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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시 한 번 더 말해봐라. 세레나가 행방불명?”
“예... 적과의 전투도중 예기치 못했던 이상공간에 휘말려... 정말 죄송합니다.”
부대로 복귀해 광룡, 퀴르벨에게 보고를 하는 키르쉬나는 고개를 감히 들 수 없었다.
세레나는 퀴르벨에게 있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자식이었다.
평소 세레나와 퀴르벨의 부녀관계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혈연관계, 지금만큼은 걱정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
“하...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걸림돌이 되다니...”
그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퀴르벨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예?”
키르쉬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쓸모없군. 쓸모가 없어... 성격이나 하는 행동이나... ”
중얼거리는 퀴르벨이 이번에는 혀를 쯧쯧 찼다.
그는 자신과는 다르게 레드의 특성이 거의 없는, 온화한 성품과 소극적인 행동력을 지닌 세레나가 평소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었었다.
레드라면 모름지기 누구보다도 강하고 강직한 성격이어야 하건만...
‘어릴 땐 안 그랬었는데 말이지.’
“알았다. 물러가라.”
퀴르벨이 이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키르쉬나는 밀려오는 모멸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세레나님의 대단함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드래곤들이 쉽게 탑을 올라갈 수 있도록 정보를 전파한 것도 세레나였고, 이 공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온 것도 그녀였다.
자신을 포함한 특정인물을 제외하고는 그저 알지 못할 뿐.
‘큭...’
괜히 감정을 표출해 눈에 띄어봐야 하나도 좋을 것이 없기에 키르쉬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삭이면서 물러났다.
그렇게 키르쉬나가 물러나자 퀴르벨은 자신의 심복 한명을 불러 곧장 수색대를 꾸렸다.
사실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게 퀴르벨의 본심이었으나, 보는 눈이 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키르쉬나는 수색대가 창설 된다는 소식을 듣기 무섭게 곧장 부대를 이끌고 자원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되는 게 세레나의 시나리오였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세레나님. 어떻게든 세레나님이 계신 곳까지 도달해 보겠습니다.’
키르쉬나는 다짐을 한 채 수색대를 이끌고 수색을 개시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팀이 공간과 공간의 특수 교차점, 왜곡점을 지났을 때였다.
“으음...?!”
키르쉬나의 두 눈이 순간 밝게 번뜩였다.
‘이건... 이건...!!’
드디어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세레나님의...!!’
오직 키르쉬나만이 해독 가능한 특수한 발자취.
“전군! 나를 따라 이동한다!”
키르쉬나는 그것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고, 한 개의 왜곡점을 더 지났다.
그리고 그녀가 또다시 한 번의 왜곡점을 더 지났을 때.
“으음?!”
그녀는 마침내 엘프와 블러드소울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와 조우할 수 있었다.
“저놈들은...”
“인간?”
“드래곤?!”
인간과 드래곤, 그들의 인상은 각 상대를 확인키 무섭게 와락 일그러졌다.
* * *
“아니, 인간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빌어먹을, 드래곤이 왜 이곳에...”
서로에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되어버린 각 진형.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막을 모르는 일반 인원들만 그러했고 키르쉬나를 포함해 내막을 아는 인물들은 그저 묵묵히 서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사람들을 훑던 키르쉬나의 시선이 어느 한 인물에게서 뚝 멈췄다.
그 인물은 백발의 새하얀 인상적인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키르쉬나도 익히 알고 있는 여성이었다.
‘저 여자... 제단 때의 그 여자로군...’
이에 루시아 또한 키르쉬나를 묵묵히 응시했다.
그 미묘한 기류를 읽은 남궁제가 물었다.
“아는 인물인가. 루시아.”
“예, 이전 양무원 사건 때 자리에 있던 드래곤중 하나 입니다.”
“그 사건 때의? 그럼 보통의 드래곤은 결코 아니겠군.”
“예,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가. 상대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흠...”
루시아는 턱을 짚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상대와 이쪽 진형의 수는 다행이도 비등비등.
전체적인 상황은 당장에 지원을 받긴 어렵지만, 오래 시간을 끌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유세현이었다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일단 대화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화... 대화 말인가? 저들과?”
“예.”
일단 가능한 만큼 정보를 뽑아낸다.
‘분명 세현씨라면 그랬을 거야.’
“흠...”
남궁제는 그 판단에 별로 탐탁지 않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게 상대는 드래곤이었다. 인간을 항상 벌레 취급하는...
제대로 된 대화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일단, 자네의 판단을 따라보도록 하지.”
