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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이익-
쿵!
파앙!
콰과과광!
키르쉬나와 루시아가 맞부딪칠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파가 일대에 휘몰아쳤다.
그 강도가 어찌나 강한지 전투를 치르는 다른 이들이 힐끔힐끔 주시할 정도.
일행들이 언뜻 보기에 키르쉬나와 루시아의 실력은 거의 막상막하였다.
“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실상은 달랐다.
루시아의 찌르기를 건틀릿으로 쳐낸 키르쉬나의 표정이 일순간 와락 일그러졌다.
지끈- 지끈-
분명히 제대로 방어해냈건만, 골이 지끈지끈 울린다.
‘어째서지? 어째서...’
그녀는 루시아가 특별한 마나를 지니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익히 동료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정신을 뒤흔드는 그 특수한 능력까지도.
그렇기에 그녀는 공격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루시아가 정신을 흔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정신력이라면 최상위에 속하는 고위 드래곤.
스치는 정도쯤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을 터였다. 아니 분명 그럴 터인데...
‘크... 대체 뭐냐. 대체...’
열이 오른 키르쉬나가 일순간 이를 으득 갈았다.
지끈거림은 방어와 상관없이 합을 이어갈수록 조금씩 점점 중첩되고 있었다.
‘제길... 가시화되어 방출되는 검붉은 마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분명 들었었는데...’
들었던 것과 이야기가 다르다.
‘설마... 그새 새로 능력을 개발했다는 것인가?’
“하아압!”
그 순간 기합과 함께 루시아의 검격이 재차 키르쉬나를 향해 쇄도해왔다.
“...!!”
키르쉬나는 이에 재차 방어하려다 골의 지끈거림에 회피하는 것으로 다급히 경로를 바꿨다.
이에 자신의 힘이 먹힌 것을 깨달은 루시아의 입꼬리에는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었어.’
평소 웬만해선 유세현과 가까운 팀에 속해있었던 그녀.
그런 그녀가 현재 그의 주위를 떠나 무림 팀에 속해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양무원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일반인이 익힐 시 전신을 망가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사상 최악의 비급이자 최강의 비급.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아무리 유세현과 이강호가 뛰어난 대리자일지언정, 무공에 관해서는 방대한 기초 지식을 지니고 있는 무림인을 따라올 수 없었다.
“하아압!”
챙!
콰앙!
“큭!”
계속해서 쏟아지는 루시아의 검기를 결국 어쩔 수 없이 쳐내 방어할 수밖에 없었던 키르쉬나의 표정이 재차 구겨졌다.
루시아가 익히고 있는 무원신공.
그것은 정파, 사파의 무공과는 한 차례 궤를 달리하는, 천마신공처럼 무척이나 기괴한 무공이었다.
양무원이 제작했기에 기본적으로 마공의 성향을 띠고 있지만, 일반적인 마공이 강력한 무(武), 패도를 지향하는 것과는 다르게 무원신공은 상대방의 육신을 부수는 게 아닌 정신을 부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무원신공은 기본적으로 적의 정신을 뒤흔드는 악몽의 마나를 지니고 있는 루시아와 무척이나 시너지가 좋았다.
‘훗...’
잔혹한 전장 속이건만 루시아의 입가에 더욱 짙은 미소가 맺힌다.
그동안 그녀는 그들과 함께하기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이제는...’
그들과 나란히 할 수 있다.
“하압!”
한층 더 자신감이 붙은 루시아의 칼날이 키르쉬나의 건틀릿을 향했다.
그녀는 맞붙은 그 찰나의 틈에 키르쉬나를 향해 물었다.
“너... 어딜 그렇게 급히 가고 있었던 거야?”
“크으...!!”
짧은 물음에 불과했지만, 루시아의 물음에 의중을 들켰다고 생각한 키르쉬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개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루시아가 재차 툭 말했다.
“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사실 대충 예상이 되니까.”
‘세레나... 분명 그 드래곤에게겠지.’
그 이유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급히 움직일 리 없다.
‘모종의 이유로 떨어진 게 분명해.’
이것이 루시아가 내린 결론이었다.
‘왜지?’
어떤 이유에서일까?
루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이만 생각을 접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세현씨나 강호씨는 분명 심층부로 향했을 거야.’
그들은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만약 세레나가 이들과 떨어졌다면 그 세레나라는 드래곤도 필히 심층부로 향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드래곤에게 길을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하겠지. 그렇다면...’
최소한 이들이 세레나에게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현재 루시아가 유세현과 이강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후...”
번쩍 뜨인 루시아의 두 눈이 키르쉬나를 응시했다.
키르쉬나는 이번에도 이를 갈았다.
루시아의 기개를 보건데 전멸을 할지언정 결단코 자신의 부대를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크... 세레나님...’
