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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한 놈들이!! 지금 내말이 안 들리는 거냐!!”
불같은 벨제뷔트의 윽박이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막 공간을 이동해와 아무리 상황판단이 안 되고 있다 할지라도 이 정도면 정신을 차리리라 벨제뷔트는 그때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이, 이놈들이... 내가 움직이라고 하지 않았...”
마족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화이트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은 것 마냥, 얼어붙기라도 한 듯.
“네, 네놈들... 감히 이 몸의 말을 거역...”
그때 눈을 질끈 감은 라부르스가 개미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벨제뷔트님... 저는... 아니 저희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벨제뷔트의 표정은 일그러지다 못 해 완전히 구겨졌다.
“저, 저희는 현재 유세현과 동맹을 맺은 상태입니다. 지금 저희가 공격을 가하게 되면 약속을 깨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벨제뷔트님께서도 이 세계는 좀 돌아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이 세계는 무척 광활하여 동료가 필수 불가합니다. 유세현도 전투를 원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벨제뷔트님께서도 잠시 노여움을 푸시고 우선 대화를 해보시는...”
“지금 뭐라는 거냐! 이런 머저리 같은 것들이! 지금 고작 그런 구두로 한 같잖은 동맹 때문에 이 몸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냐!!”
“......”
“네놈들! 지금이라도 당장 움직여라! 이곳에서의 나의 명령은 곧 마왕의 명령! 움직이지 않으면 마군을 배신한 것으로...”
“벨제뷔트, 거기까지 해라. 저들은 나와 싸우기 싫다고 하지 않나.”
“...!!”
유세현의 검이 파고들어 잔뜩 흥분하여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던 벨제뷔트의 말을 끊었다.
벨제뷔트의 내면에서는 더 큰 분노가 들끓어올랐다.
“이 자식... 유세혀어언-!”
라부르스를 포함한 마족들은 기어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택했다.
명분으로 동맹을 운운하고 있지만 벨제뷔트가 보기엔 하찮은 변명일 뿐이었다.
라부르스와 이하 마족들은 유세현에게 완전히 꺾였고, 자신보다도 놈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죽이고 증명해주마... 누가 더 강한지! 으아아아-!!”
괴성을 지른 벨제뷔트의 전신에서 어둠의 투기가 퍼져 나오며 순식간에 일대를 둘러쌌다.
쿠구구구-
근육이 더욱 팽창하고, 핏줄이 울그락붉으락 선다.
이에 아르펜이 작게 기분 좋은 휘파람을 불었다.
‘호오, 이거 이렇게 되면 나쁘지 않은데?’
20대 6이라면 드래곤 본연의 힘을 끌어내서 싸워야 했기에 인간들에게 정체를 발각 당해 이겨도 손해만 보는 싸움이 될 터였지만, 이제는 손해를 볼 필요가 없었다.
되려, 운만 좋다면...
[제루웬.]
[예, 로드시어! 지금 이탈합니까?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린 그대로 인간 행세를 한다.]
[예에?]
[인간행세를 하며 적당히 마족을 상대해라.]
[아니, 아르펜님! 팀을 사칭했던 유세현과 조우한 마당에 대체 어쩌시려고... 데르메는 지금 저 여자 때문에 죽여 입막음 할 수 없는 거 아시지 않...]
[알고 있다. 다 생각이 있으니 그냥 버티는 식으로 싸우기나 해.]
[...그렇게까지 말하시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나중에 어떻게 되어도 모릅...]
[아 거참, 대체 그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냐. 전투에나 신경 써. 저 유세현이라는 자...]
아르펜의 시선이 전투 준비 중인 유세현을 훑었다.
[눈썰미가 정말 보통이 아닌 것 같으니까.]
유세현이 막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와 눈이 순간적으로 마주친 아르펜은 자신이 드래곤임을 간파 당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들킬 짓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벨제뷔트 대 마왕의 힘을 사용하는 자라... 이 전투... 상당히 흥미롭겠군...’
아르펜은 그리 생각하며 다시금 상대에게 집중했다.
아무리 벨제뷔트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너무 살펴보면 유세현이 눈치를 챌 지도 모를 일이기에.
그렇게 1초 뒤.
콰아앙-
벨제뷔트와 유세현이 부딪쳤다.
* * *
‘처음부터 전력으로가 박살낸다.’
벨제뷔트는 아까부터 묘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유세현을 단번에 찍어 눌러 없애버릴 생각으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모든 힘을 이끌어냈다.
