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45화 (53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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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이-

끼아아아아-!

블러드소울이 발산한 영혼들에게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슈슈슉-

퓨뷰뷱!

엘프들에게서 쏟아지는 마력 화살의 세례 속에서.

키르쉬나는 세레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세레나님... 그럼 저는 여기까지... 부디 무운이 있으시길...”

“고맙구나. 키르쉬나. 너도 몸조심하거라.”

말을 마친 세레나가 등 휙 돌렸다.

그녀의 앞에는 지금껏 많은 이들을 무작위 장소로 이동시켰던 왜곡점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든 피하려 하는 공간...

허나, 세레나는 자신의 수하들을 대동한 채 그곳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던졌다.

“허억... 허억...”

그리고 헐레벌떡 뛰어왔었던 드레보스는 때마침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스스로 몸을 던졌어? 이게 노림수였나!’

거기까지 생각한 드레보스는 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왜곡점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공간 뒤에 뭐가 있을지 몰라 두렵기 그지없었으나...

‘그자가 이유 없이 몸을 던졌을 리 없다. 분명, 나는 모르는 무슨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되레 지체하여 늦어 세레나를 놓치게 된다면 정말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드레보스가 저편으로 사라지기 무섭게, 마찬가지로 세레나의 동향을 줄곧 신경 쓰고 있던 크라베스가 말했다.

“카시우스! 봤겠지?”

“물론이다!”

“좋아 가자! 렘벨크! 이전에 말해뒀던 대로 내가 없는 동안 부대의 지휘는 너에게 맡기겠다!”

“제 1 제사장 렘벨크, 영웅의 명을 받듭니다.”

이제는 충직해진 수하, 렘벨크가 고개를 꾸벅 숙이기 무섭게 크라베스가 미리 뽑아두었던 특전대들을 이끌고 카시우스의 병력과 함께 왜곡점을 향해 달려나갔다.

“막아라!”

키르쉬나는 황급히 그것을 어떻게든 제지하려 했지만.

슈슉-!

“...!!”

“영웅께서 가시는 길을 막지 마라. 도마뱀.”

어느새 다가온 렘벨크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장 날아오는 공격!

스스슥-

끼아아아아-!!

“크윽 이놈...!”

다중 방어 마법으로 황급히 방어한 키르쉬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단 한 번의 공방에 불과했으나 렘벨크의 힘이 예사 것이 아니라는 아니란 걸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이놈... 보통의 잡졸과는 차원이 다르다.’

방심하는 순간 당한다.

‘세레나님... 부디...’

키르쉬나는 어쩔 수 없이 놈들의 제지를 포기하고 렘벨크에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 * *

슈슉-

마치 이 길을 직접 만든 제작자라도 되듯, 왜곡점을 빠져나온 세레나의 몸은 망설이지 않고 끝없이 움직였다.

왜곡점에서 또 다른 왜곡점으로.

이동하는 게 어찌나 빠른지 막 도착한 드레보스가 간신히 볼 수 있었던 건, 다음 왜곡점으로 들어가는 세레나 부대의 뒤꽁무니 정도뿐이었다.

“크윽... 이런 무슨...”

빠르게 질주하며 침음을 내뱉는 드레보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정말로...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던지는 게 늦었었더라면, 지금쯤 미아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제기랄!’

일행에서 이미 떨어진 그는 놓치면 죽는다는 필사의 마음가짐으로 그녀를 뒤쫓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카시우스와 크라베스가 따랐다.

슈슉-

슈슈슉-

왜곡점을 지날 때마다 주위 풍경이 빠르게 변화한다.

드레보스는 주위 풍경이 붉게 물든 특이공간에 도착하고 나서야 간신히 세레나를 따라잡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녀가 멈춰있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억... 허억...”

세레나에게 뭐라고 둘러대야 자연스러울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제야 한숨 고르려던 드레보스는 세레나를 멈춰 세운 존재를 확인키 무섭게 심장이 얼어붙는 감각을 체감해야 했다.

‘미, 미친...’

그만큼 세레나와 대치하고 있는 인물은 너무도 경악스러운 존재였다.

‘마... 마왕?!’

마왕 루시뷀트.

그가 세레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 * *

휘이이잉-

마치 매서운 바람이 흐르듯 날카로운 기류가 세레나와 루시뷀트의 주위를 맴돈다.