“무슨 딴 생각을 그리해?”
“...!!”
어느새 순식간에 다가온 루시아의 찌르기가 날카롭게 키르쉬나의 옆구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크으!”
이에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다급히 대응하는 키르쉬나.
루시아는 키르쉬나가 찰나의 허점을 보인 순간 정신을 집중했다.
무원신공은 무공, 당연히 절기가 존재한다.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이지만...’
언제나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스스스스-
어마무시한 마력이 루시아의 검으로 집중된다.
키르쉬나는 그 마력을 포착하기 무섭게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이건...
‘단순한 배리어로는 막을 수 없다!’
이내 루시아가 검을 휘둘렀다.
휘익-
그 검 끝을 따라 순간 기분 나쁜 스산한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일대를 잔잔하게 울렸다.
검이 지나간 허공에는 마치 공간이 베인 것처럼 기다란 자상이 남겨져있었다.
그리고 그 자상에서 이내 튀어나오는 굳은 혈액과도 같은 검붉은 마나.
[무원신공(無原神功), 무결(無結)]
“...!!”
슈슈슈슈-!
파앙!
마치 꽉꽉 압축되어있던 공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강력한 파동이 키르쉬나의 전신을 덮쳤다.
만약을 위해 시전해 놓은 20종이 넘는 고위 배리어가 종잇장처럼 순식간에 깨져 사라진다.
‘아...’
키르쉬나의 두 눈에 암운이 드리웠다.
무언가 쾨쾨하면서도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것은...
‘주... 죽는다!’
죽음의 냄새였다.
콰과과과과-!
무결(無結)은 키르쉬나를 관통해 그 뒤에 있던 거대화한 드래곤들에게도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
가슴이 뚫린 한 드래곤이 이제는 휑하게 비어버린 가슴을 부여잡은 채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단 한 번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루시아에게 자연스레 쏠렸다.
하지만 루시아는 그런 그들에겐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주위를 두리번 살피며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애썼다.
“허억... 허억... 허억...”
마침내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그곳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키르쉬나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키르쉬나님!”
“허억... 허억... 덕분에 살았구나. 고맙다. 레오루스.”
레오루스.
그는 하루에 한 번 한정으로 상대방의 동의하에 신체를 특정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는 고유특성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이었다.
“아닙니다. 제 미천한 특성이 키르쉬나님에게 도움이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후우... 아니다. 네 능력은 미천하지 않다.”
키르쉬나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루시아를 응시했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아직까지도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
‘빌어먹을... 이 싸움...’
쉽지 않다. 아니 많이 위험하다.
‘세레나님...’
길게 숨을 고른 키르쉬나가 고개를 들어 독기어린 눈동자로 루시아를 노려봤다.
루시아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내려 키르쉬나를 응시했다.
“후우...”
그들은 작은 심호흡 후 서로를 향해 동시에 날아들었다.
그것은 거센 피바람을 몰고 오는, 2차전을 알리는 종이었다.
* * *
인간 세 명과 함께하게 된, 블루 드래곤 로드 아르펜과 제루웬 베루.
현재 이 둘은 함께하게 된 세 명의 인간에게서 여기에 어떻게 돌입하게 된 것인지, 누가 지시를 한 것인지 제법 많은 정보를 알아낸 상태였지만 그것을 떠나 무척이나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공허한 공간속에서 지금까지 단 하나의 생명체도 발견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거, 진짜 큰일이군.”
“아, 그러게! 제가 처음부터 뭐랬습니까! 애초부터...”
마치 아주 간단한 실수를 한 것 마냥 무심히 말하는 아르펜의 언동에 마침내 복창이 터진 제루웬이 언성을 높여 그를 꾸짖었다.
“에이,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라니까~ 제루웬~”
하지만 아르펜은 여전히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겉으로만.
‘큰일이군.’
나름 최악의 상황이라고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최악일 거라곤 그조차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이 공간에서 미아가 되어, 영원히 이곳을 떠돌게 될 수도 있는 상태.
“제루웬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어떻게든 해...”
“로드님... 그 말 벌써 세 번째이십니다만.”
“하하... 하하하...”
하지만 로드로서 수하 앞에서 울 순 없는 법이지 않는가.
머쓱해진 아르펜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끝없는 아공간, 그리고 다른 장소로 이동되는 왜곡점.
‘지금까진 위험해서 그리 많이 왜곡점을 이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겠어.’
아르펜은 일행을 모은 뒤 왜곡점을 적극 이용해야 된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확실히... 이제는 그 수밖에 저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만...”
“만약에 잘 못 되면...”
“맞아요. 즉사지역이 존재할 수도 있잖아요.”
