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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건가... 어째서...’
수많은 의문이 유혜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답을 도출해낼 순 없었다.
그만큼 방금 전 알베타스가 보인 행동은 평범한 지적 생명체가 판단하기엔 너무도 상식 밖의 행동이었다.
휘이잉-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유혜인의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후...”
유혜인은 그 바람을 맞으며 그대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빠...’
뭐가 되었든 지금 유혜인에게 중요한 것은 붙잡히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짐이 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
판도라에 떨어져 사투를 시작한 지도 어연 수년, 눈물은 이제 완전히 말라버려 더는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도 자신은 계속해서 노려지겠지.
유세현의 약점으로써.
‘......’
마음이 싱숭생숭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녀는 거기까지밖에 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오빠...’
알베타스가 사라져 긴장이 풀어지며 억지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유혜인은 그대로 다시 의식을 잃었다.
* * *
한편 유혜인의 부대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400km 지점에 위치해 있던 루시펠의 진형.
“이런 미친...!! 왜 갑자기 드래곤들이...!!”
유혜인을 돕기 위해 지원을 가고 있던 루시펠과 그녀의 부대는 현재 유혜인보다도 더한 난관에 부딪친 상태였다.
“죽어라 인간 놈들.”
후웁-
크롸롸롸롸-
머리만 부분적으로 드래곤으로 변의 한 여럿의 레드드래곤들이 숨을 크게 들이 쉬는가 싶더니 이윽고 브레스를 발사했다.
“...무슨! 부분 변화?! 저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크윽... 이 빌어먹을 도마뱀들이!”
이에 사람들은 경악하면서도 각자의 절기로 회피 및 대응에 나섰다.
콰아아아앙-
마력 충돌이 일어나며 무시무시한 충격파와 폭음이 대기를 한 층 뒤덮는다.
“크윽!”
“젠장...”
피해를 더 크게 입은 쪽은 당연하게도 인간 측이었다.
브레스는 그 어떤 스킬에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순수한 드래곤 상태에서만 발사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종족 능력.
너무도 커다래 표적이 되기 쉬운 드래곤의 몸체는 드래곤들이 쉽사리 본체화 할 수 없게 위축시키는 영향력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드래곤들은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브레스를 발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크윽! 젠장할! 한 둘도 아니고 뭐야! 저 이상한 형태는! 저놈들 대체 어떻게...! 크악!”
지금 다수의 드래곤들은 이상하게도 부분 본체화, 그것도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머리 부분 본체화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건 말도 안 돼... 들은 거랑 다르잖아!”
그리고 이것은 이강호나 기억을 되찾은 이들이 사전 알려준 것과는 너무도 다른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분명 판도라가 멸망하려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머리 부분 본체화가 가능했던 드래곤은 로드를 포함하여 그리 많지 않았었다고 했는데.
“젠장! 젠장! 젠장! 뭐가 이따구야?”
육두문자가 절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후우... 야! 그만 욕하고 정신 붙잡아!”
“젠장, 알고 있어 인마! 그냥 짜증 나서 내뱉어 본 거야!”
그러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욕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어리바리하지 않고 호흡을 맞춰 빠듯하게 행동했다.
그래, 지금까지 쭉 그래 왔던 것처럼.
“염병할 놈, 뒤져라!”
푸식-
[크아아아아!]
팀원들이 만들어 준 틈을 타 순간 접근에 성공한 팀장에게 가슴팍을 크게 베인 한 레드드래곤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베인 레드드래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지 말했다.
[크윽! 가, 감히 인간 따위가!]
“어휴, 너희는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냐? 좀 쳐 뒤져!”
서걱-
팀장이 다시 한번 더 힘껏 검을 내질렀다.
그것은 상당량의 마력을 담은 나름 일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정확히 적중한다면 목을 쳐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
허나.
[이, 이 빌어먹을 벌레가...]
완전히 본체화 했을 때와는 달리 머리는 드래곤이라도 몸이 인간형인 상태인 만큼, 드래곤은 잽싸기 그지없었다.
스슥-
다급히 목을 젖혀 아슬아슬하게 회피.
드래곤은 그와 동시에 입을 크게 다시 벌려 팀장을 향해 파이어브레스를 발사했다.
