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77화 (56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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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겔라우스님은 지혜라 불리우는 골드의 로드. 제가 없는 동안 충분히 잘 이끌어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흠흠...”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세레나의 말에 머쓱해진 알겔라우스가 멋쩍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만에 하나 세레나가 딴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꼬치꼬치 따진 것인데 이렇게 되면 괜히 몰아붙인 셈이 되는 것 아닌가.

“모두 괜찮으십니까?”

“난 동의하겠다.”

“나도 뭐~ 알겔 정도면~”

“동의하도록 하지.”

드라프나우어가 동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로드들이 동의하자 결국 알겔라우스는 만장일치로 임시 총지휘자가 됐다.

“그럼, 알겔라우스님. 이 회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인수인계를 해드리겠습니다.”

“호오. 바로?”

“예.”

세레나의 말에 알겔라우스의 눈빛이 이전보다도 더욱 환한 빛을 발했다.

이미 대략적인 작전은 이전에 전부 들어놓은 상황, 보다 자세한 정보를 인수인계 받게 되면 마음만 먹을 시 추후 세레나를 제치고 자신이 실질적인 실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군...’

그리고 그렇기에 알겔라우스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세레나 또한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 이토록 호의적으로 순순히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렇게 하시면...”

이후 알겔라우스는 세레나에게 정보를 듣는 내내 이에 대해 이해해보려 애썼지만 역시나 그로써는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도달한 결론.

‘이 아이는... 퀴르벨과는 정녕 다르다는 건가... 정말 우리 동족만을 생각하여...’

아무리 의심이 산더미처럼 많은 알겔라우스라 한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지금 세레나의 행동은 도무지 정의가 되지 않았다.

‘후... 이런 아이는 얼마 만에 보는 건지...’

알겔라우스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런 아이라면...’

최고의 고령 드래곤으로서 평소 타 로드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아득바득 움직였던 알겔라우스.

그는 한순간이나마 세레나라면 모든 드래곤들을 이끌어도 괜찮지 않을까 진심으로 생각했다.

물론...

‘아니. 아니다... 승리는 내가 해야 되고말고. 암...’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정말 찰나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럼, 우리 동족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겔라우스님.”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그리고 자네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예. 그럼...”

인수인계를 마친 세레나가 고개를 꾸벅 숙여 예의 있게 인사하자, 알겔라우스가 한없이 너그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았다.

골드의 로드 알겔라우스.

그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세레나에게 마음을 반쯤 빼앗긴 상태였다.

* * *

세계를 지탱하고 있던 기둥의 소멸로 인해 발생하기 시작한 세계 곳곳의 균열.

깜짝 놀라 김주희와 하늘을 응시하고 있던 디네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강렬한 통증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윽!]

“어?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모, 몰라... 가, 갑자기... 으윽... 아, 아파... 왜, 왜 이러지? 나 지금 본체 상태 아닌데...]

그것은 오직 디네에게만 발생한 이상 현상이었다.

주위에 있던 정령들을 쓱 훑어 다른 정령들은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한 김주희가 잔뜩 당황하여 물었다.

“야! 너 설마 본체 공격당한 거 아니야?”

[아, 아니야... 이 멍청아. 그랬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겠지...]

“그럼 공격당하고 있는 거는? 놈들에게 공격당해 소환 장치에 이상이 생긴 것일 수도 있잖...”

[그랬으면 역소환 됐을 거야. 여기 있는 다른 애들과 같이.]

“아, 그럼 뭔데. 왜 갑자기 너만 그렇게 아픈 건데?”

[모, 몰라... 심장이 불타는 것 같아... 나... 심장 없는데... 정말 왜 이러지?]

고통이 극심한지 디네는 물로 이루어진 생명에 맞지 않게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젠장 힐도 듣지 않잖아? 아이씨... 거기! 물의 최상급 정령씨!”

[나 말인가?]

“어 그래 당신! 잠깐 일로 좀 와봐요! 빨리!”

김주희는 무슨 수를 써도 디네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다급히 주위에 있던 물의 최상급 정령, 에르트락을 불러 세웠다.

“얘 갑자기 상태가 안 좋은데 왜 이러는 건지 알겠어요?”

[흠, 잠깐만 기다려라. 한번 살펴볼 테니.]

