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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난데없는 제안.
유혜인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풉...”
진짜 웃겨서가 아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나온 실소였다.
놈은 자신을 뻔한 의도조차 못 알아채는 머저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서도 굴복하길 바라 저렇게 말하는 것일까.
이내 유혜인이 한마디 했다.
“어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으음?”
“내가 맘에 들어서가 아니라, 오빠 때문이겠지.”
파밧-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고쳐 쥔 유혜인이 알베타스를 향해 돌격했다.
그녀는 죽으면 죽었지 자신의 오빠인 유세현에게 짐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빠에겐 받은 게 이미 너무나도 많으니깐.’
자신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특혜를 받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건 사실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위험도가 낮은 장소에 자주 배치가 되었었으니까.
‘처음에는 이게 매우 불쾌했었지.’
그렇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척이나 불쾌했다.
자신은 유세현의 동생이기 전에 다른 이들과 같은 대리자, 동등한 입장으로 취급받고 싶은 한 명의 사람이었었으니까.
그러나.
“하아압!”
챙!
채재재쟁-
항상 최전방에서 사람들을 위해 아슬아슬하게 행동하는 유세현을 보고 있자니 차마 고집을 부리며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자신이 당해버리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 유세현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혜인은 자존심을 굽히고 정해주는 대로 얌전히 배치받는 대신 틈이 나는 대로 여가 시간 없이 수련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언제 위기가 닥쳐와도 짐이 되지 않도록, 이겨낼 수 있도록.
“흐아압!”
챙!
팅!
거칠게 몰아친 검격이 알베타스가 권격을 내지르자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유혜인은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인간 진형에서 유혜인의 스텟과 무력 순위는 상위권.
공격하고 또 공격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만들어질...
티잉!
빠악-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알베타스가 내지른 주먹이 유혜인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커, 커헉!”
그것은 아까 전과는 한차례 차원이 다른어마무시한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알베타스가 적당히 싸우고 있다는 생각은 어렴풋 들었지만 이 정도로 힘의 격차가 나다니?
‘이대로면 진다... 그리고 지게 되면...’
좋건 싫건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오빠인 유세현을 낚을 최고의 미끼로써.
‘그렇게는 절대로 되선 안돼! 절대로!’
“하아아압!”
눈을 부릅뜬 유혜인이 전신에 존재하는 마력 전체를 억지로 폭발시키듯이 끌어올렸다.
쿠구구구-
그 여파로 기혈이 일부 뒤틀리고 역류한 피가 입에서 새어 나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잡히느니 죽는다.
그런데 그냥 죽지는 않을 것이다.
데려간다.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이번만큼은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반드시!’
알베타스는 그런 유혜인의 투지 어린 눈빛을 보자 큰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하하!”
그것은 이제껏 보였던 억지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었다.
즐겁다는 듯 알베타스가 외쳤다.
“그래! 이래야 그의 동생답지! 지금은 진짜 마음에 드는구나! 유혜인! 어디 한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아라!”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나 한 번 보겠어 알베타스... 받아라아아-!”
마력을 한 군데로 집약시킨 유혜인이 힘껏 함성을 내지르며 검 끝에서 절기를 발산했다.
선녀옥공의 절기 중 단일로는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절기로 과거 에반이 개량해준 절기.
[서서일섬(瑞序一殲) 개(改)]
쉬이익-
거칠게 발사된 반월의 검기가 알베타스의 육신을 향했다.
그 반월의 검기는 주위에 존재하는 마력이 잘려나가는 게 육안으로 확인이 될 정도로 파괴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후후후. 이건 웬만해선 선보이지 않는 거다만...”
마치 펀치머신을 때리기 전 자세를 잡는 것처럼, 양손을 다부지게 모은 알베타스는 그 어마무시한 검기를 보면서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너의 그 투지를 높이 사 특별히 보여주도록 하마. 자 그럼 느껴 보거라. 이 일권을.”
이내 알베타스가 차분히 허공에 권을 내질렀다.
