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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 전방 90km지점 앞! 대량의 마족들이 출몰했습니다! 이쪽 방향으로 진군중입니다!”
“남동쪽 전방 100km지점 앞! 마족들이 이쪽을 향해 곧장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수는 너무 많아 추정 불가!”
“동쪽 전방......”
제 3팀, 이강호가 이끄는 진형에 비상경보가 울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마족들이 엄청난 속도를 선보이며 그들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뭐...?”
이에 수많은 생사를 넘겨온 이강호조차도 이번만큼은 좀처럼 당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발각될 여지는 분명 1도 주지 않았을 터인데...
이강호는 혹시 있을 마족의 추적자들을 끝임 없이 주의하고, 만일을 대비해 제르오펜의 오감을 일시적으로 봉인하여 어디로 이동하는지 모르게 했다.
마음을 바꿔 보고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이 장소는 첩첩 산중에 휩싸여 있어, 외부에서는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렇다. 확실한 정보라도 지니고 있지 않는 한...
“강호 선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나도 잘 모르겠어. 놈들은 이곳이 뭘 하는 장소인지 전혀 모르고 있을 텐데... 아니 애초에 이런 식으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어떡하죠?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수에요.”
“......”
그 물음에 이강호의 시선이 주술을 행하고 있는 제단을 향했다.
주술의 현재 진행도는 약 95%.
이미 플란의 핵까지 사용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그만 두기에는 너무 늦었어. 실패하면 우리는 처음부터 재료를 다시 모아야 한다. 물론 플란의 핵도.”
“...그렇다는 건...”
“주술이 완전히 진행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15분. 어떻게든 버틴다. 결정 덕에 질적으로는 우리가 우위에 있을 테니 가능할 거야.”
그렇게 말한 이강호가 등에 지고 있던 창을 꺼내 쥐었다.
“나가서 싸우시려고요?”
“어쩔 수 없지.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까.”
“주술은 누가 진행하고요?”
“김주희, 너가 한다.”
“예?”
“내가 말해 준 거 전부 외우고 있잖아? 어차피 거의 끝났어. 다음 재료를 넣을 시간만 실수 안 하면 돼.”
“끙...”
“체온을 낮추고 주술을 진행시켜. 그럼 조금이라도 발각되는 걸 늦출 수 있을 거다. 할 수 있겠지? 김주희?”
“...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지.”
“알겠어요. 제가 세현 선배를 지키면서 진행시킬게요.”
“좋아. 그럼 주술과 세현이를 부탁한다.”
파밧-
이강호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리를 이탈했다.
이전 전투로 이강호는 마왕의 눈에 띈 상황, 시선을 끌기위해 일부러 멀리 나가싸울 생각인 게 분명했다.
김주희는 이에 이강호의 말마따나 빙공으로 체온을 낮추고 다음 주술을 행할 준비를 했다.
제발... 이곳에는 아무도 오지 않아야 할 터인데.
그렇게 잠시 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전투가 발발했다.
* * *
“쳐라! 벌레들을 도륙해라!!”
엄청난 군세의 마군이 밀려들었다.
이에 약 1만1천에 달하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이 맡은 바 구역에서 대적을 시작했다.
“막아라! 질적으로는 우리가 위다! 충분히 가능하다!”
“크크큭! 벌레들이 어디서 잡소리를!!”
“받아라! 지옥의 업화!”
쉬이익-
콰과과광-!
전투가 벌어진 협곡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챙!
채재쟁-!
쇳소리가 일대에 휘몰아치고, 파공성이 끝없이 퍼져나간다.
“큭! 이 벌레들이...!!”
“뭐라냐! 벌레같이 생긴 건 너 아니냐!!”
그리고 결정을 지니고 있는 인간 세력은 지니고 있지 않는 마족을 상대로 정말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촤악-!
공방을 이어가던 인간 측 대리자 한 명이 상대하던 마족의 오른팔을 베었다.
당한 마족은 감히 믿을 수 없다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큭! 내가 저따위 벌레에게...!!”
“벌레같이 생긴 건 너라니까?! 이만 꺼져!!”
