 임무가 하달되었다.
용봉단의 집무실.
상석에 앉은 당화서가 말했다.
“이번에는 조사 임무입니다.”
“조사 말이오?”
“예.”
당화서가 들고 있던 지도를 상 위로 펼쳤다.
중원의 지도였고, 그 지도 곳곳엔 검은색으로 점이 찍혀 있었다.
“지금까지 맹에서 찾은 마인들의 위치입니다. 그리고 적혀있는 것은 그들의 위장 신분입니다.”
단원들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이렇게 많단 말이오?”
“위장 신분도 평범하진 않군요. 상인에 지주에 무관 사범에….”
목리원과 일운의 말대로 ‘어떻게?’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마인들은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다.
중원 전역에서 말이다.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예, 하루 이틀 준비해서 만들 수 없는 신분들이나 범위지요. 이에 맹이 추측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마인들의 침공은 적어도 십 년도 더 된 과거에 시작되었다는 것.”
분위기가 삼엄해졌다.
혜운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일리 있네요. 바로 전에 갔던 임무에서도 오강악의 위장 신분은 소가장의 데릴사위였죠. 기간이 짧았다곤 하지만 그런 명가의 데릴사위가 되려면 과정에서 오랜 준비가 필요했을 거예요.”
“예, 하여 받은 것이 이번 임무입니다.”
당화서가 밀서를 손에 쥔 채 흔들었다.
임무 내용이 담긴 밀서였다.
“뭐죠?”
“우리는 귀주로 갑니다.”
“귀주라면….”
“흑도들의 땅이지요.”
목리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곳이오?”
“마인들이 세를 넓히며 처음 자리했을 곳이 남쪽으로 판단된 까닭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인들의 세력은 아래쪽일수록 더욱 강성하게 펼쳐져 있지요.”
“거점을 찾는 건가.”
남궁진천의 말에 당화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인들도 은밀히 중원에 만들어둔 지부가 있을 겁니다. 저희는 마교의 지부를 찾아내야 합니다.”
조사 임무.
흑도들의 땅.
그리고 마교의 지부.
쉽지 않은 임무임은 그것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저번처럼 위장은….”
“없습니다.”
목리원이 의아해하자 당화서가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엔 정체를 드러내고 갈 겁니다. 한 마디로 미끼지요.”
“무엇을 낚는 것이오?”
조사 임무라면 당연 위장이 훨씬 좋은 수였다.
한데도 그런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미끼를 자처하는 이유는, 그리고 그리해서까지 낚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당화서가 삐뚜름하게 웃었다.
“흑도.”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미소였다.
“마인과 결탁했을 가능성이 있는 흑도들을 찾을 겁니다.”
*
임무의 시작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점.
목리원은 염소소를 찾았다.
“호오, 귀주말이냐?”
“예!”
“그래, 확실히 귀주라면 위장이 어렵긴 하겠구나.”
“예?”
“미끼가 되는 것 말이다. 비단 흑도를 낚기 위한 것만은 아닐 터다.”
목리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염소소는 허허 웃으며 설명을 더했다.
“귀주에는 하오문이 있지.”
“아…!”
하오문.
백도 무림으로 치면 개방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흑도의 정보조직이다.
주로 왈패나 기녀로 위장한 이들이 속한 조직이었고 그런 만큼 정보의 종류는 뒷거래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룬다.
즉, 귀주에 있는 그들 모두가 위장의 귀재라는 말이다.
“서투른 위장은 도리어 경계심을 자극한다는 말이군요!”
“그래, 바로 맞췄다.”
목리원은 그제야 이해했다.
확실히 용봉단의 서투른 위장으론 그들은커녕 길가던 양민들도 제대로 속일 수 없을 터였다.
어차피 통하지 않을 위장이라면 차라리 대놓고 돌아다니는 편이 더 합리적이리라.
“으음… 그럼 하오문도 마교와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모를 일이지. 그네들은 문주의 말이 아니라면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는 것들이니.”
