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86화 (57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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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하, 답할 생각은 끝내 없는 모양이구나. 뭐, 상관없다. 잡아낸 뒤 알아내면 그만인 일이니.”

알베타스의 손이 세레나의 머리를 향해 쓱 움직였다.

세레나는 알베타스 손에 깃들어있는 어마무시한 양의 마력을 읽기 무섭게 발길질을 해 알베타스를 밀쳐냈다.

퍼억-

순식간에 10m가량 밀려나자 몸을 멈춰 세운 알베타스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호오, 이 몸을 이 정도까지 단번에? 과연, 이 모든 일을 꾸민 자 답구나.”

스륵-

후웅!

줄곧 감춰져 있던 알베타스의 8쌍의 순백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세레나는 그 모습을 보기 무섭게 미간을 좁혔다.

저건 설마...

“하하, 그럼 세레나여. 어디 한번 잘 버텨 보거라.”

슈슉-

말을 마친 알베타스의 모습이 일순간 사라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레나의 앞에 나타났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

후우웅-

곧장 알베타스의 건틀릿이 바람을 가르며 세레나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으나, 그와 동시에 세레나의 발밑에서 강렬하기 짝이 없는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헬 파이어조차도 뛰어넘는 10서클 마법.

이터널 플레임(Eternal Flame).

세레나는 이 기습조차도 예상하여 대비해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쿠구구구궁-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불꽃을 알베타스가 정통으로 뒤집어쓰는 일 따윈 발생하지 않았다.

마치 세레나가 그렇게 예상하고 행동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어마무시한 강풍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막아낸 알베타스가 불길이 강풍을 뚫고 다다르기 전 관통하듯 세레나를 스쳐 지나갔다.

콰아아아앙-

후폭풍이 미친 듯이 휘몰아친다.

세레나는 그 폭풍 속에서 완전히 산산조각 나 가루가 된 갑주의 일부를 확인하기 무섭게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치잉-

“호오, 싸울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더니 이제야 비로소 무기를 꺼내는구나 세레나. 드디어 안 되겠다 생각이 든 것이냐?”

거센 바람 속에서 알베타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

세레나는 알베타스가 그렇게 말을 내뱉든지 말든지 천천히 자세를 다잡았다.

알베타스의 말처럼 원래 그녀는 이곳에서 검술을 보일 생각이 1도 없었다.

정보는 곧 힘, 일이 수틀리게 되면 아깝긴 하지만 미리 준비해두었던 1회성 아이템으로 탈출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혼자 이곳에 온 것이고.

하지만...

‘내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 그냥 가기에는 현재 알베타스의 상태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많이 달라졌다.’

이강호가 회귀하여 세계가 과거로 돌아가기 전, 알베타스족의 왕은 그저 명령하고 생식만 할 뿐 이런 식으로 직접 싸움을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전투에 대한 이점을 느끼지 못해 그런 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알베타스족을 이끄는 알베타스는...

‘로드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인가.’

모종의 영향을 받아 어마무시한 무력을 얻는 쪽으로 진화된 상태였다.

‘흠...’

물론 알베타스족의 여왕이 무력 쪽으로 진화한 것을 세레나가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파편을 통해 이번 생의 알베타스의 과거도 어느 정도 살펴봤기에.

예상외였던 것은 알베타스의 무력 수준.

그녀는 알베타스가 잘해봐야 엘프의 수장 카시우스나 카그네프 제벨 정도쯤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었다.

그런데.

스스스스-

알베타스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광채와 마력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

칼을 맞대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비로소 확신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것은 분명...

‘신성력이다.’

게다가 그 순도는 오르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과거 힘을 잃기 전의 상위 천사 수준 정도는 가뿐히 넘긴 상태였다.

상위 천사와 대천사, 그 중간 정도의 순도인 것이다.

어떻게 그 힘을 얻은 것일까.

천족의 날개를 이식해서?

‘아니다. 내가 아카식 레코드로 알베타스의 과거를 읽어봤었을 때 알베타스는 이미 저 날개는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 힘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의문이 든다.

하지만 세레나는 이 의문을 계속 여유롭게 돌이켜볼 시간이 없었다.

조금 있으면 이 산호성을 지키고 있던 병력들이 우르르 몰려올 것이기에.

‘그러니 이 일은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고.’

