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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지대 심층부.
카그네프에게 있는 이강호의 기억을 토대로 클리어의 재료를 모으고 있던 엘프, 델바람, 블러드 소울의 세 수장은 하던 일을 잠시 전부 멈춘 채 회담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
회담실 장내에 차가운 기류가 감돈다.
분명 차근차근 계획이 진행되고 있건만...
한 자리에 모인 세 수장의 표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크라베스가 무겁게 이어지던 침묵을 깨며 둘에게 물었다.
“그래, 놈들은 발견했나?”
“...아니. 전혀.”
“나도 마찬가지다.”
카그네프와 카시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라베스는 이에 역시나 하는 표정이 되어 턱을 짚었다.
“흐음, 이렇게 되면... 역시...”
“그래, 놈들은 이 어둠의 세계에 없는 게 확실하다.”
그들이 일이 나름 잘 풀리고 있음에도 표정이 좋지 않았던 이유, 그것은 그들이 줄곧 의식하고 있는 인물들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간 세력 중 핵심 인물.
미래를 알고 있는 자.
이강호.
그리고 그런 놈을 착실히 지지해주는 괴물, 유세현.
“젠장할! 어째서지? 놈들이 단기간에 클리어할 수 있는 세계는 분명 이 세계밖에 없을 텐데. 어째서...”
카그네프의 안면 근육이 움찔움찔 떨린다.
그는 이강호의 기억을 직접 훔쳐봐 상황을 다른 이보다 많이 아는 만큼, 누구보다도 더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젠장! 제에에엔장할-!”
쿵!
결국 참다못한 카그네프가 발을 힘껏 지면에 내리찍었다.
콰과과과-
그것만으로도 주위는 순식간에 광풍이 몰아치며 아수라장이 됐다.
“으... 어째서! 어째서-!”
“카그네프. 진정해라. 내가 볼 땐 네가 빼앗은 그 기억이 가짜인 건 아닌 것 같으니.”
잠시 무언가 고민했는지 턱을 짚고 생각에 잠겨있던 카시우스가 천천히 입 열어 말했다.
카그네프는 발작을 일으키듯 눈을 부라리며 반응했다.
“뭐? 그럼 왜 놈들은 보이지 않는 거냐! 이곳이 최고 중요한 장소였다면 상식적으로 놈들이 이 세계에서 벗어날 리가 없지 않느냐!”
“뭐,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렇지.”
“뭐? 일반적? 지금 무슨 소리를...”
“놈들에게 있어선 지금 상황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잘 생각해봐라 카그네프. 이곳이 중요한 장소가 아니라면 놈들을 제외한 저 수많은 인간들이 왜 아직 이곳에 있겠나. 그것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료를 모으면서.”
“......”
카시우스의 말에 카그네프의 입이 일순간 굳게 닫혔다.
확실히 방금 카시우스의 말처럼 이곳이 인간 놈들에게 중요한 장소가 아닌, 버리는 장소였다면 그들은 이곳에서 그렇게 열심히 재료를 모으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여기서 드는 의문.
“후우... 그럼 카시우스. 넌 뭐 때문에 놈들이 이곳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것 같으냐. 솔직히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거의 없을 텐데.”
“물론 그렇지. 그러니 나로서도 현재 떠오르는 건 오직 딱 한 가지뿐이다.”
카시우스의 검지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자 둘의 이목이 대번에 그 손가락에 집중됐다.
“한 가지?”
“그래.”
“대체 뭐냐 그 한 가지가. 빨리 말해봐라!”
그 말에 카시우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유적지의 클리어. 난 지금 상황에서 놈들이 자리를 비울 이유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클리어?”
“그래, 클리어. 이 세계 말고. 다른 세계의.”
카시우스의 발언에 크라베스와 카그네프의 얼굴이 일순간 띵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렇게 가정하면 신기하게도 납득이 어느 정도는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설마 천하의 카시우스가 단순히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내뱉은 건 아니겠지?”
“물론이다.”
고개를 끄덕인 카시우스가 곧장 한 단어를 내뱉었다.
“마왕군.”
“...!!”
카그네프와 크라베스는 그 단어를 듣기 무섭게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그래, 나타나기 무섭게 이 세계에서 자취를 감춘 마왕군.
놈들은 왜 그렇게 빠르게 뒤도 안 돌아보고 이 세계를 떠난 것일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인데.
클리어 재료와 이강호, 유세현 수색에 눈이 멀어 이것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다니!
“아둔했군.”
“그러게 말이야. 그러고 보면 얼마 전 드래곤 부대가 마왕군과 같은 경로로 이동하던 게 포착됐었다.”
세 수장은 서로 눈빛을 교차시키기 무섭게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졌군.”
그들은 마치 미리 준비해뒀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세력을 반으로 나눈 뒤, 드래곤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왕군이 움직였던 경로를 쫓아 이동을 시작했다.
* * *
“저거 루시뷀트... 분명히 맞죠? 선배?”
김주희의 물음에 쌍안경을 내린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마치 갑자기 기능을 정지한 컴퓨터마냥 루시뷀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는 정말로 그런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나와 있었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미친놈처럼 진군해왔던 주제에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요? 선배?”
“글쎄...”
위기가 잠시 멈춘 것이니 좋아해야 할 마당에 김주희에게 답하는 이강호의 표정은 생각보다 그리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거... 혹시...’
마왕의 기능이 정말 정지했을 확률은 0%.
그러니 지금 저것은 마왕이 자발적으로 멈춰 모종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이 되었는데, 이강호는 저러한 행동을 하는 생명체를 지금 최초로 목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만약에라도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신창 제넥과 동급이라 불리던 에반이 깨달음을 얻어 그 어떤 것도 베어버리는 최강의 검사가 되기 직전...
