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오장 용봉지회 (1)
* * *
도시의 출구 앞으로 길게 이어진 대열.
검문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선 기이한 웅성거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넋이 나간 듯한 감탄사였고, 그 탄성이 향하는 곳엔 한 사내가 있었다.
“허어….”
“오오….”
흑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였다.
밤을 짜 내린 듯 새까맣게 빛나는 머리칼,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피부와 위로 솟아있는 높은 콧대.
거기에 우수에 찬 듯 내리깔린 눈과 빨간 입술까지.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이 형상화된다면 꼭 그와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내는 가만 눈을 감은 채 저 홀로 세상에서 유리된 듯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떻소? 확실하지 않소?”
제갈산이 당화서에게 속닥였다.
그는 온갖 더러운 것을 몸에 덕지덕지 바른 거지꼴이었다.
당화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이게 진짜 될 줄이야.’
목리원을 귀공자로 변장시켜 검문을 어영부영 통과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여겼건만, 지금 상황을 보니 왜인지 가능하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목아우는 그냥 입 다물고 바닥만 보고 있으시게. 말은 누님이 다 할 테니, 경비가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 싶으면 인상만 찌푸리면 된다네.
알겠소! 나만 믿으시오!
목 소협, 이게 정말 통할 거라 보십….
나만 믿으시오!
문득 스쳐 지나가는 직전의 일.
당화서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있는 목리원을 흘긋 바라봤다.
잘생기긴 참 잘생겼다.
하나, 그것 말고도 당화서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심심해 죽으려고 하는구나.’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것이 심심해도 보통 심심한 게 아닌 듯했다.
하긴, 가만두면 온종일 쉬지도 않고 수다를 떠는 인간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려니 좀이 쑤시는 것일 터.
저 모습이 참 안쓰럽고도 우습게 보여, 당화서는 그의 팔을 지그시 잡았다.
“목 소협, 조금만 참으시지요. 금방 저희 차례가 될 것입니다.”
“알겠소…!”
말을 거니 활짝 웃으려다 흠칫 놀라며 표정을 굳힌다.
이 역시 참 우습게 보여 당화서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는 중에도 시선은 목리원을 피하고 있었다.
당연,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까닭이다.
‘재밌구만.’
제갈산은 쭈뼛대는 당화서의 모습에 낄낄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러는 중에도 차오르는 아쉬움이 있었으니, 바로 목리원을 여장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쓰읍, 여장도 재밌었을 것 같은데.’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나, 목리원의 거부감이 너무 심해 실패로 돌아간 일이었다.
여, 여장? 나보고 여인네 흉내를 내란 말이오?! 어허! 제갈형! 어찌 그리 나를 능멸하려 하는 것이오!
제갈산으로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거부.
이는 어린 시절의 목리원이 계집아이 같은 외형 탓에 마일석에게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를 모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아쉬움이었다.
“다음!”
와중 경비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든 제갈산은 드디어 자신들의 차례가 온 것을 깨닫고 당화서에게 말했다.
“갑시다.”
“그래.”
탁.
한 발 앞으로 나서는 당화서의 얼굴엔 긴장이 맺혀 있었다.
*
장가장의 무인 고창.
그는 지난날 괴한에게 습격당한 상처를 몸에 인 채로 눈앞의 삼인조를 바라봤다.
그리하며 놀란 속을 다스렸다.
‘거참 억 소리 나게 잘생겼구먼.’
옆에 서 있는 여인 또한 눈이 번쩍뜨일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그럼에도 사내에게만 시선이 갈 정도였다.
뒤의 꼬질꼬질한 시종은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정말 세상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지는 외모.
게다가 입고 있는 옷은 또 어떠한가.
그래도 부호의 장원에서 일하는 무인인 만큼, 고창은 저 옷의 가격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금자 넛 개는 쓰는 옷.’
고창의 속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출신이 범상치 않음은 분명하니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리란 생각 탓이었다.
“큼, 크흠. 그럼 검문을 하겠….”
“후우….”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뭐야!’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 자신이 저 사내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한 게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줄을 서 검문을 받는 이 상황 자체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 아닐까.
고창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애써 가다듬어야 했다.