먼저 말을 뗀 건, 루시뷀트였다.

[또 보게 되는군. 도마뱀. 뭐지? 이번에도 정보를 주기 위해 찾아왔나?]

당장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반대의,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이번에도라고?’

드레보스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상황을 더욱 자세히 지켜보기 위해 천천히 세레나의 곁으로 다가가 은근슬쩍 그녀의 수하 옆에 나란히 섰다.

지금이라면 상황이 상황인 만큼 딴지를 걸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마왕. 이 만남은 우연이다.”

[우연이라고?]

“그렇다.”

[......]

루시뷀트의 말에 세레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만남은 정말 그녀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흠... 이자와 하필 여기서 마주치게 되다니...’

전 공간이 붉게 물들어있다 하여 미래에 붉은땅이라 불리는 장소.

이 붉은땅은 신의회랑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12가지 길 중 하나로써 가장 루트를 찾기 편한 길이었다.

웬만해선 도달하기조차도 힘든 장소.

그곳이 이곳인 것이다.

그런데, 그럴 지인데...

‘이 자는 도달한 것인가. 단지 운만으로.’

능력부터 시작해서 정말 불합리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허나, 안타깝게도 세레나에게는 투정을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드레보스의 추격을 진즉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놈들이 드레보스의 뒤를 쫓았다면...’

세레나가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마왕, 원하던 바는 이루었나?”

[내가 그걸 너에게 보고해줘야 하나? 도마뱀?]

“아니, 그럴 필요는 없지. 그럼 마왕, 나에게 다른 할 얘기가 있나?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면 서로 갈 길 가는 게 어떻겠나.”

[으음?]

“마왕, 당신도 여러 공간을 지나왔다면 알겠지만 이 공간은 다른 공간과 많이 다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곳에서 모르니 빨리 벗어나고 싶다.”

단순한 말로는 마왕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기에 세레나는 이 공간에 대해 무지한 척 연기했다.

판도라에는 단번에 소멸하는 공간도 있기에, 마왕이라 한들 불안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기에.

[흠, 확실히 이 공간은 다른 공간과 많이 다르긴 하군.]

“그렇다면...”

[큭큭, 하지만 난 널 보내줄 생각이 없다.]

허나, 안타깝게도 세레나의 전략은 마왕에겐 통하지 않았다.

마왕은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저 도마뱀... 망설임 따윈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우연히 휘말려 신의 회랑이라는데 떨어진 데에 반면, 세레나라는 드래곤은 분명 스스로 택해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분명, 어딘가에서 인간과 비스무리한 의식을 행했겠지.’

그는 이미 세레나가 왜 자신에게 인간에 대한 정보를 준 것인지도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점령하고 있었던 장소, 혹은 그 주변이 의식을 행할 장소였을 게 분명하다.’

정보는 힘.

루시뷀트가 세레나를 향해 검을 치켜세웠다.

[도마뱀, 아니 세레나 레퀴아르크. 너가 가진 정보를 모두 내놓아라.]

“...난감하군요 마왕. 알려주고 싶어도 나는 아는 게...”

[감히, 나를 우습게 보는 건가?]

“......”

[자, 선택해라. 사지가 멀쩡한 채로 정보를 불 것인지, 아니면 갈가리 찢겨나간 채로 불 것인지.]

“큭!”

마왕의 다분한 협박에 여타 드래곤들의 입에서 작게 침음이 새어 나왔다.

마왕이 이렇게 나온 이상 전투는 불가피.

드래곤들은 재빨리 마왕 측 병력을 훑었다.

다행히도...

‘이놈들... 엄청나게 강한 놈들이 아니다.’

수는 총 열 다섯.

이쪽이 다섯 더 많다. 아니, 드레보스까지 포함하면 여섯 더 많다.

‘하지만 결코 방심할 순 없다.’

마왕에겐 암흑투기라는 역겨운 기술이 있으니까.

쿠구구-

긴장감이 고조된다.

드래곤들과 마족의 각 병장기에는 어느새 마력이 잔뜩 서려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후우...”

세레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녀 입장에선 정말 운이 없어도 너무도 없는 게 아닐 수 없었다.

모든 게 완벽했는데...

[후자를 선택할 생각인가 보군. 그럼...]

