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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부로 들어가자 실피리오가 한껏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프리트. 아까 그 디네라는 정령의 상태...]
[눈치챘나 보네 실피리오.]
[당연하지! 내가 뭐 바보인 줄 알아?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아니 그보다도 왜 그 아이한테만?]
실피리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왜 그 아이의 생명력 절반 이상이 갑자기 날아간 건지.]
갑작스런 생명력 증발로 인한 쇼크.
그것이 디네가 기절한 원인이었다.
[코어가 부서진 건... 역시 아니지?]
[당연하지 코어가 부서졌다면 그 아이도 그걸 모를까.]
[흠, 그럼 진짜 어째서...]
코어의 손상 없이 생명력이 날아간 이번 일은 수없이 많은 세월을 살아온 그들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더욱 심각한 것이고.
만약 이번 디네의 일을 시작으로 다른 정령들이 그녀처럼 차례차례 생명력을 잃고 쓰러진다면?
[후... 젠장할... 그랬다간 우리는 완전히 끝장이야. 어떡하지?]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실피리오. 전투 중에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않으면?]
실피리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답은 지금껏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보레아스가 했다.
[일시적인 것일 뿐. 복구가 되나 보군.]
[맞아. 바로 맞췄어. 보레아스.]
이프리트가 손가락을 튕기며 보레아스를 가리켰다.
실피리오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까 전에 그 인간한테 그냥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한 거로군.]
[맞아. 그래서야. 내가 살펴본 바 그 아이의 생명력은 천천히나마 회복되고 있었어. 일정 수치 이상 회복하게 되면 아마 더욱 빠르게 회복되겠지.]
[후... 그나마 다행이네.]
실피리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생명력이 영구적으로 회복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다면 정령들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인 상태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후... 어떡하지? 적과 대치하고 있는 인원들을 뒤로 물려야 되나? 만약 싸우다가 그런 일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끝장.
우르르 공격당해 단번에 밀리게 될 것이고 나머지 두 개의 기둥의 위치를 발각당하게 되리라.
그렇게 되면 방어는... 아쿠리네도 막지 못한 이상 당연히 불가능이었다.
[흠... 확실히... 이건 좀 생각해봐야 될...]
[아니, 난 물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레아스가 또다시 말했다.
이프리트와 실피리오는 대번에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보레아스?]
[다른 정령들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그게 무슨...]
[디네라는 아이는... 지금 돌이켜보면 굉장히 특별하기 그지없는 아이다. 세계가 변화하여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된 이 상황에서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 유일한 존재이니 말이야.]
[음... 그거? 뭐... 그거야 그렇지만... 그게 이번일 하고 무슨 상관...]
[난 그 아이가 대리자와 계약을 함으로써 반은 대리자 신분이 되어 이 세계가 일부 붕괴됨에 따라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정령은 이 세계의 환경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생명체.
대리자가 되는 선택을 했다면 도우미가 말한 튜토리얼을 거치며 적응을 하게 되어 지금과 달랐겠지만...
그들은 그대로 남는 것을 선택했고 현재 대리자의 신분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걔가 갑작스럽게 일부가 붕괴된 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잃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말이지? 보레아스?]
[그렇다.]
보레아스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프리트가 납득이 간다는 듯 말했다.
[흠...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왜 그 아이만 갑자기 생명력을 잃고 쓰러진 건지 얼추 맞아떨어지긴 하네.]
[그럼 전열은 지금 상태 그대로 계속 유지하는 걸로?]
[뭐, 그래야지. 우리가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이후 실피리오와 이프리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병력의 배치와 적의 동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보레아스 그런 둘의 행동을 지켜만 볼 뿐 마땅히 전처럼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게 난 좀 더 좋을 거 같은데 보레아스 넌 어떻게 생각해?]
[......]
[보레아스? 어이?]
[...으음?!]
[뭘 멍 때리고 있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실피리오 네 말처럼 그러는 편이 좋을 거 같다 생각한다.]
대충 답하는 그의 뇌리 속은 사실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디네... 원래는 1도 신경 쓰이지 않았던 그 아이의 대한 생각으로.
‘디네... 그 아이만큼은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세계가 파멸할지라도...’
보레아스, 그는 조만간 더 크게 닥쳐올 어두운 미래를 생각하며 차분히 눈을 감았다.
* * *
이프리트의 말마처럼 디네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어 금방 건강을 되찾았다.
[헤헤헤~ 내가 그렇게 소중했어? 우리 주희?]
