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3/606 --------------
“꽤 재밌었어~ 데오... 아 까먹었네. 이름 뭐라고 했더라?”
마치 아이랑 놀아준 어른 마냥 키쿨이 장난스레 말했다.
“크윽...! 네놈...!”
데오로프는 이것이 무척 치욕스럽고 한탄스럽기 그지없었으나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놈이 샤크아크족의 수장이라고 한들 자신도 마족의 최상위 대리자건만 이 정도의 차이라니...
‘말도 안 된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
마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수 능력을 사용했음에도 처참하게 패배했다.
‘분명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뭔가가...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렇게 패배할 리가 없다.’
데오로프는 마음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참하게 패배한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쪼록. 그럼 잘 가라.”
키쿨이 그리 말하며 발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찍어 데오로프의 머리를 터트리려는 심산이었다.
‘젠장. 피해야 된다! 피해야...!!’
이에 데오로프는 몸을 꿈틀거리며 필사적으로 육체를 움직이려 했다.
허나.
‘크으윽...’
제 아무리 안간힘을 써본들 기력이 다한 몸은 그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스으윽-
싸늘하기 그지없는 스산한 바람과 함께 그의 머리 위로 검은 그림자가 닥친 때였다.
쿠구구구-
갑자기 일대에 몰아친 무거운 중압감과 함께, 마치 그림자를 어둠이 집어삼키듯 시커먼 밤이 갑작스럽게 그들이 있던 하늘과 땅을 메웠다.
[데오로프... 왜 거기서 쓰러져 있는 것이냐.]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진 병력 사이로 걸어 나온 마왕, 루시뷀트의 육중한 목소리가 전장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
키쿨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마왕을 응시했다.
스슥-
마왕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도약하여 키쿨의 앞에 자리했다.
루시뷀트는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데오로프는 내려다봤다.
[지금 저 물고기 따위에게 당한 것이냐? 마족 서열 15위란 놈이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죄, 죄송합니다. 왕이시어... 뭐라 드릴 말이...”
[됐다. 진군을 늦춘 죄는 저 놈을 처리한 뒤 내리도록 할 테니 그리 알아라.]
“아,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왕이시어...”
데오로프가 머리를 바짝 조아렸다.
마왕은 그제야 비로소 키쿨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이로구나 물고기.]
“하하, 그러게. 정말 오랜만이네 마왕~”
언제나처럼 키쿨이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
[상당히 여유롭구나 물고기. 부하를 미끼로 사용해 죽어라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주제에.]
“하하... 하하하... 뭐, 그땐 그랬지.”
웃고 있던 키쿨의 입가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렇다, 키쿨은 지금 마왕의 말처럼 그를 죽이기 위해 공격을 가했다가 역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고 도주한 이력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생전 처음으로 타인에게 거대한 벽을 느꼈었다.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었는지...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마왕.”
[별로 변한 건 전혀 없어 보인다만 물고기.]
“하하, 그래... 그렇게 보인단 말이지...”
키쿨의 눈빛이 번뜩 돌변했다.
그것은 무참히 당해 마음이 부서진 패배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직접 체감해봐라 마왕. 내가 그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쿵!
키쿨이 자신의 양 주먹을 힘껏 맞대자 물갈퀴와 아가미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며 일대를 덮기 시작했다.
키쿨의 장기.
수중 영역 창조.
키쿨은 즉각 고유특성을 이용, 가속하여 마왕에게 빠르게 돌진해왔다.
[크크크, 또 이건가?]
전개된 물의 영역을 본 마왕이 작게 코웃음 쳤다.
이것은 이미 일전에 겪어본 적 있는 능력이었다.
당연히 고유특성과 그 조건도 알고 있는 상태이고.
[가소롭구나. 물고기.]
루시뷀트는 키쿨의 능력을 봉쇄할 심산으로 암흑투기를 집중하여 키쿨에게 내뿜었다.
쿠구구구-
과거 이 집중 암흑투기를 맞은 키쿨은 엄청난 압박감과 중압감에 가속능력을 상쇄당하여 그야말로 처참한 패배를 겪었다.
그러니 본래라면 이번에도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공포라는 건 인지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허나.
[으음?]
키쿨을 응시하고 있던 루시뷀트의 입에서 당혹 섞인 탄성이 작게 새어 나왔다.
