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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 동굴로부터 50km가량 떨어져 있는 외곽 지역.
결계와 마법으로 모습을 숨긴 채 줄곧 알베타스족의 동향을 살펴보고 있던 세레나와 쉴린은 키르쉬나로부터 통신 마법이 날아오자 하던 일을 멈추곤 그것을 살폈다.
의심을 받을지 모르니 웬만해선 통신을 말라고 일러두었음에도 이렇게 보냈다는 것은...
[생존, 등장, 의심.]
“세레나님! 이건...!”
“흠... 그들이 살아있었나 보구나.”
통신에 보내져온 단어의 내용을 읽어낸 쉴린이 깜짝 놀랐는지 버럭 외치는 반면,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세레나의 표정에선 역시나 변화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뭐가 되었든 분명 그녀의 입장에선 기분이 좋지 않을 일임이 분명하건만...
이것은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감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
세레나는 아무런 감정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한 번 더 돌이키며 시선을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이 있는 쪽으로 옮겼다.
드레보스와 비야크가 나타나서 전말을 발설했다 한들 증거가 없어 감정으로 호소했을 게 분명한 상황.
영향력이 줄고, 견제를 받을지언정 지금 그녀가 신경 써야 될 부분은 그들의 등장이 아닌 바로 저것들이었다.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이 그녀를 원하는 곳에 인도해 줄 것이기에.
그렇게 계속해서 말없이 알베타스족을 관찰하고 있는데, 쉴린이 뭐가 불안한지 세레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저... 세레나님. 그냥 이대로 있어도... 괜찮은 건가요?”
“뭐가 말이냐.”
“그...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닌지...”
“어떤 조치 말이냐?”
“그... 지금이라도 제 부하들을 빼돌려 그들을 수색한다던지... 아니면 분명 그들을 도와준 이가 있을 테니 그걸 찾아보게 한다거나...”
“...흠...”
세레나는 지금 상황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래... 정상이라면, 원래라면 저렇게 불안해하는 게 맞는 행동일 것이기에.
세레나는 그 여느 때처럼 인자하게 웃는 표정을 만든 뒤 쉴린의 어깨를 토닥였다.
“왜, 네가 불안해하는지 알겠으나 괜찮을 테니 안심하거라.”
“하지만 세레나님, 로드들이 세레나님에 대한 의심을 시작했다면...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놈들이...”
“쉴린. 다시 말하지만 걱정 말거라. 정말로 괜찮을 테니. 나를 믿거라.”
세레나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쉴린이 보기엔 정말 눈부신 미소가 아닐 수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쉴린은 다른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듯 안정을 되찾은 얼굴이 되었다.
“그럼 계속 지켜보자꾸나 쉴린. 이제 슬슬 일 테니.”
“예.”
다시금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세레나.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산호 동굴의 입구처럼 보이는 동굴이란 동굴은 사정없이 들쑤시던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의 움직임에 갑작스런 변화가 일었다.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던 알비론과 스카이레블들이 특정 한 좌표로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세레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병력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부터 저곳을 뚫는다.”
레드드래곤, 세레나의 부대가 전장에 고요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 *
한편 세레나가 쉴린과 함께 알베타스족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그때, 알베타스족이 아닌 그녀를 감시하고 있는 드래곤이 있었다.
‘후... 알레크스님... 아니 로드님은 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골드의 대표 알레우스나로 알레크스에게 특수 통신으로 특명을 받은 상태였다.
[세레나의 움직임을 직접 감시하라. 그리고 세레나가 만약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예를 데리고 몰래 따라붙어 움직임을 계속 확인하라.]
알레크스는 알겔라우스를 보좌하는 최측근, 그녀로서는 알레크스가 왜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알레크스는 지금껏 알겔라우스의 뜻을 대변해 왔기에 골드드래곤족인 그녀가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 지겹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쥐처럼 숨어서 지켜봐야 되는 거야?’
보통 이런 감시는 직책이 낮은 드래곤이 맡기 마련.
대표로 나와 있는 그녀가 맡을 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세레나는 일반적인 레드드래곤처럼 신경질적이거나 포악하지도 않을뿐더러 동족을 위해 많은 것을 자진해서 감수한 드래곤이 아니던가.
아무리 로드가 된 지 얼마 안 됐고 색이 다르다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우는...
세레나의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어?’