기세를 몰아 공격해나가던 인간 측 대리자가 마무리를 하기 위해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허나.
쉬이이익-
“...!!”
퍼버버벙-
사방에서 날아오는 각종 최상급 스킬들은 그가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두지 않았다.
사람이 결정에 의해 질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마족이 점하고 있는 것은 전투의 기본이 되는 병력의 수, 물량이었다.
“큭, 이런... 방해만 없었어...”
퓨슉-!
“...!!”
그리고 결정적으로.
“멍청한 놈들. 인간 하나에 수십이 쩔쩔 메다니...”
“커, 컥...”
마족 중에서도 결정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마군을 통솔하는 지휘관! 그리고 엘리트 마군들!
“제, 젠장...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흥! 그딴 거 내 알바 아니다. 벌레. 이만 죽어라.”
“카르시안!”
퓨슉-
결국 지휘관급에게 당한 인간 측 대리자, 카르시안은 그렇게 끝을 맞게 됐다.
“으으...!! 너가 감히 카르시안을!”
“흥, 걱정하지 마라. 곧 저승에서 만나게 해줄 테니.”
“이게-!!”
슈슈슉-
파바밧-
콰아아앙-!
지구였다면 이미 별이 붕괴되었을 정도의 폭발이 수 십 번 연속적으로 치솟았다.
얼마나 격렬한지 수 백 키로나 떨어진 장소에서, 굳이 보려하지 않아도 관측이 될 정도.
이에 마군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던 드래곤 측 정찰병들은 곧바로 자신의 동족에게 통신을 보냈다.
[마족들이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예의 그 장소로 진입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답변은 딱히 오지 않았다.
이 세계는 이리저리 법칙이 꽈져있는 세계.
통신이 도달하기까지 3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보고도 올렸겠다. 우리도 퇴각해볼까?”
“그러자고.”
드래곤들은 그렇게 등을 돌려 철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하고 있던 도중, 한 드래곤이 문득 궁금했는지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저놈들, 갑자기 왜 저러는 거래?”
“글쎄? 인간들이 뭔가 거슬리게 한 거 아닐까?”
“흐음, 고작 그런 걸로?”
“아무렴 어때, 우리에겐 좋은 일이니. 얼른 가기나 하자고, 괜히 또 발각되면 일만 복잡해질라.”
“그래, 그러자고.”
카모플라쥬를 사용해 은신한 드래곤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허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마족을 감시했던 것처럼 먼 치에서 마찬가지로 그들을 관측하고 있던 자가 있었다는 것을.
“움직이는 군.”
“후후, 드디어 인가. 어서 따라가자고. 카시우스. 까딱하면 놓친다.”
“알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드래곤이 그리했던 것처럼 인간과 마족의 전투를 뒤로한 채 드래곤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 * *
“제길! 너무 많아! 끝이 없어! 대체 몇 마리가 온 거야?”
“큭큭큭큭! 인간 놈들 다 죽어라!”
인간과 마족이 전투를 치르지 시작한지 어느덧 3분.
일대에는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넘쳐났다.
죽어가는 마족과 쓰러져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태연한 자, 아니 다른 이유로 급한 자는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찾아라! 놈을!]
설령 놈을 놓칠라, 발걸음을 재촉하는 루시뷀트.
허나 2분이 더 지났음에도 찾았다는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레오릭!!]
[송구합니다. 불을 사용하는 놈은 발견했습니다만. 그놈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
[혹시나 군주님께 겁먹어 진형을 버리고 도망간 게 아닐지...]
[되도 않는 소리 마라, 레오릭.]
루시뷀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고작 단 한 번의 전투에 불과하지만 루시뷀트는 유세현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동료를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그 전투 스타일.
도망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면 이곳 말고 다른 장소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라?]
[제가 대충 살펴보았습니다만, 인간의 수가 생각보다 적습니다. 중간에 무슨 연유로 팀을 나눈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이건가...]
[예, 놈이 도주한 게 아니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습...]
쿠구구구-
레오릭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 강력한 투기가 루시뷀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그가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던 이유는 유세현과의 전투를 대비해서인데, 그가 여기에 없다면 루시뷀트는 더는 힘을 아끼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만약 정말 레오릭의 말처럼 그렇다면...