“문주 말입니까?”
“그래, 하오문주 말이다. 그것들은 문주의 명이라면 지옥불에라도 들어갈 것들이다.”
염소소의 입매가 삐뚜름해졌다.
“문주가 마인과 결탁했다면 문도들은 제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마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 반대라면 마인들을 괴롭히고 있을 테고.”
“으음… 어렵군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그저 임무에 충실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선배님은 하오문과 엮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꽤 많이 엮였지. 그네들 전대 문주를 내가 썰었거든.”
흠칫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염소소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 그놈이 글쎄 기녀들을 빼돌려 인육으로 가공해 팔지 않더냐.”
“그, 그런…!”
“실상 지금 문주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이유도 그와 연관되어 있다. 문도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점이 감동을 줬다나, 인간이라는 동물은 저를 지켜주는 이에게 호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더냐.”
목리원은 염소소의 말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대 문주를 아시는 겁니까?”
하오문의 문주는 저 무림맹주 사백운도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라 했건만, 염소소는 왜인지 문주에 대해 아는 듯 말하고 있었다.
목리원의 예상은 맞았다.
“얼굴 정도야 안다.”
“그, 그럼 문주가 마인과 결탁했을지 여부도 아는 것 아닙니까?!”
“모른다.”
“으잉?”
“그것이 원체 계산적이어야지. 아마 마인을 도왔다 해도 이익 때문일 것이고, 마인과 척을 졌다 해도 이익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의 손익이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이상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염소소가 차를 호록 마셨다.
목리원의 머리는 조금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으음, 혹 조언을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귀주에서의 행동 요령 같은 것 말입니다.”
“하나만 지키거라. 절대 기녀들에게 몸을 내어주지 말 것.”
목리원의 눈이 끔뻑였다.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딱 속으로 다섯을 셀 시간이 지나고.
“그, 그럴 일은 없습니다!”
목리원이 새빨개진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처음 강호에 나온 날, 당화서가 운영하던 기루에서 기녀들에게 시달린 일.
턱까지 덜덜 떨며 부끄러워하는 목리원의 모습에 염소소가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거기 기녀들이 기술이 좀 좋아야지.”
기술.
왜인지 신경 쓰이는 단어에 목리원의 귀가 솔깃해졌다.
눈은 질끈 감겼다.
‘유, 육욕에 져서야 협객이 되겠느냐!’
새삼스러운 말을 하자면 목리원은 한창 때의 남성이었다.
그것도 야릇한 일이래 봐야 상상 속에서나 해내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 들이닥치면 부끄러움에 아무것도 못 하는 수줍은 많은 18세.
차오르는 걱정과 미묘한 설렘.
그런 것들에 시달리며 염소소와의 대면을 끝낸 목리원이 이어 찾은 사람은 제갈산이었다.
기녀가 유혹하면 어찌할 건지 묻자, 제갈산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거 목아우도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구먼.”
“음? 무슨 말이오?”
“기녀는 임자가 없는 여인이 아닌가. 대체 그런 여자들을 무슨 맛으로 만나나.”
목리원의 입이 꾹 다물렸다.
그의 얼굴 위론 참으로 오랜만에 제갈산에 대한 경멸이 떠올랐다.
괴룡 제갈산.
참 좋은 사람이지만 그는 유부녀를 좋아하는 기이한 성벽이 있었다.
이런 기벽은 고쳐야 마땅하다.
그리 판단한 목리원은 이 일을 당화서에게 일렀고, 제갈산은 설사에 시달렸다.
*
당화서는 고민에 빠졌다.
눈 밑으로 그늘이 질 정도로 심각한 얼굴로 하는 고민은 다른 게 아니었다.
‘기녀?’
목리원이 자문에게 들었다는 정보였다.
귀주엔 하오문이 강세를 이루고 있고, 그들 중 기녀들은 엄청난 기술로 외지인을 유혹해 정보를 쏙 빼간다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술수였다.