하나, 그것이 그가 꿋꿋이 검문을 해내리란 말은 아니었다.
왜 아니겠는가.
딱 봐도 지체 높아 보이는 사내의 심기를 거슬러봐야 손해밖에 더 생기지 않겠나.
장가장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봐야, 자신 하나 때문에 저런 이들과 맞서주진 않으리란 말이다.
“그… 거, 검무….”
“후우….”
“….”
사내, 목리원은 열심히 한숨을 쉬었다.
시킨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역시 어색했다.
그것에 당화서는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저쪽에서 이상함을 눈치챌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길이 바빠 신경이 날카로워지신 상태네. 이해해주시게나.”
“아, 아닙….”
“부구… 운 께서 새벽부터 있었던 난리에 잠을 설치신지라.”
당화서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그랬다.
두 사람은 부부의 연기를 하고 있었다.
부군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어색한 연기였으나, 다행히 고창은 그런 당화서를 이해했다.
‘하긴,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남편이면 뭐….’
저리 히죽거리면서 부끄러워할 만도 하다.
“아, 아닙니다. 죄송….”
“신경 쓸 것 없네. 그보다 어서 보내주지 않겠나? 말했다시피 갈 길이 바쁜지라.”
“아, 넵!”
고창은 빠르게 길을 비켜줬다.
당화서는 작게 웃으며 목리원에게 팔짱을 꼈다.
“수고하시게.”
그리하곤 시종을 대동한 채로 문을 빠져나갔다.
고창은 그들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그들의 신분을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에이, 설마 저분들일 리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떠올리기엔, 고창은 검문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
“성공이오! 우리가 무사히 도시를 빠져나왔소!”
도시에서 멀어지자마자 터져 나오는 환희.
목리원은 그제까지의 무게감 있는 모습을 모두 벗어던지곤 아이처럼 기뻐했다.
“역시 제갈형! 믿고 있었소!”
“암, 더 떠받들어도 좋네!”
“제갈세가의 위명을 다시 실감했소!”
“더.”
“굉장하고 엄청나서 경악이 절로 나오고 있소!”
“음!”
촌극이 따로 없었다.
당화서가 무기질적인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중, 목리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소저도 엄청났소! 내 살며 그리 탁월한 연기는 처음 보오.”
움찔.
당화서의 어깨가 떨렸다.
자신을 향해 쏘아진 반짝이는 눈빛에 시선은 괜히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예, 뭐….”
“미리 말을 생각해둔 것이오? 그도 아니면 임기응변으로 하신 것이오? 이 목리원, 소저의 연기를 배우고 싶소!”
“그, 그마….”
부담스럽다.
아니, 황송했다.
저런 얼굴에 동경을 담고 고개를 들이미니 저도 모르게 황송한 기분이 떠오르고 만다.
“되었으니 그만하십시오. 정말 별 거 아닌….”
“하지만 너무 대단한 걸 어떡하오!”
목리원의 호들갑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변장과 연기.
그를 통한 적지에서의 탈출.
이 모든 것은 목리원이 언제나 꿈꾸던 협객의 삶에 한 발 걸쳐 있는 상황인 까닭이다.
‘강호 협객전’ 5장의 주인공인 살협이 꼭 이와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는 까닭이다.
목리원의 호들갑에 따라 그의 머리칼이 찰랑였다.
입고 있는 비단 장포도 펄럭였다.
하필 흑색.
그의 뽀얀 피부를 부각해주는 색깔인지라, 당화서는 그만 눈이 핑핑 도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것은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 것이오? 그 지그시 웃는 표정은 어떻게 지으면 되는 것이오? 이렇게? 아니면 이렇게?”
목리원이 양 검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체취가 짙어졌다.
당화서는 차오르는 부끄러움에 이성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그만!”
뻐어억!
“꺼흡…!”
목리원의 명치에 당화서의 주먹이 꽂혔다.
목리원은 부지불식간 쏘아진 공격에 헛숨을 들이키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당화서는 뒤늦게 아차하며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바로 옆.
제갈산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며 당화서에게서 멀어졌다.
‘거 주먹부터 나가는 버릇은 고치면 안 되나.’
제갈산은 저 분노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두려웠다.
*
약 사흘간의 여정.