그녀는 자신이 많이 호전되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듯 평소처럼 김주희의 주위를 빙빙 돌고 깐족거리며 김주희의 신경을 긁었다.
[실피리오님하고 한판 붙을 뻔했었지 아마? 뭐라고 말했었더라~ 그때 정말 아팠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분명히...]
“이...!! 야... 적당히 해라.”
[왜? 왜? 때리기라도 하게? 나 아직 환자야~ 완벽하게 나은 게 아니라고~]
얄밉게 웃는 디네를 보며 김주희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김주희는 당장이라도 와락 일그러질 거 같은 안면근육을 억지로 제어하며 마음속으로 참을 인을 셌다.
그래...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던...
[헤헤헤~ 우리 주희 말이 없네~ 그렇게나 많이 부끄러운 걸까? 이 몸을 그렇게 아낀다는 걸 들킨...]
“야! 너어-!”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린 김주희가 디네를 잡기 위해 마구잡이로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꺄아악! 미친년이 정령 잡는다! 세현 오빠아아-!]
“이게 어디서 세현 선배를 찾아? 여기 세현 선배 없어! 이게 환자라고 참아주니까... 넌 정말 뒤졌다!”
[꺄아아-!!]
사방에 울리는 김주희와 디네의 커다란 목소리.
이 같은 장면을 처음 본 이들이라면 그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나섰겠지만 이런 일을 사전에 너무나도 많이 경험한정령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며 못 본 체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그들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한참을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스스스-
저 멀리.
산봉우리 몇 개를 붙여놓은 크기의 거대한 산호초의 산을 넘어.
하늘에 칙칙한 어둠이 끼며 거대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으응? 저건?]
[뭐지?]
제일 먼저 반응한 이들은 당연하게도 산호초의 산을 방어하고 있던 정령들.
그들은 수많은 피드백을 거쳐 엉성했던 이전과 다르게 철저한 준비를 마친 만큼 곧장 작전대로 움직였다.
[실카레스! 실레아! 적들의 종족은?]
우선 기동력이 빠른 바람의 상급 정령 실카레스와 실레아가 정찰을 하여 적들의 종족을 살핀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불과 물, 바람과 불 등등 정령들의 배치 조합을 능동적이게 바꿔 적에 맞춤 대응한다.
[누구야? 샤크아크족? 아니면 쿠룬? 그것도 아니면 알베타스?]
[그게...]
[뭔데! 빨리 말해! 그렇게 어물쩍거리면 안 되는 거 몰라?]
[아니 그러니까 그게...]
하지만 정찰을 다녀온 바람의 상급 정령들은 좀처럼 답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뭐, 뭐라고? 마족?]
[어... 그런 거 같아.]
마족.
과거 강제로 계약이 끊기기 전 인간 세계를 유랑할 때 정말 희박한 확률로 조우할 수 있었던 종족.
[틀림없는 거야? 뭔가 잘못 본 게...]
[아니야. 풍기는 기운이나 흉악한 생김새나 틀림없어...]
정령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들은 마족에 대한 대응책은 구비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바로 앞을 살피기도 막막하기 그지없는데 감히 그 누가 마족이 예기치 못하게 등장할 것까지 예측해서 작전을 짜 놓을 수 있단 말인가.
[큰일이군.]
그들은 상대의 전력이 어떤 수준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약 마왕을 포함한 본대가 지금 보이는 선봉대의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면... 그래서 일제히 공격을 감행해 온다면...
[이 주위는 끝장이다. 절대 막을 수 없어.]
[어떡하지? 이 뒤로는 이베시라와 이카르크의 소환실이 있는데...]
[크윽...]
정령들 일부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골이 없어 골이 아프다라는 말을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 정령들은 새삼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령의 우려와 다르게 마족의 군세는 조금 더 이 산호초의 산으로 전진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리에 멈춰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놈들이 붙었어!]
재차 정찰을 나가 돌아온 실카레스가 잔뜩 흥분해 말했다.
[뭐? 놈들이 붙어?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놈들이 붙었다고!]
[아니, 그러니까! 누구랑 누구가... 지금 붙을 만한... 어?! 설마?]
두서가 없어 도통 이해하기 힘든 실카레스의 말에 짜증을 내고 있던 불의 정령이 비로소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 보면 저 건너편은 빼앗긴지 오래인지라 이제는 그들의 영역이었다.
알베타스와 샤크아크 그리고 쿠룬.
[그들이 맞붙었다고?]
[맞아!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놈들은 알베타스와 동맹이 아니었던 거야!]
