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41화 (52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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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현팀의 아르펜 드란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루웬 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이런 허접한 말에 속아 넘어갈까.

제루웬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대로 뒤집어 엎어트렸을 시 나중에 돌아올 핀잔을 생각해 마지못해 아르펜의 장단에 맞춰 자신을 소개했다.

“어... 두 분 다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세 명의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은 듯한 표정으로 아르펜과 제루웬을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했다.

‘에휴... 역시 그럼 그렇지.’

역시나 글렀다고 생각한 제루웬은 아르펜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고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췄다.

“휴우... 한시름 놨군요. 두 분 다 세현씨 팀이라니...”

하지만 제루웬의 생각과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안도의 한숨이었다.

제루웬은 그 순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질 뻔했다.

‘아니, 뭐 이렇게 허술해?’

고작 유세현의 이름을 판 정도로 정말 아군이라 판단하다니?

코드네임이나 이름 정도는 별 중요하지 않은 정보라 언제고 상대에게 손쉽게 넘어갈 수 있는 하급 정보였다.

그들은 현재 초짜들조차도 하지 않는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흠... 설마?’

때문에 제루웬은 세 명의 인간들이 되레 이쪽이 드래곤이란 것을 깨닫고 역으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했다.

“아르펜씨와 제루웬씨라고 하셨죠? 혹시 세현씨에게 이 공간에 대해 미리 언질 받은 게 있으십니까?”

“예? 아뇨, 안타깝게도 저희도...”

“후우, 그렇군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주위를 훑어봤는데, 이곳에 있는 건 현재로선 우리뿐인 것 같아요.”

“다 함께 수색을 하도록 하죠.”

“예, 그러도록 해요.”

하지만 의심은 어디까지나 의심.

그들이 먼저 공격을 가해오지 않는 이상, 제루웬은 아르펜 때문에 선공을 가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후... 미치겠군.’

그렇게 시작된 찜찜하기 짝이 없는 협동.

“후... 아르펜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놈들 눈치를 채고 일부러 연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선공을 가하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제루웬은 다시 한 번 설득을 시도하려 했다.

허나.

“쉿. 더 이상 그 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마라. 다시 말하지만 이들과 함께 행동한다.”

아르펜의 생각은 강경했다.

제루웬은 결국 정말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전 나중에 어떻게 되도 모릅니다.”

“그래, 인마. 나만 믿어.”

아르펜은 그리 말하며 눈동자를 순간적으로 흘겨 선두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3인방을 흘겨봤다.

‘......’

사실 아르펜은 제루웬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으면 있었지 낙관하여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확실히 저들은 제루웬의 말처럼 우리가 인간이 아니란 걸 눈치 챘을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선 상태가 상태인 만큼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각 아츠미, 테미, 데르메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간 3인방은 현재 이 거대한 세계에서 동료들과 동떨어진 상태.

그들이 진정 명석한 대리자라면 적어도 현 상태에선 눈치를 챘다 한들 공격을 가해오는 멍청한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진짜 자신들을 유세현의 동료라 생각하고 있던가.

‘현재로서 확률은... 반반 정도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에게 건넨 질문에 있었다.

[혹시 세현씨에게 이 공간에 대해 미리 언질 받은 게 있으십니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뭐 알고 있는 게 없냐는 등의 별 크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순한 질문.

허나, 명석한 아르펜은 이 질문을 듣는 순간 그들의 행동이나 표정에서 순간적으로 많은 것을 읽어내 추측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러했다.

‘그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 말을 나에게 건넸다. 그 뜻은 유세현이란 자가 평소에도 자주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소리. 때문에 유세현이란 자의 기본적인 성격은 타인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필히 정말 신뢰하는 동료 몇몇에게만 미리 언질해주고, 근처 사람들에게조차도 나중에 정보를 전파해주는 형식으로 지금껏 통솔해 왔겠지.’

그렇게 생각해야만 눈앞에 3인방이 자신의 대답에 별다른 의구심을 품지 않고 넘어간 게 말이 되었다.

‘유세현...’

엘라뉘스, 그린드래곤 세력 습격을 시작으로 끝없이 화두 되고 있는 인물.