그러자 짜증으로 가득했던 알레우스나의 표정이 빠르게 진지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이끌고 온 부대와 통신을 계속해서 연결해두고 있는 상태였는데, 레드들이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시로 통솔을 맡겨놨던 부관 일레이나를 불렀다.
[일레이나.]
[예,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너 뭐 나한테 보고할 거 없어?]
[예? 보고 말입니까?]
[어.]
[딱히 없습니다만.]
[......]
일레이나의 대답을 들은 알레우스나의 날카로운 시선이 재차 세레나의 부대로 향했다.
그녀의 부대는 전군이 움직이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수가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했다.
[...일레이나. 지금 바로 내 직속 병력과 그 휘하 부대를 내가 지정해 준 곳으로 은밀하게 보내라.]
[...지금 바로 말입니까?]
[어.]
[저도 갑니까?]
[넌 거기 지휘해야지. 전부 빠지면 분명 이상하게 볼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좌표를 알려주시면 그곳으로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뚜둑-
통신이 종료되었다.
알레우스나는 여태까지 인자하기 그지없던 세레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재차 시선을 돌려 세레나의 부대를 응시했다.
‘세레나님...’
그녀는 이 전투에서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설마 신물파편?
그녀의 시선에 운 좋게 세레나가 포착된 순간이었다.
피싯-
휘이익-
순간적으로 세레나의 고개가 알레우스나가 있는 장소로 휙 돌아갔다.
‘...?!’
알레우스나는 순간 시선이 마주친 느낌이 들자 깜짝 놀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무슨...!’
세레나가 알베타스를 50km 떨어진 곳에서 관측하고 있었다면, 알레우스나가 세레나의 부대를 감시하고 있는 장소는 부대로부터 150km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마법으로 몸을 숨긴 채 자신 혼자.
위치를 특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마법 망원경으로 살펴봐야 겨우 보이는 곳인데, 아무 장비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눈치채다니?!
‘...착각? 아니면...’
그 순간 세레나가 마치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는 것 마냥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알레우스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착각이었나...’
하기야 그 거리에서 자신을 정확히 포착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
이후 알레우스나는 세레나의 부대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추적해가며 은밀하게 자신의 병력과 합류하기까지 영문 모를 불쾌한 감각을 여러 번 체험해야만 했다.
* * *
쾅!
쾅!
쾅!
콰앙!
헤드리아의 거친 발길질에 여태껏 침입을 허용하지 않던 철문이 마침내 산산 조각나며 그들의 눈앞으로 새로운 절경이 펼쳐졌다.
[하, 뭐야 이건?]
주위를 살핀 헤드리아가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굴의 내부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넓디넓은 공간과 그 공간을 빽빽이 메우고 있는 대수림.
그리고 그 정중앙, 군데군데 높이 솟아올라있는 거암의 너머 천장 끝가지 맞닿아 있는 거대한 나무까지.
[빌어먹을... 기둥은 어디 있지?]
그들이 마주한 그 공간은 또 하나의 세계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여태껏 미로를 거닌 것 자체만 해도 짜증이 폭발할 지경인데 이런 장소가 또 나타나다니...
[으으으!! 빌어먹을 기둥! 기둥! 기둥! 기둥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짜증을 이겨내지 못한 헤드리아가 신경질을 내며 주위에 무차별적으로 스킬을 난사했다.
콰광!
콰아아앙!
그녀의 주변은 순식간에 초토화 됐다.
그러자 캬쟉프가 말했다.
“조심... 해라... 헤드리아... 그러다가... 자칫... 잘못해서... 네 몸에... 신물 파편이... 새겨지기... 라도... 하는... 날에는...”
[으으으으!! 닥쳐라 이 느려터진 거북이 같은 놈아! 이런 초입 부분에 기둥이 있을 리가 없잖느냐!]
헤드리아가 씩씩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지금 그녀는 방해꾼인 카시우스를 쫓아낸 뒤 저 기이한 관문을 뚫는 데만 현재 10분 이상을 소요한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저 문만 아니었어도...]
진즉 실피리오를 포획했을 터인데.
빠드득-
이를 뿌득 간 헤드리아가 죽일 듯한 눈동자로 캬쟉프를 응시했다.
추적할 수 있겠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 정령에게서... 나오는... 열기가... 아직... 완전히... 날아가지... 않았다... 충분히... 가능...”