무림 제1 수색대의 최고 결정권자 남궁제는 유세현을 따라다니며 생사의 기로를 몇 번이고 왔다갔다 한 루시아의 경험이 담긴 의견을 수용하기로 마음먹기 무섭게 입을 열어 말했다.
[드래곤 측의 지휘자는 들어라! 우린 당장 그쪽과 싸울 생각이 없다!]
내력이 가득 담긴 남궁제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공간을 울린다.
키르쉬나는 남궁제의 말이 퍼지기 무섭게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웠다.
빠르게 세레나의 뒤를 밟아야 하는 현재, 그녀도 불필요한 전투는 달갑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그곳에서 물러나라! 그럼 유혈사태는 없을 것이니.]
그 말에 남궁제가 루시아를 흘끗 쳐다봤다.
루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거절할 것을 표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너희들에겐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키르쉬나의 눈이 번뜩 번쩍이며 불을 뿜었다.
그 눈빛은 정말 당장이라도 마음을 바꿔 돌격해올 듯한 눈빛이었다.
남궁제가 미안한 듯 한껏 풀이 죽어 말했다.
“미안하네. 솔직히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가야 될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저들은 원래 그런 존재니까요. 쉽지 않은 게 당연합니다.”
“흠... 혹시 자네가 해보겠나?”
“총 결정권자는 검제님이십니다만...”
“훗, 무척 듣기 좋은 배려로군. 말을 아주 잘해. 내 다시 말하지 않겠네. 내 체면 때문에 괜한 옹고집부릴 생각은 없으니 자네가 하게.”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이해해준 검제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한 루시아가 외쳤다.
[지금 전투를 벌인다면 그쪽 피해도 장난이 아닐 텐데?]
[흥, 너희 같은 벌레 따위...]
[진심으로 쉽게 뭉개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말에 키르쉬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남자는 호락호락한데 반해, 저 여자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자연스럽게, 의심 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그때였다.
루시아가 그녀에게 아주 달콤한 제안을 내건 것은.
[우린 그쪽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비킬 수 없는 것이다! 너희는 어느쪽으로 갈 생각이지? 만약 이쪽으로 올 생각이라면 서로 대치한 상태로 원을 그리며 이동해 자리를 바꾸지 않겠나?]
키르쉬나가 원하는 딱 그 행동이었다.
키르쉬나는 건너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좋다!]
그녀가 그리 말한 순간, 루시아의 표정이 돌변했다.
답을 듣는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낸 것이다.
“검제님. 저 드래곤... 사로잡도록 하죠.”
“뭐? 이렇게 갑자기?”
“예, 승산은 충분합니다.”
현재 남궁제가 이끄는 무림 제1 수색대는 가장 외각을 수색하는 이들로 무림인들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자들로 구성되어있는 부대였다.
즉 슨, 그들은 무력만으론 인간중에선 거의 최강급인 존재들이었다.
반면 저들은 어떨까?
“저들의 구성이 레드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름 정예이긴 할 터나 저 드래곤이 지휘권자로 있는 이상 이쪽보다 강하진 않을 것...”
“아니 아니,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이유 말씀이시로군요.”
“그렇네. 왜 난데없이 사로잡자는 건지...”
“저 여성체 드래곤... 아마도 길을 알고 있습니다.”
“...뭐? 길을 말인가?”
“예, 만약이 있기에 100%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 이유가 아니고서는 저렇게 대번에 답할 이유가 없습니다.”
“흠... 저렇게 답할 이유가 없다니 그게 무슨... 아!! 그래서 그렇게...!!”
루시아가 왜 굳이 그런 제안을 한 것이지 깨달은 남궁제가 스스로의 이마를 탁 쳤다.
그렇다. 그녀는 유도한 것이다.
키르쉬나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자신도 모르게 발설하도록.
[어이, 인간! 왜 그렇게 꾸물대고...]
[알겠다. 그럼 우리가 우현으로 돌 테니 너희가 좌현으로 돌아라!]
[그러도록 하지.]
이윽고 위치를 바꾸기 위한 부대 이동이 시작되었다.
서로 이해가 맞았다곤 하나 드래곤들은 경계를 늦추진 않았다.
“루시아. 지금...”
“아직이에요. 아직...”
그렇게 절반가량에 도달했을 때였다.
“지금!!”
루시아가 말하기 무섭게 무림인들이 드래곤들에게 질주를 시작했다.
* * *
“이, 이 벌레가?!”
“그놈의 벌레타령은!!”
슈슈슉-
무림인들의 공격이 벌떼처럼 쏘아지자, 그들의 공격을 방어한 드래곤들의 낯빛은 대번에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놈들...’
드래곤들의 예상보다도 무림인들의 공격이 훨씬 강력한 탓이었다.