콰라라라라-
그리고 공격으로 인해 자세가 무너진 팀장은 이것을 완벽하게 회피해낼 순 없었다.
“끄아악!”
“팀장님!”
브레스에 적중당한 팀장의 방어구 일부와 피부가 찰흙처럼 흘러내린다.
이에 이 모습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흘끗 살핀 루시펠은 이를 살짝 악물었다.
‘이런...’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일까.
아니 드래곤들은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목적이 무엇일까.
루시펠은 시선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 자신의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이 일의 주동자 틀림없는 여성형 드래곤을 응시했다.
회귀자인 이강호보다도 더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사실상 이강호를 과거로 돌려보낸 장본인, 세레나 레퀴아르크를.
루시펠이 물었다.
“세레나. 왜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알베타스의 현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단순하지만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
그렇다, 지금 이 유적지의 신물 파편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종족은 알베타스였다.
신물 파편을 노리는 자라면, 상황을 생각한다면 좋든 싫든 원수던 아니던 지금은 자신을 치는 게 아닌 알베타스를 견제하는 게 맞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되레 알베타스와 동맹을 맺은 듯한 움직임을 보이다니?
‘정말 알베타스와 동맹을 맺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왜... 만약 맺었다면 무슨 이유로.
어떤 이득이 있기에.
“......”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건만 세레나는 그저 침묵할 뿐 이에 답하지 않았다.
루시펠은 이에 그녀가 비킬 생각이 결단코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창을 치켜세웠다.
‘후우...’
유혜인을 빨리 지원하러 가야 되는데... 이런 상황에 맞게 될 줄이야.
‘혜인씨...’
걱정이 된다.
그녀가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왔는지 어렴풋 알기에 더더욱.
스슥-
챙!
그러나 세레나는 그녀가 유혜인을 걱정하고 있을 여유 따윈 전혀 주지 않았다.
“...!!”
다급히 롱기누스를 들어 방어한 루시펠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순간 날카롭게 파고든 세레나의 검격은 그만큼 위협적이기 그지없었다.
아마 자신이 아니라, 다른 팀장급이었다면...
‘필히 당했을 거야.’
팅!
세레나의 검을 쳐낸 루시펠이 롱기누스를 손위에서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지금 루시펠에겐 시간을 두고 차분히 상대의 역량을 파악해갈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지금 이 와중에도 유혜인은 습격당하고 있는 상태일 테고, 자신의 진형의 사람들도 상황을 보건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속전속결.
대장을 잡아...
‘이 전투를 끝낸다.’
후웅-
순간 흑과 백, 서로 색이 다른 루시펠의 4쌍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쉬이이익-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공격.
순간적으로 접근한 루시펠이 창을 내질렀다.
기억을 되찾아 신창으로 돌아온 제넥 브라큰이 자신의 무공 나선회공과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개량해서 만든 제넥류 제1식.
[격류(擊流)]
스스슥-
이 기술은 시전자가 제대로 펼칠 시 단순히 방어하면 그대로 회전하는 창에 말려들어 큰 피해를 입는 무지막지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챙-
세레나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이 기술을 파훼했다.
그러자 루시펠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연이어 다음 식을 펼쳤다.
제2식.
[연류(聯流)]
채재쟁-
이번엔 방어한 세레나의 몸이 뒤로 살짝 밀려났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식.
제3식, [강류(强流)]
채재재쟁-
이번엔 세레나의 몸이 이전보다 더더욱 많이 뒤로 밀려났다.
신창, 제넥이 만든 초식은 제대로 활용 시 점진적으로 강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스텟이 밀리는 자도 최종적으로는 적의 목을 완벽하게 따낼 수 있게.
하지만 루시펠은 스텟조차도 뛰어난 인물.
쿠구궁-
어둠의 마력을 한껏 끌어올린 루시펠이 곧장 4식을 가했다.
콰과광-
“호오...”
과연 이것에는 놀랐는지, 여태껏 일관적으로 침묵하던 세레나가 처음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루시펠이 5식, 6식을 넘어 7식을 펼치려던 찰나였다.