그도 저것과 똑같은 행동을 보였었다.
‘에반은 분명 60일간 움직이지 않았었지.’
당시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에반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고생을 했었던가.
그 역경이 뇌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만큼, 현재 이강호는 루시뷀트의 저 행동이 무척이나 께름칙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놈이 정말 만에 하나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각성이라도 해버린다면?
“강호야.”
그때였다.
말없이 루시뷀트를 관찰하고 있던 유세현이 이강호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는 이강호가 대답할 새도 없이 곧장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현재 이 상태로 계속 진행했을 때 우리가 승리할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
“으응?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흐음... 글쎄.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해가며 지금까지 잘 해온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다.
자신과 유세현이 단 6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내부 신물 파편을 소유 중인 데다가, 과거였다면 진즉에 거의 전멸했을 인간 세력이 잘 성장한 상태로 아직도 3만이 넘게 생존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을 뿐, 그는 현재 상황이 많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위 5대 종족에 속하는 쿠룬과 샤크아크족을 흡수한 알베타스.
그리고 자신보다도 더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세레나까지.
지금 이강호가 마지막 신물 파편 획득에 이렇게까지 목숨을 거는 이유는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부분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아, 지금 할까 해서.”
“응? 뭘? 설마... 저번에 말했던? 그거?”
“응. 지금이 적기인 거 같다.”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진심이냐? 잘 못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어 유세현.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알고 있어. 하지만 성공하게 되면 우리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지게 되겠지.”
“...어? 선배? 지금 무슨 말을 하시고 계시는 거예요? 뭘 하시려고 하길래 죽을 수가...”
딱 봐도 한껏 심각해 보이는 이야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김주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이에 유세현은 김주희에게도 계획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김주희의 소감은...
“너... 너무 위험해요 선배! 아무리 선배가 강하다지만...”
“믿어봐.”
“아니 선배를 못 믿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선배가 누군데 당연히 믿죠! 하지만... 하지만...”
선배답지 않다.
김주희는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지금부터 유세현이 그 답지 않게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들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 잘 해낼 테니까.”
김주희의 심경을 알아챈 유세현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조심하세요 선배.”
결국 그녀가 건넬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물론이지.”
그렇게 유세현은 단신으로 그들의 곁을 떠났다.
* * *
“여기에도 놈은 없나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후... 상부에 바로 보고를 올려라.”
“예. 알겠습니다.”
최전방 부대의 사령관 서열 15위 데오로프, 그는 키쿨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뒤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유세현의 추적에 힘쓰고 있었다.
‘제길...’
그러나 이 광활한 세계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 하나의 인간을 찾는 것은 모래알 틈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이 세계의 중심지가 어딘지, 중요 지점만 알았어도 이렇게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터인데...
게다가 중간중간 이어지는 정령들의 방해와 알베타스족의 공격은 마음이 조급한 그로서는 너무도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정령들은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부활해서 발목을 붙잡질 않나, 알베타스의 하급 병사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밀려들질 않나.
너무 귀찮다.
너어~무.
‘으으으... 어떻게든 찾아내야 나를 다시 돌아봐 주실 텐데...’
유세현이 눈앞에 나타난 때는 그가 딱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 전방에... 유세현으로 추정되는 대리자 등장!”
“뭐? 유세현으로 추정되는? 정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놈이 데려온 병력의 수는? 몇이지?”
“그, 그게...”
“얼마나 데리고 왔냐니까! 빠듯 빠듯하게 말 안 해?”
“그, 그게... 그게... 다, 단신입니다!”
“뭐?”
부하의 말에 데오로프의 얼굴이 순간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강할지언정 이 뒤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있는지 알고...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봐라. 놈이 데려온 병력의 수가 얼마라고?”
그렇기에 그는 다시 한번 더 부하에게 캐물었다.
그러나.
“다, 단신입니다! 단신으로 놈이 쳐들... 으읏!”
쾅!
말이 채 끝날 새도 없이 커다란 폭음이 일었다.
“...!!”
깜짝 놀란 데오로프는 믿기지 않는 만큼 곧장 날아올라 직접 적을 바라봤다.
“무슨...”
유세현을 본 그는 잠시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놈은 정말로 단신이었다.
“정신이 어떻게 된 건가...”
그는 마력을 내뿜으며 곧장 전투태세를 갖췄다.
‘감히 건방지게 정말 단신으로 쳐들어오다니...’
반드시 포획하리라... 아니, 놈은 마심원을 지니고 있으니 굳이 포획하지 않고 죽여 자신이 먹어버리리라...
‘만약 놈을 먹게 된다면 내 서열은 어마무시하게 상승하게 되겠지.’
데오로프가 그렇게 홀로 마음속으로 즐거워하고 있을 때였다.
다급히 다가온 수하 라부르스가 한없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데, 데오로프님! 군을 물려야 합니다!”
“뭐?”
또다시 어이가 없어진 데오로프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먹잇감이 제 발로 들어와 줬건만 지금 저게 뭐라는 것인가.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 라부르스!”
“아, 아니... 그게...”
라부르스는 데오로프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마군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유세현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소문이라고 치부할 뿐, 유세현을 쉽게 보고 있었다.
인간 따위가 어둠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라면서.
부풀려진 것이라면서.
실제로 아무리 소문이 자자해도 유세현을 대하는 마족들의 자세는 그와 만나보았는가 만나보지 않았는가로 극명하게 갈렸는데 데오로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세현과 만나지 않은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데오로프님!!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지금 제 말을 듣지 않으시면 후회하시게 될...”
“오랜만이군. 라부르스.”
“...?!”
라부르스가 데오로프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난데없이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평범하지만 듣는 적으로 하여금 오금을 지리게 만드는 음색.
“유, 유세현!!”
습격(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