에르트락이 자신의 손을 별안간 디네의 뱃속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그러자 잠시 디네의 뱃속이 꿀렁꿀렁 움직이더니 그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혀 모르겠다. 수치로는 모든 게 정상이다.]

“예? 수치가 정상이라고요?”

[그렇다. 1%의 오염조차도 없다.]

“1%의 오염조차도? 야, 디네... 너...”

순식간에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변한 김주희가 디네를 쓱 응시했다.

디네는 안 그래도 아픈데 의심받는 게 짜증이 났는지 버럭 화를 냈다.

[아이씨! 진짜 아프다니까 이년아!]

[어쩌면 코어에 손상이 간 것일 수도 있다.]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았는데?”

[실질적으로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지만... 지금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으으... 아, 안 되겠어. 나... 에르트락의 말대로 해제하고 한 번 확인해볼게. 5분 후에 재소환해줘! 알았지?]

심장을 부여잡고 있던 디네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5분이 흘러 김주희가 미리 정해놨던 대로 디네를 재소환 했을 땐.

[으...]

디네는 의식을 잃고 자리에 쓰러져있었다.

* * *

“뭐, 뭐야? 얘 왜 이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야! 디네야! 정신 좀 차려봐! 운디네!”

김주희가 당황하여 에르트락을 응시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는 그런 눈초리였다.

그러나.

[나, 나도 모르겠다. 분명 육체는 정상인데...]

본디 소환된 정령은 특별한 능력에 당하지 않는 한 기절하지 않는다.

소환된 육체가 기절할 정도로 한계에 이르게 되면 자동으로 역소환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젠장... 이건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해... 정령왕... 정령왕 어디 있어!”

김주희는 다급히 물의 정령왕 아쿠리네를 찾기 시작했다.

최상급 물의 정령이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이상 이제 남은 건 그녀밖에 없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지금 아쿠리네님은 바쁘시다. 부른다고 바로 이곳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

“뭐라고요?”

김주희의 눈에서 순간 싸한 냉기가 일었다.

김주희가 에르트락을 향해 냉랭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당신은 우리가 왜 당신들은 도와주고 있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뭐? 그건...]

에르트락은 당황한 기색이 되어 답하지 못했다.

‘그래, 그랬었지...’

순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인간들이 자신들, 정령들을 도와주고 있는 이유는 분명 하나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디네를 쓱 살핀 에르트락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입 열어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정령왕님은 현재 급한 일이 있어 못 오신다.]

“...당신...”

[그러니 대신 정령왕님이 계신 위치를 알려주겠다. 원래는... 절대로 알려주면 안 되는 일이지만... 너를 아니, 네가 디네를 생각하는 마음을 믿고 알려주는 거다. 그러니 이것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알겠어요. 위치를 말해주세요.”

[알았다.]

김주희는 에르트락에게 위치를 듣기 무섭게 진형에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에서 이탈해 정령왕이 있을 곳으로 질주했다.

정령왕이 적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는 곳에 있었더라면 많이 위험한 여정이 되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고 아군의 영역에 있었기에 스텟이 높은 그녀가 그곳에 도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장소에 김주희가 다다르자...

[아니, 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김주희를 세 명의 정령왕이 대번에 응시했다.

표정으로 보건대 보통 놀란 게 아닌 듯했다.

[네놈, 어떻게 이곳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쿠리네! 아쿠리네님은 어디에 계시죠?”

김주희는 그들이 그러건 말건 다급히 아쿠리네를 찾으려 이리저리 살폈지만 그녀의 모습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김주희가 더욱 깊숙한 곳을 찾아보기 위해 발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네놈... 여기가 어디라고...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떼봐라. 그러는 순간...]

왜 인지 실피리오가 분노 섞인 바람을 김주희의 바로 앞에 일으켰다.

김주희는 어이가 없어서 인상을 구기고는 실피리오를 노려봤다.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저 바람의 정령왕 눈에는 등 뒤에 업혀 쓰러져있는 디네가 안 보이는 것인가?

“한 발자국이라도 더 떼면 뭐? 공격이라도 하려고?”

솨아아아-

살짝 열이 오른 김주희의 전신에서 싸늘한 냉기가 새어 나왔다.

[네놈...!]

그 모습을 본 실피리오는 손아귀를 치켜들곤 당장에라도 공격하려는 듯 기세를 갖췄다.

치지직-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튄다.