스슥-
루시펠의 창끝에 모인 마력을 확인한 세레나가 주위에 마력을 퍼트리기 무섭게, 루시펠의 앞에서 일순간 자취를 감췄다.
“...?!”
블링크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기술을 계속해서 정면으로 받아치는 건 부담이 되었는지 아예 자리를 이탈하여 피해버린 것.
루시펠은 살짝 떨어진 장소에 세레나가 안전하게 재등장하자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좌표가 꼬여 있는 이 무너져 가는 세계에서 이렇게 순간적으로 이동 마법을 구사하다니?
“......”
루시펠은 말없이 다시 자세를 다잡았다.
세레나가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다곤 하나 지금까지 전투 양상은 자신이 우위.
기회는 다시 공격하여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루시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역시 강하군요. 루시펠.”
툭 한마디를 내뱉은 세레나가 전신에서 새빨간 불꽃을 내뿜기 시작했다.
루시펠은 보자마자 그 불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이것은... 광룡 퀴르벨 레퀴아르크의...
거기에 더해 간이형 포켓에서 쓰윽 병 하나를 꺼낸 세레나가 담겨 익던 액체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이건?!”
마치 상처부위에 딱지가 생기듯 세레나의 얼굴에 새빨간 비늘이 돋기 시작했다.
그건 누가 봐도 드래곤의 비늘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맞춰지는 퍼즐.
‘저 약 때문이었나! 많은 드래곤들이 부분적으로 드래곤화 할 수 있었던 건!’
세레나가 마치 마음을 읽듯 말했다.
“맞아요. 생각하신 대로예요. 저들이 용인화 할 수 있는 건 이 약 덕분이예요. 전 딱히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당신이 강해서 어쩔 수가 없군요.”
그리고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세레나의 불꽃의 검이 쇄도했다.
슈우욱-
챙!
그 일격은 실로 무지막지하기 그지없었다.
엄청난 열기 그리고 예리한 검술.
제넥류 창술과 어둠의 마력으로 대응이 가능한 루시펠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아니었다면...
“하아압!”
챙!
힘으로 밀어 세레나를 억지로 튕겨낸 루시펠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숨겨두고 있던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서.
‘이걸 쓰긴 싫었는데...’
제넥류의 창술과 어둠의 마력을 이용한 공격이 주인 루시펠이었지만, 그녀 또한 따로 익힌 상승 무공은 있었다.
흑결마공(黑抉魔功).
그것은 강함만으로는 천마신공을 제외한 마교의 최고 상승 무공이었으나, 광폭해지고 미치거나 피아식별을 못 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많고 심각하여 대리자를 포함하여 아무도 익히지 못했던 무공이었다.
순수한 어둠의 마력을 지닌 루시펠은 이러한 부작용이 거의 완벽히 상쇄되기에 혹시 몰라 가지고 있던 아퀼라가 넘겨주며 익히게 된 것인데...
‘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사용해야 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시펠은 이 무공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부작용은 완전 상쇄가 되었으나, 단 하나만큼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완전 상쇄가 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스스스스-
이윽고 루시펠이 흑결마공을 사용하자 아름답게 빛나던 은빛의 머리카락 검게 변하며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개가 완벽히 변화하기 무섭게 씨익 올라가는 루시펠의 입꼬리.
“죽여주마. 세레나.”
고개를 홱 치켜들어 세레나를 응시한 루시펠이 웃으며 달려들었다.
스슥-
다가간 루시펠은 마치 검 자루를 쥐듯 한 손으로 창을 쥔 뒤 그대로 창을 내리그었다.
후웅-
세레나는 이것을 어깨를 돌리며 가볍게 회피했다.
그러자.
“호오, 피해?”
마치 피한 게 기분이 나쁘다는 듯 고운 얼굴을 와락 구긴 루시펠이 마치 난도질을 하듯 어마무시한 속도로 창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한번 이것도 피해봐.”
휭- 휭- 휭-
언뜻 보기엔 마구잡이식으로 공격하는 듯해 보이는 공격.
그러나 세레나는 회피하기만 할 뿐 좀처럼 반격하지 못했다.
루시펠의 공격이 겉에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공방이 거의 완벽하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지니고 있던 세레나는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습격(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