‘빠르게 이곳을 정리하고 인간들을 잡아 심문해 장소를 알아낸다.’
그리고 처단한다.
놈을!
[레오릭.]
[예.]
[20분 안에 이곳을 정리한다.]
* * *
쿠오오오-
루시뷀트에게서 뻗어 나온 암흑은 순식간에 협곡 전체로 뻗어 나갔다.
사람들은 그 어둠에 닿기 무섭게 몸을 움찔거렸다.
몸이 무거워졌다.
엄청난 중압감...
“이, 이건...”
평균적으로 A랭크의 어둠속성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호신강기를 두르지 않는 한 이 힘에는 감히 30%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만큼 마왕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마족이 지금까지 득의양양할 수 있었던 이유!
[사라져라.]
쉬이익-
콰과과광-
“끄아아악!”
루시뷀트가 사용한 흑뢰에 정통으로 적중당한 두 명의 대리자가 그대로 지면 위에 쓰러졌다.
“끄으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움직여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지 움찔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죽여라! 달려들어!”
“아, 안돼! 크아아악!”
결국 그들은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든 마족들에 의해 처참한 마지막을 맞았다.
마왕의 등장으로부터 2분.
처음 약 1만 1천명이던 사람들의 수는 그새 줄어 2/3인 약 7천명까지 줄어있었다.
“크... 크윽! 무, 물러나라! 여긴 위험하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단시간에 도륙당한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라, 라크람! 가, 강호씨를 불러줘! 지금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강호씨 밖에 없어!”
“강호씨도 계속 적을 상대중이야! 부를 수 없어!”
“그, 그럼 세현씨는? 세현씨도 있잖아! 대체 어디에...”
“이 멍청아! 너 정신 나갔어? 그 이름은 입에 담지 말라고 사전에 팀장님이...”
[지금 뭐라 했지?]
대리자의 처절한 대화를 우연히 흘려들은 루시뷀트가 눈을 일순간 번뜩 빛냈다.
[지금 세현이라고 했나?]
슈욱-!
루시뷀트는 순식간에 도약하여 라크람과 그의 동료, 루인 바로 앞에 착지했다.
라크람과 루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이 멍청아! 그러니까 말하면 안 된다니...”
[너희들, 그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구나. 말해라.]
“크... 큭! 마왕!”
라크람과 루인이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루시뷀트를 겨눴다.
하지만 루시뷀트는 이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말해라. 말한다면 이 전투에서 너희 둘의 목숨은 보장해주도록 하마.]
“크, 크윽! 이, 이 자식이 우리를 뭘로 보고!”
[말하지 않겠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끊임없이 줄 것이다.]
“이, 이익! 이 자식이! 으아아!”
라크람과 루인이 공포를 잊기 위해 고함을 내지르며 루시뷀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나, 그렇게 마구잡이식 공격이 마왕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치지직-
챙!
단 1합.
단 1합에 허무하게 튕겨져 나간 둘은 그대로 지면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루시뷀트가 얼굴을 들이밀며 재차 말했다.
[자, 살고 싶으면 말해라.]
“으, 으...으으으...”
시퍼렇게 질린 라크람과 루인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눈앞에 존재는 너무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입을 절대 열면 안 되는데,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리려 한다.
“세, 세현씨는... 세현씨는... 지, 지금 의, 의식 장소에...”
[의식장소가 어디냐.]
“그, 그건... 그, 그건...”
차마 공포심을 못 이긴 루인의 입에서 뒷말이 터져 나오려던 때였다.
“거참! 말하지 싫다잖아!”
후우웅-!
쾅!
그들의 앞으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는가 싶더니 거대한 검을 든 남성이 루시뷀트의 머리 위로 툭 떨어졌다.
절망에 차 있던 루인과 라크람은 그 남성을 보기 무섭게 마치 구세주를 보는 것 마냥 잔뜩 화색했다.
“이, 이태광씨!”
전쟁군주, 이태광.
“어이, 마왕. 넌 내가 상대해주도록 하마.”
그가 차분히 루시뷀트를 향해 검을 겨눴다.
공방전(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