유리하라 아츠미, 바루코사 테미, 데르메가 걱정 어린 어조로 각 한 마디씩 말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입니다. 계속 갇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확실히 그렇지만...”
“버티고 있으면 강호씨나 이벨린씨가 이 던전을 클리어 해 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나갈 수 있게 될 거다?”
“예.”
세 사람이 희망을 떠올렸는지 일시적으로 안색이 환하게 변했다.
“가능성은 충분해요.”
“아르펜씨와 제루웬씨는 최측근이니 더 잘 아시잖아요? 그들의 능력을.”
“맞아요. 버티면 분명...”
이 상황에서 타인에게 기대어 목숨을 걸다니...
드래곤이 제루웬이 생각하기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상실 될 일이었지만, 세 사람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여전히 엄청난 신뢰로도군.’
아르펜은 잠시 고심하는 척 생각에 잠겼다.
‘이강호... 그리고 이벨린...’
지금까지 인간과 함께해오며 떠보는 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는 익히 많이 들었다.
그리고 무용담을 들은 결과.
아르펜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수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상태였다.
그것은 바로.
‘정보...’
그렇다. 그들은 알고 있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았다.
아르펜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말이 안 되게.
드래곤조차도 모르는 정보를.
그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면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이 없었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그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정보를 얻는 데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소요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아무리 통제를 잘했다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만약 단신으로 그런 정보를 얻었다면...’
그들은 미래를 읽을 수 있거나,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을 지니고 있는 것이 되리라.
“흠... 확실히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순 있습니다만... 마냥 기다리는 것도 나름 위험합니다. 이 공간이 특정시간이 지난 이후 사라지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어...”
결국 사람들은 아르펜의 설득에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왜곡점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세 번의 왜곡점을 지났을 때였다.
“큭, 인간인가!!”
“죽으러 잘 왔구나!”
마족 일곱이 그들을 반겼다.
“큭! 제길!!”
“마족이라니!”
5대 7로 수 적으론 인간측이 열세.
마족이 약한 것도 아니었기에 세 사람은 일시적으로 주눅이 든 모습을 보였다.
“젠장... 이래서 무리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건...”
하지만 그때였다.
데르메가 채 말을 끝마치기 전, 빠르게 선두로 치고 나간 아르펜이 마족을 향해 거대한 건틀릿을 휘둘렀다.
“큭! 인간주제에 정면 대결?”
마족은 그것을 보며 피식 비웃었다.
그 마족은 과거 벨제뷔트가 이끌던 마족 중 1인, 인간처럼 무공을 얻은 마족이었던 탓이다.
“무공을 믿고 까부나 본데 넌 잘못 걸...”
하지만 마족의 웃음기가 싹 가시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간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안개 마법으로 주위를 가린 아르펜이 작게 읊조렸다.
“무공? 그게 뭔데. 혹시 먹는 거냐?”
“무, 무슨...!! 어, 어떻게...! 너, 넌!! 설마!!”
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연기가 사라지며 반쯤 터져나간 마족의 몸이 밖에 있던 인원들의 눈에 비쳤다.
“무, 무슨...!”
사람들과 마족들은 이에 너 나 할 것 없이 벙찐 표정이 되었다.
저렇게 순식간에 마족 한 명을 처리하다니?
“여, 역시 강호씨의 동료!!”
“이 싸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희망을 본 세 사람들의 눈에 빛이 돌아오며 이채가 띠기 시작했다.
아르펜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제루웬을 향해 슬쩍 윙크를 날렸다.
‘어휴...’
제루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자신 또한 마족을 향해 돌진했다.
로드의 위신과 맞지 않는, 저렴하기 짝이 없는 저 장난기는 대체 언제 없어질는지.
“야, 곱게 죽어라?”
결국 기세를 탄 인간측은 아르펜과 제루웬을 필두로 하여 아무 피해 없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리품이 짭짤하네요.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코인을 흡수했어요.”
“전부 아르펜씨와 제루웬씨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뭘요.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긴요! 정말 대단하세요!”
찬사를 보내는 인원들을 향해 아르펜이 환한 미소로 답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세 사람의 진심 어린 칭찬은 아르펜도 기분이 꽤나 좋은 것.
“제발, 정말 제발로 다음번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삭막한 공간에서, 약간이나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는 그들에게 힘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힘차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세 번의 왜곡점을 지났을 때.
그들의 약간 느슨해졌던 분위기는 와장창 무너졌다.
“저... 저놈은...”
“하, 또 인간인가? 운도 없군.”
유리하라 아츠미를 포함해 사람들을 쳐다보는 보랏빛 눈동자가 마치 먹이를 본 독사처럼 일순간 번뜩였다.
그들이 조우한 인물.
그것은...
“베, 벨제뷔트!”
신의 회랑(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