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오장 용봉지회 (2)
* * *
소림사의 21대 대제자 일운.
그는 지금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당연했다.
언제나 소림 안에 박혀 수련에 수련을 이어가던 중, 한 해에 몇 안 되는 외출을 나온 와중이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만남.
그리고 소림 밖에서만 먹을 수 있는 자극적인 음식까지.
언제나 무욕을 중시해야 할 불자가 반겨선 안 될 것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 아니겠나.
20세의 혈기왕성한 사내에게 속세는 그다지도 눈이 번쩍 뜨이는 곳이지 않나.
‘이 정도의 일탈은 방장님께서도 이해해주시겠지.’
그런 이유로 황산에 도착하자마자 들어선 객잔.
일운이 사제들과 함께 착석해 오랜만의 일탈을 즐기려던 와중이었다.
“이보시오. 점소이. 동파육 한 접시 주시겠소?”
물론, 나름의 양심을 챙겨가며.
“…아, 고기는 빼고.”
“으핳핳핳핳핳핳!!! 동파유흫흫흫흫!!! 고기는 빼고홓홓홓!!!”
온 객잔에 울려 퍼지는 경박한 웃음소리.
그것에 일운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동공을 떨었다.
“…제, 제갈 공자?”
“으히히히히히힉!!!”
쾅. 쾅. 식탁까지 두드리며 폭소하는 이는 분명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제갈세가의 적자, 제갈산이었다.
거기에 또 하나, 곁에 있는 여인은 6년 전 용봉지회를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춘 사천당문의 후계자였다.
물론 그들 사이에 시선을 확 사로잡는 사내가 있었지만, 일운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드, 들켰…!’
아는 사람을 피하기 위해 굳이 외진 골목까지 들어왔건만, 기어이 면식이 있는 사람과 만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하필 제갈산.
오늘의 일을 온 강호에 소문내고 다닐 경박한 위인을 말이다.
“아이고! 일운 스님! 오랜만에 뵙수다!!!”
제갈산이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 꺽꺽 숨을 몰아쉬며 인사를 건넸다.
일운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입가에 공허한 미소를 그렸다.
‘아미타불….’
왜 하필 저 인간인가.
부처께서 과욕에 대한 벌을 내리신 것인가.
“사, 사형…!”
“이건 큰일 것 같은….”
“…진정하거라.”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으나, 일운은 와중에도 마음을 다잡았다.
불공을 외우며 쌓은 부동심은 이 순간 꽤나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수습, 수습을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일운이 제갈산과 당화서, 그리고 이름 모를 사내가 있는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합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주님.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오….”
“‘오’는 무슨, 목아우는 방금 못 들었나? 동파유흐흐흑… 고기를 빼해헤헤헥….”
“…적당히 웃거라. 스님께서 곤란해하지 않느냐.”
“당시주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거의 6년 만이지요?”
“예, 뭐.”
일운은 정수리에서 땀이 솟아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하곤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을 덧붙였다.
“삼정육(三??).”
그는 제갈산의 입을 다물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아니, 그보단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은 상태였다.
“삼정육에 대해 아십니까. 이는 불가에서 육식을 허락하는 조건 중 가장 근간이 되는 세 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육식을 할 땐 그 고기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나를 위한 것이란 말을 듣지 않아야 한다. 또한 나를 위한 것이라는 정황조차 없어야 한다. 위의 조건을 달성한 고기는 자연의 섭리에 의해 남겨진 것이니, 저희는 그것을 취하는 것이지요.”
“….”
“그렇지 않습니까? 동파육이란 무엇입니까. 장으로 고기를 졸여 만든 엄연한 고기 요리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 고기 요리에 고기가 빠진다면, 저희가 고기 요리를 만들고 남은 채소와 양념을 먹는다면 고기는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 되겠지요. 즉, 저희를 위해 고기를 먹지 않았으니 위의 ‘삼정육’의 계율에 부합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지그시 웃는 얼굴이었으나, 그것이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어디 가서 말하면 살계(??)를 열겠다.
물론, 제갈산은 그 말에 지레 겁먹을 정도로 담이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예, 그렇지요. 삼정유… 푸흐흐… 예! 암! 그렇고 말고요! 어찌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산답니까. 저는 다 이해합니다!”
