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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기랄...”
우주를 유영하듯 신의회랑을 헤엄치고 있던 한 델바람의 입에서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욕설이 터져 나왔다.
“또 여기야? 으으으...!!”
이 신의 회랑의 공간특성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이강호의 제안을 받아 들인지도 어연 3시간, 그들은 끝없이 펼쳐진 신의회랑을 탐사하고 있었는데 이강호의 기억에서 엿볼 수 있던 것 마냥 이곳은 여간 보통의 장소가 아니었다.
우선 이곳은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만큼, 방향감이 일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뿐이라면 카그네프가 이리 욕지거리를 내뱉을 일은 없다.
그는 베테랑 중에서도 최상위 베테랑 대리자니까.
이곳의 큰 문제는 공간이 사방으로 끝없이 무척이나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주제에, 일정 거리를 기준으로 군데군데 공간의 왜곡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즉,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멀리서는 왜곡점 때문에 아무것도 없어 보일지라도 실제로 다가간다면 물체나 적이 존재할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왜곡점의 주위에는 좀처럼 눈에는 띄지 않는 균열이 존재하는데, 이에 휘말리게 되면 휘말린 대리자들은 무조건 적으로 불특정 장소로 강제 전송되게 장치되어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신의회랑에는 고위 대리자들조차도 10분 안에 절멸에 다다를 수 있게 만드는 장소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사실 지금처럼 이미 한 번 지나갔었던 장소로 이동되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 역겹군. 어이 이강호, 길 제대로 찾고 있는 거 맞겠지? 괜히 수작 부리려 한다면...”
“내 기억을 읽어봐서 알고 있지 않나. 지금 최대한 열심히 찾고 있는 거다.”
이강호의 말대답에 카그네프가 지그시 혀를 찼다.
사실 카그네프는 그냥 짜증나서 한번 말해본 것일 뿐 지금 이강호가 열심히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은 이강호의 기억 단편을 읽는 것만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장소였으니까.
이강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쳇, 하지만 역시 타인을 의지해야 된다는 건 귀찮단 말이지...’
물론 지금이라도 카그네프는 붙잡고 있는 이강호의 기억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읽어 길을 찾는 방법을 알아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카그네프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한 번 봤기 때문이었다.
이강호가 여기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헤맸는지를.
‘장장 3년...’
어찌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하지만 이 빌어먹을 데스게임의 최후반부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잡아먹혔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보통의 난이도가 아니었다.
최소 1년, 아니 8개월 치는 면밀하게 뜯어봐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을 대충 훑어보는 것도 아니고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은 카그네프에게 있어선 엄청난 부담이었다.
심연을 오래 들여다본 자는 심연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된다.
마치 관객이 영화 주인공에 몰입하는 것과 같이.
자칫 이강호의 기억에 정신이 오염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것.
‘그런 위험을 안을 수는 없지.’
아무쪼록 그는 이강호를 이용해서 어떻게든 회중시계가 있던 곳에 다다를 생각이었다.
회중시계가 이미 없다는 것은 이강호의 기억을 엿봐 알고 있었으나, 회중시계가 있던 그곳에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걸 반드시 내가 쟁취하여... 내가 승리자가 된다.’
탐욕으로 물든 카그네프의 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슬쩍 흘겨 살핀 이강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흠, 잘 먹혀 다행이군.’
카그네프가 일일이 살펴보는 최악의 수단을 선택했을 경우, 이강호는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카그네프는 그러지 않았고 살아남았다.
‘게다가 좋은 수확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카그네프의 기억 읽기 능력의 최대치.
카그네프는 이강호가 마음먹고 감추려던 정보는 좀처럼 읽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이상 육체와 정신을 박살내었다면 읽혔기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꽤나 쏠쏠한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친우 유세현이나 총사령관인 이벨린 등등 정신력이 높은 인물들의 경우, 단순 부상정도만으로는 카그네프에게 기억을 읽히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리해서 저항한 보람이 있군.’
이강호는 그리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카그네프를 회중시계가 존재했던 제단에 온전히 데려다 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릴 생각도 없었다.
