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8/606 --------------
진실이건 아니건 감히 자신에게 저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이 이상의 정보는 절대로 밝히지 않겠다는 뜻.
현재 그에게 있어서 제일로 중요한 것은 ‘놈’을 잡는 것이었으니까.
드래곤의 노림수 따위는 따로 알아보면 된다.
[흠, 그렇단 말이지. 좋다. 너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
눈을 번뜩 빛낸 루시뷀트가 약조했다.
그러자 세레나는 기다렸다는 듯 마법으로 만들어진 종이 한 장을 그에게 건넸다.
[이건...]
종이에는 좌표가 찍혀있었다.
“그곳에 놈들이 있을 거다.”
[......]
세레나의 호언장담에 종이로 향해있던 마왕의 시선이 다시 세레나에게로 향했다.
좌표가 찍혀있는 장소는 이곳을 기준으로 하여 북서쪽으로 약 3만 6000km.
이 좌표대로라면 시작점부터 길을 잘못 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난 약속대로 가보도록 하겠다.”
세레나가 마왕에게서 등을 돌렸다.
적에게, 그것도 감히 마왕에게 등을 보이다니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은 이상 할 수 없는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었지만, 마왕이 세레나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잠깐, 이 정보 정말 확실한 거냐?]
“확실하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그건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당신도 느끼고 있듯이 이 주위에 인간은 없다. 아니 인간은커녕 생명체 자체가 없지.”
[......]
“100% 확실한 정보다. 선발대를 보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
“그럼 난 이만...”
말을 마친 세레나는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해 칼날바람을 피해가며 장소에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이에 조심스럽게 다가온 레오릭이 물었다.
[군주시어. 정말 저 도마뱀을 그냥 보내주실 겁니까?]
[......]
마왕은 그 물음에 레오릭을 지그시 노려보는 것으로 답했다.
마왕은 죽음을 다루는 높은 권좌 위에 있는 자.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는 자였다.
세레나도 그것을 알고 있어 그런 식으로 딜을 한 것이고.
이에 자신의 실수를 순간 깨달은 레오릭은 곧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올렸다.
[송구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됐다. 그보다 레오릭, 이 장소에 수색대를 보내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래 포진하고 있던 장소에 전투에는 별 도움 되지 않는 병력 일부를 남겨 그 주위의 동향을 계속 살피게 하라.]
[예? 원래 포진해 있던 장소 말입니까?]
[그렇다. 저 도마뱀... 말은 저렇게 했지만 분명 다른 노림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노리는 건 분명 우리가 포진해 있던 장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마왕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것을 제외하곤 딱히 다른 마땅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레오릭이 고개를 숙여 명을 받들었다.
마왕이 마지막으로 명했다.
[그리고 아가레스... 그놈을 당장 내 앞으로 잡아 데려와라.]
[예.]
마군은 추적대를 보내기 무섭게 바로 방향을 꺾어 진군을 시작했다.
* * *
마족을 피해 어느 정도 남하를 한 인간진형, 이벨린은 목적지 도착에 앞서 진형을 세 개로 쪼갰다.
신의 회랑으로 향할 수 있는 두 번째 길은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워, 이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해야지만 열 수 있는 탓이었다.
그렇게 제 1팀은 무림인을 주축으로 남궁시영이 팀장을 맡았다.
제 2팀은 아르카드 대륙인을 주축으로 이벨린이, 제 3팀의 팀장은 이강호가 맡았다.
이강호가 떠나기 전 재차 당부했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을 확실히 맞춰야 한다.”
“알고 있어요.”
“좋아. 그럼...”
세 명은 쓱 눈빛 교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작된 작전명, 타임어택.
“거의 동시에 주술을 실시해야 된다고 했죠? 선배?”
유세현을 등에 업은 채 빠르게 장소로 나아가고 있던 도중 김주희가 이강호에게 물었다.
유세현은 아직까지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응.”
“허용범위 오차시간이 대체 얼마나 되는데요?”
“많아야 1분. 아니 그보다 짧을 거야. 한 50초?”
“예? 50초요? 무슨 그런...”
신의 회랑으로 향하는 두 번째 길을 열기위해선 세 팀이 각 지정된 장소에서 거의 동시에 지금까지 모은 20개가 넘는 재료로 주술을 실시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게다가.
“주술 방법도 복잡하다면서요?”
“많이 복잡하지.”
그 주술은 단 한 번도 재료의 사용 순서가 틀리지 않아야 했다.
삐끗하면 끝.
주술은 실패하고 그 실패의 여파로 일주일 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면 마족이 속았다는 걸 눈치채고 뒤쫓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무슨 그 따위 조건이... 최악이네요. 선배가 오고 싶어 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해돼요.”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마족과 싸우면서 길을 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편이 나으니까.
“후우... 하긴 그렇긴 그러네요. 근데 강호 선배. 세현 선배는 대체 언제쯤 깨어날까요?”
김주희가 고개를 돌려 잠들어 있는 유세현을 응시했다.
“글쎄...”
이에 이강호도 이것만큼은 확신하지 못했다.
육체 상태로만 본다면 깨어났어도 예전에 깨어났어야 정상이건만...
“아퀼라. 너 이전에 말할 때 선배가 많이 슬퍼하고 있다고 했었지? 지금도 슬퍼하고 계셔?”
“...모르겠어. 지금은 파악이 안 돼.”
“끙...”