[류성축공(流聖蹴功), 제 5식.]
[환류축성각(煥流蹴成脚)]
마치 불꽃을 휘감은 것과도 같은 맹렬한 각법이 한 레드 드래곤을 향해 쏟아졌다.
레드 드래곤은 미리 쳐놓은 배리어를 믿고 방어를 포기한 뒤 반격에 나서려 했으나....
채재재쟁-!
순식간에 고위급 배리어 20겹이 깨져나가자, 그는 다급히 후방으로 마법을 사용해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런 무식한...!!’
그리고 고초를 격고 있는 건 그 드래곤 뿐만이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스친 드래곤, 베레챠의 이마에서 식은땀과 피가 주르륵 함께 흘러내렸다.
‘젠장... 이놈들...’
‘그간 상대했던 인간 중에 제일 강하다...’
모든 드래곤들의 눈빛이 일제히 돌변했다.
기분과는 별개로 적의 강함을 인정하고, 제대로 상대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죽어라!”
괴성어린 말과 함께 수많은 불의 구체가 무림인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큭!”
무림인들은 그것을 전부 회피하거나 쳐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레드 드래곤의 불길은 웬만하면 절대 허용하지 말 것.
그것이 레드 드래곤을 상대하는 사람들의 제1 철칙이었으니까.
“이놈들... 정말 대단하구나. 어떻게 이 많은 화염구를... 하지만... 그 정도로 만으로는...!!”
키르쉬나의 부관, 타쿠쉬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무섭게 자신을 향해 칼부림하던 무림인 한 명의 양팔을 와락 붙잡았다.
“이, 이놈이!”
붙잡힌 무림인은 벋어나기 위해 재빠르게 턱을 노려 무릎을 뻗었지만...
“...너희들은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보다 더 빠르게 타쿠쉬의 입에서 불길이 발사됐다.
콰라라라라-!
“...무슨!!”
그리고 그 불길을 제대로 뒤집어쓴 무림인의 두 눈은 동그랗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타쿠쉬가 발사한 것은 일반적인 불꽃이 아니라...
“으아아아아악!”
레드 드래곤의 고유능력, 파이어 브레스였으니까.
“놔...!! 놔라!!”
무림인은 호신강기로 최대한 버티며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막을 수도 없었다.
“캬아아아아악!”
이윽고 형체도 없이 재가 되어 으스러지는 무림인의 육신.
‘무, 무슨...!’
이를 목격한 이들은 감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세현의 정보로 익히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본 것과 들은 것은 그 충격이 궤를 달리했다.
“제, 젠장! 하필 변종이 여기에...!!”
“크크크, 덤빈 게 이제 좀 후회가 되나? 인간?”
본래 전투에서 대리자들은 입을 별로 그렇게 주시하지 않는다.
팔이나 발에 비해, 입에서 나오는 공격은 약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허나 이렇게 되면...
‘물리적 공격과 마법공격에 덧붙여...’
‘브레스까지 조심해야 된다.’
‘제기랄...’
무림인들이 한탄 섞인 욕설을 지그시 토해냈다.
분위기를 읽은 타쿠쉬는 어깨를 으쓱이며 일부러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크크크, 공포스럽나?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게 내 전부를 보여준 것이 아니다.”
“...!!”
타쿠쉬의 신형이 일순간 가속했다.
단순히 빨라지는 마법을 사용하게 아니었다.
이것은... 놈이 지금 사용한 것은 인간도 익히 알고 있는 기술이었다.
‘이건... 보법...!!’
“그렇다 네놈들의 힘의 원천이지.”
“큭!!”
키르쉬나가 이곳에 이끌고 온 부대는, 세레나의 부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당연히 마교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 한번 너희들의 힘의 원천에 의해 죽어보도록 해라. 인간!!”
“큭, 이놈이...”
펑-
콰과광-
쉬이익-
격렬하게 격돌하는 무림인과 드래곤!
그곳은 죽음이 휘몰아치는 지옥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그 지옥 속에서 키르쉬나는 자신을 찾아온 대적자를 바라보며 눈살을 와락 구겼다.
“너... 대체 무슨 꿍꿍이냐. 갑자기 왜 이런 무의미한 습격을...”
“별로 큰 이유는 없어.”
“...뭐라?”
“네가 숨기고 있는 걸 알고 싶어. 그게 전부야.”
“...!!”
루시아의 말에 키르쉬나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이 여자, 대체 어떻게?’
그 순간 키르쉬나의 머릿속에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쓴 침음을 삼켰다.
“네놈...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이제 알아차려봤자 늦었어.”
“이게... 감히...!”
그 말을 끝으로 두 여성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격돌했다.
신의 회랑(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