스탯의 증가. 그리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어둠의 힘과 마법의 조화.
‘그때처럼 이상한 변수는 루시뷀트가 없애서 없다. 이번에야 말로...’
스슥-
각오를 다진 벨제뷔트의 신형이 일순간 유세현의 앞에서 사라졌다.
“...!!”
이에 라부르스를 포함한 이하 인간과 동맹을 맺은 마족들의 동공이 일순간 확장됐다.
방금 전의 그 엄청난 가속, 그들의 예상을 뒤엎는 어마무시한 속도였던 탓이었다.
이윽고 유세현의 왼편에서 벨제뷔트가 나타났다.
그의 주먹은 언제 휘두른 것인지 어느새 유세현의 안면 근처에 다다라있었다.
‘이건 반응 못한다!’
어설픈 여유는 죽음으로 가는 최고의 지름길.
그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태까지 그러지 않았던 유세현은 분명 여유를 부리고 있었고, 자신은 그것을 제대로 노리는데 성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벨제뷔트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휘익-
하지만 그의 회심의 일격은 유세현이 고개를 살짝 젖히는 것으로 손쉽게 무마되었다.
‘...!! 이걸 반응해? 아니, 알고 있었던 건가!’
벨제뷔트는 곧장 후속타를 쏟아냈다.
첫 타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아직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벨제뷔트 쪽이었다.
슈슈슈슉-
채재재쟁-!
하지만 유세현은 검을 휘둘러 모든 공격을 방어해냈다.
“이, 이자식이...!”
좀처럼 공격이 성사되지 않자, 벨제뷔트가 어마무시한 마력을 건틀릿 끝에 모았다.
여태까지 웬만한 일에는 선보인 적 없는, 실버의 로드 시르벨린을 거의 사지로 몰아넣었었던 기술.
흑마법과 고유특성 동화를 합친 합체기.
[다크 인크로]
치지지직-
콰아아아-!
이것에 맞게 되면 일순간 벨제뷔트에게 정신이 잠식되어 강제 동화 당한다.
‘저, 저건!’
흘깃 관전하고 있던 아르펜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는 다크 인크로를 맞은 시르벨린이 어떻게 됐었는지 직접 본적이 있었기에 저게 얼마나 무지막지한 기술인지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초장부터 저런 기술을 날리다니...’
벨제뷔트가 이 전투에 얼마나 전력을 다하고 있는지 보이는 모습.
‘이거 어쩌면...’
어쩌면 자신이 보기에도 여유를 부리고 있는 유세현이 조금 위험할 지도 모른다.
아르펜이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천마광룡참]
유세현이 검을 쓱 휘두르자 다크 인크로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무슨!’
‘벨제뷔트님이 자랑하는 회심의 일격기가 저렇게 쉽게!’
경악스러운 광경에 일부 마족들의 입이 떡 벌어졌고.
“무슨...”
벨제뷔트도 당혹스러운지 눈을 거칠게 깜박였다.
자신의 다크 인크로가 이렇게 쉽게 파훼되다니?
“이...!”
이를 악문 벨제뷔트가 재차 자세를 잡고 공격을 가하려는 찰나였다.
스슥-
“...!!”
어느새 벨제뷔트의 코앞까지 다가온 유세현이 그의 안면을 향해 검을 날렸다.
‘이런...!’
벨제뷔트는 공격을 포기하고 재빨리 방어로 전환하며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상한 여유부터 시작해서 아무리 봐도 놈의 상태가 이전에 비해 많이 이상했던 탓이었다.
일단은 쓸모없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잠시 떨어져 놈을 파악하는 게 놈을 죽음으로 이끌...
거기까지 생각하며 전방을 살피던 벨제뷔트는 어느새 유세현이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고작 충격으로 인해 0.01초정도 눈을 뗐을 뿐인...’
“벨제뷔트님! 뒤쪽입니다!!”
“...!!”
부하의 다급한 외침에 급하게 뒤돈 벨제뷔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검이 수직으로 자신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그는 고위 방어 흑마법을 시전함과 동시에 양팔을 교차시켜 들어 올려 가드했다.
치지지직-
어둠의 마력을 잔뜩 머금고 있는 검과 건틀릿이 부딪치며 거센 파열음을 토해낸다.
방어한 벨제뷔트의 팔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제기랄! 놈의 암흑투기는 분명 완화했을 텐데 대체 이 중압감은 무슨... 밀린다!’