팍팍 어깨를 치는 손짓에 일운의 이마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그러니 오늘의 일은….”
“에이, 제가 그리 입이 가벼운 사람으로 보입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오!”
정말 눈곱만큼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일운은 부동심이 깨져나갈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시 한번 부탁….”
“걱정마십시오. 저놈은 제가 목을 분질러서라도 관리할 테니.”
당화서가 말했다.
그러자 제갈산이 입술을 꾹 다물며 움츠러들었다.
일운은 생각지 못한 도움에 환한 얼굴을 만들며 감사를 표했다.
“아, 당시주님!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선의로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당화서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일운을 바라봤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그와 면을 틀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분명한 호재였다.
당장은 그에게 용건을 말할 수 없지만, 후일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인상을 만들어두는 게 주요할 터.
그런 생각으로 당화서가 이어갈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중, 목리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처, 처음 뵙겠소! 스님께서 바로 그 ‘권룡’이 맞으시오?”
“음? 아, 실례를. 예, 제가 맞습니다. 시주께선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
“목리원이라 하오! 들어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호 동도들은 저를 묵검(??)이라 칭하고 있소!”
목리원이 포권을 취했다.
일운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다, 이내 환한 웃음을 그렸다.
“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강서성에서 이름을 날리셨다지요.”
“크흠! 별것 아니었소.”
목리원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얼굴까지 붉게 물들인 것이 칭찬에 한껏 기뻐하고 있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일운은 그 모습에 지그시 웃었다.
‘분명 절정의 고수라 들었는데….’
과연, 그 기도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최소 절정은 확실하고….
‘어쩌면 나와 동급.’
느껴지는 기도만으로 일운은 그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강호는 넓구나.’
한눈에 봐도 동년배로 보이는 사내다.
저런 나이대에 절정에 오르려면 필시 상승의 무공과 진귀한 영약이 필요했을진대, 대체 어떤 고인이 그런 수고를 다 했는지 궁금증마저 차오르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목리원이 살아생전 먹어본 영약이라곤 강호 출두 이후 얻은 인면지주의 내단이 끝이라는 걸 모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의문이었다.
“실례지만 사문이 어찌 되십니까?”
“앗, 그건….”
목리원이 당황하며 당화서를 바라봤다.
도움을 바라는 눈치였다.
일운은 그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저었다.
“아, 곤란하다면 말씀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호기심이었으니.”
“이해해주어 고맙소.”
굳이 캐물어가면서까지 상대의 사문을 알아낼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일운이 아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에 의한 판단이었고, 또한 그의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해낸 판단이었다.
‘저런 고수라면 분명 본선에서 만나게 될 터.’
그때가 되면 무공에 대해서도 자연히 알게 되리라.
그리고, 자신이 그 무공을 격파하리라.
백도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
그 자긍심은 일운에게 그런 자신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한데, 스님께선 회의 참가 수속을 마치고 오신 것이오?”
“예, 저는 이곳에 들르기 전 이미 끝내고 왔지요.”
“아….”
“왜 그러십니까?”
“저희는 곧 수속을 하러 가야 해서 말이오. 동행하며 소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소.”
목리원의 얼굴 위로 시무룩한 기색이 자리했다.
그에 답한 것은 당화서였다.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레에는 다시 이야기할 자리가 생길 테니.”
“음?”
“회의 접수가 끝나는 날 저녁, 연회가 있을 것입니다. 구파와 세가의 후기지수들이 모이는 자리지요. 제 동행 자격이면 목 소협도 참석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시주의 말이 맞습니다. 이야기는 그때 이어 하는 것으로 하지요.”
부드러운 분위기로 이어진 말에, 목리원은 환한 얼굴을 만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가 미소를 피워올리자 어디선가 달뜬 탄성이 울렸다.
“좋소! 그럼 모레 다시 뵙겠소!”
“스님, 그럼 이만.”
“예, 제갈 공자는….”
일운과 제갈산의 시선이 부딪쳤다.
제갈산은 히죽 웃는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걱정마시오.”
꼭 소문을 내고 다닐 테니.
