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0화 (30/334)

〈 30화 〉 오장 ­ 용봉지회 (3)

* * *

달이 휘영청 떠오른 밤.

도시 외진 골목의 공터에서 목리원은 검을 뽑았다.

그리하고 고개를 들었다.

‘달이 밝구나.’

희뿌연 구름을 방석처럼 깔고 앉은 달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그 곁으로 하늘 높이 치솟은 황산은 황제를 지키는 장수처럼 굳건한 풍채를 뽐내고 있었다.

목리원은 싱긋 웃으며 자세를 다잡았다.

이리 멋들어진 풍경 아래서 수련을 거른다면 그것이 죄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떠올리는 와중이었다.

사아아­.

눈을 감자 바람이 인다.

차가운 밤공기가 피부 위로 내려앉는다.

또한 폐부로 스며든다.

목리원은 청량하고 또 청량한 공기를 전신으로 퍼뜨려 오늘도 포악할 줄만 아는 공력 위로 덧씌웠다.

그러자 묵색의 검기가 피어올랐고, 이윽고 검이 움직였다.

처음 검을 배운 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일과.

달밤의 검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스윽­.

허공을 베어내는 움직임은 참으로 느렸다.

거의 정지에 가까운 움직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이것이 무슨 검무냐고 말할 수 있었으나, 이것이 바로 목리원의 수련법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목선오의 검무를 끝없이 늘린 후, 그 순간순간의 움직임에 집중함으로서 초식의 본을 파헤치는 것.

그리 산산이 풀어헤친 초식을 다시 자신의 몸에 맞게 조립하는 것.

그리하여 유성칠검(??七?)이라는 무학을 온전히 소화하는 것.

목리원은 온 심력을 다해 그 과정을 마친 후,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 사내를 떠올렸다.

‘남궁운.’

창성검 남궁운.

오늘 낮에 만났던 남궁세가의 초절정 고수.

그와의 비무를 상상하는 것이다.

떠올리니 선명히 그려지는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주는 사내.

그가 검을 뽑고 검기를 피워 올렸다.

‘남궁가의 검.’

이제 그것을 상상 속의 사내에게 덧씌워야 하나, 목리원은 남궁의 무학을 몰랐다.

하여 그것을 대체할 것으로 남궁운에게 삼재검법(三???)을 입혔다.

가로와 세로로 베고 찌르는 모든 검법의 본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검초.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스윽­.

목리원이 상상 속의 그를 향해 검을 긋는다.

남궁운은 태산압정(?山)이라 불리는 세로 베기를 행했다.

투욱­.

그의 검과 맞물린 목리원의 검 끝이 바닥을 두드렸다.

남궁운의 공력에 짓눌려버린 것이다.

맞서지 않은 상대의 검을 어찌 그리 판단하느냐 할 수도 있었으나, 그것은 적어도 목리원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목리원은 직접 마주한 그의 공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세로 베기에 깃들 무게를 알 수 있는 사내인 까닭이다.

‘멀다.’

멀어도 너무 멀었다.

남궁운과 자신 사이에는 그리도 높은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겨우 세로 베기 하나를 했을 뿐임에도 자신을 짓눌러버리니, 그가 본격적인 남궁의 검법을 발휘하면 자신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목리원은 눈을 떴다.

참으로 절망스러운 격차였으나, 그럼에도 그의 입가에 떠올라 있는 것은 미소였다.

‘그것이 초절정이란 말이지.’

목리원의 눈이 갈망으로 물들었다.

인정할 것은 모두 인정했으니, 이제 그곳까지 다다르는 길을 바라봐야 할 터.

‘못 넘을 벽이 아니다.’

초절정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그것이 못 넘을 벽이란 말은 아니다.

왜 아니겠는가.

유년기를 함께 했던 목선오와 마일석.

그들이 몇 차례 보인 일 있던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떠올려보면, 저리 높아 보이는 남궁운의 공력 또한 비교적 가볼 만한 경지라는 생각이 떠올라버리는 것이다.

‘초절정은 성련의 5성에 해당한다.’

지금 자신은 완숙한 3성의 경지.

5성은 절정에 해당하는 무학을 모두 체득하고 그 속의 진의를 깨우치면 다다를 수 있는 경지였다.

‘물론 내공도 필요하겠지만….’

그 부분에 한해서는 조금의 걱정도 없었다.

이제까지 목선오와 마일석이 그의 성장 과정 중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가 ‘공력의 억제’였을 정도로 목리원의 무재는, 그리고 성련신공(????)의 효능은 특출났던 까닭이다.

‘스승님, 과연 강호는 넓습니다.’

목리원은 기쁜 마음으로 재차 검을 들었다.

다시금 검무를 행하려는 그의 속엔 묘한 기대감까지 차올라 있었다.

