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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쿠구구구-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거침 땅울림과 함께 안개가 완전히 훤히 걷히며 장막 내부의 모습이 마치 3D 영화의 스크린처럼 외부 대리자들에게 훤히 드러나 눈에 꽂혔다.
“저, 저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파수꾼과 그 뒤를 따르며 닿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전류.
그리고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며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대지까지.
“서, 설마 퀘루안님이신건가?”
“뭐라고?!”
“어, 어디!”
“저, 저기! 뭔지 모를 거인의 발 아래!”
한 레드 드래곤이 특정 장소를 가리키자 그 근처에 있던 드래곤들의 시선이 대번에 그곳으로 쏠렸다.
“저, 정말이다. 퀘루안님이시다!”
“오오! 역시!”
퀘루안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레드 드래곤들은 순간 화색이 되었으나 그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뭐지? 퀘루안님의 상태가 뭔가 이상해.”
“너, 너무 느리셔! 저 정도의 속도는 A랭크도 채 되지 않는...”
“A랭크가 뭐야, B 아니 D 수준도 안 되어 보이는데?”
“어어!! 위험해! 밟힌다!”
다음 순간 퀘루안의 육체 근처로 거인의 발이 툭 떨어졌다.
다행히 짓밟히지는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 휘말리지 않은 것일 뿐 퀘루안이 회피한 것이 아니었기에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표정이 뻣뻣이 굳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 레드드래곤이 얼어붙은 그 상태 그대로 중얼거렸다.
“서, 설마. 스텟을 강제 제한당한 건가?”
“미친! 말도 안 된다! 만약 그렇다면 저 거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잡아! 아무리 이 탑이 악질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되도록 몬스터와의 격차를 둘 리가...”
반박하던 레드드래곤은 감히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믿기 힘든 일이었으나 실제로 현재 상황이 그러했기에...
내부는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무척이나 위급하면서도 격렬한 상황이었다.
“제길! 뭐 저런... 아니, 근데 저 미친 벌레 놈들은 이런 상황에서 왜 퀘루안님께 공격을 가하고 있는 거야?!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에! 다 같이 죽을 생각인...”
“거기까지.”
“응?”
“그만 신경 끄고 우린 우리가 할 일을 준비하자. 어차피 이래봤자 현재 우린 퀘루안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알았다.”
그 말에 레드 드래곤들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변화했다.
확실히 그들에겐 그들만의 할 일이 있었다.
‘내부는 한눈에 봐도 거의 마지막에 다다른 상태다. 그렇다는 건 조만간 무저갱에 갇혀 있던 블랙 드래곤 본대가 풀려날 가능성이 높다.’
본대가 풀려남과 동시에 인간을 친다.
‘자... 빨리 걷혀라.’
각오를 다진 레드 드래곤들의 눈동자가 마치 그들의 머리카락 색처럼 이글이글 타올랐다.
* * *
한편, 인간 진형.
장막의 내부 상황을 확인한 루시펠은 그 즉시 경계지역을 좁히고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내부의 상황으로 보건대, 놈들이 공격을 강행해 오는 순간이 있다면 지금일 가능성이 제일 높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만약 공격을 강행해 온다면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요?”
묵묵히 서있는 루시펠을 향해 한 명의 조원이 물었다.
루시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아니, 이길 수도 있습니다.”
실버와 골드를 미리 박살내 정면을 공략 당함과 동시에 양쪽에서 협공을 맞을 가능성을 미리 배제해둔 덕택이었다.
만약 놈들을 사전에 부수지 못했다면, 아무리 이쪽이 결정을 지니고 있다 한들 어떻게 되었을지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한 상태로 대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북서쪽 상공! 레드 드래곤 다수 발견!”
“북동쪽 상공에 본체화한 블랙이 다수 등장했습니다!”
“모두 예상대로입니다!”
후웅! 후웅!
본체화 한 레드 드래곤과 블랙 드래곤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전투가 개시되었다.