이전과 확연히 다르게 키쿨의 이동속도가 약간만 저하됐기 때문이었다.
드래곤이나 다른 종족 놈들처럼 효과를 줄이는 대응법을 알아내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상하군.’
그렇다고 치기에는 키쿨은 딱히 특별한 아이템은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흐음, 네놈. 대체 어떻게...]
“당혹스럽나? 루시뷀트? 네 특기인 능력이 통하지 않아서?”
그새 다가온 키쿨이 주먹을 거세게 내질렀다.
마왕은 그 순간 루베르크를 들어 올렸다.
파앙!
루베르크의 검신 옆면과 주먹이 맞부딪치자 일대에 거친 물결이 몰아친다.
키쿨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연타를 날렸다.
파바바밧-
주먹의 움직임을 따라 물이 마치 칼날처럼 루시뷀트의 전신을 향해 쇄도한다.
루시뷀트가 방어를 위해 검은 장막을 치자 자신의 기술이 통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키쿨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때 마왕. 아직도 내가 그저 가소롭게만 보이나?”
[......]
그 조롱 섞인 목소리에 마왕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키쿨의 말마따나 그는 키쿨이 확실히 무언가가 변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놈은 왜 암흑투기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게 된 것일까.
[확실히... 이전보다는 나아졌구나 물고기.]
“......”
[하지만 그래봤자 물고기는 물고기. 다시 한번 똑똑히 새겨주마. 너와 나의 차이를.]
아무래도 상관없다.
마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암흑투기는 그의 능력 중 아주 극히 일부분.
키쿨이 그의 바로 눈앞에 있었으나 현재 그의 신경이 쏠려 있는 인물은 여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유세현...’
그저 놈을 일순간 떠올린 것뿐이건만 루시뷀트는 한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들끓는 것을 느꼈다.
한시라도 빨리 놈을 찾아 죽여버리고 싶다.
[금방 끝내주마.]
“할 수 있다면.”
스슥-
쾅!
가속 이동한 키쿨의 주먹과 마왕의 검이 또다시 부딪쳤다.
키쿨은 자신의 특기인 속도를 이용해 화려한 기술들을 마왕에게 연발했다.
[비술]
[상어의 권]
파바바밧-
사방에서 물로 된 주먹이 마왕의 전신을 덮친다.
마왕은 재차 어둠의 장막을 육체 주위로 펼쳐 방어함과 동시에 주위로 어둠을 흩뿌렸다.
스스스-
그러자 살아있는 생물도 아니건만.
어둠에 닿은 물이 마치 생물이 썩어 문드러지듯 제 기능을 잃고 입자 단위로 쪼개져 증발된다.
“큭.”
물의 영역이 줄어들자 키쿨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재빨리 앞발차기를 날렸다.
허나.
[어딜 가려는 것이냐. 이제부터 시작이건만.]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 발 앞서 움직인 마왕의 손이 그의 발목으로 향했다.
‘이런...!’
이대로 붙잡히게 되면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키쿨은 재빨리 다리에 물의 마력을 더해 스킬을 사용했다.
[비술]
[상어의 각]
콰과과-
퍼엉-
어둠과 예리한 상어의 각이 부딪치자 거센 물보라가 이리저리 솟구친다.
뒤로 날아가 자리에 착지한 키쿨이 잽싸게 다시 주위에 물을 흩뿌리며 다시 환경을 조성하려던 찰나였다.
스스스-
쭉 뻗은 루시뷀트의 손끝을 따라 어둠이 마치 파도처럼 뻗어나가며 일대를 순식간에 잠식했다.
‘이건...’
[영역선포]
쿠구구궁-
차마 다음을 생각할 틈도 없이, 붉은 안광을 번뜩인 루시뷀트의 대검이 곧장 그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콰아앙-
제대로 적중당하면 그대로 즉사.
허나, 순간 가속한 키쿨은 이 기습마저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영역선포로 속성이 강화되며 더한 암흑투기가 그의 육신을 노골적으로 짓눌렀지만, 알베타스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생긴 능력, 공포 절제 덕에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덕택이었다.
[호오, 이걸 피하다니...]
“말했잖아.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키쿨이 방긋 웃으며 주먹에 마력을 모으기 무섭게 마왕을 향해 내질렀다.
후웅!