절망에 차 있던 정령들의 두 눈에 미약하게나마 희망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레오릭의 명령에 따라 마군의 최선봉을 맡은 마족 서열 15위 데오로프는 진군을 멈추고는 갑자기 나타나 앞을 막아선 적들을 응시했다.
다부진 푸른 몸체와 물갈퀴.
“꺼져라 물고기. 지금 바로 눈앞에서 꺼진다면 특별히 쫓지 않고 목숨은 살려주겠다.”
데오로프가 짜증 난다는 어조로 말했다.
현재 얼마 멀지 않은 그의 뒤로는 마왕의 본대와 그 본대를 중심으로 수많은 부대들이 인간들의 탐색을 위해 학익진의 형태로 펼쳐져 뒤따라오고 있었다.
즉 슨.
“어이, 혹시 지금 이곳이 물이 아니라 내 말이 안 들리는 거냐? 물고기?”
군세가 하나로 뭉쳐 독립되어 있지 않기에 현재 데오로프가 진군을 멈추게 되면 마군 전체가 진군을 멈추게 되는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마왕의 성격상 별 일 아닌 일에 지연이 되게 되면...
‘후우...’
데오로프는 그 이상은 상상하기가 싫었다.
놈들이 반응을 하지 않자 데오로프가 이번에는 마력을 실어 외쳤다.
“어이! 물고기!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그곳에서 비키...”
“재잘재잘, 거참 시끄러운 친구로구만. 혹시 머리도 별로 좋지 않나?”
“뭐, 뭐라고...?”
“잘 생각해봐라. 네가 비키라고 비킬 생각이었으면 내가 굳이 이렇게 네 앞에 나타났겠는지.”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휘자로 보이는 한 샤크아크의 비웃음이었다.
“이... 이... 물고기 따위가...”
결국 인내심이 다한 데오로프는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돌격 명령을 내렸다.
“저 물고기들을 전부 죽여버려라!”
그래 그냥 빨리 박살 내버리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훗, 그렇게 나와야지.”
하지만 그런 데오로프의 안일한 생각은 그를 비웃은 샤크아크와 주변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커, 커헉! 무, 무슨...”
“데, 데오로프님! 크아아악!”
비웃은 샤크아크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비명이 울려 퍼진다.
아무리 샤크아크가 6대 종족에 속하는 강한 존재라지만 마족은 그보다 더한 3대 종족에 속하는 최상위 포식자.
본래라면 일반적인 샤크아크들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 이놈들! 전부 보통의 샤크아크들이 아니다!’
자신이 자랑하던 측근들이 맥을 못 추고 당하는 모습을 보이자 잔뜩 당황한 데오로프가 외쳤다.
“네... 네놈! 저, 정체가 뭐냐!”
이에 질문을 받은 샤크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나?”
“그, 그렇다! 네놈 대체 뭐기에 내 측근들을 이렇게 쉽게...”
“아~ 너 나 모르는구나? 그래도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
건성건성 말하는 그 샤크아크의 태도에 데오로프의 입이 일시적으로 꾹 닫혔다.
저 여유로운 모습...
저것은 정말 강한, 힘에 자신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누구처럼...
‘서, 설마... 저놈의 정체는...!!’
“키쿨이라고 한다.”
‘젠장할! 역시 그랬던 건가?!’
데오로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키쿨, 과거 유적지에서 마족을 귀찮게 한 샤크아크족의 수장으로 얼굴은 모를지언정 이름만은 모두에게 알려져 있는 존재.
그 당시 데오로프는 키쿨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활동했던지라 그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아무쪼록.
‘젠장... 저런 놈이 왜 갑자기 이유도 없이 내 앞에...’
이건 그에게 무척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왕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빨리 뚫어내야 되는데 가능할지... 아니 당최 이길 수는 있을 런지...
‘크윽!’
어차피 물러설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데오로프는 마력을 거칠게 발산하며 달려들었다.
“네놈! 죽여주마!”
“호오! 패기 넘치는군. 그래, 그래야 나도 좀 할 맛이 나지!”
파바밧-
펑!
퍼버버벙-!
콰아아앙!
두 존재가 부딪칠 때마다 거센 파공성이 주위로 퍼져나간다.
“하아아압!”
목숨을 걸고 죽일 듯이 공격하는 데오로프와
“호오, 상당히 날카로운데?”
즐기는 듯한 느낌의 키쿨.
승패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결정됐다.
“허억... 허억... 허억... 크어어억-”
키쿨의 발밑 아래 데오로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습격(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