그 끝에 세 사람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 너머로 거대한 암석산이 구름을 뚫고 솟아있는, 중원의 삼산(三山)중 하나인 황산(?山)이었다.
“이곳이 바로 황산이네! 안휘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 중 하나지!”
“오오…! 내 스승님께 들은 바가 있소! 황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소나무를 벗 삼아 즐기는 풍류가 그리도 각별했다 들었소!”
“흐하핫! 스승께서 뭘 좀 아시는 분이구먼!”
목리원과 제갈산의 호들갑이 이어지는 와중, 당화서는 속에 떠오르는 긴장을 억누르려 심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곳까지 왔다.
이제 더 이상 도망가지 않기 위해 내디디는 첫걸음.
이곳에서 권룡 일운을 만나 소림의 방장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꽈악.
당화서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슬슬 가보지요.”
“황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오?”
“아, 그건 아닙니다. 용봉지회는 이곳 서현에서 치러지니, 굳이 저곳에 오를 필요는 없지요.”
“아….”
목리원의 얼굴 위로 실망감이 떠올랐다.
당화서는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여유가 된다면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예, 저도 황산에 실제로 와보는 것은 처음인 지라 궁금증이 일기도 합니다.”
“오!”
목리원의 얼굴이 바로 밝아졌다.
그에게 꼬리가 달려있다면 지금쯤 풍차처럼 돌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당화서는 그 모습에 왜인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묘하게 가슴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
용봉지회는 강호의 젊은 무인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축제의 장이었으나, 그것이 나이만 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라는 말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용(?)과 봉(?)을 가르는 비무대회.
그런 이름을 한 만큼, 최소한의 자격 요건 정도는 가리는 것이다.
“뭐, 우리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네. 명문 세가라는 이름이 이럴 땐 꽤나 도움이 되거든.”
“나는 어떡하오?”
“걱정일랑 마시게. 나와 누님의 추천이 있으면 목아우 자리까지는 만들어 줄 수 있으니. 뭐… 사실 자네가 참가 시험 따위에 떨어질 일이야 없겠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는 게 낫지 않겠나?”
“옳소! 역시 제갈형이오!”
“흠흠!”
서현의 한 객잔.
용봉지회의 참가 수속을 잎둔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목리원은 역시 소면에 죽엽청.
당화서는 만두.
제갈산은 오향장육을 앞에 둔 상태였다.
“목 소협, 어서 식사부터 드십시오. 그러다 소면이 다 불어버리겠어요.”
“아, 그렇구려! 알겠소!”
목리원은 당화서의 말에 뒤늦게 식사를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마시듯이 소면을 흡입한 뒤, 죽엽청을 한 잔 들이켜곤 ‘크으!’ 소리를 내며 미소를 그렸다.
“황산의 죽엽청은 또 풍미가 다르구려!”
“목아우는 죽엽청이 그리 좋나? 이것도 먹어보시게, 입에 맞을 것이야.”
“오! 그럼….”
꽤나 즐겁게 이어지는 식사.
낄낄대는 제갈산과 목리원의 모습에 당화서가 지그시 미소를 짓던 중.
“어서오십시오!”
점소이가 크게 외쳤다.
이 객잔에 들어온 후 한 번도 듣지 못한 긴장 마저 느껴지는 큰 소리였다.
그것은 세 사람의 속에 의문을 자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대체 누가 왔기에 이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하나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에 세 사람은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놀란 얼굴을 만들었다.
“…소림.”
객잔에 들어서는 것은 민머리가 반짝거리는 네 사람의 스님이었다.
하나 같이 젊은 청년들.
거기에 느껴지는 내력까지 웅혼했으니, 소림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당화서와 제갈산에겐 저들이 소림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줄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앞서 들어와 자리에 앉는, 머리로 바위를 깨버릴 것 같은 각진 두상의 스님.
“…권룡 일운.”
당화서의 당초 목적인 권룡 일운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객잔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에 따라 세 사람의 분위기 또한 경직되던 중, 자리에 앉은 일운이 손을 들었다.
“이보시오. 점소이. 동파육 한 접시 주시겠소?”
그리 말하고 멈칫.
일운은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이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고기는 빼고.”
돌연 제갈산이 폭소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