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600화 (58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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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실피리오는 헤드리아에게서 캬쟉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압박을 느꼈다.

헤드리아, 알베타스가 인간형으로 진화하기 전 병사를 만들어내기 가장 최적의 상태일 때 자신의 수호를 위해 친히 낳은 개체.

[하, 저따위 것도 하나 빨리 처리하지 못하다니...]

위아래로 실피리오를 훑은 헤드리아가 작게 실소를 내뱉기 무섭게 실피리오를 향해 날아들었다.

슈슉-

콰아아앙!

그리고 그렇게 달려드는 헤드리아의 속도는 캬쟉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기 그지없었다.

물론...

[큭!]

[호오, 이걸 이렇게 쉽게 피해? 캬쟉프에게 고전하고 있어 쓰레기인 줄 알았는데 나름 제법이구나.]

정령왕 중에서도 최속을 자랑하는 바람의 정령왕인 실피리오가 이에 대응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빌어먹을... 역으로 2대 1이라니!’

실피리오가 이를 뿌득 갈았다.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겐 스킬을 아끼느니 마니 고민할 수 있는 여유 따윈 1도 존재하지 않았다.

[젠장... 젠장...!! 젠자아아앙-!!]

쿠구구구!

거칠게 포효하며 분노를 폭발시킨 실피리오의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토록 사용하기 싫던 [신수]의 발동이었다.

실피리오는 변신하기 무섭게 캬쟉프부터 노렸다.

모습을 숨긴 캬쟉프의 기습을 계속 의식해가며 헤드리아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휘이잉-

쌔애애애액!

콰아앙!

[어어억...!]

이윽고 난데없이 빨라진 바람폭풍에 적응하지 못한 캬쟉프는 미처 회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그니크스의 옆에 나란히 처박혔다.

실피리오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즉각 새로운 4개의 회전기둥을 만들어 캬쟉프의 주위를 에워쌌다.

이대로 갈아버리면 되면 이그니크스도 이 바람기둥에 같이 희생당할 게 분명했으나 지금 이 공방전은 정령세계의 존폐가 걸린 일.

‘미안하다 이그니크스. 용서해라...’

실피리오는 안타까운 감정을 뒤로한 채 캬쟉프의 마무리를 위해 회전기둥을 옥죄었다.

허나 그 기둥이 캬쟉프의 몸을 분쇄해 버리기 직전...

슈슈슈슉-

[큭!]

유감스럽게도 헤드리아의 칼날비가 날아와 틈이 발생, 실패하고야 말았다.

[후... 살...았군...]

잠깐 생긴 찰나를 놓치지 않고 기둥 틈으로 빠져나간 캬쟉프는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췄다.

실피리오는 몰려오는 짜증에 눈가를 찌푸렸다.

‘이런 제기랄...’

놓쳐서는 절대로 안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살짝 푸념을 내뱉은 그녀였지만, 적은 그녀에게 그런 짧은 시간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 결국 그걸 사용한 것이냐. 그래 어디 한 번 발악해 보거라. 할 수 있다면.]

비웃음이 가득 담긴 조소를 툭 내뱉은 헤드리아가 즉각 쇄도한 것이다.

슈우욱!

[이...!]

실피리오는 헤드리아의 태도에 열을 올리면서도 즉각 수많은 바람의 검을 만들어 대응했다.

챙!

채재재쟁!

헤드리아의 전신에 돋아있는 칼날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거칠게 부딪치며 맞붙는다.

[뭐냐! 고작 이것뿐이냐!]

거칠게 포효한 헤드리아가 일순간 몸을 웅크리더니 그대로 활짝 펼쳤다.

슈슈슉-

그리고 그 순간 사방으로 비산하는 칼날.

티디디딩!

그것에 적중당한 바람의 검은 힘을 잃고는 사르르 흩어지며 먼지처럼 사라졌다.

[큭!]

이에 추가로 바람의 검을 만들어낸 실피리오가 이를 악물었다.

‘젠장... 상성이 좋지 않아...’

어마무시한 예리함이 담긴 바람의 칼날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더 빠른 속도로 대응하며 어떻게든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있긴 하지만 끝을 보기에는 공격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렇다고 커다란 기술을 사용하려고 하면...’

스스슥-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실피리오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이건! 그놈인가!’

스슥-

그것은 기척을 숨긴 캬쟉프였다.

[신수]로 인해 강화된 감각 덕에 잘 회피하며 기습을 허용하진 않고 있지만...

‘젠장! 이래서는 커다란 기술을 사용할 수가 없어!’

그렇다.

정신을 집중할 시간을 캬쟉프는 주지 않았다.

스르륵-

캬쟉프의 몸이 또다시 신기루마냥 사라졌다.

아마 또 기습을 노리려는 속셈이겠지.

‘크윽...’

그야말로 진퇴양난.

‘이그니크스라도 정상이었더라면...!!’