당화서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수양현에서의 첫 만남 때, 기녀들 사이에 끼여 헬렐레하던 목리원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남녀관계엔 그리도 무지한 주제에 몸을 노리고 달려드는 계집에겐 무방비해지는 꼴.
사랑과 성욕을 별개로 생각하는 숫총각다운 행동이었고, 지금 당화서를 고민에 빠트리는 행동이었다.
‘위험하다.’
목리원의 순결이.
당화서의 손등 위로 힘줄이 불거졌다.
언제나 당화서의 머릿속 한구석에 존재하던 ‘상상 속의 색녀’에게 하오문 문도라는 직책이 생겼다.
그들은 마침 귀주를 찾은 목리원의 눈부신 외모에 호기심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목리원이 묵룡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정보 수집’을 빙자하여 목리원을 덮치려 들 것이다.
사실은 그저 목리원을 탐하고 싶다는 음험한 생각이나 하면서 말이다!
쿵!
당화서는 차오르는 분노에 책상을 내리쳤다.
오늘도 연무장의 보수를 부탁하러 온 남궁진천은 문을 열던 중 흠칫 놀라 몸을 멈췄다.
당화서의 성난 얼굴을 보곤 조용히 문을 닫았다.
‘때가 아니다.’
지금 들어갔다간 요구 사항이 불발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남궁진천은 조용히 복도를 걸어 숙소로 향했다.
그는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사내였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당화서의 고민도, 제갈산의 설사도, 남궁진천의 연무장도.
그 무엇도 시원스레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어느새 임무 당일.
목리원은 안색이 좋지 않은 세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나 원하는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당화서의 고민을 어렴풋이 아는 혜운만이 그리 이를 뿐이었다.
“목 시주님. 그거 알아요?”
“무엇 말이오?”
“사람은 세상을 자기 기준에 맞춰 보는 법이래요.”
“음?”
“그냥 그런 말이 생각났어요.”
혜운의 시선이 당화서를 향했다.
조금은 한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혜운은 당화서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녀가 악몽에 끙끙대며 흘리는 말을 다 듣는 것이다.
목 소혀업…! 기녀는 안 됩니다아…!
당화서 본인도 모르는 잠버릇이었다.
그녀는 마음이 심란한 날에는 꼭 잠꼬대로 고민 사항을 털어 넣곤 했다.
그래도 일 좀 그만 시키라고 욕하던 때보다는 나은 걸까.
혜운은 잠시 생각을 이어가다, 이내 털어냈다.
‘내 알 반가.’
혜운은 기녀에게 남자를 뺏길까 고민하는 당화서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덮치면 될 일을 왜 어렵게 가는 건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았다.
‘게다가 목 시주님이잖아.’
슬쩍 건들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숫총각을 두고 뭐 저리 고민하느냔 말이다.
혜운이 ‘흐음’하며 목리원을 바라보자, 그 눈살에 흠칫 놀란 목리원이 슬금슬금 당화서 쪽으로 향해 그 뒤로 숨었다.
아직은 어색한 사이.
목리원은 혜운이 의미심장하게 저를 쳐다볼 때면 본능적으로 당화서의 품 뒤로 숨곤 했다.
‘저기가 진짜 위험한 덴데.’
위기 감지 능력이 이리도 없어서야 어디 쓰겠는가.
혜운은 쯧쯧 혀를 찼다.
‘멀었구나 멀었어.’
쉬운 길을 굳이 돌아가는 당화서도 그렇고, 저를 잡아먹을 인간을 보호자로 착각하는 목리원도 그렇고.
두 사람 다 아주 갈 길이 멀다는 생각만이 치밀고 있었다.
“그만 가죠?”
상태가 멀쩡한 인간이 하나가 없었다.
오늘 용봉단을 이끄는 것은, 고민이랄 것이 눈곱만큼도 없는 혜운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