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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새까만 어둠 속, 마치 블랙홀 같은 장소에서 눈을 뜬 유세현은 이곳이 정신세계라는 것을 인지하기 무섭게 휘몰아치는 어둠의 격류에 저항하기 위해 몸을 바둥거렸다.
육체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만약 여기서 저항하지 못 한다면 다시는 못 돌아갈 것 같은 느낌.
“크윽...”
그는 허우적거리며 역으로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놀렸다.
그러나.
쉬쉬쉬쉬쉬-
어둠으로 이루어진 물살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셌으며 무겁기 그지없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압축해 하나로 합쳐 놓은 것 같은 묵직함이었다.
“크......”
그는 결국 역으로 나아가긴 커녕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빠져갈 수 있을까.
권능을 발휘해 봐?
유세현은 다급히 권능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되지 않았다.
이곳은 정신세계이긴 했으나, 그의 내면이 아닌 적이 창조한 정신세계였다.
그리고 놈은 유세현이 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사전에 원천봉쇄 해놓은 상태였다.
“으윽...!”
격류가 더 심해진다.
고작 5초도 지나지 않았건만, 방금 전 있던 장소로부터 강제적으로 수 미터나 이동됐다.
‘제길... 어떻게 해야... 어떻게...’
저항하는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약해져만 갔다.
유세현이 문득 뒤를 돌아보자 격류의 중심점이 눈에 비쳤다.
중심점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야말로 어둠의 집합체였다.
‘저거에 먹히면 끝이다.’
유세현은 더 팔을 빠르게 놀려 헤엄쳤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의지를 굳세게 다졌다.
‘난...’
“으아아아!”
아직 죽을 수 없으니까.
죽어선 안 되니까.
* * *
지구에서의 생활이 좋은가, 판도라에서의 생활이 좋은가.
보통사람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전자를 고를 것이다.
지금처럼의 강함은 없을 테지만,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 평화로움과 안락함이 그곳에는 존재하니까.
맛있는 음식과 보장된 생활!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은 유세현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부모님 죽음, 여동생의 실종, 여자 친구의 배신.
지구에서 모든 걸 잃고 낙담하던 그가 우습게도 웃음을 되찾게 된 곳은 판도라였다.
김주희와 만나고, 실종되었던 여동생과 상봉하고, 레피아, 아린, 이벨린, 등등 많은 동료들이 생겼다.
계속 나아가야 되는 이유가, 살아야 되는 이유가, 지켜야 될 것이 생겼다.
그렇기에 유세현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어떻게든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하여.
하지만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은 없는 법.
쉬이이익-
격류는 더 무겁게 그를 휩쓸었고 유세현은 어느새 구심점 근처에 다다라있었다.
‘새, 새크리파이스!’
유세현은 어쩔 수 없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있던 자신의 고유특성을 사용하려 했다.
허나.
‘크윽! 발동이 안돼!’
정신세계라 그런 것일까?
발동이 되지 않는다.
슈슈슈슉-
어느새 격류의 구심점은 이제 그의 몸과 불과 5cm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빨려 들어...’
그가 구심점에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슈우욱-
격류가 회오리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어둠의 바다의 밑, 거센 수면을 순식간에 뚫고 들어와 다가온 무엇인가가 격렬하게 헤엄치고 있던 유세현의 팔을 불쑥 붙잡았다.
‘...!!’
그것은 유세현이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그의 육체를 격류의 바깥으로 끌어올렸다.
“허억... 허억... 무슨...”
유세현은 호흡을 고를 새도 없이 다급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구해준 인물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쯧쯧쯧쯧. 어휴~ 또 당했니? 제자야?”
[......]
혀를 끌끌 차고 있는 천마와 침묵하고 있는 루시뷀트가 있었다.
각각 몸이 반씩 합쳐진, 하나의 몸의 형태로.
* * *
“무, 무슨...”
[에잉~ 쯧쯧쯧쯧, 아무리 동료들이 중요하다지만 안 그래도 밀리는 상태에서 정신력을 그리 사용하다니~]
하나로 합쳐진 몸의 절반, 오른쪽에 위치한 천마가 말하자 그의 음성이 중후하게 울렸다.
평소의 목소리가 아닌, 루시뷀트의 목소리였다.
“...미련했군.”
이번에는 루시뷀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반대로 천마의 음색이었다.
유세현은 황당스러운 둘의 모습에 잠시 그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스승님... 루시뷀트... 대체 그 모습은 어찌 된...”
그러자 천마가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큼큼, 제자야 네가 보기에도 좀 이상하느냐?”
“조금이 아니라 많이...”
“하긴... 행색이 좀 그렇긴 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단다.”
다시 본래의 목소리로 되돌아온 천마가 이번에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반대편의 마왕이 말했다.
[우리의 영혼은 절반이 손상된 상태다. 육체를 강제적으로 점령했었던 대가지. 지금까지는 네 안에 있는 힘이 불완전해 겉으로는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천마와 루시뷀트는 한 번씩 유세현의 몸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 제자야. 이 시꺼먼 놈 좀 없애주면 안 되겠니? 말을 좀처럼 쳐 듣질 않아. 갑갑해서 좀 움직이자고 해도 절대 안 움직이고. 어휴~”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노친네.]
“아오, 저 말하는 것 좀 보거라! 제자야! 콱 한대 쥐어박고 싶은데 한 몸이라 칠 수도 없고.”
[날 쳐봐야 너만 아플 뿐이다.]
“나도 아픈데 너도 아프겠지 이 시꺼먼 놈아!”
천마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오른손을 들어 루시뷀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딜.]