아무쪼록 알베타스는 어느 정도까지 이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세레나는 나중을 위하여, 지금 그 한계를 봐놓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의도를 읽었는지 알베타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세레나여 네가 내 진정한 힘을 한번 맛보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그래 뭐, 그렇게까지 하는데...”

알베타스의 전신에서도 마력이 광폭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디 한 번 특별히 맞춰주도록 하마. 허나.”

쿠구구구-

휘몰아치는 마력에 눌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대충 했다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치직-

치지지직-

당장 세상을 부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어마무시한 두 개의 파동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서로를 응시하던 두 강자가 동시에 일격을 날리려 한 찰나였다.

스슥-

세레나의 등 뒤에서 순간 싸늘한 음색이 일었다.

“......”

세레나는 그 소리를 파악하기 무섭게 곧장 검의 방향을 등 뒤를 향해 틀었다.

콰과과과과과-

세레나의 검 끝에서 발사된 어마무시한 검기가 순식간에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쿠구구구-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거대 산호성!

부서지는 파편 속에서 세레나가 자신의 등 뒤를 노렸던 암살자의 모습을 응시하며 말했다.

“에반. 당신...”

“하하, 설마 내가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고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세레나.”

“......”

당했다.

세레나는 그리 생각했다.

상대의 기술은 보지도 못한 채, 일부라고 할지언정 자신의 기술만 선보인 셈이 된 것이었으니까.

‘애초부터 이럴 생각이었었군.’

세레나가 흘끗 보니 알베타스는 마력을 거두고 있었다.

마치 지금 기술을 사용해봤자 적중시키지 못하리란 걸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에반이 계속 말했다.

“그래서, 계속 이대로 이곳에 있을 생각인가? 세레나?”

세레나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볼을 긁적였다.

“흠... 그럴 수는 없겠죠. 곧 병력들이 이곳에 당도할 테니.”

“잘 알고 있군. 하지만 난 너를 그냥 보내줄 마음이 없다.”

에반이 차분히 검을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세레나는 이에 인벤토리에서 팔찌 하나를 꺼내며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이번엔 제가 제대로 당했군요. 에반. 당신이 이 아이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었는데.”

“그 아이템은... 역시, 네가 가지고 있었군. 세레나.”

“뭐, 그렇죠. 그럼 저는 불청객이 오기 전에 이만...”

세레나가 들고 있던 팔찌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움켜쥐어 부쉈다.

콰득-

파아앗-

그러자 순간적으로 환한 빛이 세레나의 전신을 덮으며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온데 간데 자취를 감췄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살핀 알베타스가 재미있다는 듯 재차 씨익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아이템이로구나. 아무런 사전 동작도, 준비도 필요 없이 그저 부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전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니. 이래서 공격하는 척만 하라고 전음을 보낸 거였느냐. 에반?”

“예, 맞습니다. 아마 세레나는 여왕님의 기술을 확인하고 도망칠 생각이었을 겁니다.”

“하하하! 확실히 그럴 셈이었겠구나. 그런데 너의 계략으로 오히려 역으로 자신의 기술만 보인 셈이 된 것이니 지금 세레나의 기분이 많이 더럽겠구나.”

알베타스가 호쾌하게 웃었다.

세레나에게 한방 먹인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

허나, 에반은 알베타스를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세레나가 이곳까지 이렇게 쉽게 침투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녀의 행동 양식 자체가 에반에게 극심한 불쾌감을 선사한 탓이었다.

뭔가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닌, 의태한 뒤틀린 괴생명체를 상대하는 듯한 감각이랄까.

에반은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감각을 뒤로한 채 입을 열었다.

“흐음, 아무쪼록 세레나는 이 유적지에 한해서 더 이상 저런 이탈은 할 수 없을 겁니다.”

“호오, 그렇느냐?”

“예, 저 아이템에는 제약이 걸려 있거든요. 단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과거에 직접 사용해 봤던 것이냐?”

“아뇨, 사용은 해보지 않았지만 연합군 중 한 명이 지니고 있어 직접 정보창을 읽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하긴, 저런 걸 제약 없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이 유적은 클리어 됐었겠지.”

“예, 맞습니다.”

“후후후, 재미있구나.”

알베타스가 어깨를 들썩였다.