‘시간이 없다. 빨리 다다라야 된다.’
미적미적 거리다간 드래곤, 이 사태를 만들었을 놈들이 이 신의 회랑에 들어와 먼저 다다를 것이 분명했기에.
‘그러니 다다르기 전에 그 공간에 들린다.’
생각을 마친 이강호가 카그네프를 향해 말했다.
“카그네프, 체력이 조금 회복 되었으니 이동하는 속도를 좀 더 올리고 싶은데... 괜찮겠지?”
“크크크,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빨리 빨리 움직여라!”
“좋아. 그러도록 하지.”
그들은 카그네프의 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동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 * *
8층, 마족이 철수한 바람 계곡 지대.
그곳에서 드래곤들은 한창 특수공간으로 들어갈 준비중에 있었다.
“빌어먹을 마족 놈들 이제야 이곳에서 뜨다니.”
“운이 좋았어. 한동안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는데 말이지.”
많은 드래곤들은 그저 마족과 타 종족의 충돌이 있었다는 것까지만 알고 있을 뿐, 마족이 이곳을 벗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공한 인물이 세레나라는 것도.
세레나는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여 미리 작업을 쳐둔 덕에 주위의 이목을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판도라를 포함해 세간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드래곤.
그것이 현재 세레나의 평판이었다.
“아무쪼록 빨리빨리 준비하자고.”
“드디어 이 지겨운 칼날 바람도 안 보겠군.”
드래곤들이 더욱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세레나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속해있는 부대로 복귀했다.
그녀가 광학미채를 풀자, 부대의 지휘관인 키르쉬나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맞았다.
“오셨습니까. 세레나님.”
“키르쉬나. 모두의 앞에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너보다 고룡이지만 너의 부대에 소속해 있는 수하이기도 하다.”
“...하오나....”
“키르쉬나.”
“...그렇다면 송구스럽지만...”
결국 키르쉬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더 숙여 사죄를 표한 뒤 말을 놓았고, 세레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세레나, 곧 의식이 진행 될 거다. 막사 안에서 쉬면서 대기하고 있어라.”
“그러도록 하겠다. 키르쉬나.”
세레나가 말마따나 발걸음을 옮겨 막사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것을 살핀 키르쉬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무리 주위 이목을 속이며 편하게 다니기 위해서라지만, 세레나의 심복인 그녀의 입장에서 이건 몇 번을 해도 무척이나 거북하기 그지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해내야 된다.’
그러기 위해 사실상 세레나님이 세운 공을 지금껏 자신이 다 몰아 받은 것 아닌가.
키르쉬나는 의식을 준비하는 드래곤들을 향해 다가갔다.
“얼마나 준비됐지?”
“완료 되었습니다. 그린과 블랙만 완료되면 이제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키르쉬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전령들은 곧장 다른 색깔의 드래곤들과 교신을 하기 시작하며 상황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블랙 측 준비 완료라고 합니다.”
“그린측도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그들은 그렇게 고대하고 고대하던 의식을 행하기 시작했다.
의식에 소요되는 시간은 총 30분.
슈슈슈슈-
콰아아아아-
하늘 위로 찬란한 휘광을 발하는 빛의 기둥이 하나 둘 쏘아져 올라간다.
기둥은 그 위에서 천천히 하나로 합쳐졌다.
치직-
치지직-
그리고 개벽되는 하늘.
서서히 저편의 공간이 드러난다.
“저곳인가... 우리가 갈 곳이...”
“후... 이번엔 좀 쉬운 곳이었으면 좋겠군.”
“난 다 됐고, 길이 거지같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미로는 더 이상 사양이라고.”
텅 비어보이는 내부를 바라보며 드래곤들은 하나 둘 떠날 채비를 했다.
난데없는 습격이 이뤄진 것은 딱 그들이 출발하려던 때였다.
[키야아아아-]
몰아치는 칼날 폭풍 소리보다도 더 크게 울려 퍼지는 비명 비스무리한 소리와 함께 새카만 그림자가 순식간에 일대를 가득 메웠다.