무엇에 의한 기대감인가.

그것은 명확했다.

‘모레면 연회.’

이번 대의 용봉이라 불리우는 명문의 후기지수들.

그들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었다.

낮에 마주한 권룡 일운은 자신과 동급의 공력을 가진 무인이었다.

듣기론 용봉의 칭호를 가진 이들은 대부분이 그 정도의 공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었다.

­남궁진천, 역시 우승은 남궁형밖에 없다고 보네.

제갈산이 확언하듯 내뱉은 말이었다.

이번 세대의 후기지수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은 남궁진천이라고.

다른 후기지수들과 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고.

‘제갈형, 모르는 일이오.’

목리원은 싱긋 웃는 얼굴로 그의 말을 부정하며 검무를 시작했다.

‘아직 내가 비무대에 서지 않았잖소.’

호승심.

그리고 향상심.

드디어 이 강호를 바로 보게 된 목리원은, 참으로 무인다운 열망과 함께 검무를 이어갔다.

*

이틀은 빠르게 흘렀다.

목리원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연회가 열리는 장원에 입장했다.

물론, 그 복장은 언제나 입고 있던 회색의 무복이었다.

“그 옷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 무인의 연회에 무복보다 어울리는 복장이 어디 있겠소?”

그리 생각하는 것은 당신뿐일 것이라고.

당화서는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는 중에도 떠올리는 생각이 있었다.

‘…확실히 꾸며봐야 시선밖에 더 끌까.’

목리원은 잘생겼다.

잘생겨도 너무 심각하게 잘생겼다.

이리 허름한 무복을 걸치고도 저리 빛나는 외모일진대, 거기에 꾸미기까지 하면 연회장의 시선이 죄다 그에게 몰릴 것이 뻔하지 않은가.

당화서는 앞선 도시를 탈출하던 중 그가 변장의 목적으로 입었던 흑색 장포를 떠올리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그 옷을 입힌 뒷감당을 어찌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거늘.’

분명 그를 노리고 침을 흘려대는 인간들이 나올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고, 또한 짜증이 확 치솟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가 시선을 끄는 일에 그리 짜증 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당화서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에 빠져들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 끝에서 마주할 좀스러운 본심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이었다.

“벌써 온 사람들이 있구먼. 목아우, 저기 저 사람 보이나?”

“음? 도복을 입고 있는 사람 말이오?”

“그래, 저기 젊은 도사 말일세. 저 도사가 바로 이번 대 무당의 얼굴이라네.”

목리원은 백색 도복을 입은 채 차를 홀짝이는 사내를 바라봤다.

제갈산의 말대로, 그에게선 마치 호수와 같은 잔잔한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선룡(?) 현공. 사실상 이번 대에서 남궁형 다음으로 치는 검수라네.”

“오호, 별호에 신선 선(?)자가 들어가는 정도면….”

“아, 그건 저 도사님 성격이 허허로워서 그런 것일세. 그 꼴이 꼭 신선같다고 저런 별호를 준 것이지.”

“아, 이해했소.”

과연, 그는 저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주변의 부산스러움에도 평온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목리원은 그것이 참으로 신기하게만 보여 한참이나 그를 바라봤고, 그러던 중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

현공은 잠시 목리원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싱긋 미소를 짓곤 다시 시선을 거뒀다.

목리원은 그제까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낄낄대는 제갈산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저 보시게. ‘나는 속세에 관심이 없소~’하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하하….”

목리원은 머쓱한 기분을 느꼈다.

“먼저 가서 말을 걸어도 괜찮겠소?”

“추천하지는 않네. 나도 몇 번이고 선룡과 말을 섞고자 해봤는데, 도통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 아니겠나. 벽이라도 보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단 말일세.”

“으음… 아쉽구려. 느껴지는 기파가 특이해 꼭 무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건만.”

“그런 것은 비무대 위에서 해도 상관없지 않겠나. 자자, 그런 것보다 저기 좀 봐보시게.”

제갈산이 이번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목리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하려던 중, 당화서가 ‘쯧’ 혀를 찼다.

“응? 소저, 왜 그러시오?”

“아닙니다. 싫은 얼굴이 보여서.”

제갈산이 낄낄 웃으며 목리원에게 말했다.

“아차, 누님께선 달갑지 않으시겠구려. 목아우, 저기 저 허여멀건 여인이 바로 아미파의 백봉(白?) 혜운이라네. 우리 누님과는 회에서 만날 때마다 아웅다웅하는 사이지.”

“아웅다웅은 무슨.”

“누님께서 말은 저리 해도 엄청 신경 쓰고 있다네. 마침 같은 사천에 있겠다, 또 비슷한 나이대의 후기지수겠다. 강호 동도들이 꼭 이 두 사람을 붙여서 우열을 논하….”