이윽고 그녀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세레나는 그 유혜인이란 애의 정보를 내게 일러주기 위해 그런 대단한 아이템을 버릴 각오를 하고 이곳에 찾아온 셈이 되는 것인데...”

알베타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모종의 불안함을 느낀 에반이 다급히 물었다.

“여왕님. 설마 세레나가 주신 정보를 사용하실 생각은 아니시죠?”

“후후후, 글쎄? 사용할까~ 말까~”

“여왕님. 세레나의 뜻대로 움직여주면 놀아나게 되는 셈이란 거 아시잖아요.”

“뭐, 그렇지. 그런데 에반 너는 궁금하지 않느냐?”

“예?”

“내가 유혜인이란 아이를 포획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세레나가 어떤 이득을 보려 하는지 말이다.”

알베타스가 재차 씨익 웃었다.

에반은 알베타스의 그런 얼굴을 보며 지끈거리기 시작한 관자놀이를 지그시 손으로 짚었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에반은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 여왕님. 지금 중요한 시기이지 않습니까. 이제 조만간 애들이 마지막 기둥의 위치를 알아올 텐데...”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알베타스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진다.

에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베타스가 저렇게 말하는 경우 99.99% 그다음에 나올 말은...

“알아내기 전인 바로 지금! 곧바로 움직여 후다닥 끝내 지장이 생기지 않게 하면 되지 않을까?”

“...여왕님. 사실 다 핑계고 유혜인을 포획해서 유세현을 가지고 싶으신 거죠?”

“......하하, 날 뭘로 보고...”

“......”

“어헛! 진심으로 그런 거 아니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라! 에반!”

“...에휴.”

에반의 고개가 푹 떨궈졌다.

* * *

인간 진형, 정기회의 날.

“저... 주희 언니.”

볼일을 보고 돌아가려던 김주희를 유혜인이 붙잡았다.

“응? 왜?”

“혹시 우리 오빠가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는 거 있나요? 다른 분들은 다 모르신다고 하셔서...”

그렇게 묻는 유혜인의 얼굴에는 걱정으로 인한 그늘이 져있었다.

유혜인이 걱정하지 않도록 이미 말을 맞춰놨는데.

대체 누구에게 물어봤기에.

“다른 분들? 누구한테 물어봤는데?”

“아... 그게. 루시아 언니랑. 루시펠 언니한테요. 원래는 강호 오빠한테 묻고 싶었는데 바빠 보여서...”

“아~ 그렇구나. 루시아랑 루시펠씨한테 물어봤구나...”

하필이면 제일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걸리다니.

김주희가 힐끔 눈을 흘겨 루시아와 루시펠이 있는 곳을 살폈다.

루시펠은 애써 의연한척하며 서 있었고, 루시아는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에휴. 저 멍청하게 착해빠진 것들...’

마음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쉰 김주희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 뒤 입을 열었다.

“선배 걱정은 안 해도 돼 혜인아.”

“네? 정말요? 주희 언니는 오빠가 뭐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 건가요?”

“응. 세현 선배는 지금 특수한 임무를 하고 있어. 정령과 관련된.”

“아... 정령들이요?”

“응. 아, 뭐 그렇다고 해서 위험한 건 아니고. 보안 때문에... 혜인이도 알지? 지금 정령들 더럽게 까칠한 상태인 거. 워낙 꼬투리를 잡아야지. 에휴, 사실 이것도 원래는 말해줘선 안 되는 건데 넌 세현 선배의 동생이니까...”

한번 거짓말을 내뱉기 시작한 김주희의 입에서 청산유수처럼 거짓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결국 홀라당 넘어간 유혜인은 김주희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엔 언제 암울했냐는 듯 무척이나 밝아져 있었다.

“아~ 그렇게 된 거였구나~ 정말 고마워요 주희 언니!”

“고맙긴~ 이제 그룹에 복귀할 거니?”

“예, 그래야죠. 회의도 끝났겠다 머지않아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될 테니.”

“그래, 적이 그나마 없는 지역이라곤 해도 항상 몸조심하고.”

“에이 걱정 마세요 언니~ 저 그래도 나름 세요~ 아시잖아요~”

유혜인이 활짝 미소 띤 얼굴로 장난스레 알통을 보이듯 팔을 들어 올렸다.

“호호, 알지 알지.”

그 유쾌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김주희가 덩달아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날 유혜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습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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