이후 실피리오는 어떻게든 방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눈앞에는 암운만이 서서히 드리우고 있을 뿐이었다.

* * *

정령의 세계 초입.

막 정령의 세계로 넘어와 부서져가고 있는 세계를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고 있던 골드의 로드 알겔라우스는 떨어지는 세계의 파편이 몸에 닿자 매우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빛과 어둠의 지대 클리어까지 10%도 남지 않은 상황, 조금만 더하면 그토록 원하던 신물파편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기 직전이었건만... 알베타스가 먼저 클리어할 것이라는 보고로 인해 그는 여태까지 이룩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반 강제적으로 불려 온 것이었다.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크으으...!’

어떻게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단 말인가!

20일! 아니 15일 정도만 더 있었어도 모든 게 끝났을 터인데!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알겔라우스는 자신들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정령들이 버텨주기만을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래야 어부지리로 이곳의 파편을 얻을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생기기에.

‘후... 진군 속도를 더 높여야 하는가.’

도착하자마자 싸워야 될 수도 있건만, 체력이 소모되는 것까지 고려해하며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로드시어, 저편에서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드래곤 하나가 있습니다. 레드로 판명됩니다.]

난데없는 보고가 알겔라우스 귓가에 울려 퍼졌다.

[레드?]

세레나가 현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추가로 보낸 전령인 것인가?

다수의 드래곤들은 그리 생각했지만, 그들은 다가온 레드드래곤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이내 깜짝 놀라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드레보스? 어떻게...?]

다가온 드래곤이 다름 아닌 광룡, 퀴르벨이 죽은 후 실종 되어버린 드레보스였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로드님들을 뵙습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내진 못했지만 줄곧 세레나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드레보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이후 드레보스는 함께 날아가며 로드들과 그 주위에 있던 측근들에게 세레나의 병사에 의해 죽을 뻔한 것, 그리고 퀘루안이 당했던 것, 감시하고 있었던 것 등등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다.

[흠... 증거는 딱히 없다라...]

그리고 이에 대한 로드들과 측근들의 반응은 드레보스가 예상했던 대로 못 믿겠다는 쪽이었다.

하기야 드레보스, 자신조차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못 믿어했을 일이었다.

그런데 감히 누구에게 믿어달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세레나는 지금까지 정보를 주며 마땅한 보상도 가져가지 않는 등 동족에게 베푼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겉으로만 보면 세레나는 동족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그런 드래곤인 것이다.

허나 다른 이들의 불쾌하다는 시선에도 드레보스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회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줄곧 숨어 지내왔던 제가 마땅한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지금 나타난 이유는...]

그는 자신이 이렇게 찾아온 이유에 대해 똑똑히 밝혔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말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서입니다.]

만약 정말 운이 따라주어 이 세계에서 신물 파편을 세레나가 얻게 되면 그 이후 그녀의 영향력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수준까지 오르게 될 터였다.

그때 가서는 이런 식의 편법으로 로드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가 한 말을 믿어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다만 조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드래곤들의 미래를 위하여... 그럼 저는 이만... 추격은 하지 않으시리라 믿겠습니다.]

드레보스는 그 말을 끝으로, 과거 신의 회랑에서 찍어놨던 전투 영상 수정구를 넘기고는 자취를 감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혼자 지내는 것이냐 등등 추가로 질문을 받았지만 그런 것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드레보스가 사라지자.

[드레보스가 한 말... 사실일까요?]

알겔라우스의 측근이 살짝 찜찜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물었다.

알겔라우스는 이에 드레보스가 준 수정구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정구에서는 세레나와 퀴르벨을 필두로 하여 부서져가는 공간 속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각형 문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유세현, 루시뷀트가 찍혀있었다.

‘음...’

그것을 유심히 보는 알겔라우스의 뇌리 속에 퀴르벨의 사망 이후, [어떻게 신물파편을 계승받은 것이냐]라고 세레나에게 추궁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때 세레나는 그 질문에 분명 이렇게 답했었었다.

[두 명의 마왕에게서 아버님을 구했을 때 갑자기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로 인해 운 좋게 두 마왕과 갈라진 공간으로 이동되어 싸움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나 아버님은 이미 장기와 신체의 상당 부분을 잃으신 상태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같이 있던 제가...]

상황만 보자면 문 내부에서 일어난, 딱히 트집 잡을 것이 없는 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언뜻 봤을 때의 일이었다.

이상한 점을 구태여 찾아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져본다고 한다면 알겔라우스 눈에 추궁할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있었다.

그 첫째.

‘퀴르벨과 세레나는 거의 동시에 저 문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유세현과 루시뷀트가 협공하였다 해도 2:2였을 텐데 어떻게 그중에서 한 명이, 그것도 세레나가 아닌 로드인 퀴르벨이 일반적으로 밀려 죽는 것이 가능했는가.

‘만약 답이 있다면 [세레나가 일부러 방관하고 도와주지 않았다]와 [세레나와 다른 곳으로 떨어졌다] 밖에 없다.’

