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1/606 --------------
“적이다! 적이 다가온다!”
“습격이다!”
뿌우우웅-
경계병의 외침과 함께 뿔피리 소리가 상공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에이씨, 자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에 경계 근무에서 복귀해 잠을 자고 있었던 유혜인은 튕기듯이 몸을 날려 일어남과 동시에 단숨에 자리를 박차고는 간이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 지대를 지키면서 나름대로 습격을 받아왔기에, 이번에도 별 큰일은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뭐야? 뭔가 했더니 알베타스의 잡병들이잖아? 스카이...레블...이었던가?”
마찬가지로 적을 확인한 동료들의 웅성거림이 그녀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야, 아가사. 저거 스카이레블 맞지?”
“응, 맞아 스카이레블.”
“이제는 정찰병 정도로만 쓸 수 있을 텐데 뭐 하러 이리 우르르 나타난 거지? 이렇게 몰려와봤자 우리한텐 별다른 데미지도 못 줄 텐데. 그렇지 않냐?”
“그러게나 말이야.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쓸어버리고 다시 자자고.”
마치 괜히 긴장했다는 듯 아가사를 포함한 동료들의 안도 섞인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울린다.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생과 사가 항상 교차하는 전장이었으니까.
그래, 별거 아니니 마음이 놓이겠지.
그러나.
‘...뭔가 불길해.’
유혜인만은 동료들과 달리 저들에게서 매우 불쾌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저 넓은 상공위로 달빛 한 점 통과할 수 없게 새까맣게 군집해있는 스카이레블과 그 위에 타고 있는 알비론 군단.
알비론들과 스카이레블들은 동료들의 말처럼 정찰병 정도로밖에 쓰지 못하는 하급 병력인지라 정말 저렇게 모아놔 봤자 먹잇감만 될 터인데 왜 저렇게 뭉쳐놓은 것일까.
대체 무슨 의도로.
지금껏 한 번도 저런 식으로 스카이레블과 알비론을 운용한 적 없었던 알베타스가.
‘...제발 진짜 별 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캬아아악!
지금껏 거리를 유지한 채 일대를 휘감듯 주위만 빙빙 돌고 있던 스카이레블들이 갑자기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하며 주위에 있는 다른 인간 진형은 무시한 채 오직 유혜인이 있는 진형을 향해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쐐애액-
마치 과거 일본이 사용했던 비인도적 전술인 자폭병, 카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시키듯.
“뭐야?”
“저놈들 왜 이쪽으로만 몰려와?”
아가사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저놈들 혹시 승산이 없다는 걸 느끼고는 일점으로 돌파라도 해보려는 심산인 건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
“에이씨, 왜 하필 우리한테... 똥 밟았네.”
“그러게나 말이다. 사정권 넘어왔어. 갈겨!”
아가사의 외침과 함께 동료들이 준비했던 광역 스킬을 펼쳤다.
슈우우욱-
콰과과광-
그리고 그 일격은 무척이나 효과적인 것을 뛰어넘어 어마무시하기 그지없었다.
-끼에에에엑!
순식간에 베어 지거나 불타버려 시신도 남기지 못한 채 바스러져 사라지는 괴물들.
당연한 일이었다.
과거에 비해 강화됐다 한들 스카이레블들의 기본 스탯은 잘해봐야 B~A랭크에 준하는 반면 갖은 고생을 겪으며 성장한 인간 생존자들의 기본 스탯은 최소 SS랭크 이상 되었으니까.
시간만 충분히 들인다면 인간 진형에서 가장 약한 한 명이 새끼손가락 하나만으로도 흔히 말하는 무쌍을 찍으며 저 모두를 도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인 것!
“에이! 빌어먹을 벌레들 같으니! 죽어라!”
이후 스카이레블과 알비론들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
쾅!
콰과과광-
폭음이 울려 퍼지고 폭풍이 스쳐 지나가면 그곳에 있던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은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키에에엑!
“어딜.”
푸식-
그 결과 대다수는 접근도 해보지 못한 채 외부에서 박멸, 혹 운 좋게 광역 스킬을 뚫고 들어왔다 한들 채 1초를 버티지 못했다.
“에이씨, 왜 이렇게 많아?”
“그러게 말이야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날아드네.”
그리고 그래서일까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5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생존자들에게선 더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생존자들도 혹시라도 뭐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닐까 나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었지만, 이 정도까지 적을 처리했음에도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말 별거 없다고 판단을 내린 탓이었다.
‘후우, 괜한 우려였나...’
