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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찾았다.”
성소의 천장을 완전히 날려버린 알베타스가 높은 곳에서 성소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녀가 응시하고 있는 곳에는 깜짝 놀라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한 디네와 태초의 나무가 있었다.
[.......]
알베타스를 올려다보는 디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는데...
[이런 씨...]
동료들의 노력, 짜증, 허탈감.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과 만감이 교차하는 디네였지만 디네는 입술을 질끈 한 번 곱씹은 뒤 태초의 나무를 향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기술을 사용했다.
쿠구구-
최후의 작전에 실패했을 때, 스스로 기둥을 부셔 이 세계의 끝을 고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도와준 동료들과의 약속이었기에.
[으아아아!]
디네가 착잡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듯 괴성을 내질렀다.
디네의 생각을 읽어낸 알베타스가 흠칫 놀래며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디네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이미 늦은 뒤였다.
콰아아아아앙!
그렇게 그녀가 초근접에서 사용한 아스트랄 워터쇼크는 그대로 태초의 나무에 적중했다.
그러나.
삐빅-
[이 세계에 포함되어 있는 생명체는 계약에 따라 기둥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시스템 창은 디네를 절망 속으로 가라앉혔다.
[무슨...]
부술 수 없다니?
디네가 얼음처럼 굳어버리자, 어찌 된 영문인지 순식간에 깨달은 알베타스가 작게 실소를 내뱉었다.
“위력은 충분했을 텐데. 이 세계의 주민은 기둥을 부술 수 없나 보지?”
[......]
정곡을 찔린 디네가 홱 고개를 돌려 알베타스를 노려봤다.
그녀는 즉각 알베타스를 향해 정령 마법을 날렸지만 상급정령에 불과한 디네의 공격이 최상위 대리자인 알베타스에게 먹힐 리가 만무했다.
스스스스-
휘익-
푸슛-
가소롭다는 듯 알베타스가 가볍게 손짓하는 것만으로 정령 마법이 제거.
이윽고 디네의 공격을 무시하며 천천히 다가온 알베타스가 태초의 나무 앞에 섰다.
알베타스는 나무를 쓱 훑어보며 다시 한번 즐거움의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알베타스가 나무를 향해 차분히 팔을 들어 올렸다.
때마침 뒤따라온 이프리트의 공격이 감행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르륵-
콰아아아앙!
[디네! 내가 놈을 맡을 테니 다시 한번 나무를 옮겨라!]
이프리트가 그렇게 외치며 남은 모든 힘을 끌어 모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맹렬하게 알베타스를 향해 돌진했다.
허나.
퍼엉!
이프리트의 공격은 안타깝게도 알베타스에게 닿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이프리트에게 이동하여 공격을 막고 코어를 단번에 붙잡은 헤드리아가 중얼거렸다.
[어딜 하찮은 정령 따위가 감히 왕께...]
헤드리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움켜쥐어 그대로 이프리트의 코어를 박살 냈다.
콰드득-
[커, 커헉...!]
[이프리트님!]
디네의 표정은 단번에 울상이 되었다.
그런 디네의 모습이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가는 이프리트의 시야에 비쳤다.
[......]
지금 소멸하고 있는 건 자신이었지만 이프리트는 디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이프리트는 소멸하기 전, 온 힘을 다해 창을 벼렸다.
동시에 의지도 새겼다.
[이 창은... 오직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것만이 이프리트는 약간이나마 디네에게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스스스-
그렇게 자신의 몸 안에 창을 만든 이프리트는 끝까지 디네에게 미안해하며 소멸했다.
* * *
팅- 티딩-
이프리트가 재처럼 흩어지며 그의 몸속에서 나타난 창 하나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헤드리아는 신기해하며 이를 집으려 했지만 창대를 잡는 순간 거센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치이이익-
[......]
헤드리아가 미간을 씰룩였다.
불꽃은 그녀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한 고열이었다.
잡고 있으면 지속해서 피해를 입을 만큼.
지켜보고 있던 알베타스가 툭 말했다.
“그건 못 사용하겠구나.”
[예. 정령이 제약을 걸어놨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사용이 가능합니다.]
“인간만 말이냐? 이강호를 위해 만들었나 보구나.”
[그런 거 같습니다.]
“포켓에 넣어놓거라. 그 창이 이강호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헤드리아가 아공간 포켓을 열어 창을 그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알베타스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무와 디네를 응시했다.
“분하느냐?”
알베타스가 씨익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디네는 대답하는 것 대신 자신의 최강의 기술을 재차 선보였다.
[이거나 쳐 먹어!]