스슥-
그러자 마치 세계가 정지하듯.
“...?!”
일순간 주위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쿠우우우웅-
그리고 그 찰나가 지나가기 무섭게 대기를 뒤흔들며 터져나가는 권압.
슈식-
콰아아아앙-
그것은 유혜인이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일권보다도 폭발적이면서 패도적이기 그지없었다.
마치 유세현의 그것처럼...
치지직-
서서일섬이 권압을 잘라내지 못한다.
아니 되려...
‘미, 밀린다!’
쿠아아아아앙-
마치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폭음이 한차례 울려 퍼졌다.
“으으으...”
권압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유혜인을 포함하여 휘말린 많은 이들이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유혜인은 이에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칼을 지지대로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으...”
한계를 넘기 위해 마력을 폭주시켜 운용한 덕에 팔을 포함한 전신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저벅- 저벅-
알베타스가 천천히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유혜인은 어떻게든 다시 한번 일어나 보려 하다 그대로 균형을 잃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당탕-
“크윽...!”
그녀는 간신히 힘겹게 고개만 들어 앞을 응시했다.
그렇게라도 유혜인은 적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가온 알베타스의 모습이 이윽고 동공에 비친다.
알베타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생채기가 거의 나지 않은 정상인 채로.
유혜인의 앞에 다다르자 알베타스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분하느냐? 유혜인?”
“......”
유혜인은 그 말에 그저 입술을 곱씹을 뿐 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분하기 그지없어서.
왜 자신은 이토록 짐만 되는 것일까.
그렇게 그토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또 노력했건만 왜...
‘오빠...’
문득 유세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간혹 이상한 걸로 시비를 걸며 짜증을 유발하지만 속으론 항상 자신을 아껴주던 유일한 혈육.
‘안녕...’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한 유혜인이 전신의 마력을 억지로 더더욱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으으으...!!’
이전보다 고통이 몇 배, 몇 십배는 되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대로 마력을 폭사시키듯 폭주시켜, 몸을 터트려 자살하기 위해서.
이대로라면 100% 알베타스에게 잡혀가 에반이 당했던 것처럼 강제로 알베타스화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알베타스화가 되어 알베타스를 섬기는 모습을 오빠가 보게 되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녀는 오빠가 얼마나 괴로워할지 잘 알고 있었다.
“잠깐, 유혜인. 너 지금 뭐하는 것이냐.”
“으으으-!!”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유혜인은 몸과는 다르게 마음은 나름 안도가 되었다.
자신이 없더라도 유세현의 주위에는 이강호, 김주희, 루시아 등등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동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적을 상대하며 힘들게 지내다 보면,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국 자신은 잊혀지게 될 것이다.
그래, 엄마와 아빠의 죽음을 이젠 오빠가 더는 떠올리지 않듯이.
“멈추거라 유혜인. 멈추지 않으면 죽는다.”
우습게도 적인 알베타스가 유혜인의 행동을 말리기 시작했다.
유혜인은 눈, 코, 입, 전신에서 피와 마력이 끊임없이 새어 나와 무지막지하게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피식 웃었다.
마치 엿 먹으라는 듯.
그래, 지금 죽으면 안 되는 인물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겠지.
‘넌... 니 뜻을 이루지 못할 거야. 알베타스!’
유혜인이 끝을 보기 위해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려던 딱 그 순간이었다.
“흠, 어쩔 수 없군.”
툭-
“커헉!”
알베타스가 손날로 유혜인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너어......”
그것만으로 유혜인은 곧바로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현재 유혜인의 몸 상태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악 중에 최악이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알베타스는 유혜인의 코에 손을 대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를 정리한 에반이 다가오자 알베타스가 말했다.
“생각보다 더 독종이로구나. 이 아이.”
“뭐, 그 유세현의 동생이잖습니까. 아마 죽어도 오빠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거겠죠.”
“후후, 그렇지? 매력적이야~”
“......그래서, 이제 확보도 했겠다 어떡하실 겁니까?”