유혜인도 내심 안도하며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갑자기 지면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땅이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유혜인은 이 세계가 불안정한 상태라 또 이러한 현상이 타이밍 좋게 일어난 것이라 여겼다.
허나.
쿠구구-
쾅!
“?!”
지면을 흔드는 진동이 더욱 거세지더니 마치 내부에서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지면의 일부가 하늘로 거칠게 솟아오르며 그 속에서 애벌래의 형상을 띤 거대한 괴수가 사방에서 다수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이건?!”
아가사는 그것을 확인키 무섭게 인상을 와락 구겼다.
그녀가 한눈에 보기에 지금 등장한 애벌래는 이곳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부류의 생명체가 아니었다.
단단해 보이기 그지없는 애벌래의 저 표피...
“이런 빌어먹을!”
더 볼 것도 없이 아가사와 동료들이 다급히 애벌래를 향해 스킬을 난사했다.
슈웅-
파바바밧-
이 애벌래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지금 그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저게 입을 벌리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껏 그들을 생존하게 해주었던 판단력과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쩌억-
언제 입을 벌린 것인지 쫙 벌어진 애벌래의 입 안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아가사와 동료들이 날린 스킬을 쳐냈다.
팅!
티디딩!
콰과광!
뒤틀린 스킬이 이곳저곳을 깨부수며 여파로 흙먼지가 휘날린다.
아가사는 놀란 눈이 되어 말도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무슨...”
긴급하게 날린 것이었다고는 하나 최상위 대리자인 자신과 동료들이 날린 스킬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렇게 쉽게 막아내다니?
‘젠장...’
아가사가 입을 악물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건 보통 잘못돼도 여간 보통 잘못된 게 아닌 것 같았다.
이윽고 흙먼지 속에서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안 되지 안 돼~ 이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게 자란 아이들인데~”
인간의 기준에서 들었을 때 굉장한 미성.
그것도 여성의.
“......”
꿀꺽-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서 모종의 께름칙함을 느꼈다.
마치 아름다움 속에 숨어있는 파멸을 마주하는 감각이랄까.
저벅- 저벅-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유혜인은 그 방향을 향해 검을 겨눴다.
마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언제든지 보이는 순간 단번의 일격으로 없앨 수 있도록.
이윽고 흙먼지 속에서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후, 그래. 여기서 유혜인이 누구더냐.”
마치 갑주를 두르듯 단단하게 경화되어 있는 갈색의 표피와 천사를 연상케 하는 8쌍의 날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말.
“크윽!”
침음을 삼킨 유혜인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알베타스를 향해 현재 스스로가 펼칠 수 있는 최고 스킬을 사용했다.
천 개의 검기가 한 점으로 모여 적을 멸살시켜버리는 천녀의 최고 절기.
[선녀옥공(仙女玉功)]
[천일격옥참(千一擊玉斬)]
파바바밧-
쐐애액-
마치 총기를 난사하듯 유혜인의 검 끝에서 마구잡이로 발사된 수많은 검기가 일제히 방향을 틀더니 상하좌우 할 것 없이 알베타스를 향해 쇄도했다.
“호오, 유도인가?”
알베타스는 이에 양팔을 들어 올리며 어마무시한 마력을 기반으로 순수하게 방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꽤나 여유로운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됐다. 걸렸어!’
이에 유혜인이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금 사용한 이 천일격옥참의 무서운 점은 일점으로 모이며 위력이 점점 배가 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껏 이 스킬을 단순히 유도 능력이 있는 단순한 광역 스킬이라 생각하고 방어한 자들은 절대로 이 공격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충분히...
‘해치울 수 있어!’
유혜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여왕님, 그거 그렇게 방어하시면 아무리 여왕님이라도 조금 위험하실 텐데~”
스슥-
순간 흙먼지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알베타스의 앞으로 한 인물이 불쑥 튀어나왔다.
유혜인은 그 인물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저 사람은... 설마?!
“오랜만이네요, 유혜인씨.”
가볍게 웃으며 인사한 에반이 작은 기합과 함께 천일격옥참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파앗-
스스스-
그것만으로 천일격옥참은 힘을 빠르게 잃고 분쇄되기 시작했다.
천일격옥참의 약점은 천 개의 검기가 목표에 다다라 집약되기 전에 각개로 부숴버리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알고 있던 에반이 그 짧은 새에 전부 쳐내며 파훼해버린 것이다.
“에반...님...”
유혜인이 서글프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작게 읊조렸다.
에반은 그런 유혜인의 얼굴을 보고는 입가에 쓰디쓴 미소를 머금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아직도 저를 그렇게 불러주시는 겁니까 혜인씨... 이제 그렇게 부르는 건 그만둬 주십시오.”