하지만 후자는 동시에 들어간 이상 말이 안 된다고 알겔라우스는 보고 있었다.

그랬다면 마왕도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기에.

뭐 모이는 과정에서 운 좋게 마왕들은 만났고, 세레나와 퀴르벨은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말은 되긴 되지만.

‘이건 너무 운이 안 좋은 케이스... 평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리고 보통 이런 걸 생각할 땐 이런 극단적인 건 배제하는 게 옳은 판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는 제쳐두고 두 번째.

‘세레나는 우리가 문책할 때 사각 문에 대한 걸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었다~ 정도로만 끝난 것이다.

왜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는 아이가.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아니, 세레나는 그래서 말하지 못할 아이가 아니다.’

그랬다면 남은 것은 일부러나,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 일 텐데.

‘......’

이상하게 찜찜하다.

대충 볼 때는 절대 찜찜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알겔라우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만약 드레보스의 말이 진실이라면...

모든 상황을 세레나가 의도하여 만든 것이라면...

‘후...’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다 하던 생각을 전부 멈췄다.

지금 중요한 것은 빠르게 도착하여 알베타스족을 밀어내고 신물 파편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세레나는 그 이후에 생각하면 되는 일.

[알리세르나.]

[예, 로드시어.]

[레드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가 만약이라도 통신종류의 마법을 사용하는 게 감지되면 나에게 즉시 알리거라.]

그는 그렇게 측근에게 귀띔을 한 뒤 날갯짓하는 속도를 올렸다.

* * *

쾅!

슈슉!

쾅!

스스슥!

공간을 가득 메운 회오리바람과 칼날의 비가 서로 맞부딪친다.

바람을 칼날로 가르며 파고들어 끝없이 코어를 노리는 헤드리아와 몸을 숨긴 채 기습을 가하는 캬쟉프.

실피리오는 끝없이 흘러넘치는 마력으로 공격과 방어를 하며 버티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삐걱거리기만 하던 헤드리아와 캬쟉프의 합이 점점 맞춰지고 있는 탓이었다.

슈슉-

캬쟉프가 뒤에서 나타나면.

스스슥-

헤드리아가 앞에서 곧장 달려들고.

‘젠장! 이놈들!’

헤드리아가 맹공을 가하면.

슈슉-

캬쟉프가 어디선가 나와 끝없이 실피리오를 노린다.

실피리오는 점점점 압박이 죄어들자 여전히 넘쳐흐르는 마력과는 별개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하아...]

이대로면... 무조건 죽는다.

대체 어떻게 해야 될...

[이제 좀 죽거라. 귀찮으니.]

생각을 채 끝낼 새도 없이 헤드리아가 우악스러운 손을 실피리오의 목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실피리오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카쟉프가 바로 오른쪽에서 나타나 발을 노렸다.

너무도 완벽한 연계라 둘 다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서걱-

[으윽!]

목은 아슬아슬하게 회피했지만 발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브르에 잘려나갔다.

실피리오는 뒤로 재빨리 물러남과 동시에 발을 재생시키려 했지만...

슈욱-

회복에 신경을 집중한 순간 따라붙은 헤드리아의 연타가 날아왔다.

푹-

가시처럼 돋은 주먹칼날이 얼굴에 푹 박힌다.

보통의 대리자였다면 엄청난 중상.

하지만.

[으으으!]

코어가 본체인 정령에게 얼굴은 발과 마찬가지로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부위였다.

물론...

파바바밧-

푸부부푹-

[꺄아아악!]

한번 승기를 잡은 헤드리아와 캬쟉프는 그야말로 끝없이 난도질하며 실피리오가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서걱-

팔이 잘려나가고.

서걱-

허리가 조각조각 나고.

[핵은 부수지 마라. 캬쟉프. 키쿨이 쓸데가 있지도 모른다고 말했으니.]

확실히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헤드리아가 말했다.

캬쟉프가 고개를 끄덕인 찰나였다.

[알...겠...]

슈우우욱-

그가 느릿느릿한 말을 채 끌 낼 새도 없이 난데없이 우측 통로에서 두 개의 화살이 각각 헤드리아와 캬쟉프를 향해 날아왔다.

[으음?!]

한눈에 봐도 상상을 초월한 마력이 담겨져 있다는 걸 인지한 둘은 곧장 도약하여 그것을 회피했다.

콰아앙!

화살은 지면에 닿자 폭발과 함께 주위에 허리케인 같은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쿠구구!

[이건...]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 실피리오가 눈을 깜빡였다.

이 기술, 실피리오는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왜냐하면 이 기술은 자신이 알려준 정령술과 섞어서 만든 그의...

“도망쳐! 실피리오!”

통로에서 카시우스가 외쳤다.

[......]

실피리오는 그대로 두둥실 날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지키고 있던 문의 뒤편으로 스르륵 유령처럼 통과해 모습을 감췄다.

기둥 공방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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