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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인물과 만났을 때 강한 적대감을 갖는다.
상대가 존재함으로써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다는, 자신의 고유성을 부정 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마왕은 타인의 존재에 의해 자신의 고유성을 위협받는 일은 전혀 없었을 터였다.
사용하는 마력조차도 일반 대리자와는 다른 특수한 마력이었으며, 능력은 당연히 감히 그 누구와 비교할 바가 못 됐으니까.
지금까지 그 어떤 이도 마왕은 감히 흉내 낼 생각을 갖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죽음 그 자체, 그 힘을 완벽하게 다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단 한 명, 루시뷀트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신경 쓴다고? 내가... 너 따위를 말이냐?]
제 자리에 멈춰선 루시뷀트가 읊조렸다.
전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목소리였으나, 유세현은 놈이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 자체에서 정곡을 찔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날 말이다. ‘너와 똑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유세현은 일부러 같은 힘을 지니고 있노라 강조했다.
전투의 1법칙.
최대한 적을 흥분시킨...
[어딜 벌레 따위가.]
지잉-
쉬이이익-
순간 눈을 번뜩인 루시뷀트의 육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공할 속도로 가속하여 순식간에 유세현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유세현은 곧장 천마군림보를 운용함과 동시에 역으로 파고들었다.
상대의 틈이...
‘커졌다.’
도발이 통했다는 증거.
치지지직-
유세현은 루시뷀트가 내리찍은 대검의 옆면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쓸며 다가가 그의 목을 노렸다.
마왕이 다른 이들에 비해 아무리 강인한 생명체일지언정 모든 생명체는 목을 자르고 머리를 부수면 죽는 건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이 일격으로 놈을 처리한다.
‘천마광룡...’
[흑월(黑月)]
허나 유세현이 천마광룡참을 운용하기 직전, 루시뷀트의 목 바로 앞에 생겨난 어둠의 구체가 거대한 초승달 칼날을 내뿜었다.
이윽고 불완전하게 날린 천마광룡참과 흑월이 맞부딪치자, 주위에는 거대한 충격파가 일었다.
뒤로 튕겨져나간 유세현은 혀를 차며 놈을 향해 곧장 재차 날아들었다.
아무리 불완전했다지만 공간을 잘라버리는 천마광룡참을 힘으로 밀어내다니.
루시뷀트는 다가오는 유세현을 향해 지그시 손을 들어올렸다.
[그래, 어디 한 번 다시 날아들어 봐라. 벌레야.]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손끝으로부터 퍼지기 시작한 어둠이 일대를 광범위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이건, 유세현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능력이었다.
‘흑암인가.’
흑암은 머지않아 수백 미터 떨어져 있던 김주희와 이강호에게까지 다라라 마찬가지로 그들을 덮었다.
유세현은 상상을 초월하는 흑암의 범위에 눈살을 일순간 구겼다.
‘저기까지... 보내다니.’
흑암은 상대의 오감을 완벽히 차단해버리는 능력, 이대로라면 김주희와 이강호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내가 어떻게든 해줘야 한다.’
유세현은 사용하게 될 시 찾아올 막대한 체력소비는 뒤로 한 채 루시뷀트와 똑같이 흑암을 사용했다.
영역선포 때처럼 힘과 힘이 서로 부딪치며 상쇄될 것을 생각하고 한 행동이었다.
“이, 이건! 선배의?”
“살았군.”
그리고 다행히도 그 예상은 반은 들어맞았다.
완전히 상쇄되어 없어진 건 아니었으나, 서로 부딪쳐 힘이 약화됐다.
그 결과 일순간 둔해진 김주희와 이강호의 몸놀림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허나.
[네 몸이나 잘 챙겨라.]
후우웅-
파앙!
둘을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에게 소홀했던 유세현은 마왕의 일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크...”
대검이 왼쪽 어깨를 스쳤다.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상대가 상대임을 고려하면 결코 다행이라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놈을 이기기 위해선, 아주 작은 데미지도 더 이상 축적돼선 안 된다.