유세현이 밀쳐내듯 검을 휘두른 순간이었다.
트특-
쨍그랑-!
유세현의 쥐고 있던 칼에 순식간에 균열이 가더니 검신이 반으로 뚝 부러졌다.
“흐음...”
덕택에 유세현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고, 벨제뷔트는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방금 전은 솔직히 자세가 무너진 상황이라 후속타가 이어졌다면 많이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벨제뷔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 사이 유세현은 아공간 포켓에서 다음 칼을 꺼낸 상태였다.
마치 시험하듯 허공에 몇 번 검을 휘두른 유세현의 발이 재차 벨제뷔트를 향했다.
벨제뷔트는 무표정으로 다가오는 유세현의 표정에 얕보지 말라는 듯 더욱 거칠게 마력을 개방했다.
“이 반쪽짜리 놈이!!”
쿠구구구!
벨제뷔트는 비록 권능의 순수한 순도는 딸릴지언정, 권능의 능력 자체는 유세현보다 자신이 더 잘 이해하고 이끌어낼 수 있다 여기고 있었다.
‘부패의 권능과 나의 특성을 합쳐 새롭게 만든 이 힘으로! 네놈을 여기서 먹어주마! 유세현!’
“받아라!”
[데스 인크로]
팔을 교차시킨 그가 있는 힘껏 뻗으며 어둠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반월을 날렸다.
트드드득-
반월이 지나간 자리는 거칠게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마치 그 공간에 있던 마력이 부식되듯 새까맣게 물들었다.
누가 봐도 다크 인크로보다 더한 심상치 않은 기술.
허나, 유세현은 얕보는 것인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숨죽여 보고 있던 벨제뷔트가 반월이 유세현의 몸에 닿기 무섭게 순간 광소를 내뿜었다.
“크하하하, 멍청한 놈! 그건 보통의 부패의 어둠이...”
후웅-
하지만 그는 웃으며 채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유세현이 크고 작은 생채기만 난 채 반월은 통과해 어느새 그의 얼굴 앞에 다다라 있던 탓이었다.
“무, 무슨...!”
너무 놀란 벨제뷔트의 안면이 얼음처럼 경직됐다.
“어, 어떻게...”
“이걸로 끝인가? 벨제뷔트?”
“이, 이!! 흑뢰!”
치직-
콰과과광-
벨제뷔트가 다급히 유세현과 자신 사이에 흑회를 만들어 내리꽂았지만 한 끗 차이로 회피한 유세현은 그대로 발로 벨제뷔트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빠악-
“커억!!”
벨제뷔트가 가슴을 부여잡은 채 헛구역질을 토해냈다.
그가 입고 있는 갑주는 마치 거대한 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 마냥 움푹 패여 있었다.
“무, 무슨...”
벨제뷔트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리다 못해 지진을 일으킨다.
그에게 있어서 이건 믿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자랑스런 권능도 쿠룬에게 밀리지 않는 육탄전도 그 어렵게 만든 회심의 스킬조차도... 그 무엇도 통하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어떻게...”
“......”
“마, 말도 안 된다... 이건 말도 안돼...”
벨제뷔트가 반쯤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된다고오오오-!!”
콰과과광!
벨제뷔트가 자신의 기술을 사정없이 유세현을 향해 날렸다.
마왕이 알려준 흑뢰부터 시작해 천재인 자신이 직접 만든 수십 개의 흑마법, 그리고 고유특성과 권능을 합쳐서 만든 마왕조차도 가질 수 없는 회심의 필살기까지.
쿠르르-
콰과과광-!
퍼버버버벙!
벨제뷔트가 만든 거친 마력의 폭풍이 일대에 휘몰아친다.
“크윽!”
그의 편인 마족을 포함해 인간들은 그 강대한 힘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지만.
“무, 무슨...”
유세현에겐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생채기가 생겨나긴 나긴 했지만, 생명에는 여전히 지장이 전혀 없을 정도의 부상.
저벅- 저벅-
유세현이 벨제뷔트를 향해 서서히 걸어왔다.
벨제뷔트는 호흡이 멎는 것만 같은 감각을 받았다.
너무도 불합리한 힘의 압박이 느껴진다.
그는 이전에도 이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 감각은...
“마왕...”
벨제뷔트의 무릎이 털썩 굽혀졌다.
신의 회랑(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