앓는 소리를 내뱉은 김주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의 예쁜 얼굴은 현재 근심걱정으로 가득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김주희. 세현이는 깨어날 거야. 걔가 어떤 애냐?”
“...그러겠죠 선배?”
“물론이지. 그러니 지금은 지금에만 신경 써라. 이 작전... 만에 하나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
“...예, 알겠어요. 선배.”
김주희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대로 억지로 의지를 다졌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며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 * *
“자리를 잡아라!”
“경계를 확실히 해!”
사람들은 주술이 행해질 장소에 도착하자 여러 가지 보호마법을 만드는 등 이전보다도 더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이에 이강호는 이 근방에서 제일 높이 솟아 있는 돌기둥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들어 그것을 살폈다.
휘이잉-
바람이 스쳐지나가듯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얼마 만에 여기를 다시 찾은 것인가.
‘약 10년 만인가...’
모호한 기분이 든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이곳을 다시 찾을 거라곤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열세인 상황, 약소종족 연합군에 속해 아득바득 살아남기도 바쁜 때였으니까.
현재 인간진형의 병력이 약 3만 2천명을 넘는데 반해 당시 인간진형의 인원수는 정확히 326명이었다.
고작 326명 말이다.
“......”
에반도 이벨린도 그 당시에는 살아남기만 생각하는데 급급했다.
전부다 죽어 사라져,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과거를 바꿔 많은 이들이 살아남았다.
몰살되지 않은 무림인 덕택에 사람들의 기본적인 실력 또한 회귀 전보다 좋다.
‘그러니 이번엔... 승리한다. 반드시...’
회귀전, 연합군은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다양한 종족으로 이뤄져있는 만큼, 단결력이 없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그저 수동적으로 움직였기에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회중시계를 손에 넣을 때도...
그렇다 회중시계를 손에 넣을 때도...
‘큭.’
지끈-
또 다시 갑작스러운 두통이 이강호를 덮쳤다.
역시나 생각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회중시계를 손에 넣은 것인지...
그 열세의 상황에서.
‘괜찮아. 상관없다. 거의 다 왔어. 회중시계가 있던 곳에 도달한다면 분명 알게 될 거야...’
이강호는 고개를 휘휘 털며 의지를 다졌다.
어느새 이벨린, 남궁시영과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예, 발견했습니다. 인간이... 지금 저희 눈앞에 있습니다.]
[정말이냐? 정말 그곳에 있다고? 크윽! 말도 안 된다!]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아가레스님.]
[......]
수하의 보고에 아가레스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현재 마왕에게 불려와 추궁을 당한 상태였다.
[그래, 아가레스. 추격대에 넣은 너의 수하가 뭐라고 하더냐.]
“...큭, 인간을... 발견... 했다고 합니다.”
[...아가레스...]
“큭! 황송합니다 군주시어! 설마 제르오펜이 배신할 거라고는...”
아가레스가 다급히 지면에 머리를 박으며 조아렸다.
아가레스는 지금 당장 목이 떨어져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군주시어. 처단하시겠습니까?]
루시뷀트가 침묵하자 레오릭이 물었다.
이에 루시뷀트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이놈의 통신 능력은 나름 쓸만하니...]
“가, 감사합니다 군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단,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라. 두 번은 없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배신자는 네가 직접 처리해서 시체를 가져와라.]
“예!!”
아가레스가 몇 번이고 고개를 지면에 내리치며 복종의 뜻을 보였다.
루시뷀트는 그러거나 말거나, 곧장 명령을 하달했다.
[전군. 놈들을 포위하라. 벌레들을 섬멸한다.]
* * *
3만 6000km.
그것은 실로 엄청나게 먼 거리가 아닐 수 없지만, SS랭크 등급 이상의 대리자에겐 통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조심조심 가는 게 아닌, 질주를 하여 간다면 SS랭크 대리자들은 3시간 안에 3만 6000km라는 먼 거리를 주파할 수 있었다.
이에 마족들은 순식간에 인간들이 있는 장소에서 300km 떨어진 부근에 몰려들었다.
루시뷀트가 당도하기 무섭게 감시단장을 향해 물었다.
[적들의 동향은?]
“약 300km나 떨어져있는 만큼, 아직까진 모르는 듯합니다. 원래 있던 그곳에 그대로 주둔해있는 상태입니다.”
[흠, 그런가. 나머지들은? 다 모였나?]
“제일 먼 거리, 인간들의 후미를 치기로 한 벨제뷔트의 군세가 아직 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나.]
“길어봤자 5분일 것입니다.”
[알았다.]
이로써 앞으로 공세까지 5분.
루시뷀트는 곧장 레오릭을 불러들였다.
[놈은 내가 1:1로 잡을 것이다. 넌 방해하는 자들을 맡아라.]
[예? 허나...]
마왕의 말에 일전의 일이 떠오른 레오릭의 안광이 일순간 흔들렸다.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당시 자신의 군주인 마왕은... 분명 밀리고 있었다.
[군주시어, 합공하여 잡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레오릭은 일부러 조심히 돌려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루시뷀트가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레오릭...]
[...그것이 군주님의 뜻이시라면...]
결국 레오릭은 어쩔 수 없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시간이 되었다.
“군주시어! 벨제뷔트의 군세가 준비완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뿔피리를 울려라.]
“예!”
우웅-!
명령에 따라 공격을 알리는 뿔피리가 주위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공방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