* * *
후웁!
콰라라라라-!
드래곤들이 일제 발사한 브레스가 폭풍처럼 숲을 불사르고 녹이며 이곳저곳으로 쏟아졌다.
하나하나가 맞으면 치명상이 될 정도의 강력한 위력!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은 이것에 당하는 일 없이 대응하며 되레 반격을 개시했다.
[천쇄풍참(天碎風斬)!]
[화암결파장(火巖抉波掌)!]
쿠구구구!
“크윽!”
저하된 스탯 때문일까?
미처 피하지 못하고 무공에 스친 한 블랙 드래곤은 갈려버린 날갯죽지에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분노를 터트렸다.
“이... 이... 벌레들이!! 감히!!”
콰과과과!
그는 근처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작정으로 재차 브레스를 발산했다.
“확실히... 느리군.”
“?!!”
푸슉!
“크아아악!”
허나 그러한 행동은 아쉽게도 되레 역풍을 맞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미리 그 아래 숲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명의 대리자가 순식간에 도약해 놈에게 날아들어 반대쪽 날개도 베어버린 것이다.
균형을 잃은 놈은 단번에 추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크으으!! 이, 이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 엇?!”
“아까 분명 우리보고 벌레라고 했던가? 어디한번 벌레한테 찢겨 죽어 봐라!”
촤자자작!
“캬아아악!”
레드와 블랙, 두 세력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이미 진형을 확실히 잡고 있던 사람들의 방어는 무척이나 견고했다.
“자리나 지킬 것이지 어딜 감히 어설프게 쳐들어와?!”
“뒈져라!”
“크으으으!!”
이것이 현재 인간의 저력.
허나,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드래곤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유리했던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 상공에 등장한 한 드래곤이 손짓한 순간.
[놈들을 말살하라.]
블랙 드래곤 로드 드라프나우어, 그가 속삭이듯 중얼거리자 알리크스, 실라우벨 그리고 에르비아크가 정중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차렸다.
“위대한 로드의 명을 받듭니다.”
후웅!
그와 동시에 무저갱속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수의 병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
“뭐, 뭐야!”
사람들의 눈은 대번에 휘둥그레지다 못해 까뒤집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줄곧 놈들의 추가 지원을 그렇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경계지역을 늘렸던 거 아니었던가.
그런데 경계하던 후방이 아니라 장막이 있던 전방에서 나타나다니?
“이런 미친!”
“말도 안 돼!”
사람들은 순간 패닉에 빠졌다.
그들이 아무리 베테랑이라 한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현재 추가된 놈들의 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족히 500명, 아니 필히 그 이상이다.
약소 종족이라면 스택의 차로 찍어 누를 수 있을 테지만, 무엇이든 파괴하는 브레스를 지닌 드래곤을 상대로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제길... 뭐가 이렇게 많아?’
‘이렇게 되면 순수 화력 승부로는 도무지 상대가 안 된다!’
“총대장님! 적의 병력이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잔뜩 당황하여 다급하게 외치는 조원의 물음에도 루시펠은 이번만큼은 바로 답할 수 없었다.
무저갱 내부에서 적이 튀어나오는 것은 그녀의 계산엔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니, 그 누가 감히 예측할 수 있을까.
으득-
상공의 드라프나우어를 포착한 루시펠의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새어 흐른다.
고작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드라프나우어를 포착하는 것으로 모든 내막을 순식간에 파악한 상태였다.
‘이런... 놈들의 본거지가 여기였던 건가. 지금까지는 장막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거고.’
“총대장님!!”
“......”
그녀는 전황을 살피며 차분히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그’는 그리 해왔으니까.
‘흠... 생각보다 우리가 그렇게 불리하진 않다.’
드래곤들은 본체화 할시 필히 몸이 거대해진다.