“입이라도 찢어줘야 조용히 하겠느냐?”

“….”

제갈산의 입이 꾹 다물렸다.

목리원은 서늘한 당화서의 기색에 따라 움츠러들었다.

‘음, 백봉 소저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목리원은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곤 마지막으로 혜운을 흘끗 봤다.

그곳엔.

‘음?’

자신을 똑바로 마주보며 멍한 얼굴을 하는 혜운이 있었다.

“목 소협.”

순간 울려 퍼진 당화서의 목소리.

목리원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당화서를 바라봤다.

당화서는 핏발 선 눈으로 혜운과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굴리지 마십시오. 또 이상한 계집들이 꼬일 겁니다.”

“이상한 계집은 좀….”

“소협은 잘 모르시겠지만 아미의 여승이란 것들은 승려 주제에 그리 색에 미쳐있는 것들입니다. 오죽하면 저들끼리 요분질을 하는 것들까지 있지요. 상종해서 좋을 것 없는 잡것들이니 시선도 주지 마십시오.”

꿀꺽­.

목리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여, 여인들끼리….’

떠오르는 엄한 상상에 뽀얀 뺨까지 붉게 물들어가는 와중, 그 꼴을 본 당화서가 헛웃음을 내뱉더니 경멸의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좋아 죽습니다?”

“아, 아니오!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했소!”

목리원의 눈이 질끈 감겼다.

당화서는 왜인지 차오르는 짜증에 분노가 덕지덕지 묻은 시선으로 목리원을 노려보다, 이내 혀를 차며 시선을 거뒀다.

“하여튼, 저 색봉이 접근하면 바로 저한테 달려오십시오.”

“색봉까지야….”

“색봉이 맞습니다. 해마다 이곳에 올 때면 남자 하나를 골라 잡아먹는 년이니.”

“음… 알음알음 그런 소문이 있긴 하네.”

제갈산 마저 그리 말하자 목리원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내, 내가 아미파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진대….’

분명 목선오는 그리 일렀다.

아미파의 여승들은 불심이 깊고 공력도 정순한 진짜배기 여걸들이라고.

실제 검을 나눠보면 그들의 깊이 있는 무학에 감탄이 나올 때도 있었다고.

‘스승님이 거짓말을….’

목리원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목선오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당시 강호는 혈천교와 맞서느라 분위기가 날카로웠고, 그 속에서 진정 악적과 맞서기 위해 나온 여승들은 여걸이 맞았다.

지금 아미의 후기지수들이 저러고 있는 것도, 그 앞을 이끄는 백봉 혜운의 성정에 따라 변한 것이라 말하는 게 옳은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모르는 목리원으로선 그저 배신감에 몸을 떨 뿐이었다.

“실망이 크구려….”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뭐, 저 색봉 말고는 걸출한 여걸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당화서는 입술을 삐죽이는 목리원을 흡족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리 잡담이 이어지던 중, 목리원은 문득 이상한 점 하나를 깨달았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이오. 사람이 꽤나 모였는데 우리 쪽으로는 아무도 안 오는구려.”

사람도 꽤 모였다.

그리고 여러 명문의 무인들이 저들끼리 담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데, 이곳에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점이 참 기이해 목리원이 내뱉은 말에, 두 남녀가 침묵했다.

“….”

“….”

“소저? 제갈 형?”

목리원이 순수한 얼굴로 재차 물었지만 두 사람은 답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이전까지의 당화서는 언제나 날이 서있었다.

그렇기에 교분을 나눈 이들이랄 게 없었다.

제갈산은 그 경박함이 온 강호에 퍼졌다.

그렇기에 그에게 먼저 말을 걸려는 이들이 없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랬다.

그들은 이 연회의 외톨이 무리인 것이다.

순수한 질문은 때로 가슴 깊숙한 곳을 후벼파는 법.

당화서와 제갈산은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를 자신들의 처지에 한참이나 당황을 이어갔고,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영원할 것처럼 이어지던 와중.

하늘이 도운 것인지 다행히 동아줄이라 할 만한 것이 그들의 앞에 드리워졌다.

“아, 일운 스님!”

목리원이 연회에 입장하는 권룡 일운을 불렀다.

일운은 그 목소리에 목리원과 두 남녀를 발견하곤 환한 얼굴로 합장을 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당화서와 제갈산은 그의 접근에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떠올렸으나, 그것은 일운의 본심을 안다면 단번에 사그라들 감정이었다.

‘제갈 공자의 입을 다물려야 한다.’

연회에 들어온 순간부터 일운의 목적은 하나였다.

저 제갈산이 이틀 전의 일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시주님들! 이틀 만에 뵙습니다.”

일운이 지그시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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