그러자 루시뷀트는 왼손을 들어 주먹을 붙잡는 것으로 이를 제지했다.
천마가 궁시렁거렸다.
“야! 이거 안 놔?”
[놔 주면 또 할 거지 않나. 노친네.]
“당연하지!”
[그렇다면 안 놓을 거다.]
“아오!!”
천마가 몸을 바둥거렸다.
절반만 바둥거리는 것에 불과했기에 굉장히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이거 뭐 어디 옛날 만화에서 나오는 아수라백작도 아니고.
유세현은 친한 친구끼리 티격태격 하는 듯한 둘의 행동을 보며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흘렸다.
“어? 웃어?”
이에 천마가 노발대발하여 반발하고,
[웃지 마라. 기분 나쁘다.]
마왕이 거들었다.
유세현은 그런 둘을 보며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급함이... 수그러든다.
유세현의 호흡이 빠르게 정상으로 되돌아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진지한 표정이 된 천마가 지그시 물었다.
[그래, 제자야. 좀 괜찮아졌느냐?]
“......예.”
진중함을 느낀 유세현은 그 물음에 차분히 답했다.
목소리가 또 다시 변한 천마가 이어 말했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로구나. 그럼 시간이 없으니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마.]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겁니까?”
[아니, 지금의 너는 이 장소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단다. 미련한 제자야.]
천마가 단호히 말했다.
유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제자야, 다시 말하지만 넌 정신력을 너무 많이 사용했어. 이 시꺼먼 놈이 파훼법을 일러주면 어떻게든 못 나가는 건 아니겠지만 나간다 한들 더 이상의 싸움은 무리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래서 하는 말이다만 제자야. 우리가 여기에 왜 왔는지 아느냐?]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유세현은 의도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 도와주시러 온 거 아니었습니까?”
[아니다.]
“예? 그럼 왜...”
[난, 아니 우린 이곳에 인사를 하러 왔단다.]
“...스승님, 지금 대체 도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는 거다 유세현.”
마왕이 지그시 말했다.
유세현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별인사?”
“그렇다. 우린... 떠난다.”
“뭐? 지금 그게 무슨 소리...”
[끌끌끌끌, 말 그대로의 의미란다 제자야. 우린 네 안에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어디로 말씀입니까?”
유세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들이 떠나는 건 사실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으나 지금, 그것도 바로 이 순간 이때 떠난다는 게 뭔가 마음에 크게 걸렸다.
아니, 그보다도 갈 곳이 진짜 있긴 있는 것인가?
그 말에 천마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끌끌끌끌, 진즉 죽은 놈들이 간다고 하면 어디겠느냐 제자야!]
“...스승님.”
비로소 그들의 말뜻의 의미를 알아챈 유세현이 진중한 목소리로 천마를 불렀다.
천마는 쓴 미소를 보이며 몸을 돌렸다.
그가 읊조렸다.
[제자야. 내가, 아니 우리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잘 보거라. 이게 바로 내 천마신공과...]
“나의 어둠의 권능이 완벽하게 합일 되었을 때 발휘되는 힘이다.”
슈우우욱-
몸을 공유하고 있는 두 존재가 마치 정말 한 몸이라도 된 것마냥 자연스레 몸을 움직였다.
그들이 양팔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트드드득-
어둠의 공간에 단번에 수많은 균열이 일었다.
트드득-
트득-
쨍그랑!
균열은 순식간에 어둠을 와르르 부서트렸다.
부서진 공간 너머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빛을 받으며 두 존재가 유세현을 향해 멋쩍은 목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여태까지 정말 즐거웠다.”]
* * *
[끝났군.]
초점을 잃은 유세현을 보며 루시뷀트는 그리 중얼거렸다.
그가 유세현에게 사용한 권능은 끝없는 어둠에 파묻히게 되는 [어둠의나락]
정신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 권능에 제대로 당한 자는 헤어 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어둠의 격류에 갇혀 방황하게 된다.
루시뷀트는 끝을 내기 위해 자신의 애검. 루베르크를 집어 들었다.
신경을 줄곧 거슬리게 하던 존재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기에, 현재 루시뷀트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잘 가라. 가짜.]
그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른 찰나였다.
[끌끌끌끌.]
유세현이 음흉한 실소를 터트렸다.
[잘 가라? 그런 건 죽이고 난 후에나 해야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순간적으로 몸을 회전시켜 대검의 칼날을 회피했다.
[...?!]
이에 루시뷀트의 동공은 순간 깜짝 놀라 동그랗게 확장됐다.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그 정신력으로 어둠의 나락에서 빠져나오다니?
[네놈, 대체 어떻게...]
[끌끌끌끌, 글쎄...? 지금 그게 중요할까?]
쿠구구구궁-
유세현이 몸에서 어마어마한 마력을 내뿜었다.
정신력이 다해 마력재생이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되살린 것이었다.
유세현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곧장 암흑투기에 힘을 더했다.
고오오오오-
지금까지 그가 사용하고 있던 암흑투기와는 차원이 다른 암흑투기가 일대를 짓누른다.
“무, 무슨!”
“큭!”
이에 마족들은 무척이나 큰 당혹감에 휩싸였다.
지금 발휘되고 있는 이 힘은 그들의 군주인 루시뷀트가 사용하고 있는 힘과 거의 다를 게 없었으니까.
아니, 완전히 똑같다.
보다 몸이 편해진 것을 느낀 이강호와 김주희가 순간 놀라 유세현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둘의 입가에는 이내 작은 미소가 맺혔다.
마왕 vs 천마왕(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