쿠구구궁-
콰아아아앙!
물론.
“소용없다. 넌 나에게 상처를 입히기엔 너무 약해.”
알베타스가 별 감정 없다는 듯 툭 말했다.
디네는 들끓는 분노에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하다... 너무.
자신도 코인을 흡수해 성장만 가능했었더라면...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디네가 무작정 돌진하며 달려들었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뿐이기에 한 행동이었다.
뻑-
쾅!
[꺄악!]
알베타스가 툭 걷어차자 순식간에 날아간 디네의 몸이 성소 내벽에 처박혔다.
디네는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서 재차 달려들려 했지만 몸이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디네가 끙끙거리고 있자 알베타스가 말했다.
“괜한 짓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있거라. 어차피 모든 게 다 곧 끝난다.”
감상하듯 태초의 나무를 쳐다보고 있던 알베타스가 스륵 손을 들어 태초의 나무껍질을 어루만졌다.
툭 힘을 주면 모든 게 끝일 것이건만.
‘뭐야... 왜 안 부수는 거야...?’
알베타스는 태초의 나무, 기둥을 지금 당장 부술 마음이 없어 보였다.
무엇을 노리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계약의 효과인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김주희의 기운이 느껴졌다.
디네는 곧장 소리쳤다.
[김주희! 오지 마! 오면 죽...]
허나 말을 전부 내뱉을 틈도 없이 알베타스가 씩 웃으며 쓱 손가락을 휘저었다.
잡아오라는 신호였다.
파앗-
눈을 번뜩인 키쿨과 리네리아가 곧장 김주희가 있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 * *
스슥-
자신을 순식간에 포위한 키쿨과 리네리아를 보며 김주희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 쿠룬족과 샤크아크족...’
일반적인 대리자가 아니다.
적어도 헤드리아와 동급.
아니면...
“야, 내가 잡을 거다 키쿨. 넌 가만히 있어라.”
스슥-
리네리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키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만히 있을 거면 네가 가만히 있어라 리네리아. 내가 잡을 테니.”
키쿨이 앞으로 발을 뻗었다.
치직-
순간 교차한 둘의 시선에선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김주희는 창을 굳세게 잡았다.
‘후우...’
힘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 자들을 상대로 2:1이라니.
순간 죽을 거라는 에반의 말이 떠오른 김주희였으나 놈들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직전, 동쪽 저편에서 거센 포효가 울려 퍼졌다.
크롸롸롸롸-
키쿨과 리네리아, 김주희의 시선은 순간적으로 그 포효가 울려 퍼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저편 상공에서 본체화 한 수많은 레드드래곤들이 스카이레블들을 없애며 이곳을 향해 어마무시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리네리아가 중얼거렸다.
“흠... 온 건가.”
그건 마치 나타날 걸 알고 있었다는 어조였다.
“그런 모양이군.”
키쿨이 답하자 리네리아가 시선을 돌려 김주희를 응시했다.
그녀가 김주희를 향해 말했다.
“너, 운이 좋구나.”
스슥-
둘은 그 말을 끝으로 어마무시한 속도로 김주희에게 붙었을 때와 같이 어마무시한 속도로 순식간에 김주희의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후후후, 왔군.”
레드드래곤 부대 최전방, 본체화 한 레드드래곤들의 호위를 받으며 인간 형태로 날아오고 있는 세레나의 모습을 확인한 알베타스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번졌다.
세레나가 수하들을 데리고 알베타스의 근처로 낙하하자, 알베타스는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왔느냐. 세레나.”
그 기이한 행동에 세레나의 옆에 있던 드래곤 다수가 인상을 구겼다.
‘뭐야? 저 행동은?’
이건 마치 자신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모습이 아닌가.
불쾌하다 무척이나.
알베타스의 등 뒤의 나무를 확인한 세레나가 말했다.
“일부러 클리어하지 않고 나를 기다린 거로군요.”
“후후후. 잘 알고 있구나.”
알베타스가 대답하며 주먹으로 장난스럽게 툭툭 태초의 나무를 쳤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빠악-
갑작스레 힘껏 내지른 알베타스의 주먹에 의해 태초의 나무 중앙이 힘없이 꺾이며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세레나의 옆에 있던 드래곤들은 당황하여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이런!!’
기껏 고생해서 왔건만 너무도 허무하게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파앗-
부서진 태초의 나무에서 환한 빛이 뻗어 나와 알베타스를 휘감았다.
그와 동시에 유적지의 존재하는 모든 대리자에게 알림창이 나타났다.
[유적지가 클리어되었습니다.]