[그럼 어서 바로 쫓아라!]
“알았...”
[입 열지 말고!]
“......”
스슥-
캬쟉프는 순간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이 되었으나 이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헤드리아는 따라가기 전 자신이 부순 관문의 파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파편을 쓱 집었다.
파스스스-
힘을 살짝 주자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린다.
정보창으로 확인해 보건대 관문의 재질은 굉장히 평범한 성분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의 주먹과 캬쟉프의 검을 무려 10분이나 버텨냈다.’
이것은 모종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그 힘이 정령왕의 힘은 아닐 것임이 분명했다.
멍청이가 아닌 이상 이런 상황에서 그런 힘을 사용했으면 사용했지 사물에 부여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하아, 이곳에 도달하면 끝이라 생각했건만... 귀찮게 아직 뭔가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군.’
헤드리아는 그리 생각하며 캬쟉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헤드리아가 마침내 관문을 부수고 내부로 진입한 시간과 같은 시각.
또 다른 관문을 지키고 있던 이프리트는 상대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이런... 이거 안 좋은데...]
순수 전투능력으로선 정령왕 중 제일 강한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그리 좋지 못한 탓이었다.
콰과과과과-
하반신은 뱀, 상체는 여인의 모습을 한 세이렌이 삼지창을 휘두르자, 마치 아쿠리네의 끝없는 물을 연상케 하는 해일이 통로를 가득 메우고 계속해서 몰아친다.
이곳이 개방되어 있는 장소였다면 상대하기가 그나마 훨씬 나았을 터인데...
철렁- 철렁-
콰과과과-
또다시 해일이 몰려온다.
[크윽! 흐아압!]
이프리트는 재빨리 고열의 화염을 방출해 해일을 증발시킨 뒤 반격을 위해 상대에게 다가갔다.
허나.
[후후, 어딜.]
과거 세이렌의 여왕, 에우로네가 삼지창을 한번 쓱 휘두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뒤에서 또다시 거대한 해일이 일었다.
이프리트의 불은 그 해일에 닿자 빠르게 힘을 잃으며 사라졌다.
[크윽!]
이프리트는 생각보다도 더 강한 물결에 이를 악물었다.
‘무슨... 위력이...’
사실 그가 에우로네를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일전 두 번째 기둥을 지킬 때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프리트는 이곳에서 에우로네와 조우했을 때 나름 자신이 있었다.
이전 전투를 돌이켜보건대 [신수]를 사용할 시 화력으로 확실히 찍어 누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중간까지는 예상대로였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에우로네의 몸이 급작스럽게 변화한 이후부터.
‘이전엔 사용하지 않아서 놈은 못 사용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무쪼록 놈은 변화 이후 화염에 대한 추가 저항이 생겼는지 화염이 이전보다 통하지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후후후. 어디 이 해일도 막아보거라.]
쿠구궁!
[크윽!]
해일의 압력이 변신 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강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쿠르르르-
철썩-
이프리에트에게 있어서 물 싸대기 수준이었던 해일은 더 이상 물 싸대기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크으...]
우우우웅-
그리고 가뜩이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더 좋지 않게 이프리트의 코어에 갑작스럽게 기이한 공명이 울려 퍼졌다.
‘이건...’
그것은 관문이 돌파당했다는 것을 알리는, 세계가 정령왕에게 주는 위험 신호였다.
‘이런 돌파당하다니... 누가 당한 거지? 보레아스? 아쿠리네? 아무쪼록 큰일이다...!’
이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최후의 능력, [신수]까지 사용한마당에 이프리트는 이곳에서 눈앞에 있는 에우로네만큼은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허나.
[후후후. 버틸 수 있겠느냐. 나의 바다를. 이 해일을.]
콰르르르-
철렁-
쿠구구구-
[크으윽!]
이프리트는 어쩔 수 없이 철수할 것을 생각했다.
미래가 없는 행동이긴 했으나, 지금 이곳에서 당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나으니까.
‘빌어먹을...’
그렇게 그가 실피리오가 그랬던 것처럼 관문을 통과해 어쩔 수 없이 도주를 선택하려던 찰나였다.
화르륵-
콰아아앙!
통로 저편에서 난데없이 발생되어 날아온 불기둥이 그대로 에우로네의 전신을 덮쳤다.
기둥 공방전(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