당장에 전투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급박한 상황.

그것을 막은 것은 이프리트였다.

[잠깐~ 잠깐~ 둘 다 진정들 하라고~]

이프리트는 천천히 둘 사이로 걸어 나와 장벽처럼 둘을 막아섰다.

[지금 싸우게 되는 순간 인간과 정령의 동맹은 자동 파기되는 거... 둘 다 알고는 하는 행동 있겠지?]

[하지만 이프리트!]

[하하, 너는 너무 성미가 급해 실피리오~ 잠깐만 기다려 봐. 저 자가 허겁지겁 이곳에 뛰어온 이유를 알 것 같으니.]

정령왕 중 유일하게 디네의 존재를 눈치챈 이프리트가 김주희에게 업혀 있던 디네에게 다가섰다.

이프리트가 물었다.

[이 아이 때문에 이곳에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온 거 맞겠지? 김주희양?]

“제 이름을 아시는군요.”

[뭐, 동맹군으로서 기본 예의지. 그보다도 내 말이 맞나?]

“예, 맞아요.”

[흐음, 소환 상태인 것 같은데 상태가 좀 좋지 않아 보이는 군. 아쿠리네는 지금 만날 수가 없는 상태인데 대신 내가 한번 봐봐도 되겠나?]

“예? 지금 만날 수 없는 상태라고요?”

[응.]

이프리트가 방긋 미소 지으며 김주희를 향해 말했다.

김주희는 그것이 더 이상 캐묻지 말라는 모종의 제스처라는 것을 깨닫고는 상황인 만큼 디네를 땅에 내려놨다.

“...알겠어요. 그럼 이프리트님께서 봐주세요.”

[흐음, 어디 보자...]

디네의 이곳저곳을 보던 이프리트가 에르트락이 그랬던 것처럼 디네의 뱃속 안으로 손을 푹 집어넣었다.

불과 물은 상극, 김주희는 그 행동에 순간 흠칫했으나, 디네의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에 일단 잠자코 지켜봤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감고 집중하고 있던 이프리트가 눈을 부릅떴다.

손을 천천히 빼낸 이프리트가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김주희에게 말했다.

[음, 일단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김주희양.]

“예? 정말요?”

[응, 일시적인 거거든. 그냥 사흘 정도 가만히 놔두면 괜찮아질 거야.]

“특별한 조치 필요 없이요?”

[응.]

“...그렇군요.”

이프리트의 확답에 김주희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인 줄 알았는데, 사실 별게 아닌 일이었다니.

‘에이씨...’

일이 정리되고 나니 실피리오에게 한 무례한 행동이 떠오른다.

‘분명 이곳은 원래 외부인에게 알려주면 안 되는 곳이라고 했었지...’

그런 점에서 김주희는 실피리오가 왜 그리 열을 낸 것인지 이해가 됐다.

김주희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동맹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실피리오에게 다가가 솔직 담백하게 사과했다.

“저... 아까 전은 무례하게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정신이 없어서...”

[됐어. 바로 눈치채지 못했던 나도 잘한 건 없으니까.]

안 그래도 평소 인간에게 적의를 보이던 실피리오 성격에 길길이 성을 내지 않을까 했는데 실피리오는 의외로 그녀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주는 모습을 보였다.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한층 수그러짐을 느낀 이프리트가 디네를 쓱 응시하며 말했다.

[둘이 많이 친한가 봐?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오고.]

“친하긴요. 웬수죠 웬수. 으휴...”

[하하하! 그런가!]

솔직하지 못한 김주희의 답이 웃긴지 이프리트가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이만 가볼게요. 소동을 일으켜서 죄송했습니다.”

김주희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디네를 등에 업었다.

그녀 또한 급작스럽게 진지를 이탈한 상황, 별일이 없을 거라 확답을 받은 이상 빨리 복귀해야 되는 것이다.

마중은 이프리트가 해주었다.

[하하, 조심히 가라고 김주희양~ 아, 우리 여기 있는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예, 물론이죠. 소란을 끼쳐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디네의 상태...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한 거 가지고 뭘.]

“...그런가요. 그럼 전 이만...”

스슥-

고개를 다시 한번 숙여 감사를 표한 김주희가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프리트는 그런 그녀가 저 멀리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김주희가 이프리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였다.

[......]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있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싹 가셨다.

디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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