하지만 영역선포도 한 마당에 그런 단순한 공격에 당해 줄 루시뷀트가 아니었다.
스슥-
1mm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주먹이 전부 빗나간다.
그렇게 한차례 이어진 주먹세례가 끝나자 이번에는 루시뷀트가 공격을 감행했다.
후웅!
둘은 그 자리에서 거센 공방을 나눴다.
파바바밧!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대검과 주먹이 서로 오간다.
그렇게 1합, 2합, 3합.
키쿨은 합을 이어갈수록 점점 자신이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슥-
대검이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쳐 지나간다.
분명 제대로 피했을 터인데!
“큭!”
날 자체가 두꺼운 대검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키쿨의 피부에 깎여나가는 듯한 큰 자상을 남겼다.
키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은 알베타스족이 된 이후 분명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어째서...
후웅-
“크윽!”
이번에는 대검이 허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키쿨은 이해가 되지 않아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하아아압!”
파바바밧-
고유특성, 가속이 키쿨의 의지를 받들어 더더욱 박차를 가한다.
[표정이 왜 그러지? 물고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에게는 이상하게 닿지 않았다.
이제는 암흑투기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아 분명 닿아야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어째서...!!’
스슥-
“큭!”
키쿨은 그렇게 한 번을 더 대검에 스치고 나서야 마왕의 검술이 변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뭐냐, 저 이상한 대검술은...’
과거 그가 아는 루시뷀트는 그저 자신의 막강한 힘만 믿고 별 의미 없이 대검을 휘두르는 인물이었다.
대충 휘둘러도 강자라 불리는 자들이 힘없이 픽픽 쓰러져나갔기 때문이었다.
굳이 검술을 익힐 필요성을 못 느껴 익히지 않았던 것!
하지만 지금은...
‘이제 와서 대검술을 익히다니...’
이건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대체 어째서...’
그 짧은 새에 무슨 일을 겪었기에 저 오만한 마왕 루시뷀트가 전투 스타일을 바꿨단 말인가.
“크윽!”
또다시 대검에 스친 키쿨이 작은 침음을 흘렸다.
현재 루시뷀트의 대검술은 언뜻 보면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그저 난잡해 보이기 그지없었지만 그 속엔 틈을 찌르는 날카로움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본래 그는 근접전으로 압도할 생각이었다.
마왕이 무서운 이유는 특수특성 때문이지 근접전을 잘해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면...’
키쿨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알베타스족이 된 이후, 완성한... 지금껏 알베타스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비기.
파앗-
키쿨이 눈을 번뜩 뜨자 주위의 물이 공명하며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아아압!”
트득- 트드득-
큰 기합과 함께 키쿨의 육체가 빠르게 변화한다.
마치 과거 트롤의 왕 트루크가 사용한 용인화처럼.
트드득-
푸른 피부에서 비늘이 돋는다.
상어의 꼬리는 순식간에 도마뱀의 꼬리처럼 두꺼워졌다.
이전 키쿨의 모습이 단순히 상어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변화를 마친 그의 모습은 용과 상어, 그리고 인간을 한데 잘 뒤섞어놓은 듯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뭐냐 물고기. 그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모습에 루시뷀트가 물었다.
“글쎄...”
키쿨은 대답 대신 이리저리 몸을 푸는 것으로 답했다.
그가 허벅지를 굽히고 발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치지직-
마치 주위가 일순간 진공상태가 된 것처럼.
주위의 모든 물이 일제히 정지했다.
스슥-
바람처럼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는 키쿨.
루시뷀트가 깜빡인 눈을 다시 떴을 때는 키쿨은 이미 그의 앞에 당도해있었다.
쌔애애액-
공간을 찢기라도 할 것 마냥 굉음과 함께 강력한 주먹이 날아온다.
콰아아앙-
루베르크로 방어를 했음에도 충격은 어마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순수 육체파, 쿠룬족의 수장 리네리아의 전력투구를 받은 것과 비슷한 감각.
[호오...]
아무리 루시뷀트라 할지라도 이것은 탄성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샤크아크족은 체술도 강한 편에 속하는 종족이긴 했지만 이 정도급은 아니었다.
잠깐 못 본 사이에 이 정도로 강해지다니.
[크하하하하!]
루시뷀트가 경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감히 내 앞을 막았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습격(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