“호오, 에반. 유혜인과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느냐?”
알베타스가 끼어들며 말했다.
에반은 그 물음에 볼을 긁적였다.
“예, 뭐. 그렇죠.”
“왜, 지금껏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 에반?”
“어... 물어보지 않으셔서?”
에반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답했다.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 듣기엔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답변.
그렇기에 아무리 알베타스라고 할지언정 화를 내거나 호통을 칠 법도 하건만.
“하하하하! 그래! 맞아! 그러고 보니 에반! 내가 너에게 물어보지를 않았었구나!”
알베타스는 호쾌하게 웃으며 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유혜인을 쓱 흘겨본 알베타스가 에반을 재차 응시하며 물었다.
“그래, 그래서 저 아이와는 무슨 사이인 것이냐. 저 아이가 너에게 님자를 붙여서 부르던데.”
“과거 동료였던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호오, 그렇느냐?”
“예.”
“흠... 넌 그렇다 쳐도 내가 보기에 저 아이는 아닌 거 같은데...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알베타스의 시선이 스르륵 다시 유혜인에게로 향했다.
이제 잡담은 끝.
그녀는 이제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룰 차례였다.
“에반. 저 아이를 포획하여 나에게 데려올 수 있겠느냐?”
“...그게 명령이시라면...”
“하하! 그렇느냐? 그렇다면 넌 내가 유혜인을 잡을 동안 그냥 주변 잡졸들이나 좀 상대하고 있거라.”
“예? 그게 무슨...”
“방금 전 말은 그냥 해본 말이라는 것이다. 저 아이를 잡는데 널 시킬 거였으면 내가 뭣 하러 직접 이곳까지 친히 왔겠느냐.”
그렇게 말한 알베타스가 유혜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유혜인이 긴장하며 검을 치켜세우자 알베타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이야.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네가 무엇을 한다고 한들 너와 나의 차이는...”
슈슉-
말을 채 전부 끝낼 새도 없이, 보법을 사용하여 순간적으로 접근한 유혜인이 알베타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선녀옥공(仙女玉功)]
제 제5식, 연참결(連斬抉).
“하아압!”
그것은 전신의 마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켜 연속된 동작으로 적의 가드 자체를 부숴버리고 일격을 가하는 어마무시한 무공이 아닐 수 없었지만, 아쉽게도 알베타스에겐 통하지 않았다.
티디딩-
알베타스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연격으로 더해져야 되는 힘이 점점 되레 약해진다.
‘크윽! 무슨...!!’
단순히 스텟의 차이가 나서가 아니었다.
“후후후, 에반의 검술과는 조금 다른 유형의 재미있는 검술이구나.”
“으으으-!!”
전부 다 파훼해버린다.
마치 다음에 무슨 공격이 나올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여자... 에반님 때문인지는 몰라도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다!’
그렇게 생각한 유혜인은 억지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검격에 힘을 더더욱 불어넣었다.
어차피 죽나 사나, 모 아니면 도.
“하아압!”
파앗!
콰과과광-
피슛-
검격과 동시에 발사된 검기가 알베타스의 볼을 살짝 스쳤다.
기혈이 꼬일 정도로 무리를 한 일격이건만 고작 이 정도의 피해밖에 못 입히다니.
유혜인이 인상을 구기자 알베타스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 상태에서 그런 일격을 날리다니! 독기 있는 그 모습!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자 그럼 이번엔 내 차례다.”
알베타스가 억지로 큰 일격을 날리느라 자세가 순간 무너진 유혜인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빠악-
“크윽!”
자세 때문에 완벽히 방어를 할 수 없었던 유혜인은 결국 땅을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유혜인은 넘어짐과 동시에 재빨리 자세를 다잡았다.
보통 이런 경우 곧바로 추가타가 이어질 확률은 거의 99%, 알베타스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탓이었다.
허나.
“후후후.”
알베타스는 이상하게도 그저 유혜인을 바라만 보며 웃을 뿐 그녀가 일어날 때까지 제자리에서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의도지? 날 쓰러뜨리려던 거 아니었나?’
유혜인은 이 이상하기 그지없는 알베타스의 행동에 순간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좋은 게 좋은 것인 만큼 차분히 호흡과 마력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유혜인이 그나마 한 숨을 돌린 순간이었다.
저벅- 저벅-
알베타스가 여전히 웃는 채로 유혜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맘에 들었다 유혜인. 너 내꺼 하지 않을 테냐?”
습격(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