드래곤보다도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정체는 정녕 무엇일까.

“그보다 궁금하네요.”

때마침 제루웬의 중얼거렸다.

아르펜은 혹시나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재빨리 반응했다.

“응? 뭐가?”

“이곳으로 이동된 나머지 한 종족 말이에요. 대체 뭘까요?”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돌아오는 말은 단순한 질문.

아르펜은 김이 빠져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거?”

“으음? 뭔가 좀 시큰둥한 반응이시네요. 제가 뭐 다른 말이라도 꺼낼 거라 생각하고 있으셨던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음... 우리 감시에 걸리지 않았으니. 아마 세 개의 종족 중 하나지 않을까?”

“셋 중에 하나 말입니까?”

“그래, 영혼과 그림자를 쓰는 그 요상한 붉은 종족 아니면... 엘프. 그도 아니라면...”

* * *

신의 회랑으로 떨어진 대리자들이 어찌어찌 동료들을 찾아내어 주변 탐색을 시도하고 있을 무렵, 이강호만은 그러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못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가, 강호씨... 살려...”

“하하하! 잘 가라고~ 인간~”

“아, 안... 끄아아아악!”

펑-!

함께 이동된 마지막 인간 대리자의 죽음, 이강호는 눈앞에서 이 유혈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을 또렷이 응시한 상태 그대로 그의 이름을 차분히 읊조렸다.

“카그네프...”

“하하하하! 꽤나 오랫동안 못 봤는데 아직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니 영광이군! 이강호!”

그렇다.

현재, 이 신의 회랑으로 함께 이동되어 이 사단을 낸 이는 델바람을 이끄는 수장, 카그네프 제벨이었다.

“내가 그때 너를 그렇게 허무하게 놓치고 얼마나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는지 아나?”

팔을 크게 벌린 카그네프 제벨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 상태 그대로 폭소를 내뿜으며 주변 정리를 끝낸 20명의 수하를 대동한 채 이강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이에 이강호는 그와 그의 수하들을 경계함과 동시에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찾을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이강호는 쿠니아칸과 마족과의 전투로 많이 지쳐있었고, 남은 잔여 마력도 얼마 없는 반면,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주위에 숨어 관망만 하고 있던 델바람들은 체력이나 마력 뭐하나 떨어진 게 없었으니까.

현재의 이강호로선 전력을 다해도 이들을 상대로 30초조차 버틸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크하하하하! 신의 회랑이라더니 정말 신이 도왔군! 설마 네가 있는 곳으로 떨어질 줄이야!”

“......”

“이강호! 어디 한번 반항해봐라! 저번처럼 나에게서 도망쳐봐라! 예전에 사용했던 잔재주를 또 사용해 보란 말이다!”

“......”

슈우우욱-

카그네프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강호의 앞에 나타났다.

카그네프는 누가 봐도 이강호를 그대로 끝장낼 심산이었다.

그때까지도 이강호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대체 어떻게 해야...’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육체적 싸움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목숨 구걸?

‘그것도 불가능하다. 놈은 구걸한다고 해서 살려줄 인물이 아니다.’

스스슥-

“하하하! 왜 안 움직이는 거지 이강호? 포기한 것이냐?”

이강호는 카그네프의 우악스러운 손이 머리 근처에 다가올 때까지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마침내 카그네프의 손이 그의 머리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이강호가 작게 읊조렸다.

“카그네프. 나와 거래를 하자.”

“...으음?”

이에 카그네프의 손이 일순간 멈췄다.

이강호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는 무척이나 어이 없어하는 표정이었다.

“크크크,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거래?”

“그렇다. 거래.”

“내가 왜?”

카그네프가 조소를 내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회귀자의 기억보다도 그에게 있어 현재 중요한 것은 존재치 않았으니까.

허나.

“내 기억을 읽고 나면 알게 될 거다.”

“...뭐?”

“내 기억을 읽고 나면 알게 될 거라고 말했다. 단 날 살려둔 상태에서.”

이강호가 툭 내뱉은 말은 무시하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무튼 읽어봐라.”