…라는 기색의 답에, 일운의 머리 위로 힘줄이 돋아난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
안휘성 서현, 황산의 바로 아래 도시.
객잔을 나선 세 사람은 드디어 용봉지회가 열리는 장원에 도착했다.
“무인이 정말 많구려…!”
목리원은 설레는 듯 고개를 홱홱 돌리며 주변을 바라봤다.
장원의 담벼락 앞에는 하나 같이 기도가 날카로운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대문 앞으로는 용봉지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속을 기다리는 무인들이 저마다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목아우, 저기 저 남자 보이나?”
“음? 어디 말이오?”
“대문 앞을 지키는 무인 말이네. 머리에 파란 영웅건을 두른 사람.”
목리원은 제갈산의 손끝을 따라 대문을 바라봤다.
그의 말대로, 그곳엔 머리에 파란 영웅건을 두른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군데 그러시오?”
“창성검(?成?) 남궁운, 검왕(?王)의 조카라네.”
목리원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입 또한 슬며시 벌어지고 있었다.
“검왕의….”
정파 무림 십대 고수 중 하나인 검왕의 조카.
그 말을 듣는 순간 기감을 펼친 목리원은 느낄 수 있었다.
두근.
“…과연.”
저 공간 전체가 그의 지배 아래 있었다.
날카롭게 정련된 기파가 온통 저곳을 내리누르는 것이다.
목리원의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저 사내와 맞붙는다면 자신은 삼초지적조차 되지 못할 것임을.
‘…아니, 내공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수비적으로 검을 흘려낸 채 검에 적응한다면? 살기를 느낄 수 있으니 그것은 가능하다. 거기에 기공만 조심한다면.’
어쩌면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하나, 그럼에도 패배는 확실했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초절정의 무인 중 한 명이지.”
“초절정….”
절정과 초절정 사이에는 그만큼 큰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꽈악.
목리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로선 강호에 나온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자신보다 강한 무인.
목리원의 속에 호승심이 떠올랐다.
‘겨뤄보고 싶다.’
그와 검초를 나누고 싶다.
그 속에서 저 무인의 정수를 훔치고 싶다.
그리 양분 삼은 정수로,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목리원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기파 또한 그런 감정에 따라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아…!’
남궁운이 목리원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 담긴 거대한 힘에, 목리원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톡.
“목 소협, 그만하고 가지요. 저희는 다른 줄입니다.”
당화서가 어깨를 두드리며 내뱉은 말에 직전까지의 압박감이 사라졌다.
남궁운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알겠소. 갑시다.”
목리원은 잠시 남궁운을 더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곤 당화서를 따라 걸었다.
*
남궁운은 슬쩍 고개를 돌려 떠나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하며 옆에 있던 부관에게 물었다.
“이보게, 저기 저 사내가 누군지 아나?”
“아, 저기 제갈과 당문 사이에 있는 사내 말입니까?”
“그렇네. 내 분명 이곳에 들를 후기지수의 이름은 다 외운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 사내는 목록에 없었던 것 같아서 말일세.”
부관은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목록에 있긴 하나, 이번에 처음 강호로 나온 이라 대주께서 알아보지 못하신 겁니다.”
“음?”
“묵검(??) 목리원. 요즘 떠오르는 신예지요. 당가의 독봉과 함께 다닌다 들었는데, 어느새 괴룡과도 친분을 다진 듯하군요.”
“묵검이라….”
남궁운은 그리 되뇌며 직전의 기파를 떠올렸다.
“…글쎄.”
“예.”
“아닐세.”
부관의 반문에 고개를 저은 남궁운은 생각했다.
‘묵검(??)보다는 패검(??)이 어울릴 듯해서.’
누구인지 모를 젊은 무인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파는 잔잔한 묵보다 패도가 어울리는 형태였다고.
‘재밌는 놈이 왔군.’
남궁운은 작게 웃으며 속에 기대감을 떠올렸다.
목리원 자체에 거는 기대감은 아니었다.
‘진천이한테 좋은 상대가 되어줄 것 같구나.’
남궁세가의 소가주, 검룡 남궁진천.
얄미울 정도로 오만한 자신의 조카에게 좋은 호적수가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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