유세현이 자세를 잡자 마왕이 또 다시 부패의 어둠을 날렸다.
솨아아아-
[어디 한 번 또 저항해봐라.]
행동거지로 보건대 루시뷀트는 진심으로 권능을 이용해 유세현을 찍어 누를 심산인 게 분명했다.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그 높은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어디 되다만 벌레가...]
휘이이잉-
쾅!
사선으로 대검을 내리찍은 마왕이 곧바로 회전하며 이번에는 대검을 올려쳤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맹공.
쉬쉬쉬쉭-
대검은 감히 대검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유세현의 목을 포함해 전신을 노렸다.
유세현은 천마검법 특유의 기괴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전부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며 반격했다.
챙!
대검과 루베르크가 맞부딪친다.
지잉- 지잉-
루베르크는 대검과 칼날을 맞댈 때마다 특이한 공명음을 발산했다.
마치, 대검과 맞붙고 싶지 않다는 듯.
[천마광룡참.]
[흑월격.]
쉬이이익-
콰아아아아앙!
천마광룡참과 마왕이 만들어낸 검은 검격, 흑월격이 맞부딪치자 일대에 거대한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유세현은 밀린다는 것을 느끼고는 다급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식은땀을 쓱 닦은 유세현이 인상을 미세하게 구겼다.
‘뭐지? 저건...’
방금 전 그 공격, 마력의 운용법부터 발산까지 천마광룡참과 굉장히 흡사하다.
저런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니...
그때 마왕이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내가 네깟 놈이 사용하는 그런 능력 하나쯤, 못 사용할 것 같았나?]
“......”
[아 그래, 무공... 이라 했던가?]
슈슉-
쾅-
마왕이 재차 다가와 대검을 내리찍었다.
단순하지만 전보다 빨라진 움직임이었다.
[솔직히 이건 인정하도록 하마. 너희 벌레들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이 마나사용법... 이건 내가 보기에도 꽤나 괜찮다.]
유세현은 혀를 차며 공중제비를 돌아 뒤로 물러났다.
역시 무공을 익힌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천마광룡참과 비슷한 능력을...’
천마광룡참은 무림인 전체가 인정하는 천재 중의 천재, 천마가 만든 최고의 무공이었다.
일개 삼류무공은 당연하거니와 상승무공도 감히 따라할 수 없는 게 천마신공인 것이다.
[나의 수하들이 상승무공이란 걸 몇 개 헌납한 적이 있었다. 허나 나의 수하들이 가져온 건 왠지 모르게 다 마음에 들지 않더군.]
마왕이 검격을 이어가며 계속 말했다.
유세현은 그것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점점 빠르게 숨이 차오르고 있다.
‘놈이 사용한 이 흑암... 내가 틈을 보이면 그 즉시 나를 잡아먹는다.’
반면, 마왕은 유세현이 사용한 흑암에 너무도 쉽게 대항하고 있었다.
채앵-
유세현을 쳐낸 마왕이 작게 읊조렸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뭐?’
[벌레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게 마음에 안 들어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만... 이렇게 된 거 어디 한번 받아봐라.]
쉬이이익-
양손으로 대검을 움켜 쥔 루시뷀트가 어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유세현은 회피할 자세를 취했다.
‘지금 정면으로 대항하면 너무 많은 체력과 마력이 소비된다. 어떻게든 흘려야 돼.’
무공을 언제 창시했는지 알 수 없다만, 법칙이 무너진 이 판도라에서 무공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이 스킬에 공(功)자를 붙이는 걸 좋아하더군. 너희에게 영감을 얻어 창조한 마법이니 특별히 나도 이 스킬에 공(功)자를 붙여주도록 하마.]
마신공(魔神功), 천뢰격(天雷擊).
치지지지직-
쿠구구구구구-
엄청난 뇌격을 담은 검은 검기가 유세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급조한 무공이라고는 도무지 볼 수 없는, 매우 강력한 무공이었다.