“놈들의 행방은? 연락 온 것 있느냐?”
“아뇨. 지금도 실시간으로 받고 있습니다만 아직 딱히 별다른 건... 어?”
그 순간 에반이 신호를 받았는지 어깨를 들썩였다.
알베타스는 기다리고 있었던 연락이 온 것임을 알아채고는 눈을 번뜩였다.
“내 예상대로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로구나. 에반.”
“예. 맞습니다.”
“가깝느냐?”
“예, 무척이나. 5분 정도만 가면 됩니다.”
“후후, 그렇단 말이지.”
알베타스가 기절한 유혜인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유혜인에게서 홱 돌린 그녀가 말했다.
“자, 그럼 가볼까 에반.”
“...예. 그러죠.”
에반은 기절한 유혜인을 지그시 쳐다보다 그녀를 챙기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다른 병사들이 옮기게 둘 바엔 자신이 죄책감을 짊어지고 직접 옮길 생각이었던 것인데.
“아니, 에반. 그 아이는 들 필요 없다. 놓아 주거라.”
“...예?”
에반의 고개가 순간 갸웃 꺾였다.
그는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닌가 했다.
“어... 지금 무슨...”
“두고 갈거라 말했느니라. 에반.”
“......”
평소 나름 재치 있게 알베타스에게 말을 내뱉는다 자부하는 에반이었지만, 그는 지금만큼은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이런 막장스러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세레나의 행동을 살피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혜인을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후후후,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냐 에반. 유혜인을 두고 간다는 게 그만큼이나 황당하더냐?”
“어... 솔직히 이건 좀 많이 당황스럽네요 여왕님. 혹시 이유를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후후 물론이지. 이유는 단순하단다 에반.”
“음...”
대체 뭐기에.
“이 아이를 지금 내가 데려가면 유세현이 나를 증오할 테지 않느냐.”
“...예?”
에반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고작 그런 이유로?
“어... 어... 정말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 입니까?”
“그렇다.”
“...어...”
어 말고는 뭐라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지금 알베타스의 발언은 에반에게 있어선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여왕에게 이런 소녀스러운 부분이 존재했다니?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에반이 마치 생각을 떨쳐내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아는 한 알베타스는 뼛속까지 군주, 소녀스러운 감정이 있다 한들 단순히 감정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뭐, 알겠습니다. 데려가지 않으신다니...”
어느새 원래대로 표정이 돌아온 에반이 유혜인을 그대로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베타스는 그런 에반을 보며 피식 미소 지었다.
‘뭐가 있다는 걸 감각적으로 눈치챈 건가... 역시 에반이로구나.’
“자, 그럼 가볼까. 에반.”
알베타스가 말했다.
“예, 그러시죠. 안내하겠습니다.”
에반이 박수를 두 번 치더니 자리에서 도약했다.
쿠구구구-
그것만으로 주위에 있던 모든 알베타스족들이 그를 따르며 일사불란하게 위치에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알베타스가 곧장 뒤따라가려던 찰나였다.
“으으...”
SSS랭크 체력 스텟 때문일까? 그새 어느 정도 회복했는지 유혜인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알베타스는 이에 하려던 행동을 잠시 멈추고 무릎을 굽혀 유혜인에게 말을 걸었다.
“후후후, 이제 정신이 좀 드느냐?”
“아, 알베타스...!!”
붙잡혔다 생각한 유혜인이 알베타스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기겁을 했다.
허나.
“후후후, 그리 기겁할 필요 없다. 유혜인. 지금 널 어떻게 할 생각 따윈 전혀 없으니.”
“으... 뭐...?”
“그럼 내가 지금 한번 살려준 거 잊지 말고. 유세현을 만나게 되거든 안부 인사 좀 잘 전해주거라.”
“으... 지금 뭔...”
대체 저놈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혜인은 이해가 좀처럼 되지 않았으나, 이내 얼마 안 가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유혜인.”
스슥-
알베타스가 자신을 두고 그냥 자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습격(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