“아니. 멈춰라. 네 뜻을 따르도록 하겠다.”

[으음?]

“정보를 공유하겠단 말이다.”

[호오, 좋군. 그래 어디 한번 말해봐라 신의 회랑이라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명칭을 지니고 있는 이곳은 뭐 하는 장소이고, 뭐가 숨어있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겠다. 다만... 잠깐만 기다려라.”

[시간 끌기는 통하지 않...]

“아주 잠시면 된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들 또한 곧 당도할 테니.”

[그들?]

마왕이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왜곡점에서 크라베스와 카시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이건 또 뭐야?”

크라베스의 미간이 마왕을 확인하기 무섭게 와락 구겨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그들로서는 정말 뜬금없는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루시뷀트... 저놈이 어떻게 여기에... 분명 인간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좋지 않은 걱정이 카시우스와 크라베스의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동맹을 맺은 건가? 만약 그렇다면...’

‘좋지 않다.’

그들이 이토록 세레나를 당당히 쫓을 수 있었던 이유는 2대1인 탓이었다.

하지만 만약 마왕과 드래곤이 편을 먹었다면, 상황을 2대2로 바뀐다.

“큭!”

질주하던 카시우스와 크라베스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어떻게 해야 되지?’

‘이제 와서 돌아가긴 늦었다!’

치지지직-

임전태세에 들어간 크라베스와 카시우스는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선공을 취하기 직전.

“멈춰라. 너희와 지금 싸울 마음은 없다. 너희도 나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온 거겠지? 제공해 줄 터이니 이쪽으로 와라.”

세레나의 말에 의해, 상황은 순식간에 소강상태로 전환됐다.

* * *

그새 카시우스와 크라베스의 얼굴을 훑어 그들의 정체를 파악한 루시뷀트가 세레나를 향해 말했다.

[쫓기고 있던 도중이었던 건가.]

“......”

[왜 저들을 멈췄지? 나를 견제하면서 놈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이기 때문인가?]

그 사이 카시우스가 물어왔다.

“전투 의사가 없다는 그 말, 진심이겠지?”

“그렇...”

세레나가 이에 답하려는 순간 루시뷀트가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답하지 마라 세레나. 나 때문에 그러나 보다만 역으로 협력해 줄 터이니.]

“저들을 처리하는 데 힘을 보태준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나의 힘과 너의 병력이라면 충분할 테지.]

안광을 번뜩 빛낸 루시뷀트가 투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한판 하겠다는 뜻.

“그럼 그렇지...”

“후...”

다가오던 카시우스와 크라베스는 재차 임전 상태에 돌입했다.

[자, 그럼 버러지들을 처리하고 마저 말할...]

“안타깝지만 그건 무리다.”

[음?]

“지금은 싸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싸워선 안 된다.”

안 된다.

그 말에 루시뷀트가 투기를 곧바로 가라앉혔다.

안 된다라는 말을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마왕, 그대는 지금까지 운이 좋아 닿지 않은 모양이다만, 이곳에는 존재 자체를 말소시키는 절대공간이 존재한다.”

[...!!]

전투가 발생하게 되면 주위 환경을 의식하기 힘들어진다.

가뜩이나 이런 장소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이것은 상황을 무마시키기 위한 세레나의 거짓말이었다.

이곳에 절대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재 전투가 발생하는 건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마왕과 함께라면 어찌어찌 쓰러트리는 데는 성공할 터이나 수하들을 상당수 잃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단신으론 거의 최강에 가까운 마왕은 한없이 유리한 고지를 잡게 된다.

‘그러니 아직은 싸우면 안 된다. 그래 아직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건 오직 세레나 뿐, 마왕은 미심쩍어도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레나는 잔뜩 곤두서있는 엘프와 블러드소울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마왕에게 말했던 것처럼,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으음?’

‘이것들... 설마 한 팀이...’

세레나는 일부러 마왕과 한편이 아니라는 티를 냈다.

엘프와 블러드소울, 그들이 전장에서 섣불리 이탈할 일이 없도록...

이들을 한데 모아 처리할 수 있을 장소로 향한다.

[이쯤하고 출발이나 하지. 세레나.]

“그러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네 종족은 세레나를 따라 더욱 깊은 장소로 이동을 시작했다.

신의 회랑(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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