‘이놈도... 천재군.’
유세현은 그렇게 마왕을 인정하며 지면에 다리를 단단히 박고는 검을 사선으로 틀었다.
놈이 천재긴 하다만, 지금 발휘한 이 무공은 완벽한 무공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쉬이이익-
유세현의 검에 마력이 서린다.
유세현은 그대로 검을 올려침과 동시에 천마반탄기를 운용해 천뢰격의 경로를 하늘로 틀었다.
“크으으으!”
제대로 되받아친 것도 아니건만, 엄청난 부하가 유세현의 몸을 짓눌렀다.
유세현은 마력재생을 사용함과 동시에 루시뷀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력 재생인가.]
콰과과과-
중얼거림과 동시에 루시뷀트의 몸에서도 마력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마력재생에는 마력재생!
루시뷀트는 권능에 있어선 유세현에게 조금도 밀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어디 한 번 너의 모든 권능을 발휘해봐라.]
유세현은 그 도발에 넘어가듯 주위를 향해 발산하고 있던 암흑투기의 힘을 높였다.
쿠우우웅-
그러자 루시뷀트도 마찬가지로 암흑투기의 힘을 증폭시켰다.
쿠구구구궁-
갸갸갸갹-
공간이 마치 덜덜 떨리며 비명을 지르듯 흔들린다.
“이, 이건?”
두 사람의 권능대결이 주위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주변에 있던 모든 인물들은 하던 일도 순간 잊고는 루시뷀트와 유세현, 두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둘의 전투는 실로 마왕과 마왕의 위대한 대결이었다.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크크크. 인간, 저놈은 군주께 패할 것이다.”
레오릭이 이를 딱딱 거리며 즐거운 듯 말했다.
이강호는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유세현 덕택에 오감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이강호였지만, 레오릭의 편안한 행동에서 볼 때 그는 사실 유세현이 밀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허나.
‘유세현... 네가 이겨야 된다.’
지금 유일한 희망의 불씨는 유세현이었다.
유세현이 이겨야만 이 상황이 반전된다.
[자, 어디 한번 다른 권능을 써 보거라. 설마 이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닐 테지?]
루시뷀트의 말에 유세현은 마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놈의 도발에 넘어가는 건 미련한 짓.
그는 권능을 사용하는 척하며 무공을 운용했다.
[천마등공(天魔騰空).]
슈슈슈슉-
강력한 마력이 루시뷀트의 육체를 강제적으로 상공을 향해 잡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에 루시뷀트가 맹렬하게 저항했으나, 처음 겪어보는 특수한 스킬에 잠시 몸이 붕 떠오르는 것까진 막진 못했다.
“후욱... 후욱...”
유세현은 그 순간, 무섭게 천마광룡참을 운용했다.
‘어떻게든 지금 끝내야 된다.’
그는 동료를 위해 흑암을 전개하랴, 루시뷀트가 만든 흑암에 저항하랴 정신력이 너무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천마광룡참을 운용하는 와중에도 루시뷀트의 부패의 어둠은 유세현을 잡아먹기 위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하아아압!”
쿠구구구구-
쌔애애애액-
엄청난 마력을 머금은 천마광룡참이 루시뷀트를 향해 날아갔다.
이건 그가 착용하고 있는 마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일지언정 그냥은 못 넘어간다.
“피, 피해라!”
죽음을 느낀 하급마족들은 우르르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마족들과 달리, 마왕 루시뷀트가 그저 한심스럽다는 듯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급박하군. 그 모습을 보니 정신력이 다한 건가?]
쿠구구구구-
루시뷀트가 허리를 비틂과 동시에 어둠의 마력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강제적으로 낮춰 천마광룡참을 회피했다.
루시뷀트가 손을 뻗으며 작게 읊조렸다.
[자, 이번에도 버텨봐라. 나의 어둠을.]
그 말을 끝으로 유세현에겐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마왕 vs 천마왕(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