파편이 몸에 들어온 게 또렷이 느껴지자 알베타스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로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부 신물 파편은 2개.
알림창이 추가로 또 떠오른다.
[모든 신물 파편이 해방되었습니다.]
[모든 신물 파편이 해방됨에 따라 최종 시퀀스에 진입합니다.]
[특정장소를 제외한 판도라 대륙 모든 곳이 붕괴됩니다.]
[붕괴되기까지 소요시간 45분.]
[시퀀스에 따라 최후의 탑이 솟아오릅니다.]
그것은 미래를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알림창이 아닐 수 없었다.
특정장소를 제외한 판도라 대륙 모든 곳이 붕괴된다니?
지켜보고 있던 카시우스, 크라베스 등등 많은 이들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하지만 알림창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유적지가 클리어됨에 따라 유적지가 붕괴됩니다.]
[유적지에 존재하는 대리자들이 안정한 장소로 이동됩니다. 이동장소, 아르고시아의 늪]
[아르고시아의 늪이 붕괴된 상태입니다. 위치가 재조정 됩니다.]
[재조정되는 위치 탐색까지 소요시간 15분.]
[위치탐색이 완료되기까지 유적지의 붕괴가 일시적으로 정지합니다.]
스스스-
흔들림이 멎으며 유적지 상공 곳곳에 15분을 카운트 다운하는 스톱워치가 나타났다.
알베타스가 세레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세레나가 말했다.
“전부 예상했었나 보군요.”
“뭐 그렇지.”
어떻게 예상이 가능했는지, 에반을 알고 있는 세레나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저벅- 저벅-
알베타스가 세레나를 향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로 언제 복귀했는지 모를 키쿨과 리네리아, 헤드리아, 에우로네, 캬쟉프, 베아렉클, 캐르피스까지.
에반을 제외한 최정예 개체 모두가 호위하듯 몰려들었다.
세레나를 제외한 레드드래곤들은 적들의 얼굴을 보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그들은 태초부터 강했던 만큼, 앞에 있는 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기분을 들게 만들다니...
“후후후, 그럼 시작해 볼까 세레나. 15분은 짧기 그지없으니.”
알베타스가 툭 말했다.
세레나는 말없이 품에서 검을 꺼냈다.
파앗-
순간적으로 두 인물이 서로를 향해 달려듦과 동시에 두 종족이 전투를 개시했다.
* * *
슈우욱-
콰아앙!
파바바밧-
솨아아아아-
불꽃과 물, 그리고 파공성이 뒤엉켜 폭풍 친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레드드래곤과 알베타스족의 전면전.
먼발치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골드의 대표, 알레우스나는 본제화 한 레드드래곤 하나가 자신 쪽으로 날아오자 인상을 와락 구겼다.
“으음...!”
이것은 조약 위반의 비밀 작전, 절대 타 드래곤에게 들켜선 안 되는 것이었는데 발각당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소수 정예로 신중을 기하고 기하면서 추격했는데 대체 언제, 어디서 걸린 것인지.
[알레우스나님,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가온 레드드래곤의 말에 알레우스나는 난감하기 그지없어 얼굴을 긁적였다.
레드측이 먼저 조약을 어기긴 했다지만 자신도 어겼기에 따져보면 사실상 둘 다 어긴 상황.
도와주어야 되는가 말아야 되는가 알레우스나는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음... 그게...”
[혹시 우리가 보고하지 않고 움직여서 그런 겁니까? 다급해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음... 나도 알긴 안다만...”
[알레우스나님. 제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만큼 이젠 알아채셨겠지만 저흰 알레우스나님이 미행하고 있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습니다. 당당했기에 알레우스나님이 미행해도 딱히 상관이 없었기에 그냥 놔뒀던 겁니다. 알레우스나님, 세레나님은 지금 신물파편 두 개를 지니고 있는 알베타스와 맞붙고 계십니다. 도와주시면 이길 수 있습니다!]
레드드래곤이 열변했다.
알레우스나는 머리가 복잡해져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그러게 알레크스, 아니 알겔라우스님은 왜 이런 조약에 위반되는 명령을 내려서...
[알레우스나님! 알레우스나님도 세레나님의 성품을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한 번만...!!]
“...에이씨...!”
알레우스나가 마지못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그랬듯, 그녀가 보기에 세레나의 성품은 나무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감사합니다.]
그렇게 알레우스나가 측근들을 데리고 도와주기 위해 이동을 개시하자 레드드래곤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쓸어버려라.”
알레우스나의 말과 함께 골드드래곤들이 전장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