이에 대리자들은 지금까지 생존해온 베테랑인 만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엉겨 붙은 채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놈들은 같은 드래곤이라고 할지언정 색이 다른 드래곤의 브레스에는 저항력이 높지 않아 극심한 피해를 받기에 드래곤들은 일단 한번 붙으면 그 잘난 브레스를 마구잡이로 난사하지 못한다는 걸 이용한 것이었다.
‘그래, 그러니 아직까진 할만해.’
문제는 이게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
드래곤들은 인간에 이러한 행동에 피해를 받은 드래곤들은 뒤로 물러나게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드래곤들을 보충 시키는 것으로 대응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쳐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일단은 이대로 버텨보도록 하죠.”
루시펠은 그렇게 결단을 내렸다.
본래라면 체력 상황이 괜찮은 지금 당장 퇴각하는 게 최고의 판단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 어떤 접근도 불허하던 장막이 소실 된 현재, 멀지않은 시간 내에 유세현이 귀환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퇴각해버리면... 유세현은 살아서 귀환한다 한들 그대로 끝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야 해.’
각오를 다진 루시펠이 날개를 활짝 펼침과 동시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 * *
장막이 사라져 루시펠 진형과 드라프나우어의 진형이 격돌하기 몇 시간 전.
퀘루안에게서 갑작스레 인간 말살 명령을 받은 드레보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명령에 반문을 했다.
[어, 어째서입니까 퀘루안님. 에르프론이 죽었습니다. 다 같이 힘을 합쳐도 모자를 판에...]
[이유가 있다! 드레보스! 에르프론이 죽었을 때 꽃이 개화했다! 내가 똑똑히 봤다! 봐라! 하나 더 피지 않았느냐!!]
[...!!]
평소 개막장 행동을 보이는 그인 만큼 경을 내면서 직위로 찍어 누를 만도 하건만, 퀘루안은 그렇게 멍청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퀘루안의 진정으로 무서운 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수긍한 드레보스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선보이며 유승혜에게 접근해 나가기 시작했다.
강희수가 더 가까이 위치해 있었으나,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눴기 때문일까?
강희수에게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찌어찌 유승혜의 뒤까지 다가온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라. 인간. 아니, 유승혜.’
자신들은 어차피 다시 적이 될 운명.
그가 공격을 가하려던 찰나였다.
“전원 드래곤들에게서 떨어져!”
“...?!”
사자후 같이 퍼져나간 유세현의 외침이 모래바람을 뚫고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뭐, 뭐야 너?!”
덕택에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유승혜와 강희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공격을 회피하는 게 가능했다.
기습이 실패하자 퀘루안이 지그시 혀를 찼다.
“칫, 눈치 빠른 놈.”
그는 재빠르게 움직여 유세현에게 다가감과 동시에 라플라스에게 말했다.
“라플라스! 고유특성으로 놈을 묶어라!”
“이 상황에서? 방금 전 놈의 외침 때문에 파수꾼이 우리를 인지 했는... 어어??”
후우우웅!
쾅!
거센 풍압과 함께 존재를 알아챈 파수꾼의 팔 공격이 광범위하게 일대를 덮쳤다.
재수 없게 타겟이 됐던 라플라스는 대번에 울상이 되었다.
“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놈을 묶냐! 묶는 순간 나 죽어 임마!”
“그러게 애초에 기습을 잘 했어야지!”
“놈이 눈치가 빠른 걸 어떡해! 슬슬 다가가니까 바로 알아채더만!”
[고오오오-]
파수꾼이 입에서 증기를 내뿜으며 거칠게 포효했다.
본격적으로 공격을 가하려는 모양이었지만...
쿠구구구!
팔을 들기 무섭게 놈이 밟고 있던 대지가 무너지며 파수꾼의 거대한 육체가 일순간 휘청거렸다.
[우우우우우-]
이윽고 괴성과 함께 앞으로 나자빠지는 파수꾼!
“피, 피해라!”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우자 드래곤들은 공격이고 자시고 아연실색하여 발을 더 바삐 놀려 자리에서 벗어나는데 겨를이 없었다.
태초의 정원(14)