드래곤들은 그것을 확인키 무섭게 인상을 구겼다.
저건...
“이놈들이 미쳐가지고...”
“하하하! 미치다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한 드래곤이 중얼거리기 무섭게 영혼들 속에서 붉은 피부를 지닌 한 인물이 눈을 빛내며 등장했다.
크라베스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난 그 어느 누구보다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다고?”
“...네가 영혼의 종족의 수장인가...”
“오~ 잘 맞추는데? 역시 드래곤! 아, 그런데 영혼의 종족이라고 부르지 말고 블러드 소울이라고 불러줘~ 그렇게 지었으니까.”
크라베스가 더욱 입꼬리를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크라베스의 존재를 맞춘 드래곤은 인상이 구겨지다 못해 대번에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장난질이라니?
“네놈... 정신이 나갔군. 감히 이 상황에서 장난을 치다니...”
“에이, 장난 아닌데? 블러드 소울이라고 내가...”
“닥쳐라. 너희를 뭐라고 부르던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네까짓 게 정할게...”
“하아... 역시 자존심만 높은 도마뱀하고는 대화가 힘들다니까. 야, 도마뱀.”
“...뭐? 도마뱀?”
다수의 드래곤들의 이마에 핏대가 불룩 돋았다.
하지만 크라베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계속해 나갔다.
“너희 로드 나오라고 해. 할 말 있으니까.”
“이 미친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로드님께...”
드래곤들은 이제는 당장이라도 크라베스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상관의 명령만 떨어진다면 바로 전투가 일어나리라.
허나.
“그만, 거기까지.”
작은 목소리와 함께, 모함을 당해 흥분한 드래곤들의 앞으로 순식간에 다섯의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들은 그들을 보기 무섭게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 로드시어?”
골드의 알겔라우스, 실버의 시르벨린, 블랙의 드라프나우어, 그린의 엘라뉘스 마지막으로 레드의 퀴르벨 레퀴아르크까지.
크라베스가 바랐던 대로 다섯의 로드가 전부 한데 뭉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크라베스가 턱을 짚고는 흥미로운 듯 말했다.
“호오... 당신들이 로드인가.”
그 또한 엘라뉘스를 제외한 로드를 직접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알겔라우스가 말했다.
“블러드 소울...이라고 했나? 경고하도록 하지. 죽기 싫다면 지금 당장 병력을 물리도록 해라.”
슈우우욱-
늙은 노인의 모습을 한 알겔라우스에게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기백이 크라베스를 향해 쏟아졌다.
이에 그의 이마에는 순식간에 송글땀이 맺혔지만, 크라베스는 애써 태연한 척 행동했다.
아무리 다섯 명의 로드가 눈앞에 있다 한들, 지금 그는 밀릴 수 없는 입장이었다.
크라베스가 입 열어 말했다.
“그럴 수는 없겠는 걸.”
“그럴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 한 번 전면전을 해보겠다는 건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크라베스의 말에 알겔라우스의 눈빛이 일순간 번뜩였다.
지혜의 골드답게, 크라베스의 의도와 노림수를 단번에 전부 알아챈 것이다.
“네놈... 알고 왔구나.”
“뭐, 그렇지. 어때? 같이 사이좋게 가는 게.”
“거절하도록 하지. 저 열린 게이트가 닫히기 전까지 네놈들을 몰살시키는 건...”
“어려울 걸? 왜냐하면...”
크라베스가 손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느새 진을 친 카시우스의 엘프들이 활시위를 겨누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혼자 온 게 아니거든.”
크라베스가 씨익 웃었고.
“......”
반면 로드들은 침묵했다.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와중, 들려오는 한 중얼거림.
“짜증나게 하는군... 쓰레기 주제에...”
“머, 멈춰라! 퀴르...”
엘라뉘스가 채 말릴 새도 없이 다섯 로드 중 하나의 신형이 크라베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황한 크라베스의 눈동자는 순간적으로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설마...?’
진짜로?
크라베스는 그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나타난 퀴르벨이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신의 회랑(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