“......”

무슨 꿍꿍이인가.

결국 이강호의 말을 무시하지 못한 카그네프는 그를 무력화만 시켜둔 상태에서 기억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기억은 해일의 파도가 밀려들듯 빠르게 카그네프의 정신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처음 판도라로 이동된 순간부터 현재까지, 모든 것을 읽어나가면 뇌가 견디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에 카그네프는 중요 부분만 읽으려 들었다.

신의 회랑에 관련된 것.

과거 어떻게 싸움이 이루어졌는지.

그 외의 중요 정보 등등.

슈우우우-

파짓-!

“큭!”

빠르게 읽어나가고 있던 카그네프가 갑작스레 손을 떼며 인상을 구겼다.

이강호가 저항을 시작한 탓이었다.

“이 자식... 감히 저항해? 크크크, 어디 한 번 할 수 있으면 해봐라!”

퍽!

카그네프의 주먹이 이강호의 명치에 정확히 들어가 꽂혔다.

“커... 커억!”

큰 데미지를 입은 이강호의 인상은 순식간에 와락 구겨졌다.

“크크크.”

그러자 카그네프는 다시 이강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억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곧은 육체에 곧은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이, 육체가 심한 손상을 입으면 아무리 대단한 정신력을 지닌 인물이라 할지언정 생명체인 이상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카그네프는 폭력을 가하면 가할수록 점점 더 깊은 기억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허나...

파짓-!

“이놈이?”

퍽!

이강호의 저항은 무척이나 강했다.

퍼벅!

퍼버버벅!

아무리 얻어맞고 곤죽이 되어도 그는 중요 정보와 관련된 기억은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엄청난 독종.

아니, 카그네프가 보아온 독종 중에서 가장 강한 독종이었다.

“흐흐, 대단하구나. 그래 인정하지.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한 번 보자고.”

하지만 이강호가 최악의 독종이라면 카그네프 또한 여태까지 수많은 독종을 굴복시킨 프로.

한쪽 손으로 이강호의 좌측 어깨를 붙잡은 카그네프가 다른 한쪽 손으로 팔을 붙잡았다.

그는 그대로 힘을 주어 이강호의 왼팔을 일부러 천천히 잡아 뽑기 시작했다.

뚜두두둑-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으스러진다.

뼈를 포함해 생살이 물리적 힘에 의해 뜯겨져 나가는 고통은 베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어쭈? 이래도 버텨?”

카그네프는 그렇게 왼팔로 시작하여 저항할 때마다 오른팔, 왼다리, 오른다리 복부 등등 천천히, 일부러 수많은 고통을 주며 이강호의 육체를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직-!

“크으...!!”

이강호는 뚫리지 않았다.

아니 어느 정도 뚫리긴 했지만 이 신의 회랑에 관한 주요 정보만큼은 절대로 카그네프에게 넘기지 않았다.

“이, 이 자식이!!”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카그네프가 우악스러운 주먹을 높이 치켜들어 올렸다.

이대로 머리를 내리치면 이강호는 사망, 죽게 된다.

하지만 그가 내리치려는 순간.

“거기까지... 해라... 더 하면 난 정말 죽는다.”

“이, 이 자식이!”

“거래 할... 생각이 들었나? 카그네프?”

“...기억을 읽히는 대신 목숨은 살려 달라... 이거냐?”

“뭐... 그렇지. 읽고 나면 어차피 싫어도 살려줄 수밖에 없겠지만.”

“...너... 대체 무슨 소리를...”

“허억... 허억... 아무튼 이제부턴 저항하지 않겠다. 한 번 읽어봐라.”

이강호가 넌지시 눈을 감았다.

카그네프는 이강호의 기이한 행동에 반신반의해 하면서도 머리에 손을 갖다 댔다.

대리자들에게 있어서 구두 약속은 별로 큰 가치가 없는데,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쩌려고?

아니, 그보다도 읽게 되면 살려줄 수밖에 없을 거라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슈우우욱-

“이런...!”

기억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나 흘렀을까, 카그네프가 손을 떼며 경악 어린 고함을 내질렀다.

신의 회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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